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북방의 겨울이다. 박달나무가 얼어터진다는 함경북도의 겨울, 밤낮으로 눈이 내려 산이며 지붕이며 흰 눈을 뒤집어 썼다. 행길에는 1m 두께로 내린 눈을 쓸어 내지 않고 그 위로 사람들이 걸어다녀 눈이 녹아 거울처럼 알른 거린다.
우리 둘은 뻘건 발이 들여다 보이는 터진 신발을 끌며 하루도 빠짐없이 시장 바닥을 헤맸다. 다리 밑에 비닐 박막으로 찬바람을 막을 수 있게 움막을 지어놓고 나무 잔가지를 주어 모닥불을 피우니 제법 훈훈하고 정희의 동상 입은 발도 많이 나아졌다 .
나는 내 나이보다 더 어리고 불쌍한 집 없는 애들을 데려다 함께 있기로 결심하고 정희와 역전으로 향했다. 운 좋게도 길에서 옆집에서 함께 살던 경희 엄마를 만났다. 그는 지금 어디에서 사냐고 친절히 물어 보시더니 저녁 사 먹으라고 돈도 주고 가셨다. 나는 너무 고마워 눈물로 인사를 했다.
어둠이 굶고 병든 도시를 덮자 길은 살판났다는 듯이 거울 알처럼 반짝 거렸다. 넘어지고 엎어지고 좀 전에 경희 엄마가 준 돈으로 따끈한 돼지 고기국물 한사발을 역전 분식집에서 사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둘은 아픔도 잊고 마냥 좋아 깔깔 거렸다.
어느덧 역전이 가까이 보인다. 나는 아직도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아 절룩대는 정희를 이끌고 언덕을 올라섰다. 어른치고는 키가 작아 보이는 중년의 한 남자가 눈속에 얼굴을 묻고 엎어져있었다. 나는 조심히 다가가 “아저씨”하고 흔들어 보았다.
그는 아무반응이 없다. 몸은 싸늘히 식어 있었고 숨 넘어 간지는 얼마 안 되었는지 피부색이 검지 않고 희다. 낡은 구두와 누런 군인외투 밤송이처럼 일어선 검은 머리 웬지 낯익어 보이는 모습이나 저녁이고 몸이 반 넘게 눈 속에 묻혀 굳어 있다나니 자세히 볼 순 없었다. 우리는 길 가던 한 행인을 붙잡고 사람이 죽은 것 같으니 도와 달라 부탁 했다.
그분은 흔히 보는 일이라는 듯이 놀란 표정도 없이 닁큼 시체를 들쳐 업었다. 그 순간 죽은 사람의 얼굴이 드러나면서 나는 기절했다. 아빠였던 것이다. “아빠”내가 몸부림치며 매달리자 그분은 도로 길에 아빠를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며 담배 한 대 붙여 문다.
‘ 아빠가 굶어 얼어 돌아가시다니 ...’나는 아빠의 몸을 흔들며 부르고 또 불렀다. 눈물도 말라 나오지 않았다. 한동안 아무 말씀없이 계시던 아저씨가 “이젠 그만 하거라 이 썩고 병든사회에서 어찌 너의 아빠만 얼어 죽었겠냐. 어휴 문제다. 이 놈이 세상이 망하지도 않고 불쌍한 사람들만 자꾸 죽으니 ...”
나는 아빠를 업고 묵묵히 걸어가는 그 고마운 아저씨를 따라 산으로 올랐다. 정희가 좀 전에 경희엄마가 준 돈으로 소주 한 병과 약간의 반찬을 사왔다. 우리는 산기슭 밭고랑 사이에 아빠를 정희 눕히고 잔돌과 흙으로 덮었다. 땅을 파헤칠 도구가 없다. 그러니 언땅을 파 땅속 깊이 모실 방법이 없었다. 불쌍하게 사시다가 불쌍하게 돌아가신 아버지 하늘도 슬퍼서인가 싸락눈을 뿌리며 흐느꼈다.
때 아닌 밤하늘에 까마귀 두 마리가 슬프게 날개를 저으며 비행한다. “어쩌면 너희들이 운명이 우리보다 나을지 몰라 다음 세상엔 독재자가 없는 축복받은 땅에서 태어났으면 좋겠다. 그 땅이라면 새도 좋고 벌레도 좋으니 말이다 ... ”
나는 아빠의 초라한 묘위에 술을 붓고 어른처럼 한숨을 쉬며 기약 없는 내일을 생각했다.(다음호에 계속)
탈북자 이영철(2005년 입국)
등록일 : 2009-07-0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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