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들어 온지도 달포가 지나가고 그동안 너무나 힘들었다. 지금껏 캐낸 것이 마른 백출 250kg이나 되었다. 대단한 량이다. 이것을 시장에 내다 팔면 옥수수 750kg정도를 살수 있다. 일 년 죽도록 일해도 농장에선 받을수 없는 량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얼굴을 씻으려 물 흐르는 도랑에 갔다. 그런데 아래쪽으로 난 오솔길로 낯선 사람 셋이 올라오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농장담당보안원과 작업반 비서, 직맹위원장들이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이들은 벌써 몇 번째 이곳에 연락을 보내왔었다. 룡천골짜기 여기저기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직장이나 농장 일을 때려치우고 올라온 세대가 무수하였고 농장들에서는 큰 골칫거리였다. 위에서는 모두 잡아다 처벌하고 싶었지만 그러자니 굶어죽는 사람들의 항의가 두려웠고 아무리 내려가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보안원이며 당 일군까지 함께 올라오는걸 보면 오늘은 무슨 대책이라도 세우려는 기세다. 작업반 세포비서가 꺽꺽거리는 음성으로 사람들을 불러냈다. 사람들은 별로 반갑지 않은 기색을 해가지고 꾸역꾸역 대충 닦아놓은 앞마당에 모여들어 앉거나 서있었다.
 
다 모인 기색이 보이자 작업반 세포비서가 말했다. “에~ 이거 보시오. 동무네가 이렇게 농장을 다 떠나니 농사 지울 사람이 없소. 지금 농장은 모내기를 해야겠는데 사람이 없습니다. 농장의 60%가 무단결근이란 말이요. 농장에서 토론했는데 이제부터는 농사철의 식량은 먼저 공급하게 토론했으니 모두 내려갑시다. 물론 가을에 물어야 하지만...“
 
그러자 한 사람이 다시 물었다. “올해는 꿔준 강냉이를 어떻게 한다우?” 비서가 간단히 말했다. “3:1이요" "올해는 3:1로 꿔 먹고 내년에는 또 어쩝니까? 난 작년 빛만해도 700kg 넘어요.” 모두 그 말에 수긍하는 눈치였다. 어떤 사람은 더러운 듯이 일부러 가래침을 탁탁 뱉기도 했었다.
 
보안원이 비서를 말없이 비켜 세우더니 제가 나섰다. 사람들을 휘 둘러보고는 위엄을 빼며 “그러면, 어떻게 한 단말이요. 나라야 어떻게 되던 말든 자본주의식으로 저 혼자만 생각하면서 계속 개별적으로 살겠다는 말인가? 누가 말해보시오. 이건 단지 배고파서 그런다는 문제와 다릅니다. 입을 주의해야 합니다. 이건 비사회주이 적이고 반당적인 사상요소입니다. 이제 우리 의도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는 결코 어루만지지만 않을 것입니다.”
 
좌상격인 한 사람이 나섰다. “그렇다면 하나 물읍시다. 여기 살겠다고 온 사람들이 다 반당분자라면 굶어죽는 사람은 혁명갑니까?” “동무!” 말이 끝나기 전에 담담보안원은 외치듯 말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시오. 사람은 없지, 농사는 지어야지. 사회주의는 지켜야지. 동무 같으면 어떻게 하겠소?” 할 말이 많았으나 사람들은 수군거릴 뿐 한 사람도 나서서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보안원은 사람들을 때릴 듯한 기세로 말을 이었다. “하여간 모두 내려갑시다. 이것이 마지막기횝니다. 여태까지 일을 나오지 않은것은 무효로 하겠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새롭게 가지고 내려가서 ‘모내기전투’에 참가합시다. 더 길게 말하지 않겠소. 그러나 오늘까지 움직여 주지 않으면 우리도 해당한 대책을 취하겠습니다.” 결국은 위협 절반 얼림 수 절반으로 내려가 농사에 참가하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떠나갔지만 사람들은 산에 오를 염은 않고 모두 그 자리에서 서성대었다. “저것들이 여길 어떻게 알아냈을까? 어느 놈이 고자질한 거야?” “고자질은 무슨. 여기는 그럴 사람이 하나도 없소. 하지만 세상에 비밀이란 없는 거야. 일단 여기가 노출되었은즉 다른 곳으로 옮길 사람은 옮기고 내려갈 사람은 내려가고 자유대로 합시다” 나는 내려가기로 결심하였다.
 
제일 문제는 소를 떼 우는 것이었다. 소가 가정유지에서 대단한 몫을 차지하고 있기에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소를 팽개치고 너무 오래 있으면 소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버린다. 그러면 집에는 땔 걱정 등 많은 문제가 생긴다. 인제는 좀 벌었기 때문에 용서하겠다고 할 때 내려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일단은 모두가 이곳에서 자릴 옮기되 집으로 갈 사람은 내려가고 계속 약초를 캘 사람은 새로 자리 잡고 삽주를 캐기로 약정 지었다.
 
난 내려가면서 혼자 이곳에 남으려는 경희네한테 갔다. 모두 다른 곳으로 함께 가자고 했지만 경희엄마는 부담을 끼치기 싫다며 이곳에 일으켜놓은 밭을 가꾸고 삽주도 캐면서 사는 게 좋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혼자 남게 되었다. 풀막 앞에는 떠나면서 이들에게 조금씩 갈라준 50kg정도의 말린 백출이 쌓여있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건만 돕고 살아보려는 의리는 그야 말로 감격적이었다. 경희엄마는 내내 눈물만 흘렸다. 언제 죽어가던 여인인가 싶게 몸도 마음도 달라진 여인이었다. 나는 삽주 망태기를 내려놓고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울어서 눈물범벅이 되었지만 발그레 혈기 오른 얼굴은 이쁘장했고 이여자도 좋은 세월에 났다면 이런 모양으로 살지 않았겟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 하세요. 경희엄마. 자꾸 이러면 떠나는 사람들도 안 좋구만...” “미안해요.” 경희엄마는 급히 얼굴을 수건으로 닦으며 옷매무시를 바로 잡았다.
 
한참이 지나자 경희엄마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간 정말 고마웠어요. 무슨 말로 인사를 드려야 할지...” “아뇨. 그런 말마시오. 그런 환경이면 누구나 그랬을 거요.” “한 가지 물어봐도 좋아요?” “뭔데요?” “저 중국에 가고 싶어요.” “뭐요?” 십분 이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무작정 들이대는 발언이라 이상한 감정이 갈마드는 것이었다. “전 한사람의 여자가 되고 싶어요. 중국이든 소련이든 내 딸을 살리고 내가 먹고살 수 있다면 가고 싶어요. 어떤 고생이라도 각오해요. 굶어 죽지 않는다면 말예요.”
 
나는 말할 수 없었다. 물론 중국에 다니는 사람들을 조금 알뿐 아직 보거나 목격하지 못했었다. 더욱이 요즘은 김정일이 자기모친 고향인 회령에서 탈북자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는 배급도 조금씩은 주며 회유하고 한편으로는 탈북자들을 엄중 처벌하는 등 법적조취를 강화하고 있었다. 얼마나 살기가 힘들었으면 생명을 내대는 모험이라도 서슴없이 단행할 결심을 하였을까?
 
나는 경희엄마를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아직은... 나도 그저 몇 사람이 중국에 나든다는 것만 알고 실지 경험해보진 못하였소. 결심이 그렇다면 나도 한번 알아보겠소. 암튼 이렇게 살다죽느니 차라리 그게 괜찮을 것 같구먼...” 그날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산을 내렸다.
 
집에 내려오니 또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다. 둘째 은희가 말썽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죽을 고비를 벗어나 식량여유가 생긴 눈치를 보고 둘째가 신발을 사달라고 생떼 질이었다. 처가 얼리기 시작했다. “얘. 은희야! 그 신발이 어쨌단 말이냐? 언니는 그보다 더 낡은 신발을 꿰매신고 다니면서도 말이 없는데,,,” “엄마. 엄마도 나다니면서 보지 않아요? 지금 내 또래가 이렇게 신고 다니는 애가 어디 있어요?” 둘째가 뾰로통해서 하는 말이다.
 
간부집 잘사는 애들 내놓고는 그래도 넘 가난하지 않게 내세우건만 애는 만족하려 하지 않는다. 옥신각신 끝에 은희는 씨 소리를 내던지고는 쾅 하고 문을 차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나는 이럴 때면 어느 편도 못선다. 처의 입장이 옳은 것이다. 아직 가을까지 이 대식구가 살자면 아직도 멀고도 먼데... 그러나 또 한창 멋 부리고 다닐 나이인 딸의 지청구를 들어주지 못하는 부모의 심정... 휴 우~ 긴 한숨만 나온다. 언제까지 이렇게만 살아야 할지....
 
그런 일이 있은 후 사흘째. 은희가 없어졌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대번에 중국에 갔다는 것을 눈치 챘다. 물론 이런 일은 마을에서 매 일 벌어졌다. 참으로 가슴 터질 노릇이었다. 매일 일어나는 일이고 죽도 없이 사는 집에서 차라리 중국에 가서 잘 살면 좋은 일이 아닌가, 남의 집 일 일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내 집에 그런 일이 생기고 나니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처는 며칠 전 신발을 사달라고 할 때 사줄걸 그랬다고 후회하면서 가슴을 치며 슬피 울었다. “그러다 우리 은희가 송천이네 딸처럼 나쁜 놈한테 시집갔다가 시체가 돼서 오면 어쩌죠? 마음에 없으면 죽여 버린다는데... 게다가 그 어린것이...” 나도 가슴에서 흐르는 피눈물을 말없이 삼킬 뿐이다.
 
이 모든 현실이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가? 매일 한다는 총살은 누구를 쏘고 이렇게 인신매매는 계속되는가? 내 꼭 밝혀서 어느 놈이던지 걸리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속다짐을 했다. 모든 일을 전패하고 은하를 찾아 온 식구가 떨쳐나섰다.
 
탈북자 고태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