노태우의 북방정책에 갇혀 독안의 쥐 신세가 된 김일성과 김정일은 서(鼠)일성과 서정일로 개명하고 독안에서 바들바들 떤 게 아니라, 겨울잠 자는 독사처럼 아방굴(阿房窟)에서 늘어지게 잠을 잤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는 격이었다.

철석같이 믿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김일성의 입장에서 보아, 5.18 이후 한국의 대학생 운동권은 김일성에게 싹쓸이 숙청된 남로당보다 이념무장이 잘 되어 있었다. 남로당은 마르크스와 레닌을 추종할 따름이었지만, 386운동권은 김일성을 민족의 태양신으로 숭배하는 주체사상으로 핵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 봄만 오면 보자!”

한국에서 민주의 봄은 독사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악몽의 계절이었다. 처음에는 그들이 여기저기 출몰해도 선남선녀 상춘객(賞春客)도 별로 위험을 느끼지 않았다. 설령 떼로 나타나도 땅꾼 몇 명 풀어 놓으면 바로 제압되었다. 신문과 방송도 민주의 봄에 사(蛇)일성의 독을 품어대는 생뚱맞은 독사의 출현을 대대적으로 개탄했다. 머잖아 민주의 여름이 오면 절로 사라질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핵(核)정일은 영변 약산의 진달래꽃밭에서 뒷짐을 지고 빙긋이 웃었다.

300만이 굶어 ‘죽어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한 손으로는 자신의 남산배를 쓰다듬고 다른 손으로는 핵단추를 만지작거리는 핵정일을 보고, 인기스타 김영삼과 슈퍼스타 클린턴은 허둥지둥 어쩔 줄 몰라 했다. 한편 한국의 범야권은 핵정일을 극력 두둔했다. 북핵은 전력 생산용이요 평화용이라고, 한국의 반통일 세력과 미국의 제국주의 세력을 싸잡아 공격했다. 사일성의 일당백 전사 386운동권도 뿔뿔이 흩어지는 듯했지만, 그것은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이었다.

386운동권은 공간적으로 지하, 시간적으로 밤을 이미 민주의 봄 계절에 대부분 장악했다. 마침내 민주의 여름이 오자, 그들은 지상과 낮도 장악했다. 무엇보다 방송이 이들의 손에 들어갔다. 그들의 독침을 맞고 뇌신경에 이상을 일으키지 않은 방송이 전무했다. 신문도 몇 번의 화형식과 끈질긴 절독(絶讀) 굿판에 넋이 나갔다. 때마침 인터넷이 등장해서 포털이 언론의 관문으로 신문과 방송을 저들의 입맛대로 요리하기 시작하자, 민주의 여름은 완전히 저쪽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상식과 비상식의 선이 모호해지거나 상식과 비상식이 뒤바뀌었다. 민주와 독재, 우익보수와 좌익진보도 마찬가지였다. 핵정일과 386의 최대 성과는 6.15와 10.4였다. 6.15 이후 어떤 신문과 방송도 김일성과 김정일을 독재자로 부르지 못했다. 반드시 ‘주석’, ‘국방위원장’이라고 불렀다. 부른다. 대신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은 반드시 독재자로 불렀다. 부른다. 20세기의 악몽 공산왕조에 대한 비판은 금기어가 되었고, 20세기의 기적 대한민국에 대한 비방은 20년 내리 전설적 인기 검색어가 되었다.

민주의 여름 10년이 실은 독사의 여름 10년이란 게 명명백백해질 무렵, 선거의 여왕이 나타났다. 국민들은 우르르 투표장으로 나가 표로써 응징했다. 이때 선거의 여왕은 대한민국을 되살리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지만, 뻐꾸기 작전에 말려 길거리로 쫓겨났다. 하여간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광우병 촛불 행렬을 보고 ‘아침이슬’ 축가를 부르는 것으로 그들에게 바로 무릎을 꿇었다.

정치권력은 일부 넘겼지만(입법부와 사법부의 권력은 절반씩 나눠가졌으니까), 핵정일과 386운동권은 사회권력과 문화권력은 온전히 장악했던 것이다. 방송과 신문과 포털의 무차별 대한민국 비방에 민주의 가을은 더욱더 스산해졌다.

저들의 남북합작 정치공학은 거의 성사 단계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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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과 박정희와 박근혜에게 우호적인 문화권력은 거의 없다. 386운동권의 독침을 맞아 뇌신경이 이상해지지 않은 문화권력은 거의 없다. 조선동아 포함해서! 이런 상황에서 양손에 방패만 들고 북에서 날아오는 화살, 동에서 찔러 오는 창, 서에서 베어 오는 칼을 허겁지겁 막다가는 대선 경기장에 나서기도 전에 만신창이가 된다.

박근혜는 왼손의 방패는 그대로 들되, 오른손의 방패는 내려놓고 창을 들어야 한다. 김일성을 공격해야 한다. 3대 공산왕조세습을 공격해야 한다. 조선총독부의 총독보다 악독한 민족 반역자 서일성과 핵정일은 농담으로도 공격하지 않고 국부(國父) 이승만과 구세주 박정희는 먼지를 털어서라도 공격하는 문재인과 안철수를 역공해야 한다. 당내의 국가보안법 위반자도 매섭게 째려보며 ‘얼음!’이라고 명령해야 한다. 유신 변호사 문재인이 방조한 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파탄을 공격해야 한다.

중소기업을 간신히 벗어난 IT 회사, 정부와 대기업의 수의계약과 인터넷 백신 시장의 독과점으로 국내서만 승승장구한 2류 IT회사 전 이사장의 거짓말과 위선과 거품을 공격해야 한다. 뇌물공여와 협박과 사찰과 음모 사건으로 모면하려는 술수에 말려들게 아니라, 정면 공격해야 한다. 146만 주 BW 불법 취득, 산업은행이 파견한 무자격자의 이사(理事) 서명을 공격해야 한다. 실적과 전혀 무관한 안철수 주식의 폭등과 그것을 팔아, 개미 투자가의 피를 팔아, 기부하는 위선을 공격해야 한다. 단 한 번도 개미들에게 경고하지 않고 재산 불어나는 것을 즐긴 강남좌파 본색을 공격해야 한다.

이번 대선은 손이 부르트게 악수만 한다고, 성공할 수 있는 대선이 아니다. 민주의 겨울(대한민국의 봄)이 올까 봐, 북과 동과 서, 3면에서 저들이 사생결단하고 무차별 공격에 나선다는 것을 명심,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