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한국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90년대 중반 북한에서 수백만이 굶어죽었다는 말, 심지어 무서운 굶주림 속에서 인간의 단순한 욕구인 식욕이 결사적인 것으로, 야생적인 것으로 변해 사람까지 잡아먹는 미증유의 사건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설마”를 중얼거리며 머리를 기웃거린다. 역설적으로 그것은 북한의 식량난이 정상적인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가늠할 수 없을 만치 전대미문의 굶주림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북한에 “굶어죽기가 정승하기보다 힘들다”는 속담이 있다. 그 말에는 굶어죽는 과정이 정말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북한에도 사흘을 굶겨놓으면 도적질을 하지 않는 놈이 없다는 말이 있다. 감옥에 갔다 온 사람들은 감옥에서 고문보다 더 무서운 것이 굶주림이라는 말도 한다. 한마디로 무서운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굶어죽는 과정은 비참한 동시에 참기 어려운 고통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너무 오래 동안 굶주리면 음식에 대한 욕구는 인간을 짐승처럼 만들어 놓기도 한다. 무서운 굶주림 속에 음식에 대한 강열한 욕구가 만들어 놓는 인간의 형태는 다양하다. 무서운 굶주림과 음식에 대한 욕구가 만들어 놓는 인간의 초기행태는 불쌍한 모습이다. 먹지 못해 여위고 초췌한 모양은 불쌍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 불쌍한 모습은 나중에 비참한 모양을 나타낸다. 전에는 정상적이었던 사람이 창피함이나 체면을 버리고 한줌의 옥수수밥을 얻어먹기 위해 동냥이나 구걸에 서슴없이 나서는 모양은 너무 비참하다. 그래도 그 비참한 모양을 가지고 있을 때까지는 그 속에 인간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
 
그 다음 마지막 단계, 즉 굶어죽을 지경의 영양실조에 이르면 인간의 단순한 욕구는 결사적인 것으로, 야생적인 것으로 변한다. 인간의 단순했던 욕구인 식욕은 지나가던 개라도 때려잡아 날고기라도 먹어야 한다는 강렬한, 야생적인 욕망으로 변한다.
 
필자는 북한에서 살 당시 그런 현상들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굶주림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사람이 죽음직전의 영양실조에서 허덕일 때면 대부분 인간의 모습도 잃어버린다. 할머니가 손자의 밥을 훔쳐 먹고, 가족들 사이에서도 먹는 것을 가지고 옥신각신 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정상적인 사람들의 시각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지금 북한에 만연한 강도짓을 비롯한 범죄는 무서운 굶주림 속에서 인간의 이성마저 잃은 말기증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필자가 북한에서 겪은 몇 가지 사실.
 
98년 친척방문으로 황해도 지방에 갔던 필자는 친척이 주는 쌀 한 배낭을 가지고 돌아오던 중, 황당한 일을 당했다. 열차를 갈아타려고 함경남도 고원역에 내렸던 필자는 꽃제비들의 습격을 받았는데.
 
그 애들은 필자가 진 쌀 배낭을 뒤따라오면서 면도칼로 죽 내려 그었다. 순식간에 배낭안의 쌀을 땅바닥에 쏟아졌고, 화가 난 필자는 배낭을 벗어던지고 꽃제비들에게 사정없이 발길질을 해댔다. 그런데 그 애들은 도망을 치거나 매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사정없는 발길질을 고스란히 맞으면서도 결사적으로 땅바닥에 쏟아진 쌀을 호주머니에 담고 있었다.
 
나이가 12~13살 안팎의 그 애들은 사정없는 발길질에 쓰러져 뒹굴면서도 한줌의 쌀이라도 호주머니에 넣으려고 결사적으로 허우적거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애들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다. 또한 시장에서도 그런 꽃제비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그 애들이 음식을 훔쳐 먹을 때 모습을 한국인들은 상상하지도 못한다.
 
그 애들은 음식을 훔쳐 손안에 넣으면 매를 맞으면서도, 도망치면서도 그것을 먹는다. 그 애들에게는 매 맞는 아픔이나 무서움 보다 일단 음식을 입안에 넣는 것이 우선이다. 그것은 무서운 굶주림 속에 죽기직전의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의 음식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강렬하고 결사적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사례이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필자가 북한에서 살 당시 한 트럭 운전기사를 잘 알고 있었는데 그는 성격이 호방하고 평소에 거친 농말을 입에 달고 다녀 주변에서는 나름대로 ‘인기’가 있던 사람이었다. 그도 굶어죽었다. 그가 죽기 한 달 전 어느 날 필자는 주변농촌의 남새 농장에(당시 남새반장은 필자의 친척이었다) 가서 오이를 한 마대 가지고 왔는데 그때 거기에서 꽃제비가 된 그 운전기사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너무 굶주려 뼈만 남은 그 운전기사는 남새밭에 들어가 오이하나를 따서 먹는데 경비원 총각은 그의 뒷덜미를 잡아 끌어내고. 굶주림에 뼈만 남은 그 운전기사는 끌려나오면서도 “하나만 먹자”고 통사정했다. 뼈만 남은 그의 얼굴에 이전의 호방한 모습은 흔적조차 없고 가련하고 처량한 눈빛만이 애절하게 경비원총각을 올려보고 있었다.
 
그 날 필자는 그에게 오이를 열 댓 개 주었는데 그는 앉은 자리에서 오이 열세 개를 먹어치웠다. 그리고는 남은 오이를 보자기에 싸가지고 가면서 필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연신 중얼거렸다. 그 후 한 달 만에 그는 죽었다. 지금도 필자의 머릿속에서 그 운전기사의 가련하고 처량한 눈빛이 잊혀 지지 않는다.
 
굶어죽는다는 것을 음식을 먹지 못해서 죽었다고 단순하게 말하기에는 그 의미가 부족하다. 굶어죽는 것은 굶주림 속에서 인간의 초보적인 욕구인 식욕이 더욱 강렬하고 결사적인 것으로 변하지만 그 욕구를 잔인하게 묵살당하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 속에 서서히 죽어가는 비참한 죽음이다.
 
사람이 굶어죽는 것은 곧 고통이다. 사람이 굶는다고 해서 하루 이틀 사이에 죽는 것이 아니다. 하루에 죽 한 끼를 먹어도 몇 개월은 견딜 수 있다. 그러나 그 몇 개월은 고통의 연속이다. 여위어 갈수록 음식에 대한 욕구는 더욱 커지고 강렬해지지만 그것은 잔인하게 묵살당하고. 나중에는 뼈만 남았던 온몸이 붓고 항문이 저절로 열리는데 그 지경에 이르면 음식이 아니라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몸의 면역기능이나 흡수 능력이 마비되어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한다.
 
필자가 북한에서 살 당시 이웃집에는 어느 날 군대에 나갔던 아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돌아왔는데 군관(장교)들은 출장길에 그를 차에 싣고 와서 집에 두고 갔다. 그때 그는 죽기직전의 영양실조로 항문이 열려져 있었다. 군관(장교)들은 어린애들처럼 오줌똥을 못 가리는 그의 사타구니에 기저귀를 채우고 호송해 왔는데 그의 부모들은 아들을 살려보겠다고 온갖 약을 다 써보았으나 아들은 보름동안 기저귀에 분비물을 흘리며 앓다가 말짱한 정신으로 숨을 거두었다. 굶어죽는 것은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렇게 굶어죽기까지 인간의 정신도 온전하게 남아있지 않다. 비정상적인 것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정신이다. 도적질과 강도질, 심지어 사람을 잡아먹는 현상도 그 무서운 굶주림과 함께 생겨난 현상이다.
 
필자가 북한에 살 당시 근처부락에서는 한 늙은이가 자기의 4살 된 손자를 죽여 가마에 넣고 삶은 전대미문의 사건이 터졌는데 그 역시 무서운 굶주림에 너무 오랫동안 시달려온 늙은이의 정신에 이상이 생긴 후과였다.
 
사람이 너무 오랫동안 굶주리면 환각상태가 생겨나고 그때에는 사람도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 늙은이는 보안서에 잡혀가 구류장에서 이틀 만에 죽었다. 90년대 중반 북한의 각 지방에서는 사람을 잡아먹는 범죄가 발생해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다. 함경북도 무산군에서는 1998년 꽃제비가 된 부자(父子)가 꽃제비 소년 둘을 잡아먹다 들켜 총살되기도 했다. 각도(道)에서 그런 사건은 산발적으로 생겨나던 시기가 바로 90년대 중반이었다.
 
북한에 전대미문의 식인인간이 생겨난 원인은 철저히 김정일 독재정권의 반동적인 통치에 있다. 꼬물만한 양심도 없는 것이 바로 김정일 일당이다. 자신들은 호의호식하면서 인민들의 삶 같은 것에는 꼬물만치도 관심이 없는 것이 김정일이다.
 
그가 조금이라도 양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굶어죽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일인가 하는 것을 한두 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것이었다.
 
최근 다시 북한에서 비참한 인육설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것은 북한의 식량난이 지금 최악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해주는 동시에 김정일은 인류의 청산대상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고 있다.
 
진선락 기자 dsmgur325@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