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떠도는 하루살이

사자 성어에 이런 글이 있더군요.

난중지난 - 難中之難 : 어려운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움...

어려운 생활의 연속이였지만 그래도 나의 운명이겠지... 스스로 받아 들이고 중국 연변에 있는 연길시내에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시간과 과거를 초월한채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정처없이 떠돌아 다녔습니다.

배가 고프면 시장에서 음식을 파는 조선족 어머님들에게 사정해서 허기를 채우곤 했고,  아파트 옥상이나, 공원의 한 쪽 구석에서 쪽잠을 자곤 했습니다. 그러다 좋은분들 만나서 교회에 나가 옷을 얻어 입고, 따뜻한 겨울을 보내기도 했죠...

내가 도대체 머하고 있는건지 가끔씩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리 공원이나 한적한 곳에 앉으면 어린 시절 엄마아빠와 함께 행복하게 살던 기억들이 떠올라 혼자 엉엉 울 때도 많았습니다.  

그때 제 나이는 13살 이였습니다.

하루는 어느 한 식당 앞 계단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대여섯 살 먹은 아이가 가까이 와서 빤히 쳐다보고는 웃으면서 달아나고, 또 달아나면서 나를 보고웃고, 멀리서 나를 보고는 자꾸 웃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궁금해 다가가 “왜 웃냐?”고 물어 봤더니 “가까이 오지마 이 거지야” 하면서 내 무릎을 발로 툭 차고 달아나더군요.

나는 갑자기 어리벙벙했습니다. 저 아이가 왜 저러나 싶기도 하고, 하여튼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울컥 하면서 왠지 모를 서러움이 밀려오더군요, 아픈 무릎을 잡으면서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아 엉엉 울었습니다. 갑자기 입에서는 “엄마`”하는 소리가 나오더니 나도 모르게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습니다.

나는 세상이 그렇게 냉정한지 그때 느꼈습니다. 누군가 울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위로를 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처량하게 바라보았지만 모두가 강 건너 불 보듯 그냥 지나 치더라구요...  

그런데 주변에서 갑자기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무심결에 뒤를 돌아보았는데  중국공안 2명이 내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갑자기 일어나 정신없이 달아났습니다. 심장이 뜨겁게 쿵쿵 뛰는 소리를 귀에 들으면서 말이죠...  휴 ~~~

숨을 헐떡거리며 코물과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옷소매로 닦으면서 공원 어느 나무 밑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그렇게 오갈 데 없이 버드나무 밑에 쭈그리고 앉아 몇시간을 꼬밖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너무나 서럽고 분해서..

세상에는 어렵고 힘든 일들이 참 많지만 내 옆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내가 너무 슬플 때, 하고 싶은 얘기가 정말 많아도 들어줄 사람이 없을 때가 바로 제일 서럽고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난(難)중(中)지(之)난難이라는 말로 그 때를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버드나무 밑에 앉아 있던 아이는 그 곳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탈북자 김경철(2003년 입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