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 동서냉전이 끝난 이후 한국과 국제사회가 취한 대북정책의 핵심 방향은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심지어 동맹국인 중국도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끌어내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그러나 김정일 독재집단은 개혁개방을 비롯한 정치경제의 변화를 자신들의 체제를 흔들거나 파멸시키는 위험한 사상조류로 간주. 그들은 ‘비타협적’ 혹은 ‘모기장’이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외부의 위험한 사상조류’를 막았고, 북한을 더욱 철저한 우물 안(안전한 통치영역)으로 만들었다.

그렇지만 북한도 변한다. 그 말은 김정일 독재정권의 의도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으로 변한다는 이야기이다. 북한이 변한 것은 크게 두 가지라고 볼 수 있다.

첫째는 김정일의 반인민적 ‘불변통치’로 사회와 경제, 주민생활이 극도로 열악해져 이제는 변화가 없으면 한 걸음도 옮길 수 없다는 것.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도록 열악해졌다는 것이 김정일의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한 불변통치가 만들어 놓은 변화이다. 이를테면 집요한 불변정책이 변화의 필요성만을 키워놓았다는 이야기이다.

둘째는 주민들의 의식상태가 비약적으로 변했다. 북한 사회의 특징을 살펴보면 70~80년대까지는 주민들이 세뇌되거나 세뇌된 시기였고, 90년대 이후에는 주민들이 그 세뇌에서 깨어나는 시기였다. 또한 집중교육을 받는 소학교(초등학교)와 중학교, 대학교와 군복무 기간이 세뇌되는 기간이라면 그 후 사회생활 과정은 세뇌에서 깨어나는 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74년과 79년, 두 차례에 걸쳐 북한 독재정권은 평양과 함흥시를 비롯한 대도시들에서 수백만의 주민들을 지방 군(郡)들과 농촌으로 쫓아냈는데, 억울하게 쫓겨 간 사람들이 지방 군들과 농촌에서 겪은 어려움의 하나는 주변 사람들이 곁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 정권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주민들은 철저한 경계대상.

필자가 소학교를 다니던 70년대. 당시 안전부에 근무하던 필자의 아버지는 동네에 사는 ‘남조선 출신’ ‘계급적 환경이 나쁜 집’ ‘추방되어온 집’의 자식들과 어울리지 못하도록 단속했다. 이유는 “그들과 너는 계급적 환경이 다르니 같이 놀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필자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한 아이가 장난을 치던 중 “망할 놈의 세상”이라는 말을 하고 해당 기관에 끌려가 취조를 받기도 했다. 사실 그는 국어 교과서의 계급교양 내용에 서술된, 낡은 사회를 저주하는 말을 외워본 것인데, 그것을 어떤 아이가 지금 세상을 욕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고자질해버린 것이었다.

아이들까지도 경각심이 높을 만치 70년대는 북한 전체가 김일성에게 세뇌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 세뇌는 80년대부터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해 90년대부터는 비약적으로 변했다.

그러면 2010년인 지금의 북한 주민들 의식 상태는 어떤가? 지금 북한 주민들의 의식 상태는 70~80년대와 완전히 다르다. 70년대의 ‘계급의식’이나 ‘경각성’같은 것은 눈을 비비고 살펴봐도 찾아볼 수 없다.

주민들 속에서 체제비난 발언 같은 것은 더 이상 범죄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 말은 단지 독재기관들에서만 눈을 밝힐 뿐 주민들의 마음 속에서는 체제비난 발언이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독재기관에 근무하는 일부 사람들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다른데 가서는 말하지 말라’는 식으로 ‘충고’를 주고는 덮어준다. 결국 주민들끼리는 체제비난 발언을 수군거릴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난 것이다.

지금 북한 사람들은 ‘간첩’을 봐도 신고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보안원들이나 보위부 요원들에게 탈북자 가정들이 적대적인 세력이 아니라 ‘뜯어먹을 수 있는 대상’이 된 것도 그 중 한 실례이다. 그것은 독재기관의 요원들에게도 탈북자 가정들이 겉으로만 적대적인 존재일 뿐 속으로는 사귈 필요가 있는 대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서울에 살고 있는 한 탈북자가 북한의 친구와 사전약속하고 전화통화를 가졌는데 그 친구의 말이 가관. 그는 “당 회의에 참가라고 오느라고 통화 약속시간을 못 지켰다”고 사죄했다. 그렇다면 노동당 회의에 참가하고 곧 한국에 전화하는 그의 정신상태에서 무엇을 가늠해 볼 수 있겠는가? 그것은 지금 북한 사회를 유지하는 비결은 잔인한 인권유린일 뿐. 주민들에게는 지난 시기 생활의 연장, 즉 타성일 뿐이라는 것이다.

북한을 탈출해 2008년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최성일(가명. 청진 출신. 현재 인천 거주)씨는 북한 주민들의 반 김정일 감정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북한에서 가까운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모여 앉았을 때 김정일에 대해서 좋은 말을 하는 자가 있으면 사람들은 그를 틀림없이 바보라고 평가한다. 모자라는 사람들만이 장군님이 어쩌구저쩌구하는 이야기를 한다”

70년대 개별적 간부들을 비난해도 범죄로 생각하던 북한 주민들이 이제는 체제비난 발언은 물론 이적행위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과의 전화통화도 있을 수 있는 일로 생각. 아무런 사회 도덕적, 정신적 구속을 받지 않고 있다. 그것은 북한 주민들의 인식 속에 김정일 독재정권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속에서 생겨나는 반사효과라고도 말할 수 있다.

2004년 북한에 자주 출입하는 한 중국 조선족 기자는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제는 북한 정권이 개혁개방을 하기에도 늦었다. 지금 개혁개방을 하면 자칫하다가 무정부 상태가 생겨날 수 있다. 아마 사람들이 덜 깨어있던 70~80년대에 개혁개방을 했더라면 개혁개방이 성공하는 것은 물론 정권도 안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의 말도 정권에 대한 주민들의 무(無)신뢰와 세뇌에서 깨어난 북한 사람들의 반 김정일 감정이 어떤 계기점이 생기면 수습하기 어려운 큰 문제로 확산된다는 의미였다.

지금 북한에서 김정은의 후계자 등극을 실천하는 김정일 독재정권의 가장 어려운 난제가 민심을 잡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은 김정일이 후계자로 나서던 70년대와 다르다.

70년대는 북한 사람들이 세뇌화되었던 시대였지만 지금은 북한 주민들이 세뇌화에서 깨어난 시기이다. 한 마디로 북한의 가장 큰 변화는 주민들이 세뇌에서 깨어난 것이다. 또한 그 변화는 앞으로 북한 문제의 큰 변수로 떠오를 것이다.

진선락 기자 dmsgur325@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