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은 낯선 나를 보고 역무원에게 물었다.
 
“얘는 누구입니까?”
 
“뭐 이 동네 친척집에 놀러 온 아이겠지”
 
역무원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하고, 하던 일을 계속 하고 있었다.
 
“어제 밤에 어떤 놈이 중국에서 넘어왔어, 그런데 발자국을 따라가 보니깐 없어져서 오늘 혹시나 하고 역전에 나왔는데 이상한 놈은 보이지 않네, 야 너 집 어디야?”
 
군인은 나를 향해 소리쳤다.
 
“청진입니다”
 
나는 떨리는 마음도 있었지만 가까스로 달래면서 대답했다.
 
“여기 왜 왔어?”
 
“큰 어머니 집에 놀러 올겸 쌀 얻으러 왔습니다”
 
“너의 큰어머니 누구야?”
 
“여기 산 넘어 가면 있습니다”
 
“야 너 그거 배낭 좀 열어봐”
 
군인은 나에게서 이것저것을 물어 보다가 뭔가 수상한 점을 발견했는지 배낭을 열어 보이기를 원했다.
 
“싫습니다. 왜 남의 배낭 마음대로 보자는 겁니까?”
 
군인은 고함을 질렀다.
 
“이 새끼야 내가 열어보라면 열어보는 것이지, 수상해서 그래”
 
배낭을 열어보이자 군인은 나에게 다가와 배낭에 있는 물건 하나를 꺼냈다. 내가 중국에서 가져온 겨울 동복이었다.
 
“이상한데 중국 옷 같기도 하고”
 
옷 주머니를 뒤지던 군인은 뭔가를 발견한 듯, 옷 안주머니에서 손을 더듬더니 사진을 꺼내 들었다.
 
“야 너 이거 뭐야”
 
“사진입니다”
 
우리 누나가 중국에서 가져온, 남한에 있는 큰 아버지 사진이었다.
 
군인은 다시 배낭을 뒤졌다. 이번에는 비닐주머니에 담겨진 입쌀 까마치(쌀 누룽지)를 보고 다짜고짜 나를 잡아끄는 것이다.
 
“야 너 이 새끼 지금 입쌀 먹는 집이 어디 있어? 이거 중국 까마치(누룽지)로구나. 사진도 어디 지금 천역색(칼라)사진 찍는 사람이 있어? 따라와”
 
군인은 나의 배낭을 들고 앞장서서 자신이 군무하는 초소로 향했다. 군인의 뒤를 따르는 나의 심정은 지옥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도망칠 수 없었다.
 
삐꺼덕...........
 
요란스러운 철 대문 소리는 나를 더욱 더 공포로 몰아갔다. 대문을 들어서자 군인은 나를 이끌고 자신이 업무 보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작았고, 겨울의 추운 날씨에도 난로가 있어 훈훈했다.
 
잠시 후, 군인은 나에게 다가와 옷을 벗으라는 것이다. 하나 둘 옷을 다 벗고 팬티와 반팔 셔츠만 남았다. 군인은 내가 벗어놓은 옷을 하나하나 뒤지다가 나더러 다시 옷을 입으라는 것이다.
 
옷을 입으려고 몸을 숙이는 순간 갑자기 군인이 소리쳤다.
 
“잠깐”
 
군인은 나의 허리를 더듬었다. 내가 양말바지(스타킹)에 싸서 허리에 묶어 놓은 돈을 본 것이다.
 
그 순간부터 군인의 주먹이 날아왔다.
 
“야 이 새끼, 뻔뻔한 새끼,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연극하고 있어?”
 
군인은 사정없이 주먹으로 나의 얼굴을 가격했다. 이어 다른 군인도 합세하여 나를 때리던 이들은 돈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내 몸에서 나온 것은 달러 300원하고, 내가 중국에서 가져온 중국 돈 500원을 추가하여 인민페 1500원이다. 이 돈은 그 당시 북한인들에게 있어서 죽을 때까지 벌어도 벌지 못하는 거액의 돈이고, 이 돈으로 생활 한다고 하여도 몇 년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야 우리 이 돈 먹어 치울까? 본 사람 없어”
 
군인의 이야기에 나는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용기를 가졌다.
 
“중대장 동지하고, 저 그리고 정치지도원 동지밖에 본 사람이 없습니다”
 
옆에 있던 부하 직원이 대답했다.
 
“정치지도원, 아~ 안 되겠네.”
 
나는 그때에야 비로소 역전에서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사람이 여기 중대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아쉬움이 섞인 마음으로 내게서 뺏은 돈을 들고 나가는 것이다.
 
군인은 나가고, 나의 살 수 있는 희망도 사라졌다.
 
(다음에 계속)
 
탈북자 장성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