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미국 케이블방송 커런트TV 소속 유나 리, 로라 링 기자 등 2명의 미국인 여기자가 중국 투먼(圖們) 국경지대에서 탈북자 취재 도중 북한군에 납치되었다. 이들은 조선일보의 다큐멘터리 ‘천국의 국경을 넘다’에서 기획 아이디어를 얻어 한국을 거쳐 중·북(中·北) 국경을 취재하던 중 일을 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기자들은 옌지에서 가이드 A씨를 만난 이들은 곧바로 ‘화상채팅을 강요받다가 탈출한 탈북여성’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며 취재에 돌입, 16일에는 탈북 여성의 자녀, 즉 무국적 아동의 실태를 취재하는 등 중국거주 탈북자들의 삶을 집중취재 했다.

그리고 17일 택시를 타고 北∙中국경에 접근하여 취재를 하다가 북한군에 납치된 것으로 보여진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사건의 전말은 밝혀진바 없지만 다년간 北∙中국경지역에서 취재를 했던 기자의 경험으로 봤을 때 이번 사건은 북한군의 의도적인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

우선 연변지역의 국경지역을 취재하려면 현지인의 안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연길에서 가이드로 활동하는 조선족의 상당수가 北∙中 국경지역 농촌마을 태생이다. 그러나 이들도 국경지역으로 취재진을 데리고 가려면 미리 그 지역의 촌장이나 친지들에게 연락을 해보고 현지 상황을 체크한 다음에야 움직인다.

국경지역에 도착해서도 바로 취재에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우선 현지안내를 맡아 줄 사람의 집에 들러 주인과 안면을 터야 한다. 국경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남한과 외국의 기자들을 무조건 “특무”(간첩)로 생각하기 때문에 취재목적을 분명히 설명해 주어 경계심을 풀어주어야 한다.

두만강가에 나가 취재를 할 때도 현지인들은 취재진의 카메라 공개촬영을 극구 만류한다. 북한군에 발견되지 않는 장소에 숨어서 몰래 찍으라는 것이다. 기자도 2년 전 겨울 두만강가에 취재 나갔다 이 비슷한 사건을 당한 적이 있다. 오후3시경 디카와 캠코더를 외투 주머니에 넣고 혼자서 두만강가에 나갔는데 얼음이 두텁게 얼어 있었다.

강폭이 20m정도쯤 됐는데 북한쪽을 살펴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잠복초소에 군인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에 얼음 위로 강의 중간지점까지 걸어갔는데 갑자기 군인 3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긴 왜 왔시요?” 한 경비대원이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얼른 조선족 말투로 “수고 많으십니다. 구경하러 왔어요. 여기 와서 담배나 한 대 피우세요”라고 말을 걸었다. 군인들은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만 보고 있을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서 “난 심양에서 왔는데 여기 친척집에 놀러왔다. 괜찮으면 담배나 피면서 말 좀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군인 중 한명이 “됐시요. 볼 일 없시요”라고 대답 하고는 3명 모두 돌아갔다.

군인들이 보이지 않자 나는 외투에서 소형캠코더를 꺼내 손에 들고 강을 타고 아래로 걸었다. 물론 저쪽에서 눈치 채지 못하게 외투소매에 가리고 말이다. 그렇게 50m쯤 내려갔는데 북한쪽에서 잠복하던 군인 2명이 상체를 드러내고 일어서서 나를 지켜봤다.

그들을 무시하고 계속 내려가는데 기차역이 하나 보이고 기차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얼른 중국 쪽으로 몇 걸음 물러나 카메라를 쳐들고 줌을 당겼다. 그렇게 3분정도 촬영했을까? 갑자기 “야! 야! 이 개 xxx"하는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군인 2명이 강을 건너 내게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황급히 뒤로 돌아서 삼십륙계 줄행랑을 쳤다. 군인들은 강을 건너 중국 땅까지 쫓아오더니 내가 산에 올라붙자 한참을 노려보고는 돌아갔다. 주인집에 돌아와 그런 얘기를 했더니 “큰일 칠 번 했다”며 다시는 혼자 두만강에 나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렇게 북한경비대는 외부인이 카메라를 들고 북한을 찍는 현장을 발견하면 중국 땅까지 쫓아와서라도 납치하려든다. 아마 미국의 여기자들도 카메라로 북한쪽을 촬영하다 북한군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천기원 목사의 말처럼 일행 중에 백인남자가 있어 더 눈에 잘 띄었을 것이다.

또 좋은 취재거리가 있다며 북한군이 고의로 외국인을 국경까지 유인해 납치하는 경우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어찌됐건 취재하는 언론인을 납치 감금하는 것은 국제범죄행위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계속되는 외국인 납치행위를 더는 좌시해서는 안 된다. 특사를 통한 물밑교섭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안 된다.

폐쇄된 북한사회를 취재하려는 기자들의 노력은 계속 될 것이며 이와 유사한 사건은 앞으로 도 재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북한의 외국인 기자 납치문제를 국제적인 이슈로 만들어 유엔차원에서의 제제를 가해야 한다. 핵협상에만 사용되는 테러지원국 재지정문제도 협상카드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최동혁 기자 choidd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