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 그 어디를 가나 단풍이 붉게 물들어 울긋불긋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 산천은 말 그대로 금수강산이다. 시원하게 뻗어나간 평양-원산 고속도로를 따라 아름다운 자연을 한껏 만끽하며 관광에 나선 당 간부와 어느 무역회사 사장의 가족들도 있었고 그와는 상반되게 돈을 벌기 위해 크고 작은 장사보따리를 들고 고속도 주변에 서서 담뱃갑이나 5000원 짜리 지폐를 흔들며 차를 세워달라고 애원하는 “생활전선”에 나선 햇볕에 탄 장사꾼들의 얼굴모습도 차창너머로 보인다.

정말이지 우주에 생존하는 자연의 모든 생물들의 생존법칙이나 자연환경의 생김새도 천태만상이듯이 지구촌의 사람들의 생활방식 또한 다양하고 각양각색이다. 그런데 이때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유령처럼 움직이는 두 사람이 색 바랜 야전승용차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급히 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대남전략의 검은 모략을 안고 강원도 금강산지구로 향하는 김정일과 그의 부관이었다.

1990년대에 이르러 약 40년간 북한을  통치 해오던 김일성이 고령에 이르면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직책을 공식적으로 넘겨받은 김정일은 사실상 당, 국가, 군대의 실권자로 둔갑하여 권력에 대한 장악, 통제 사업을 그 어느 때보다도 강화하였다.

당시 북한은 수력자원이 풍부한 강원도 지역의 자연 지리적 조건을 이용한 안변청년발전소 건설을 발기하고 북한군인들을 위험한 공사에 동원시켰다.

김정일은 안변청년(금강산)발전소 제1단계가 완공되면 연간 수억㎾h의 전력을 생산하게 되며 강원도의 전기 문제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게 된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이것은 대남전략의 검은 속심을 가리기 위한 김정일의 기만극에 불과했다.

이 수력발전소건설의 주요목적은 태백산맥의 무진장한 물 원천과 북한강 물줄기를 이용하여 많은 물을 저축해 놓았다가 유사시 서울지역을 단숨에 수장해버리자는 군사적 목적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김정일은 안변청년(금강산)발전소건설 인민무력부와964군부대(호위사령부), 1050갑문건설관리국 산하 198여단, 522여단에 이 임무를 맡겼다.

그리하여 이 죽음의 고역 장으로는 북한군의 각 군종, 병종별로 선발된 우수한 군인들과 군복무 만기가 돼오지만 노동당에 입당하지 못한 열성분자들을 색출하여 공사 집단을 꾸리고 여기에 대한 모든 후방사업은 후방총국에서 직접 맡아 보장하였다.

이날도 부관과 함께 1계단 준공식을 앞두고 그 성과적 여부와 최근 군인들의 사상동향, 기강을 점검하기 위해 “암행어사식 시찰”의 길에 나섰던 것이다.

김정일은 전선시찰 준비를 서두르는 부관에게 고급담배인 ‘고양이’ 브랜드가 붙은 여과담배를 1타스(10갑)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부관은 김정일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명령에 따라 ‘고양이담배’를 준비했다.

야전승용차에 몸을 싣고 뽀얀 먼지를 휘날리며 굽이굽이 철령을 넘어 달리던 승용차는 어느덧 첫번째 전선지구 검열초소에 와서 멈춰섰다. 부관이 차에서 내려 보초병에게 다가가 “보초병동무! 수고하십니다. 우리는 평양에서 왔는데 가는 길에 금강산발전소 구경을 하고 가려고 합니다. 좀 들어가 봅시다.”

보초병: “전선지구는 증명서가 없으면 안 됩니다. 되돌아가십시오.” 부관은 몇 번 사정해보았지만 안 돼 되돌아와 김정일에게 사실대로 보고했다.

그러자 김정일은 부관에게 떠나올 때 가지고 온 ‘고양이담배’ 한 갑을 가져다 보초병에게 주라고 지시했다. 그제야 부관은 김정일이가 왜 담배를 준비하라고 했는가를 알게 되었다.

담배 한 갑을 꺼내든 부관은 보초병에게 다가가 “보초병동무! 담배나 건사했다가 피우시오.” 하면서 보초병에게 담배를 내밀었다. 그러자 보초병은 고양이담배를 집어 흡족한 듯 주머니에 넣었다.

(당시 인민군대내에는 함북 회령에서 생산되는 ‘백승’담배가 공급되었으나 구대원이나 상관들이 다 떼먹고 그나마 한 대도 차례지지 않았다.) 이때라고 생각한 부관은 보초병에게 바싹 다가가 사정했다.

그러자 “먹은 소가 힘쓴다.”는 속담도 있듯이 보초병은 자기의 보초근무시간까지 대주면서 그 시간에 무조건 나오라고 신신당부하였다. 그리하여 어렵게 생각했던 최전연 검열초소는 ‘고양이’담배 한 갑으로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초소를 통과하여 얼마쯤 달리였는데 또다시 두 번째 초소가 다가왔다.

그러자 부관은 당황한 기색이 없이 준비해가지고 온 ‘고양이’담배 한 갑을 꺼내들고 보초병에게 찾아가 사정했다. 담배 한 갑을 받아든 보초병은 이번에도 ‘전선지구 증명서’가 없었지만 또다시 무사통과 시켰다.

이제 남은 것은 세 번째 검열초소만 통과하면 되는 것이다. 두 번째 검열초소를 벗어나 얼마간 속도를 내여 달리였는데 드디어 세 번째 검열초소가 나타났다.

부관은 전과 같은 방법으로 또다시 보초병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상등병의 영장을 단 보초병은 ‘고양이’담배를 내밀자 담배를 집어 발끝에 집어 던지더니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제 한번만 더 말하면 담배를 다리 밑으로 차 던지고 말겠다.”고 말이다. 하는 수 없이 부관은 김정일에게 이 사실을 죄다 보고했다. 그러자 김정일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차에서 내려 보초병에게 다가갔다. 해는 어느덧 서산으로 기울고 땅거미는 어두워 사위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김정일이 보초병에게 거의 다가간 순간 승용차의 전조등 등불이 대낮같이 환히 비치면서 주위를 밝혀주었다. 그러자 보초병은 한동안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상좌복 차림을 한 군관은 다름 아닌 최고사령관 김정일이었던 것이다. 보초병은 오른손을 올리며 경례를 붙였다.

“조선인군 최고사령관 김정일 동지! 보초근무 중 이상 없습니다. 상등병 김남수.”
김정일: “쉬였하시오.”
보초병: “알았습니다!”
김정일: “보초병동무! 오늘 내가 온 것을 누구도 알면 안 됩니다.”
보초병: “알겠습니다.”

이렇게 마지막 검열초소를 벗어난 김정일은 금강산발전소를 향해 속력을 높이였다. 얼마간 달리던 승용차는 드디어 공사현장에 도착하였다. 자정이 훨씬 지나 군인들은 모두 지쳐 잠을 자는 모양인지 조용하였다.

이때 어디선가 “딱! 딱!” 하면서 망치질 소리가 조화를 맞춰 들려왔다. 여기저기 공사현장을 둘러보던 김정일은 거기로 다가갔다. 그 곳에는 모자를 한쪽으로 젖혀 쓴 군인이 엎드려 자갈을 열심히 깨고 있었다. 김정일은 그에게 다가가 “군인동무! 수고합니다. 금강산발전소 완공 기일을 제 기일에 보장할 수 있을 것 같소?” 그러자 아닌 밤중에 웬 홍두깨냐는 듯 힐끗 쳐다보던 그 군인은 “저기에 가보시오!” 하면서 퉁명스레 손짓을 했다.

그 군인이 가리키는 곳에 가니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는데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라는 구호가 씌어져 있었다. 그제야 그 군인의 행동을 이해한 김정일은 그에게 다가가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다. 사진은 즉시 인화되어 군인에게 돌려줬다. 그러나 그는 떠나는 순간까지 김정일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훗날 그는 김정일의 특별배려로 구분대의 지휘관으로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세 번 채 검열초소의 보초병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고양이’담배를 받고 통과시켰던 첫 번째와 두 번째 초소의 초병들은 ‘생활제대’ 처벌을 받았다.

금강산발전소의 10리 물길 굴을 뚫느라고 20대의 수많은 군인들이 석수 쏟아지는 갱 속에서 꿈 많은 청춘의 생명을 잃었다. 그러나 수많은 자재와 노력을 들여 완성한 금강산발전소는 지하탐사와 시공의 오차로 인해 1991년에 완공됐지만 물이 지하로 스며들면서 저수지에 물이 차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세계에 소문만 크게 내고 서울시민을 수장시켜 보려던 김정일의 헛된 야망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독재자 김정일에게 아첨하거나 잘 보이면 순간에 출세의 길이 열리고 그렇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가문이 망하거나 정치범수용소에서 고생하다가 이슬같이 사라지는 것이 인권불모지이며 무법천지인 오늘의 북한의 비참한 현실이다.

박신혁 기자 pbr-117@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