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에 들어서면서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과 자연재해,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들로 인해 급격하게 절대빈곤의 지경에 이르렀다. 국가의 식량배급 제도는 마비상태로 되었고, 여기에 농업 관련 산업의 피폐와 식량수입을 위한 외화의 부족, 집단 농업체제의 비효율성 등이 겹쳐 300만의 아사자와 수십만의 탈북자를 산생시켰다.

1990년대 이후 북한의 식량은 수요량에 비해 부족량이 매년 평균 150만~200만 톤 사이를 오고 가고 있다. 북한당국이 경제난의 극복과 사회적 이탈을 막기 위해 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며 자행한 고난의 행군은 죽음과 기아의 행군, 1인 독재정권을 강화하기 위한 피의 행군이었다.

함경북도 부령군에서 살다가 2005년 한국으로 입국한 이영남(가명)씨는 “함경도 농촌이 특히 어려워 아사자가 많이 나왔다. 식량사정은 강원도, 자강도, 양강도, 순으로 어렵다. 풀죽으로 연명하는 세대가 점점 늘어나면서 특히 노인들이 많이 죽어나가고 있고, 학교에 못 가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시장과 역전 주변에 ‘꽃제비’ 아이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먹고 죽는 건 한이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이다”고 상황을 증언했다.

당시의 식량난은 사회의 긍정적인 측면만 보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북한 방송매체에서도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없는 이 때”라고 인정할 정도였다. 북한정권은 단위별로 ‘자체 해결하라’는 지시를 내려 배급제도의 운영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에 이르렀다.

주민들은 ‘알아서 먹는 계층’으로 분리가 되고 군대나 당, 사법행정기관은 ‘국가배급자계층’으로 분리가 되어, 현재 북한은 두 계급이 양분되는 체계로 바뀌었다.

배급을 받는 계층은 지금까지 외부에서 지원한 식량을 공급받았다. 반면 ‘알아서 먹는 계층’은 상층인 장사로 돈을 버는 주민들, 중간층인 뙈기밭 농사를 짓는 주민들, 하층인 장사와 농사마저도 안 되는 주민들로 나뉘었다. 그 중 중간층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주민들은 각종 채소류와 나물, 밀가루를 이용한 대용식품들을 보급하는 동시에 산에 뙈기밭을 일구어 곡식을 생산했고, 이것은 전국 시장 알곡유통량의 50~60%를 차지할 정도였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식량의 가격은 국정가격의 몇 십 배에 이르렀고, 실제로 북한에서는 옥수수가 화폐의 역할을 대신했다.

함경북도 회령시 유선구에서 살다가 2007년 입국한 탈북자 조은희(가명)씨는 “보통 한 집에 1,000~3,000평의 뙈기밭을 가지고 있으며, 3인 가구의 뙈기밭 알곡소출은 500~700kg정도에 이르러 국가배급 없이도 살 수 있었다. 시장에 알곡을 가지고 나가 필요한 생필품과 바꾸었다”고 밝혔다.

그는 “정권이 개인이 소유한 땅을 비법(불법)으로 규정하고 매 해 토지세금 및 소출의 3%를 가져갔다. 결국 국가는 지주였고, 주민들은 소작농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미 북한 주민들은 국가경작지에서 생산된 식량보다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뙈기밭 농사에서 나온 식량이 먹여 살리고 있다.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북한은 2006년, 2007년 연속된 홍수 피해, 2008년 한국 정부의 식량지원 중단, 작년 화폐개혁 등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최근 10년 만에 최악의 식량난을 겪고 있다. 지난해 6월 WFP는 “북한의 전 지역을 답사한 결과 대기근이 일어난 90년대 중반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현재 북한은 ‘고난의 행군’으로부터 근 15년이 지나고 있지만 식량난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 강성대국’이 건설된다는 2012년은 붕괴의 기폭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김은호 기자 kyz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