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가고난 후로 마음속에는 조금의 외로움이 있었지만 이내 사라졌다.
 
형과 나는 집을 판 돈 나머지를 똑같이 나누어 가졌지만 몇 달이 안 되어 바닥나기에 이르렀다. 이에 또 다시 인신매매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청진역에서 여자 한 명을 데리고 중국 국경인 두만강에 도달했다. 함북도 3월의 겨울은 아직도 두만강 물을 돌처럼 얼려 놓아 여름 같이 물에 들어가는 불편함이 없어 좋다.
 
또한 하얀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눈 위를 기어가면 5메타 거리에서도 국경경비대에게 들통날일이 없다. 단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으로 하여 위험 부담은 있지만 중국으로 넘어간 발자국은 국경경비군인도 따라 오지 않는다.
 
.......
 
중국 아줌마의 집에서 일주일간을 보내다가 아줌마가 주는 돈 500원을 들고 북한으로 가는 두만강 기슭에 이르렀다.
 
하지만 올 때는 얼어있던 물이 녹아 있었고, 녹지 않은 얼음덩어리들이 강물위로 둥 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으려니 어떻게 저 차가운 물속에 뛰어들어야 할지 두려운 생각도 앞섰지만 국경경비대 군인들에게 발각되거나 그들의 총에 맞아 죽을 수 있다는 것이 더 무서웠다.
 
허나 이 밤이 지나기 전에 국경을 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기에 나는 아랫도리를 벗고 물에 뛰어들었다.
 
얼음물에 하반신을 담구고 북한으로 나아갈수록 물은 점 점 가슴까지 차올랐다. 북한 강 기슭에 오르자마자 온 몸에 묻어 있던 물기는 이내 추위에 굳어지고, 나는 얼어붙은 두 다리를 놀려 바지를 입었다.
 
윗도리는 벗지 않은 관계로 이미 추위로 딱딱하게 굳어버렸지만, 그 위에 가지고 온 하얀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나니 조금 따스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는 철길을 건너 무작정 산으로 올라가 붙었다.
 
똑 똑 똑
 
“누구세요?”
 
“큰어머니 저에요”
 
“응 너구나 얼른 들어와”
 
큰 어머니는 나를 반갑게 맞으며 매우 들뜬 마음으로 이야기 하시는 것이다.
 
“지금 중국에서 오는 길이야?”
 
“네 지금 막 두만강을 건너서 오는 길입니다. 물이 모두 녹아서 얼음이 둥 둥 떠다니네요. 발이 얼어터지는 줄 알았어요. 지금 발에 아무런 감각이 없어요”
 
“이궁 고생 많구나”
 
큰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문을 열고 밖을 나가 조그마한 자루를 들도 들어오시는 것이다.
 
“큰 어머니 뭐에요”
 
“콩 자루야 여기에 발을 넣고 있으면 콩이 언 독을 뽑을 수 있으니 동상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야”
 
“감사합니다”
 
나는 얼른 콩 자루에 발과 손을 넣었다. 아무런 감각이 없었지만 몇 시간이 흐르고 나니 몸에 점차 기운이 감돌았다.
 
“그래 괜찮은 거니?”
 
“네”
 
“너 한데 좋은 소식이 하나 있어 어제 너의 누나가 우리 집에 왔다 갔어”
 
“정말 입니까? 어디 있습니까?”
 
나는 큰 어머니 이야기에 흥분을 금할 수 없었다. 내가 흥분한 이유는 예전에 중국에 갔어도 찾지 못했던 누나에게서 소식이 온 것이다.
 
“너의 누나가 중국사람 하고 같이 왔더라. 남편 이라는 데 키도 크고 잘 났더라, 그리고 너의 큰 누나가 남조선에 있는 너의 큰 아버지를 찾았다는구나”
 
큰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가시더니 조그마한 사진첩을 들고 나왔다.
 
“이것이 너의 누나가 두고 간 남조선의 큰 아버지 사진이야, 그리고 너의 누나가 돈을 주더 구나, 달러 300원하고 중국 돈 천원이야, 그리고 이것은 너의 누나가 사는 중국 전화번호와 주소니깐 나중에 중국가면 여기로 전화 쳐서 누나를 찾거라”
 
 “네 큰 어머니 고마워요. 큰 어머니가 이렇게 가운데서 다리를 놔주시니 정말로 고마워요”
 
나는 큰어머니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고 돈과 사진을 받아 들었다. 집 판돈보다 아주 많은 양의 돈이었다. 하지만 돈을 보기에 앞서 누나의 소식과 남한에 있다는 큰아버지 사진이 궁금했다.
 
이때까지 말로만 듣던 큰 아버지 소식이었고 6.25 전쟁 당시 우리 아버지가 5살 때 큰 아버지는 남한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큰 아버지가 남한에 넘어간 이유로 하여 할머니는 큰아버지가 보고 싶어 아들을 부르면서 미쳐 돌아갔다고 한다.
 
또한 큰 아버지가 남한으로 간 이후 우리 가족은 정부의 감시 하에 살아야 했고 우리 아버지는 한 일터에서 20년을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여도 승급되지 않고 노동자의 신분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아~ 큰 아버지가 이렇게 생겼구나? 그런데 지금 큰 아버지가 아마도 70살이 넘으셨을 건데 되게 정정 하시네요?”
 
“그러게 너의 누나 말이 남조선이 되게 잘 산다고 하더구나. 우리가 듣던 것은 남조선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다고 했는데 아니래. 중국보다 더 잘 산다는구나. 그리고 우리나라가 제일 못사는 나라라는 구나. 김정일 장군님도 나쁜 사람이래, 독재자고. 너 어디 가서 너 누나 만나고 남조선 큰 아버지 찾았다는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탈로나면 너의 가족이고 우리가족이고 몽땅 정치범 수용소 가지 않으면 사형 당하게 될 거야. 그러니 주의해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사진은 너의 고모한데 가서 보여 드려라! 아마도 매우 반가워 하실거야. 몇 십 년 동안 보지 못한 오빠 얼굴인데 얼마나 반갑겠니? 그리고 사진은 한 장만 가져가고, 너의 중국에 있는 누나 집 주소와 전화번호 그리고 나머지 사진은 내가 보관하고 있다가 일이 생기면 모두 불사를 거야 알았지? 그리고 내일 너의 집으로 갈 준비나 해라. 내일쯤이면 아마도 기차가 있을 거야. 어제 기차가 지나갔거든. 그러니까 기차 시간도 알아보고 일단은 오늘은 푹 쉬렴”
 
“네”
 
“아참! 그리고 돈은 가져 갈대는 양말바지(스타킹)속에 넣어가지고 허리에 감아서 가져가야 된다. 저기 우리 딸 양말바지가 있으니 내일 거기다 돈 넣고 가”
 
“네”
 
나는 큰 어머니에게 누나 소식에 대해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밤이 깊어 불빛이 새어나가면 옆집에서 신고 할 것 같은 느낌에 궁금증을 뒤로 하고 잠이 들었다.
 
꼬끼오~~~~
 
농촌마을의 풍경과 함께 새벽 5시가 되면 그 놈의 닭은 요란스럽게 새벽을 알리고, 사람들은 밥을 지어먹고 아침 7시가 되면 마을에서 좀 떨어져 있는 관리사무소 회의실에서 당에 대한 사상교육을 1시간 받는 것으로 하여 하루를 시작한다.
 
겨울이지만 농민들은 제대로 쉬지 못하고 1시간의 사상교육을 받은 후에야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오후에는 인분(퇴비)모우기 작업을 한다.
 
나는 어제의 피곤함을 풀려고 평소보다 2시간 늦게 일어났다. 보통 새벽 6시면 잠에서 깨지만 오늘은 8시에 일어나 홀로 밥을 먹고 있으려니 큰어머니가 들어오신다.
 
“아까 우리 반 사람들이 말하는데 기차가 어제 저녁에 올라갔으니깐 오늘쯤이면 내러 올 거야 그러니깐 미리 짐을 싸가지고 기차 타러 나가야 된다. 기차가 없으면 다시 들어오더라도 말이야, 이번 기차 놓치면 며칠 걸릴지 어떻게 알아?”
 
“네”
 
농촌 마을이라 예전에는 하루에 두 번 정도 있던 기차는 1993년도부터 시작하여 식량 문제와 전력 문제로 하여 달리던 기차가 중도에서 멈추기가 일쑤였고, 청진에서 평양까지 기차로 12시간이면 갈 거리를 요즘 어떤 사람은 한 달이 걸린다고 한다. 또한 가다가 멈추어 서는 것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에 어떤 사람들은 집에 가던 도중 기차 안에서 굶어 죽거나 얼어 죽는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 집 청진 까지 갈려면 기차로 5시간 거리이다. 하지만 기껏 연착된다 하여도 2~3일이면 갈 수 있다.
 
어제 이야기를 마지막 까지 듣고 싶었지만 큰 어머니가 오늘 기차를 놓치면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에 하는 수 없이 짐을 싸 들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
 
농촌 마을의 기차역이라 크지도 않다. 단지 기차를 기다리는 10평 정도의 대합실이 있고, 그 옆에 기차의 운행을 관리하는 7평 정도의 방이 있다.
 
“역무원 삼촌, 청진가는 기차 몇 시에 있습니까?”
 
“어제 밤에 이곳을 지나갔는데 아직까지 종점에서 출발하지 않았다는구나. 아직 정확한 것은 모르니깐 좀만 기다려라 연락이 올 거야”
 
“네 고맙습니다”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국경경비대 장교하고 마주쳤다.
 
탈북자 장성근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