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사교과서의 근현대사 왜곡에 관한 비판과 분노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더욱이 문제의 본질이 어느 대통령을 찬양하고 비하하는 등의 정치이념적 시시비비가 아니라, 좌우세력 모두가 자기 존재근거로서 합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이번 논란은 사회적으로 쉽게 불식되지 못할 전망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어김없이 북한이 끼어있다.
북한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알아야 할 핵심적 진실은 ‘못 먹고, 못 입고, 못 사는’ 곳이라는 단순한 표상 이전에, 그 집단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는 전혀 그 속성이 다른 ‘불법적 민족반역정권’이라는 점이다. 국사교과서 논란은 그 진실을 간과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의 의식세계를 또 한 차례 들춰내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의식세계를 ‘이용하려는 세력’의 의식세계 또한 들춰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편향 없이 공정성 초점” 8차 교과서, 열어보니 ‘그대로’
문제가 되고 있는 국사교과서는 미래앤컬쳐, 비상, 삼화, 지학, 법문, 천재교육 등 6개 출판사에서 출간된 뒤 올 3월부터 교육현장에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8차 고등학교 교과서다. 앞서 작년까지 시행된 7차 국사교과서(한국-근현대사) 역시 좌편향성이 오랫동안 문제시되어온 바 있다. 특히 6.25 전쟁에 대한 양비론적 서술, 독립사 서술에서의 반미 논리, 북한 정권의 단독성 묘사 등은 7차 교과서의 정체성에 관한 의혹의 화살이 몰아치게 하는 데 충분했다.
이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는 2009년 8월 이른바 “새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발표, “대한민국 정부는 3·1운동과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내용을 분명히 함과 함께 6.25 전쟁의 남침 여부 명시, 북한 정권의 성립에 대한 사실 중심의 설명, 건국 초기 인물에 대한 객관적 서술 등을 약속했고, 이를 올 3월부터 중학교 2학년 및 고교 1학년, 내년(2012년) 3월부터 중학교 3학년에게 적용할 예정이었다. 교과부는 이같은 방침과 관련해 “특정 이념이나 역사관에 편향되지 않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서술하도록 했다”며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이 다양할 경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하도록 하는 등 서술의 공정성과 균형성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마침내 뚜껑이 열린 8차 국사교과서에 대한 반응은 오히려 ‘그전보다 더 심해졌다’는 분위기다. 먼저 집필진 리스트에서부터 편향성의 우려가 풍긴다는 지적이 거센데,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친북좌파 논란에 휘말려오고 있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출신 교사들이 대거 집필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중 대다수는 친노무현 및 친북적 민중·계급사관으로 무장한 인물들로서 ‘국사’를 말하는 자리에 알맞다고 보긴 어려운 구석이 있다.
대표적으로 천재교육의 국사교과서에 참여한 주진오 상명대 교수의 경우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 대해 “소련과 북(北)의 지배 집단이 먼저 분단 정부를 수립하는 방향으로 갔을 때, 같이 분단 정부로 맞대응하는 방식으로 간다면 이는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켜 분단이 불가피해지는 상황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며 “오히려 민족의 통합과 미·소의 타협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분단을 저지하는 길이었을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고, 함께 연구위원으로 임한 이신철 성균관대 교수는 “북한이 일제시대에 사회주의의 길을 걸었던 것은 정당하다”며 “그후 자신만의 독특한 사회주의의 길을 걷다가 통일에 대한 열망으로 6.25를 일으킨 것”이라고 진술했던 전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6.25 설명에 “南北, 서로의 체제에 대립각 세워”
이번 국사교과서의 왜곡 사례 중 가장 친북적 좌편향의 위험성이 돋보이는 부분도 한국전쟁에 관한 기술이 꼽힌다. 김일성의 한반도 적화 의지에 따른 남침으로 인해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이 전쟁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6종 교과서들은 대한민국 합법정부와 북한의 반체제 정권을 동등한 위치에 놓고 ‘상호 대결구도’를 강조하는가 하면, 김일성-스탈린-모택동간의 적화 협력부터 소련 및 중공의 전쟁 개입까지 그 불법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비상교육은 “남한과 북한은 서로의 체제를 비판하면서 대립각을 세웠다”고 표현했고, 천재교육은 “남과 북은 각기 자신이 권력을 장악한 지역을 토대로 나머지 지역을 통합하겠다는 전략을 추진하였다”고까지 묘사해놓았다.
한국전쟁은 단지 한반도 내 두 체제들끼리의 대결이 아니라, 당시 UN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이 사이비 공산혁명 이념으로 무장한 독재세력들에 대해 한반도를 일종의 보루로서 수호한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국사교과서들의 위같은 기술은 보편적 정의(正義)의 관점에서나 국민적 견지에서나 부당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교과서들은 한편 UN군의 참전을 위한 안보리 소집에 결정적 기여를 했던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당시 미국 대통령과 총사령관으로서 이른바 인천상륙작전을 주도했던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과 같은 국가적 주요 인물들에 대해서도 거의 침묵으로 일관함으로서, 결과적으로는 북한 정권의 남침에 대해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그 반역성과 불법성을 ‘판단할 수 없다’는 뉘앙스를 심어놓기도 했다. 또 천재교육의 경우, 전쟁 중 인민군의 민중학살에 관해서 오히려 좌익세력이 피해자였고 학살은 미군에 의해 자행된 것처럼 왜곡 기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역사적 도발에 하나같이 침묵한 ‘한국형 진보사관’
이외에도 6종 교과서들은 북한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에 대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 김신조 사건, 푸에블로 호 나포 사건, EC-121 격추 사건, 영부인 육영수 피살사건,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 KAL기 폭파 사건을 비롯해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까지 북측의 이른바 ‘7대 도발’을 아예 언급도 하지 않거나(미래앤컬쳐·법문·삼화), 북한 주민들의 90년대 중반 대량아사의 원인이 김정일 독재정권의 폭압성이 아닌 외부적 환경에 있었던 것으로 묘사하고 핵 개발에 대해서도 그간 북측의 불법 핵실험 전력과 같은 기초적 사실조차 명시되어 있지 않는 등(천재교육) 국가의 중추적 위협요소를 ‘가리워놓는’ 모습이 역력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집필진의 역사관이 노동자와 빈민들을 역사의 주체로 여기는 민중·계급사관에 토대하고 있음이 주된 원인인 것으로 해석된다. 즉 최근 들어 갈수록 ‘대한민국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논리로 국민들을 농락하는 일이 잦은 소위 진보사상이다. 한국식 진보에 실체가 없다는 사실은 위 교과서들이 노동운동가 전태일을 ‘한국사 개척의 아이콘’으로 서술하고 용산참사 사건을 우리 사회 약자들의 초상으로 그려내면서도 정작 ‘베일에 싸여 있기에 더 잔혹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형식적인 언급에 그치는 데서도 살펴볼 수 있다. 결국 우리나라의 최대 화두인 통일 문제에 관해서도 여운형식 좌우합작운동을 예찬하고 햇볕정책의 실패성을 묵과하는 것과 같이 당연히 진부하고 나이브한 접근이나 제시할 수밖에 없다.
이같은 문제점들에 대해 보수진영이 전면적으로 칼을 빼들고 나서자, 주진오 교수를 위시한 해당 교과서 집필진은 이달 초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 협의회’를 구성하며 내용 수정을 막아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중고교 국사교육 개발을 맡은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 이배용 위원장도 9일 한 인터뷰에서 “북한에 치우친 긍정론 등은 당연히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하는 등 이번 논란의 영향은 쉽게 잠식되지 못할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들의 왜곡과 더불어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우리 역사 왜곡’은 현 정부가 보수색을 띠어왔기에 더욱 큰 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무엇보다 진보진영이 논란에 대해 마땅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개선여부가 더욱 눈길을 끈다. 오히려 이번 교과서의 집필진 중 한 명으로 참여한 동국대 한철호 교수는 지적된 내용의 “상당수가 교과서의 전체 흐름을 종합적으로 살피지 않고 일부를 부각시킨 결과”라며 “이는 내년도 대선과 총선을 겨냥한 것”이라고 정치적 논리를 운운하기도 했다.
용남군 기자 LordyJonah@hotmail.com
용남군 기자 LordyJonah@hotmail.com
등록일 : 2011-05-22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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