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년의 고통은 비단 대한민국 국민들의 것만이 아니었다. 탈북 이후 제3국에서 고통으로 밤낮을 지새운 10년이라는 세월로 탈북자들의 한(恨)서린 눈물 또한 회색으로 얼룩진 하늘 아래 장대처럼 쏟아지는 소낙비와 함께 대지에 흩뿌려졌다.

-탈북자 중 체류국에서 10년 이상 생활근거지를 두고 있는 자는 보호대상자로 결정하지 않을 수 있다(북한이탈주민의보호및정착지원에관한법률(법률 제8852호) 제9조 4항. 2007년 1월 26일 개정)-

‘이 땅이 바로 사막 속의 오아시스인가’ 10년간 이어진 인신매매, 폭력, 노동착취, 강제북송이라는 기나긴 고통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고 마침내 제 눈을 의심하며 부푼 희망으로 꿈에 그리던 조국 대한민국 땅에 발을 디딘 20여 명의 탈북자들.

그들은 입국 직후 아무런 근거도 이유도 없이 10년 이상 제3국에서 체류한 탈북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의 전면거부를 명령하고 있는 단 두어 줄에 불과한 이 짤막한 법조항으로 인해 생계지원비도, 의료보험도, 한국사회가 국민들에게 보장한 최소한의 그 어떤 혜택마저도 전혀 누릴 수 없는 노숙자의 신세로 전락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과의 대화를 전면 거부하고 있는 통일부의 높디높은 담장 한 구석 밑에 웅크리고 앉아, 부와 환락이 넘쳐나는 화려한 한국 사회로부터 한참을 동떨어진 어둡고 추운 외곽에서 거센 장대비를 맞으며 오직 ‘생존’을 위해 끝내 그 끝을 기약할 수 없는 무기한 단식 투쟁이라는 극한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정권은 지난해 1월 ‘체류국에서 10년 이상 생활근거지를 두고 있는 자’에 대해 탈북자로서의 지위와 권리를 말살하고 보호, 정착지원을 못하게 하는, 그 누구도 납득하지 못하는 개악을 저질러 총 20여 명에 달하는 탈북자들을 입국하는 그날부터 노숙자로, 대한민국판 ‘꽃제비’로 전락시켰다”

이들 피해자들이 탈북자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함께 투쟁에 나서고 있는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는 노무현 정부가 탈북자들에게 저지른 돌이킬 수 없는 만행을 이렇게 한 마디로 압축 표현했다.

그는 또 “한 결 같이 인신매매에 팔려 다니면서도 강제 북송에 따른 죽음 앞에 피눈물을 흘린 그들이 어떻게 ‘생활근거지를 두고 있는 자’에 해당되며 탈북자를 강제 북송시킨 중국이 어떻게 ‘생활근거지’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지금 이들은 길게는 수년째 일정한 거처도 없는 방황을 거듭함에 따라 건강이 악화되고 스트레스가 쌓여 극도로 불안해하는 중에도 하룻밤이라도 편히 쉴 수 있는 좁은 공간도 허용치 않는 대한민국 사회에 분노하고 절망하고 있다”고 그들의 심정을 전했다.

그리고 “탈북자들의 대한민국 입국과 성공적인 정착을 저해하는 통일부와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제9조 4항’의 전면개정, 비보호탈북자들에 대한 보호 및 정착지원에 국민여러분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과 동참을 요청한다”고 간절히 호소했다.

하지만 박 대표에 따르면 피해자 중 일부는 심지어 주민등록증조차도 발급받지 못해 탈북자로서의 권리와 보호는커녕 언제 외국으로 추방될지 모르는 불법체류자 무국적자 신세로 전락한 상태이며, 한 때 이를 국정원조사기관과 통일부에 공식 항의했으나 통일부는 오히려 적반하장 격으로 국회에 책임을 돌리며 회피한 것으로 전해져 이들 피해자들의 앞날을 불투명하게 했다.

또 통일부는 심지어 이들 피해자들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중국에서 전혀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설명에 “그러면 보호를 못 받았다는 증명서를 중국에서 떼 와라”는 황당한 답변만을 내놓았던 것으로 박 대표에 의해 폭로되어 향후 국민들의 분노와 지탄이 집중될 것으로도 전망되었다.

한편 이들의 단식투쟁 현장을 목격한 한 시민은 통일단체인 백두한라회 게시판을 통해 “한 병든 여인은 옆구리에서 고름이 나오지만 치료할 능력이 없어 ‘차라리 이렇게 살 바엔 죽음이 편하다’고 말했다”며 “대한민국에서는 개가 병들어도 치료해 주는데 개보다 못한 탈북 여인들의 인생에 할 말이 없었다”고 심정을 밝혀 이번 사태에 대한 심각성과 참담함을 한 층 더하기도 했다.

어두운 먹구름들이 하늘을 모두 덮어버려 한 점 햇살조차 찾아볼 수 없는 가운데 거센 장대비가 내리는 24일, 오늘도 그들은 지치고 병든 몸을 이끈 채 통일부의 어느 담벼락 아래에서 그들을 버렸던 대한민국에 그래도 한자락 희망의 끈을 놓치 않으며 생존을 위한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오주한 기자 ohjuhan@hotmail.com

통일부에서 단식투쟁 중인 피해자 박선녀씨. ⓒ자유북한방송F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