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십 발자국 이내에 두만강에 들어설 수 있는 묘한 골짜기 나무숲에 우리는 쪼그린 채 바싹 붙어서 약속한 국경비대 군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쏴 두만강물소리가 들렸다. 이제 저 강을 건넌다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쾅쾅 거린다.
 
내가 이럴진대 이 두 모녀야 더 말할게 있으랴!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하필 오늘 비가 올게 뭐람.” 나는 쏟아지는 비 방울을 바라보며 근심스레 말했다. “이제 기껏해야 한 시간 기다리면 되겠는데. 아까 물이 생각보다 적게 흐른다면서요? 그 사이 얼마나 불어나겠습니까?”
 
아까 보았을 때는 깊어야 배꼽 부위까지는 넘을 것 같지 않았다. 한번 걸어 본 길이라 어린애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또 웬만한 강에서 나는 헤엄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은근히 걱정스러웠다.
 
북한당국은 어찌 되였건 중국으로 여자를 넘겼으면 무조건 7년 이상의 교화형을 판결했고 심지어 총살형이라는 극형도 서슴없이 자행하며 탈북을 막아보려고 애를 썼다. 북한 형사소송법에 인신매매라는 법조항은 없었다.
 
하지만 늘어나는 탈북행렬과 이를 돕는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 불가피하게 제기되자 ‘길안내 죄’라는 조항을 형법의 부칙으로 집어넣고 비법월경을 한 주민들의 법률 몫도 한층 더 높였다.
 
나의 심중이 무거워졌다. 모녀가 죽을 고비에 들었기에 살길을 열어준다는 것은 한갓 가기 위안일 뿐이다. 만의 한번 여자가 잡히는 날이면 이 여자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올 것이고 그러면 나는 영락없이 인신매매자로 몰려 처형될 것이다.
 
또 잘못 팔리기라도 하는 날엔 참으로 피눈물 나는 생활이 연속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무거운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여자에게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다. “내 이제까지 말했지만 나 역시 상대를 아무것도 몰라.
 
그러나 명백한 것은 어떤 고생을 하더라도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말고 그 곳에서 한국 가는 선(길)을 꼭 찾아.” “네. 알아요. 죽을 뻔한 곳에서 살아났는데 이제야 어딜 가서 내 몸이야 건사 못 하겠어요?" 여자는 자신 있게 말하며 옆에 품어 앉은 딸을 꼭 그러 앉는 것 이였다. 이윽고 영철이가 버석거리며 숲을 헤치고 들어와 쪼그리고 앉았다. “비가 이렇게 와서 차라리 유리한데, 물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어요?”
 
“괜찮아요. 기왕 내친김에 무조건 건넙시다!” 오히려 여자가 먼저 말하는 것이었다. “그럼 갑시다!” 두만강에 들어섰다. 쏴~ 흐르는 물결이 가슴을 쿵 쾅 뛰게 하였다. 그러나 나는 별로 무서움을 느끼긴 보다 ‘모녀는 인젠 살았구나!’하는 안도감에 휩싸이는 것 이였다.
 
조금 들어갔는데 벌써 물이 배꼽을 지나고 가슴을 쳤다. (이게 무슨 일인가? 아직 절반도 못 들어 왔는데) 그러고 보니 이렇게 비가 쏟아지면 무산군 아래에 막아놓은 삼합수력발전소의 수문을 열어 놓는다는 생각이 났다.
 
그렇게만 되면 물이 두 배 이상 불어나고 물살도 대단하다. 예견하지 못한 정황 때문에 숱한 사람들이 강을 넘다가 봉변을 당했다. ‘안되겠어. 오늘은 포기하자,’ 물이 가슴을 치는데다가 경희를 업은 나는 물 저항을 두 배나 더 받아서 쫙쫙 밀리는 것이었다. 또 경희엄마까지 내 옆에 세웠는데 나를 붙잡고 허둥대고 있었다.
 
이러다간 세 명이 모두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데. 인젠 절반을 넘어왔잖아요. 어떻게 하나 건너가자요. 네?”
 
“그럼 힘내. 나를 꽉 붙잡고 절대로 겁먹어선 안돼.” 다행이 몇 발자국 안가서 몸이 쑥 솟구쳤다. 커다란 바위가 나진 것이다. 몇 발자국 갔는데도 물이 상당히 얕았다. 이제 불과 5~6m면 기슭이다. 그런데 이 순간 일이 터졌다.
 
안심했던 여인이 갑자기 바위가 벼랑처럼 깎아져 물이 깊어질 줄 몰랐던 것이다. 바위 밑은 물살이 꺾이면서 흙을 파헤쳐 대번에 키를 넘었다. 여자가 넘어지면서 내 손을 움켜잡았지만 맥없이 물에 휘말려 내려갔다.
 
나는 급히 소리쳤다. “경희야 내 목을 꽉 잡아 놓치면 안 돼.” 나는 여자가 없어진 쪽을 향해 경희를 업은 채로 힘껏 몸을 날렸다. 그런데 이 일을 어찌하랴! 너무 덤빈 탓에 여자가 물에 헤덤비는 곳으로 너무 가까이 접근한 것이다. 여자는 나를 정면으로 왈칵 덮쳤다.
 
앞뒤를 여인의 두 손에 제압당한 나는 어찌는 수가 없었다. 셋은 물속에서 사정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일부러 물밑에 무릎이 완전히 굽혀질 때까지 내려앉았다가 힘껏 차서 물위에 떠올랐다. 순간 경희가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겨우 머리만 내밀고 심호흡을 한 나는 다시 물속에 가라앉아 연속 그 방법을 반복하였다. 어떻게나 거세게 나를 안았는지 팔을 떼어낼 수가 없었다. 대여섯 번 반복했을까? 몸 균형을 잡고 서니 물밑에 발이 닿고 머리가 밖에 나왔다.
 
나는 급히 호흡하면서 여자의 머리를 잡아 떼여내려 했으나 역시 막무가내였다. 나의 신발은 다 벗겨졌고 땅을 걷어차 발톱이 빠져 감각조차 몰랐다. 간신히 기슭에 나와 여인을 내려놓은 나는 경희를 찾기 시작하였다.
 
기슭을 따라 한참 뛰어 내려가며 살폈으나 애는 보이지 않았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여인을 보니 정신을 잃고 있는 것이었다. 급히 심호흡을 시켰다. 좀 있으니 심호흡을 시킬 때마다 목안에서 이상한 소리 같은 게 나던 것이 없어지고 여인의 입술은 조금씩 실룩거리는 감이 낫다.
 
여자는 아~ 하더니 간신히 숨을 쉬기 시작했다. 나는 안도의 숨을 쉬며 무심결에 강 아래쪽으로 달려내려 갔다. 그러다 문득 ‘이 여인이 내가 곁에 없으면 나를 찾아 나선다고 야단일 텐데’하는 생각에 되돌아 와 제꺽 상의를 벗어 여인을 옆에 있는 작은 소나무에 끌고 가 그의 다리를 매어놓앗다.
 
나는 급히 아래로 내려가면서 기슭을 흩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내려가도 경희는 없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헤덤비어서 온몸이 쑤셔났다. 귀에선 멍하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머리는 터질 것 같았다.
 
이일을 어찌 한단 말인가? 눈앞에는 딸처럼 달려와 안기던 경희가 어른 거렸다. 내가 이럴 진데 어미의 마음이야 어떠랴! 이 일을 과연 어찌한단 말인가? 나는 황당한 마음을 가지고 여인이 있는 곳에 돌아왔다.
 
나를 본 여자는 비칠거리며 다가왔다. 그리고는 “경희는. 경희는. 경희야~”고래고래 소리치며 두만강에 마구 달려들었다. 내가 붙들자 여인은 뿌리치며 더욱 기승을 부렸다. 여자가 미쳐버린 것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물에 들어서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그러나 때는 늦었다. 여인의 고함소리에 마을에서 개들이 짖기 시작했다. 난감했다. 요즘은 중국공안에서 밀수꾼들을 특별 단속하는 기간이여서 순찰이 뻔질 한데 일을 그르칠 것 같았다. 개들이 일제히 합창이나 한 듯이 더 소란스럽게 짖어댔다.
 
나는 오도 가도 못하고 궁지에 빠졌다. 여인은 막무가내로 고함치고 있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여자를 부둥켜안은 채 물에 콱 넘어졌다.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아직 기력이 그대로 살아있는 한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인을 업고 한참을 헤매서야 이미 전에 갔던 촌장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촌장은 여자를 업는 채 들어서는 나를 보고 몹시 놀랐다. 여인을 눕혀 놓고는 있은 일을 다 이야기 해 주었다. 그런데 다음 날 또 문제가 생겼다. 깨여난 여인은 말을 잊어 버렸다. 아무리 뭐라고 해도 대답이 없고 나만 보면 무작정 달아나려 하고 생전부지인 촌장의 뒤에 숨는가 하면 달아나려고 무지 애를 썼다.
 
속이 뒤집어질 일이였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여자와 함께 다음 날 저녁 돌아서기로 하였다. 그 마을에는 자동차다이아를 묶어 만든 조그마한 배를 만들어 가지고 도강하는 사람들을 몰래 태워 건네주는 사공이 있었다.
 
그 사람에게 돈을 주고 옷을 갈아입고 복면을 한 다음 여자 몰래 한 배에 네명 타고 두만강에 들어섰다. 배를 장대로 밀어 절반가량 왔는데 여인은 갑자기 벌떡 일어서서 야단을 하는 바람에 배가 뒤집어질 뻔했고 여인은 물에 빠져버렸다.
 
나는 너무 속상하고 물에 뛰어 들었다. 악전 분투하여 여인을 건지는 사이 배는 떠내려갔다. 다시 촌장네 집에 올 수 밖에 없었다. 그때의 따분한 일을 지금 여기서 다 쓸 수가 없었다. 나는 맘속으로 하나님께 빌었다. 북한은 하나님을 모른다. 하지만 가장 어려울 때 부르게 되는 것이 하느님이었다. ‘아! 하나님, 왜 이다지도 무심하십니까!,
 
그런데 기적이 일어낫다. 여인이 일어나 앉으며 너무 슬퍼 흐르는 내 눈물을 닦아 주는 게 아닌가! 나는 그냥 여자를 바라보기만 했다. 이 여인이 정말 제 정신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중에서도 나를 위로하는 여자가 너무도 안쓰러워 더욱 슬피 울었다.
 
“미안해요. 은희 아버지. 나도 온밤을 자지 못했어요.” “뭔 소리야” 나는 꿈을 꾸는가 싶어 벌떡 일어났다 앉으며 여자의 볼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분명히 여자는 정상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어젯밤 깨여난 보니 중국집 이였어요. 이 집이 중국집 맞죠?” 어제 밤 정신이 든 여자는 깨여나 살금살금 다 돌아보았다.
 
물가에 누었던 일, 경희가 죽었다고 말해 억이 막혔던 일, 다 기억났었다. 그런데 내가 왜 여기 누워있지? 여인은 살펴보고서야 자기가 어찌하여 이곳에 누워있는지 짐작이 갔다. 그러나 자기 정신이 없었다는 기억은 전혀 못했었다. 단지 지금이 함께 건너오던 날 저녁인가하고 착각 할 뿐이다.
 
나는 다시 한 번 놀래었다. 사람이 이렇게도 될 수 있는가? 꿈이라면 깨지 말았으면..... 나는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이기전에 손에 라이터를 대 보았다. ‘앗 뜨거워.’ 나는 꿈이 아님을 재삼 확인했다. 이렇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너무 기뻐 그 여인의 손을 잡고 아랫방에 내려왔다.
 
너무 속상해 있던 촌장부부도 진심을 기뻐했다. 하루지내며 이야기 해본 총장과 그 안해는 그 여자를 대단히 맘에 들어 했다. 우리는 눈물 속에 이별을 했다. 피눈물 나는 시간 이였으나 여인은 바라던 곳에 간 것이다. 우리는 적어도 두 달에 한번은 연락을 가지기로 했다.
 
탈북자 고태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