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탈출하여 대한민국에 입국한 박인복(50)씨는 지금 대학교 4학년이다.
졸업을 앞두고 꿈에 부풀어 있는 그에게는 이제야 자신의 지난날을 회고 할 여유가 생겼다.
최근 북한에서 일고 있는 정책의 하나인 ‘울바자 낮추기’의 소식을 접한 그는 자신이 살던 고향의 분주소장을 먼저 떠올린다.
자신의 살던 지역에서 가장 큰 집에 나무판자로 된 울바자를 높이 친 보위지도원과 분주소장의 집은 멀리서도 지붕밖에 보이지 않는 비밀 아지트를 방불케 했다.
고향에서 ‘올빠시’로 불리는 분주소장은 3살 어린애들도 무서워 할 정도로 별명에 걸맞게 주민들의 원성을 한 몸에 안고 살았다.
‘올빠시’는 <누리의 붙는 불>이라는 김일성의 삼촌(김형권)에 대한 '혁명'영화에서 군중감시와 약탈, 악랄한 폭행의 대명사로 불리는 악독 경찰관의 별명이다.
원래의 올빠시는 벌의 한 종류이며 통증이 심한 벌침으로 유명하다.
고향에서 기나긴 경제난으로 굶주림에 지친 인복씨는 새 삶의 희망을 중국에로의 진출, 고난의 탈출구로 품었다.
탈북 후 중국에서 불법체류자의 힘든 고역으로 꼬박꼬박 모은 3년간의 월급(3천 달러)은 또다시 그를 한국행에 대한 희망을 품게 했다. 북송의 두려움으로 매일같이 숨죽이고 사느니 차라리 대한민국에서 당당히 살고 싶었다.
인복씨는 탈북을 위해 면밀한 계획을 세운 후 가까스로 수도 베이징에 도착하였지만 운이 모자랐는지 그만 대사관 앞에서 중국공안에 잡히고 말았다. 탈북자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북송의 조사과정과 처벌수위를 잘 알고 있는 인복씨도 출발 당시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여 대응책을 취했었다.
하여 북송된 도강자 검열중 하나인 온 몸을 벗기고 수색하는 검열에서도 입으로 삼킨 돈을 간수할 수 있었고 그 돈으로 다시 오늘의 한국행을 할 수 있은 것이다.
북한으로 북송 된 인복씨는 온갖 치욕을 받으며 고향 분주소로 이송 되었다.
탈북 전에는 시장과 지역에서 장사손이 걸어 돈 꽤나 주무르던 인복씨와 퍽이나 살뜰한 양을 떨며 온갖 구실과 조건을 붙여가며 뇌물을 갈취하던 분주소장 올빼미는 난생 ‘처음’보는 사람이었다.
올빼미: 돈 좀 벌어왔나?
인복씨: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바쁜데 돈을 어디서 법니까?
올빼미: 남들은 밑을 팔아서라도 돈을 벌더니만 넌 그것도 못 파니? <밑이란 여자의 성> 밑을 팔아서라도 돈을 못 벌어 왔다며 대놓고 조롱 하는 올빠시가 그렇게 역겨울 수 없었다.
(개 같은 새끼, 탈북이 아무리 반역이라 해도 그게 정복을 입은 소장이란자의 입에 담을 소리냐?) 인복씨는 피가 거꾸로 오르는 느낌을 지그시 누르며 대답했다.
인복씨: 나처럼 못생긴 사람을 누가 삽니까?(치욕스러워도 대답을 피할 수는 없었다)
올빼미: 교회에 간적이 있느냐? 남조선 사람을 만났느냐?
인복씨: 저는 그런 말 듣지도 못하고 남조선 사람을 한 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교회와 남조선이라는 말만 비춰도 어떻게 끝장나는지를 잘 알고 있는 인복씨는 천연한 얼굴로 모르쇠를 했다. 그를 3년간 보호하고 도와준 사람은 한국분이며 기독교인이었다 )
올빼미: 너, 중국에서 남조선에 가려다 잡혀온 것 아니냐?
인복씨: 내가 왜 남조선에 갑니까? 저는 애초에 그런 생각 가질 수 없습니다. 고향에 어머니와 아들딸이 다 있는데 제가 가면 어딜 간단 말입니까? (내가 먼저 한국에 입국하여 집 식구들을 차례로 데려 오리라) 이것이 인복씨의 진심이다.
올빼미: 너 이제 다시가면 말뚝(사형)에 설줄 알라. 네 처지를 누구보다 네가 더 잘 알지? 올빼미는 조사의 마무리에서 이렇게 협박에 가까운 침을 놓았다.
인복씨: 예, 절대 안갑니다.
인복씨는 섬뜩함을 금할 수 없었다. 그의 처지란 모 군단의 최고위층으로 있던 아버지가 어느 날 숙청의 회오리바람에 휘말려 인복씨가 태어난 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사건이다.
당국은 아버지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며 어머니더러 딸들을 데리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살라고 했지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에서 어머니는 당국에 의해 남편이 처형당했음을 짐작했다.
자라면서 인복씨는 딸이었기 망정이지 아들이었음 벌써 당국에서 없애버렸을 것이라던 어머니의 안도의 모습을 자주 보아왔다.
인복씨는 분주소장의 엄포를 분명히 이해했다. “다시가면 말뚝에 설 줄 알라!”
북한에서 말뚝이란 총살형을 받은 사형수들을 형 집행시 고정하여 묶어세우는 나무기둥을 말한다. 올빠시의 말에는 다시 북송되어 돌아가면 절대 안 됨이 짙게 배어있었다.
올빠시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처럼 한번 북송 된 사람은 반드시 재탈북하는 현실에서 ‘말뚝엄포’를 놓으며 다시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북송을 통해 인간을 짐승이하로 여기는 북한당국의 반인민성과 자랑 높은 ‘광폭정치’의 속성을 관찰하고 공화국에 대한 혐오와 환멸을 뼈에 사무치게 느낀 인복씨는 자유를 향한 한국행을 확고히 굳히게 되었다고 한다.
인복씨의 재탈북 얼마 전 2미터의 담으로 <소왕국>을 방불케 하던 분주소장 ‘올빠시’의 담 안에 칼꽂인 인형이 발견되어 한참 소란스럽더니 웬일인지 ‘말뚝엄포’의 올빠시가 갑자기 간암으로 사망했다...
인간지옥에서 ‘말뚝설’에 겁먹은 인복씨는 그 후 자녀들과 사생결단의 한국행을 단행하였고 지금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세상 부러운 것 하나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그의 마음 한편에는 늘 오늘도 북한에서 김정일의 독재에 구속되어 희망을 잃은 채 하루의 연명을 위해 살고 있을 고향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나 혼자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김정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