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할때는 씩씩하게 보였는데, 요안나 호사냑(39)씨는 눈물이 많은 폴란드 여인이었다. 인터뷰 동안 세 번이나 울었다. 북한 주민들의 참상을 말하면서 울음을 삼켰고, 공산주의 치하(治下)에서 보낸 자신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울었고, 어떤 질문에서는 "차마 말 못 하겠다"면서 또 울었다.

그녀는 가족이 살고 있는 폴란드 바르샤바를 떠나와 '북한인권시민연합'에서 10년째 일하는 중이다. 한 달 봉급 250만원이니, 돈을 벌고 한 푼 두 푼 저축하는 삶과는 무관했다.

그녀를 만난 것은 '북한의 반(反)인도적 범죄 조사를 위해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실무진이 입국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을 때다. 북한인권조사위원회가 설치된 데는 그녀의 역할이 컸다. 작년 말 그녀는 이를 위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나비 필라이 유엔인권최고대표를 만났다.

―당신은 유엔인권최고대표 앞에서 "지금은 북한 인권을 위해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고 울며 매달렸다고 들었다.

"북한 수용소를 탈출한 신동혁·김혜숙씨, 휴먼라이츠워치(인권 감시 단체) 관계자와 함께 면담했다. 그 자리에서 동혁이가 '옛날에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영화를 봤다. 앞으로 북한에서도 그런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미리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홀로코스트에 대해 쭉 배워왔다. 동혁이 얘기를 들으면서 죄 없이 죽어갈 북한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내가 우니까 곁에 있던 사람들도 따라 울었다."

그녀는 벌써 울고 있었다. 나는 정 없이 질문했다.

―북한의 인권 실태에 대해 많이 들어서 새삼스러울 게 없었을 텐데.

"국제사회가 야속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유엔에서는 매년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지만 각국 외교관들은 이를 습관적으로만 받아들였다. 북한은 통제돼 있어 내부 상황은 보도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시리아와 수단 사태만 심각하지, 북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긴다. 작년부터 국제사회의 이런 태도에 실망이 컸다."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됐지만 북한에서는 실질적인 변화가 없었다고 보나?

"전혀 변화가 없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과거에는 탈북자가 송환되면 노동단련대나 교화소에 끌려가 고문을 받았다. 하지만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된 뒤로 북에 송환됐다가 다시 탈출한 주민과 인터뷰해보니 강압 조사가 줄어들었다고 했다. 교화소에서 나올 때는 '인권침해를 당하지 않았다'는 서명까지 받더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구나. 작은 변화가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큰 변화는 아니다."

―유엔인권결의안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인데.

"아직 나는 행복하지 않다. 유엔인권최고대표에게 '북한은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이제 우리가 무언가를 해야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감정이 북받쳐 계속 울음이 나왔다."

―원래 그렇게 '울보'인가?

"외교관들과는 '비즈니스'로 만난다. 하지만 그때는 '북한 인권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생각이 들었다. 유엔인권최고대표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원래 30분으로 예정된 미팅이었는데 1시간으로 길어졌다. 내가 울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좀 창피했다. 하지만 나중에 들으니, 유엔인권최고대표가 비서에게 '인간적인 자리였다. 나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다른 핑계를 대고 일어났다'고 말했다고 한다."

―미팅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나?

"우리를 만나고 3주일 뒤 유엔인권최고대표가 '우리는 북한의 핵 문제에만 신경을 많이 쓴다. 그 못지않게 인권 상황도 중요하다.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그걸 갖고 각국 외교관들과 NGO를 만나 인권조사위원회 설치 문제를 논의했다."

―처음에는 다소 부정적이었다고 들었다.

"이미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으니 좀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 조사위원회를 설치하면 인력과 경비가 많이 드는 현실적 문제도 제기됐다. 우리는 '지금까지 10년을 기다렸다. 인권 유린의 증거가 다 있는데 왜 더 기다려야 하나. 유엔인권최고대표도 지지했다'고 설득했다. 제일 먼저 일본이 지지 입장을 밝혔다. EU도 같은 뜻을 전해왔다.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투표 없이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인권조사위원회가 북한에 들어가 조사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한계는 있다. 오는 19일 세 조사위원이 방한한다. 그 전후로 사무국 직원들이 더 많은 탈북자를 인터뷰하고 북한의 인권유린 사진과 동영상, 문건들을 볼 것이다. 또 NGO나 전문가들을 만나서 얘기를 듣게 된다."

―이런 위원회 활동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위원회는 12월쯤 조사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해야 한다. 만약 북한의 반인도적 범죄로 결론이 나면, 안전보장이사회가 이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다. 북한 정권에는 압박이 될 것이다. 통일이 되면 인권 탄압에 앞장선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생각해봐야 된다. 한국 내부에서는 정파와 이념에 따라 갈리겠지만 국제사회가 결론을 내주면 더 쉬워질 것이다."

―김정은은 스위스에서 유학해 보고 들은 게 있으니, 북한의 인권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보지 않는가?

"체제가 흔들리면 오히려 탄압이 더 심하다. 폴란드도 그런 경험이 있다. 민주화 운동으로 체제가 흔들리자 계엄령을 선포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검문과 체포가 일상화됐고, 수용소에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고 한다. 우리 가족은 배급받기 위해 교대로 밤새 줄을 섰던 기억이 있다. 아마 북한도 똑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탄압 체제가 결코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1989년 구소련과 동구권이 붕괴했다. 당신은 소녀 시절을 공산주의 체제에서 보낸 셈인데?

이 '통상적인' 질문에, 그녀는 침묵했고 눈물을 보였다. 그녀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어두운 시절이었다. 그 나이는 좋은 추억도 많을 때다. 하지만 내게는 어두운 기억만 지배적이다. 차라리 나중에 태어났더라면, 기억에서 그 시절은 지워졌으면 하고 생각했다.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걸 얘기하지 마라. 저걸 얘기하지 마라'는 것이었다. 갑자기 아빠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지, 아무 이유 없이 두려웠다."

―당신은 왜 그런 조국을 위해 활동하지 않고, 연고가 없는 북한 인권을 위해 나섰는가?

"폴란드는 시민사회가 건재했다. 북한과는 다르다. … 사실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어떻게 해서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됐나?

"대학 4학년 때 처음으로 인터넷을 통해 북한 인권 실태에 대해 알게 됐다. 공산주의 체험을 했으니까, 아직도 그런 수용소가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북한 주민들이 겪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적어도 우리는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1993년 바르샤바대(大) 한국어문학과에 진학했다. 우리 대기업이 폴란드에 진출하기 전이었다. 한국어문학과 입학생은 다섯 명에 불과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엔지니어였던 아버지와 다퉜다. 나는 실질적인 밥벌이가 되는 법학과 경영학에는 관심이 없었다. 남들이 안 가본 길을 가보고 싶었다. 그때까지 폴란드에는 한국 전문가가 없었다. 내가 많은 걸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당시 남한과 북한, 어느 쪽을 염두에 두고 한국어를 배웠나?

"선배들은 북한을 염두에 두고 배웠다. 그전에는 북한에서 온 교수가 있었다. 평양에 유학 가기도 했다. 공산권이 무너지면서 그런 교류가 끊겼다. 대학에는 한국 교수가 왔다. 대학 3학년 때 처음으로 친구들과 서울에 왔다. 연세대어학당에서 3개월간 유학했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바르샤바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 4년간 계약직 직원으로 근무했다.

"대사관 근무는 내 취향에 안 맞았다. 나는 생각하는 걸 바로 말해야 한다. 외교적 수사를 못 한다. 주위에서 '너는 활동가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조언했다. 헬싱키 인권재단에서 개설한 인권 코스에 지원했다. 면접을 볼 때 담당자가 '이번에는 지원자가 많아 어렵다'고 했을 때, '올해 못 들어가면 내년에 오고, 내년에도 안 되면 그다음 해에 또 올 것이다'고 답변했다. 그렇게 해서 인권 코스를 밟았다."

그 뒤 헬싱키 인권재단에서 근무했다. 2004년 바르샤바에서 헬싱키재단과 북한인권시민연합 공동으로 국제회의가 열렸다. 그 인연으로 북한인권시민연합에서 일하게 됐고 10년이 됐다.

―탈북자들과 처음 대면했을 때 어떤 인상을 받았나?

"이들이 얼마나 강하고 용감한지를 느꼈다. 어려운 상황에서 넘어와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과거 경험을 극복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나는 탈북 청소년들을 교육할 때면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과거는 우리의 힘이다. 나도 어려웠던 시절을 거쳤다. 그것은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과거를 계속 돌아보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과거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해준다."

―북한 인권 이슈를 놓고 국내에서 좌우 진영으로 나뉘어 싸우는 모습에 당신은 충격을 받았다고 들었다.

"한국어 전공을 했지만 내부 상황을 몰랐다. 2004년 처음으로 '유엔인권결의안' 채택을 위해 제네바에 갔다. 그때 좌파 성향 단체들도 왔다. 이들은 북한 외교관에게 접근해 귓속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이들이 북한 지원 문제를 논의하는 콘퍼런스를 열었다. 내가 회의장에 들어가려니까 못 들어오게 했다. 그때까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설명을 듣고 북한 인권 문제는 북한 정권과만 싸우는 게 아니라 국내에서도 싸워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일각에서는 인권 문제를 제기하면 북한을 자극해 교류 및 외교 관계의 악화를 가져올 뿐이라고 주장한다.

"인권에 대한 요구 없이 교류만 하면 독재 정권 체제만 굳게 해준다. 독재의 장벽은 조각조각이 붙은 모자이크와 같다. 어느 한 조각이 뚫리면 전체가 허물어진다. 그 결정적 조각 중 하나가 인권이라고 나는 본다."

―지금까지 만난 탈북자 수는?

"계산을 한 적이 없다. 요즘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탈북자들의 삶이 하나하나 머릿속에 남아 쌓이는 것 같다. 폴란드에 있는 엄마한테 '힘들다'고 전화 거는 횟수가 많아졌다. 최근에는 북한 내부의 장애인 보고서를 준비하면서 정말 기분이 우울해졌다."

―북한 장애인들의 실태는?

그녀는 고개를 떨궜다.

"…내 여동생이 희귀병을 앓는 장애인이다. 서른두 살인데 부모님이 아기처럼 돌보고 있다. 북한에서는 난쟁이나 지적장애인을 주위에서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경제난으로 기형아는 출생 전후 없앤다고 한다. 간혹 태어나면 어디인가 격리하는 조치를 한다고 들었다. 난 더 이상 얘기를 못 하겠다."

―언제까지 이 활동을 할 건가?

"여기서 계속 일하고 싶다. 다만 통일이 되면 북한인권시민연합 평양 지부에서 일했으면 한다. 독재 치하에서 살던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권리에 대해 모른다."


기사출처 http://www.mulmangcho.org/?c=7/39&uid=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