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가 되던 날. 큰 딸 은희가 신중한 태도를 하더니 조용히 나에게 말했다. “아버지. 은하를 중국에 보낸 게 한영실이 틀림없습니다.” 뜻밖의 말에 놀라서 반문했다. “어떻게 된 거야. 어디서 들었어?” 너무 다급하게 묻자 큰딸은 조심스레 말했다.
 
“진정하세요. 아버지, 어제 저 계림동에 사는 ‘콩새’(별명)가 저한테 왔었어요. 은하가 인사를 전한다면서... 그리고 은하가 나를 중국에 오라했다고 연락이 왔대요. 내가 며칠만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아니. 그런데 ‘콩새’인지, 잡새인지라는애가 어떻게 노골적일 수가 있니? 그러다가 자기는 잡히지 않는대?” “아버지도 참. 한영실이가 보위부 끄나풀인줄 몰라요? 어쨌든 신중해야 한다고 봐요.” 아무리 신중해도 그렇지. 인신매매가 그렇게 노골적일 수가 있을까? 나는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
 
사람들의 여론을 들어보면 십중팔구는 한영실이가 은하를 팔아먹었다는 것이었다. 한영실은 탈북자, 한국행을 하려는 주민들을 색출하여 보위부에 알려주는 일을 하였다. 한번에 5명씩 모집해서 중국에 팔아넘기는 인신매매도 곁들어 감행하고 있지만 보위부는 알면서도 눈감아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할수록 악이 치받혀 올랐다. (너희 놈들 어디 두고 보자.) 나는 생각 끝에 큰딸과 자초지종 토론을 하고 그 여자가 다시 찾아오면 조용한곳으로 끌어다 물어보려 했지만 시간을 기다릴 수가 없어 병에 유산을 준비하고 저녁에 집으로 찾아갔다. 집은 담장은 꽤 높아 웬만히 소리쳐서는 다른 집에서 들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집으로 들어간 나는 단도직입 적으로 말을 떼였다. “내가 은하 애비요.” “은하라니? 은하가 누군데요?” 여자는 모르는 체 내색 없이 반문하였다. “며칠 전 당신이 중국에 팔아넘긴 애들 중 하나요.” “팔아넘기다니?” “시치미를 떼지 마오. 당신 입으로 내 딸 은희한데도 얘기했다며? 은하한테서 소식이 왔다고, 너도 가지 않겠냐고.” “그런데요?” 여자는 피하려 하지도 않고 아주 당당 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나는 긴말하지 않고 준비해 온 유산 병을 주머니에서 꺼내 뚜껑을 열어 가마 옆에 몇 방울 쏟아놓았다.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짙은 유산은 강렬하게 반응하며 거품을 일으켰다. 나는 그 모양을 보다가 말했다. “이건 유산이요. 이게 당신의 얼굴에 뿌려지면 어떻게 될 것 같소?” 여자는 눈이 둥그레졌다. “난 당신이 그 뱐뱐한 얼굴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소. 얼굴에 영원한 더덕범벅을 만들어 놓으면 당신은 아마 죽은 목숨보다 못할 것이라 생각되는데... 안 그렇소?”
 
나는 놀라는 여자의 앞으로 당장 뿌릴 듯이 다가앉았다. 여자는 손을 뻗쳐 병을 막을 것처럼 헤덤볐다. “솔직히 말해. 어떻게 했어. 우리은하를 어떻게 했냐말이야?” 여자는 자세를 바로하며 앞으로 약간 흐트러진 머리를 손으로 더듬으며 말했다. “중국에 가겠다기에 보냈어요.” “당신이 직접 보낸 건 아니겠지. 당신 앞에선 애는 누구야?” 여자는 잠자코 있었다. 이러저러한 것을 알아본 다음 나는 움쭉 일어서 나와 버렸다. 집에 오면서 나는 다시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너희 연놈들의 뒤를 누가 단단히 봐주고 있구나.) 나는 주먹을 꽉 틀어쥐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아침 출근 준비를 하고 방금 집에서 나오려는데 낮선 사람이 찾아왔다. “분주소 순찰대에서 왔습니다. 장철 주재원이 데려오라고 해서.” “무슨 일인데.” “글쎄 가보면 알겁니다.” 분주소라면 떡을 준 다해도 싫었지만 처에게 간단히 알려준 다음 그를 따라 분주소에 갔다.
 
담당주재원은 앉으라, 서라 말도 없이 하던 문서정리를 끝내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날 알만하오?” “알죠. 주재원” “아니. 그것 말고.” “분주소가 처음이니 그이상이야 모르죠.” “그럼 내가 알려주지. 내가 나타나면 울던 애도 그친다는 농장 담당주재 장철이요. 알만해?” 그는 위협조로 말했다. 나는 화가 확 나는 것을 참았다. (이게 어떻게 되먹은 놈인데 첫마디에 반말이야?)
 
그는 담배를 꺼내 붙여 물고 후~ 내뿜더니 씨벌인다. “뭐, 어제 콩새네 집에 들이닥쳐 재간을 부렸다며?” 나는 입이 쓰거워서 아무 말 안했다. 이것들이 어떻게 되먹었기에 오히려 저편에서 이 개지랄인가? 그 쌍계집이 뱐뱐한 몸으로 꼬이고 인신매매로 돈 꽤나 가졌을망정 이럴 수야 있나.... “왜 말이 없어? 내말이 사람 말 같지 않아?” 그래도 나는 말 안 했다. 멍청히 창문 밖만 내다보았다.
 
약이 났던지 그는 “야!” 하고 꽥 소리 치르고는 나한테 바싹 다가와 무섭게 쏘아보았다. “왜 그럽니까? 내가 대체 무엇을 잘못했기에 ‘야, 자’ 소리를 들어야 합니까?" 나는 조롱하듯 천천히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야. 이 새끼 봐라. 그래서 내가 묻잖아. 어제 콩새네 집에 안 갔었냐고? 왜 갔댔어?” “여보시오. 말소리 좀 낮추시오, 내가 당신보단 나이가 많은데 왜 반말 하는 거요?” 이어 번쩍하고 눈앞에 불꽃이 튀였다.
 
주먹으로 내 면상을 후려친 것이다. 단번에 입안이 쩝쩔해 났다. 나는 침을 바닥에 탁 뱉었다. 시뻘건 피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순간 나는 자제력을 잃고 말았다. 와락 달려들며 녀석의 상판을 후려쳤다. 와당탕거리고 악다구니가 터졌다. 그 소리에 보안원 한명과 순찰대 한 녀석이 달려들었다.(순찰대란 공장기업소에서 출신성분이 좋은 제대군인들을 뽑아 보안원들의 치안유지를 돕게 하는 사람) 그 바람에 되게는 얻어맞았다.
 
대번에 머리가 터져 피가 쫙 흘렀으나 나는 발악을 멈추지 않았다. “뭐야. 이건” 꽥 고아대는 소리에 쳐다보니 보안소장이 서서 소리치는 것이다. 그는 피범벅이 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나는 그를 쏘아보며 소리쳤다. “이건 뭡니까? 무었을 잘 못했기에 데려다 놓고 때리기부터 한단 말입니까?”
 
담당주재원이 서장에게 사연을 반대로 설명했다. 나는 중도에서 그의 말을 가로채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래. 내 딸을 팔아먹은 년한테 가서 어디 갔느냐고 물어보지도 못합니까?” “그런데 왜 유산 병으로 위협햇소?” “아니요. 나는 유산이고 뭐구, 그런걸 모릅니다. 나는 그저 맨손으로 찾아가 보았을 뿐입니다.” 나는 이자들의 수법을 알고 있다. 아무리 어쩌고저쩌고 해도 조금이라도 언질이 잡히면 역습을 당하기 때문에 무조건 뒤집어야 했다.
 
“본인이 그렇게 신고 했는데?” “그렇다면 신고 장을 봅시다!” 주재원 녀석은 우물쭈물 했다. 흐지부지하는 마당에 들은 소리라 서류가 있을 리 만무하다. “보시오. 나는 그런 일 한 적이 없습니다. 입으로야 무슨 말인들 못하겠소. 나를 오해하려는 사람들이 내가 폭탄으로 위협했다한들 그 말을 인정 할 겁니까?” 소장은 쓰거운지 담배를 꺼내 물며 말했다. “장 동무, 조용히 처리하오. 검열 때문에 복잡한데 더 복잡해질 수 있잖소.”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조용하라니까 좋게 처리하라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웬걸 씩씩거리던 녀석이 ‘가자!’하더니 보안서 청사건너편에 있는 대기실(구류장)로 넣는 것 이였다. 말이 대기실이지 철창 속에 또 철문이 닫히게 되어있는 똥오줌 냄새가 지독한 감방이나 다름없었다. 들어가 보니 5~6명 정도 누울 수 있는 좁은 방에 16명이 콩나물처럼 빽빽하게 앉아 있었다. 앉지도 못한 채 장장 24시간, 고문이라도 그 이상 더 처참한 고문은 없을 상 싶었다.
 
자그마한 분주소 대기실도 이정도이니 시, 군보안서 구류장은 어떠하랴! 참으로 이 나라는 모두가 범죄자 같았다. 불속같이 지글지글한 속에 내 머리에서는 피가 지혈되지 못하고 계속 흘렀다. 피 냄새 때문에 옆에 앉은 죄수들이 코를 찡그리고 야단이었다.
 
다음날 보안원이 찾아 나가보니 밖에 처가 와 있었다. 보안원은 나에게 후에 찾겠으니 깐 집에가 잘 생각해보라며 나를 집으로 보내주는 것이었다. 오는 길에 처가 근심스레 말했다. “출혈이 심한 거 같은데 괜찮겠어요?” “그러기에 내가 뭐래요? 당신 성격 좀 고치세요. 아무데서나 우락부락하니까 이런 일이 자꾸 있잖아요. 다행히 장주재가 사망했으니 말이지 무슨 일이 날지 누가 알아요? 그것들이 못하는 짓이 있어요?”
 
“죽다니? 장주재가?”나는 영문을 몰라 다급히 물었다. “장주재가 어제 죽었었어요. 술을 너무 마시고 죽었다고도 하고 자살 했다고도 하고 참 다행이지 뭐예요. 그 우악한 사람이 무슨 일 저지를까 몹시 근심했는데...” 어쨌든 하늘이 도왔는지 나는 뜻하지 않은 봉변에서 겨우 구제된 셈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사회라는 것이 빈 구호뿐이지 집권세력들이 하고 싶은 대로하는 난무장이에서 나는 앞으로 있게 될 일이 서서히 긴장해짐을 느꼈다. 그러나 이번일은 그저 넘길 수 없었다. 해보자. 내 몸이 쪼개지더라도 이놈들을 복수해야지.
 
탈북자 고태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