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다.

세계적인 극작가인 버나드 쇼의 묘에 가면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우물 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물 쭈물 하다가 내 요꼴 될 줄 알았다.)

요꼴 되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면서 머나 먼 고행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어느새 탈북한지 10년이 지나고 저는 26세의 청년이 되어버렸습니다.
26세... 나는 이 짧지 않은 세월 속에서 수없이 많은 삶의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그렇게 이제는 애늙은이가 되어 아픔을 얘기하는 모든 사람들의 의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왜냐구요~?이제부터 그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 아빠의 얼굴을 익히고, 고향과 자연의 향기를 맛보았습니다. 너무나 행복했고 극히 자연스러워서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행복에 도취해 살았습니다. 사상이 무엇이고, 이념이 무엇인지, 정치가 뭔지, 통일이 무엇을 말하는지, 전혀 상관없이 모른 채 살았습니다.

내가 이 모든 것들의 아주 작은 찌꺼기라는 것도 잊은 채 말이죠. 나는 생명입니다. 천하에 오직 하나뿐인 귀중한 보물입니다.

그런데 왜 내가 이유도 모르는 감옥생활을 해야 했고, 억지로 죽음의 문턱까지 가봐야 했으며, 무진 매를 맞으며 살아야 했고, 땅에 떨어진 음식을 주어먹으며 굶주리면서 타향을 떠돌이 하면서 내 자신의 본래형태가 산산조각으로 파괴된 채 살아왔을까요?

아 ~ 제발 나를 위로해 주소서...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습니까? 왜 저한테 가혹하게 그러십니까? 나는 내 가슴에 칼을 댄 적이 없는데 피가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저는 탈북자입니다.
누군가가 지워 준 이름 같은데 그냥 내 등에, 머리에, 뼈에 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1997년 저는 배가 너무 고파서, 더는 견딜 수 없어서 발이 이끄는 곳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장마당에서 훔쳐서 주머니에 넣은 속도전 떡 한덩이를 가진 채 말이죠...
우물쭈물 하다가 요꼴 될 것 같은 어떤 이끌림에 의해서 말이죠...

두만강을 헐레벌떡 정신없이 어딘지도 모르고 뛰어가다가 (푹... ) 하는 소리와 함께 얼음 밑으로 내몸이 들어가더군요... 너무 차가워서 정신이 번뜩 들었죠. 위를 보니 두꺼운 얼음뿐이고 나는 그 밑에서 데굴데굴 떠내려 가더라구요.

당황할 겨를도 없이 숨을 쉴 수 없더니 갑자기 어릴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의 기억들이 정신없이 지나가더군요. 그러면서 무언가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편한 적은 한번도 느껴본적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니 슬프더라구요.

누구도 모르게 죽는다는 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죽어가고 있는데... 무언가 따뜻해 지더니 손이 쑥 들어와 내 목덜미를 후려치듯 힘차게 잡아끌어 올리더라구요. 그래서 눈을 떠보니 강 기슭에 아주 편하게 누워있더군요!!! 제가 말입니다.

주위를 살펴보니 강물이 흘러가는 소리 뿐 아무도 없고, 머리에는 고드름이 데롱데롱 매달려 있고, 바지와 옷은 강철마냥 굳어있더군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몸은 따뜻하더군요. 그냥 일어나 걸어가면서 멍 ~ 해지더라구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눈물도 안 나오더군요...

그때 그냥 죽었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날 이후로 저는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나는 강물에 빠졌다 살았지만 죽은 사람들도 많다는 소리를 여기저기서 들었습니다.

그런 기가 막힌 죽음의 흔적을 내 가슴에 고이 남긴 채 중국 연변의 도시인 연길로 들어갔습니다.

탈북자 김경철(2003년 입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