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흘렀다. 지금까지 함께 해온 그녀가 없는 방안은 쓸쓸하기만 하다. 갑자기 방문이 열리며 주인이 얼굴을 들이민다.

“내가 돈 500원 줄 터이니깐 너희 오늘 북한으로 넘어가라!”

주인의 협박담긴 이야기에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마음 같으면 여기에 계속 눌러 앉고 싶었다. 이제는 북한 지옥의 문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사형을 면하기 어렵다. 하지만 주인의 협박도 당해내기 힘들다.

“너희들 여기 있으면 우리도 위험하고, 너희도 위험해. 내가 너희들이 데려오는 여자 팔아먹어도 800원 밖에 받지 못해, 거기서 너네한테 주는 돈은 500원, 나한데 남는 돈 300원 밖에 없어, 그리고 만약에 공안에 너희들이 있는 거 탄로 나면 우리는 벌금을 만원 넘게 물어야 돼, 그러니깐 빨리 북한 넘어가서 다른 여자들 데려와.”

늘 하는 주인의 이야기다. 언제 들어도 우리에게 도움 되는 이야기는 없고, 자기 집에서 나가라는 소리 밖에 없다.

주인의 위협에 못 이겨 오늘 북한으로 가겠다고 이야기 하자 주인은 선뜻 주머니에서 500원을 꺼내 주며 이야기 한다.  

“내가 너희들 건너 온 곳 까지 데려다 줄게, 너희들 건너가는 거 봐야 내가 마음이 놓이지”

배려 깊은 주인의 이야기지만 모두 자신의 이속을 먼저 챙기려는 마음만 담겨있다.

주인과 함께 경운기를 타고 우리가 건너온 강가에 도달했다. 하지만 다시 북한으로 넘어가기가 싫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다른 생각이 있었다. 예전에 중국으로 팔려간 누나에게서 온 편지가 있었다. 우리의 목적은 편지에 적인 누나의 주소지로 찾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배려 깊은 주인양반은 옆에서 계속 북한으로 넘어가라고 부추긴다.

“저기 지금 이렇게 시퍼런 대낮인데 어떻게 북한으로 넘어가요, 우리 여기서 수영 좀 하면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리다가 북한으로 넘어갈게요. 주인 삼촌은 먼저 집에 들어가세요.

옆에 있는 형의 이야기에 주인은 알았다고 머리를 끄떡이며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혹시나 주인이 가지 않고, 엿볼 수 있다는 생각에 옷을 벗고 두만강에 뛰어 들어가 수영을 하면서 더위를 식혔다. 그렇게 30분 동안 물놀이를 하면서 북한 땅을 바라보았다.

폭이 50미터 정도의 강 저쪽으로 북한국경 군인들이 왔다 갔다 하며 우리의 행동을 지켜본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북한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단지 중국 애들이 강가에서 물놀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다. 우리도 그에 아무런 내색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가끔 수영으로 국경선을 넘어 북한 강 기슭까지 침범했다. 비록 북한 저쪽 강기슭은 우리에게 공포의 장소이다. 수영을 하여 두만강 절반까지는 마음이 편하지만 절반을 넘었을 때에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하지만 스릴 같은 재미가 있기에 우리는 수영을 하면서 두만강 경계선을 왔다 갔다 하면서 북한 땅 3메타를 앞에 놓고, 국경경비대를 지켜보았다.

북한 쪽에 있는 군인도 심심한 듯 튜브를 몸에 걸치고 재미있게 노는 나에게 말을 건네 온다.

“야 중국 똥 떼 놈아, 물에서 노는 게 재미있니, 시원해?”

북한 사람들은 중국인을 똥 떼 놈이라고 부른다.

“야~ 조선 간나색기야 궁금하면 너도 옷 벗고 들어오면 되잖아”

나는 군인의 이야기를 욕으로 받아쳤다.

“너, 간나 색기 죽을라고, 마음대로 지껄여, 총으로 쏜다.”

군인은 총을 들어 나를 겨누며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중국인으로 알고 있었기에 총을 쏠 수도 없었다. 또한 예전에 북한 군인이 두만강에서 수영하는 중국 사람을, 도강하는 북한 사람으로 알고 사살한 사건이 있어, 중국 사람들과 경비대군인들 간 싸움이 일어났다. 그때부터 이곳 지역의 군인들은 총을 함부로 쏘지 않는다.

군인에게 욕을 하고나니 마음이 시원했다. 나는 두 손을 빠르게 저어 다시 중국 땅으로 넘어 왔다. 두만강에서 더위도 식히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우리는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 개산툰 장거리 버스 역으로 향했다.

누나를 찾아 가야 하는 곳은 중국 길림이라는 곳이다. 하지만 처음 듣는 고장이고, 낯설은 초행길이기에 물어보고, 물어보고 하여 연길에서 길림까지 가는 기차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버스를 타고 연길시내로 들어서자, 북한과는 확연히 다른 도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북한에서 하루에 한대도 겨우 보는 승용차들이 여기 도로 바닥에는 가득하고, 거리풍경 또한 조선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길 주변에는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고, 맛있는 음식도 많았다. 이때까지 우리는 중국에 오면서 농촌마을을 보아왔기에 중국의 도시를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 이었다.

밤이 되자 어둠으로 가득한 북한의 도시와는 다르게 사방에는 오색등이 찬란하다. 처음 보는 황홀함에 우리는 어디에 눈을 둘지 몰랐다. 하지만 여기서 지체할 수 없어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연길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차역에 도착하자 길림까지 가는 표를 사야 하는데 중국말을 할 수 없었다. 표를 파는 여직원은 계속 중국어로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그 곳을 빠져나와 조선족여자를 붙들고, 길림이 중국어로 무엇인가고 물었다.

그녀는 길림이 “吉林(지린)”이라고 답해 주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머릿속에 곱씹으며 표를 파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어디가세요 (니 취 나얼)”

뭐하고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무작정 “지린”이라고 답하고, 손을 들어 둘을 표시 했다. 그러자 표 파는 여인은 두 명에 60원이라고 말하며, 중국식 손동작으로 60을 표현한다.

알아들을 수 없었다. 주머니에 있던 백원을 주자 잔돈 40원을 거슬러 주는 것에 60원인 것을 알았다.

표를 사고 기차역 홈으로 나가는 길과 기차시간을 볼 줄 몰라 사람들에게 물어 기차를 타는 곳으로 향했다. 좀 있으려니 기차가 들어왔다.  

중국의 기차 승객들도 북한가도 마찬가지로 기차에 오를 때면 저저마다 먼저 타겠다고 창문으로 오르는 이가 있고, 창문으로 짐을 집어넣는 이가 있었다. 기차에 승차하는 풍경은 북한과도 같아 잠시 북한 기차역에 있다는 느낌을 안겨 주었다.

우리는 무작정 표를 들고, 아무 자리에 가 앉았다. 모든 생각은 북한식 우리 생각이었다. 북한에서는 기차표에 좌석 번호가 없어 무작정 앉기만 하면 자기 자리가 되는 것이다. 이에 우리도 중국 기차도 북한 기차와 같이 무작정 앉으면 자기 자리가 되는 줄로 알았다.

자리에 앉아 있으려니 몇 명의 남자들이 와서 중국어로 뭔가를 이야기하고 말을 모르자 손에 있는 표를 보여 달라고 손동작을 취한다.

우리는 그에게 표를 보여주자 그는 여기가 자기 자리라고 또 손동작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그의 손동작은 알아들을 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그 사람은 표를 한번  더 보자는 손동작을 취하더니 우리의 표를 한 번 더 보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나는 “별 미친놈 다 보겠네” 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기차에 올라서 우리는 벙어리가 되었다. 주위에 모든 언어는 중국어였다. 기차로 12시간의 여정동안 우리는 중국어를 모르기에 밥도 물도 사먹을 수 없었다.

좁은 통로로는 음식을 파는 여성이 밀차를 끌고 왔다 갔다 했고, 우리는 뭔가를 사먹고 싶었지만 선뜻 용기 내어 말할 수 없었다.

잠시 후, 형이 용기를 내어 밀차를 끌고 가는 여성을 불러 세워 손동작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여인이 알아듣지 못하자 무작정 아무거나 하나 집어 들었다.

우리가 집어 든 것은 캔 사이다였다. 하지만 어떻게 따서 먹을지 몰랐다. 아무리 둘러 봐도 딸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캐 뚜껑 손잡이를 빙글 빙글 돌리다가 잡아 당겼다.

캔 손잡이만 떨어져 나갔다. 힘들게 구입한 캔 사이다는 먹을 수 없게 되었지만. 주머니에 있던 손칼을 이용해 캔 사이다 윗 뚜껑에 구멍을 내서 마실 수 있었다.

우리 앞에 앉은 사람은 계속 우리를 쳐다보며 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우리는 왜서 그러는지 이유를 모르고 사이다 한 캔을 나누어 마시고 잠들었다.

탈북자 장성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