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모 대학의 대학생들이 필자에게 물었다. “북한은 무상치료라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북에서 온 필자는 거침없이 시원스레 대답했다. “예, 사실입니다. 무상이 맞습니다.”
 
이어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는데 여러분들이 무상, 무료, 세금 없는 곳 북한으로 한번 현장체험을 가는 것이 어떻습니까?”라고 말하자 서로가 도리질을 한다. 무상에 대한 환상이 있어도 좋지 않을 거라는 인식이 더 깊은 듯 했다.
 
하늘과 땅의 남과 북을 간단히 설명하기란 조련치 않지만 고향에서 겪은 무상치료의 사례들로 이해를 돕기로 했다.
 
교통시설이 구비되지 않은 필자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시골진료소는 산과 들을 지나 4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의사 1명과 2명의 간호사가 운영한다. 낮에는 교대로 한명씩 근무하고 다른 한명은 왕진의 명목으로 마을들에 파견되고 또 한명은 약초채취로 산속을 누빈다.
 
진료소에는 소금을 끓여 놓은 소독용 식염수와 옥수수를 태워 만든 테라미찐 대용의 가루(설사약), 도라지를 우려 낸 물(기침약), 등이 아픈 사람들을 기다리는 형편이다. 유엔에서 지급 된 비상용 기초약품이 있다고는 하나 평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있으나마나한 진료소는 오전 9시의 진료시간도 의사 나름, 오후 5시쯤이면 당직마저 왕진을 핑계로 비워두기 일쑤여서 예방주사(백신) 외에는 발길이 뚝 끊겨 거의 비어있는 곳이다. 언제부터 주민들 속에는 상처나 병이 나면 서로 도우며 치료하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 되었다.
 
산기슭 여기저기 널려 있는 50가구 정도의 우리 동네의 아줌마들은 거의 조산원의 경험이 있으며 우리 자녀 셋도 동네 아줌마들의 도움으로 세상에 출생했다. 출산 예정일에 산모는 등잔준비로부터 깨끗한 천과 가위를 소독하고 아기를 받을 포단을 갖추고 이웃들도 산모에게 적은 먹거리로 성의를 표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출산을 기다린다.
 
시집과의 관계가 안 좋은 아랫집 은경이의 아빠는 출산일이 다가오자 해산 방조를 위해 아내의 예정일을 노래처럼 외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산모의 남편인 박 모 씨가 다급한 목소리로 문을 두드렸다. “진경엄마, 우리 집 사람이 당장 몸을 풀 것 같소.” 전날 저녁부터 산모의 곁을 지켰지만 소식이 없자 동네 아줌마들은 새벽을 맞아 뿔뿔이 흩어졌던 것이다.
 
피곤이 쌓였지만 등잔을 켠 뒤 애들은 가까운 집으로, 남편은 고개 너머의 연화네 집으로 “은경이네가 해산을 하니 급히 와 달라”고 연락 보냈다. 15평의 단칸짜리 산모의 집에 곧 돕기로 약속 된 대여섯의 아줌마들이 모여들고 남편 되는 사람은 어스름한 등잔불에 의지해 부엌아궁에 불을 지폈다.
 
동네 여인들에 둘러싸인 산모의 진통횟수가 점차 줄며 마침내 우렁찬 사내아기가 태어나는데 가장 나이 많은 이의 지휘에 따라 아줌마들은 조용하고도 빠르게 각기 맡은 바 가위로 탯줄을 자르고, 아기를 닦고, 산모의 식사에서 뒤처리, 아기시중 등 능숙한 솜씨들이었다.
 
이처럼 우리 동네에서 병원을 이용한 출산은 매우 드물다. 병원이 교통이 어려운 먼 거리에 있는 것도 문제지만 까다로운 입원절차와 뇌물을 바라는 의사들, 주사 한 대 없는 환자 관리, 기껏 수제비 두세 개를 띄운 산모식사, 코를 내놓을 수 없는 차디찬 입원실에서 산모들은 3일을 기한으로 퇴원하게 된다.
 
때문에 병원을 이용하려 집을 떠났다 기차와 숙박이용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태임을 아는 주민들은 집에서 출산을 하게 되며 동네에는 자발적인 집단 조산원들이 생긴 것이다.
 
필자는 대학생들에게 이것이 내가 떠나 온 무상치료의 북한현실이라고 말했다. 몇몇 특권층의 생활상을 편집한 북한의 선전영상물이 사실이라면 평화의 시기에 웬 탈북이며 이 시대에 없는 300만 명의 아사사태는 어떻게 이해 할 거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대학생들은 필자의 사례를 통해 ‘무상치료’의 간판 밑에 발생한 주민들의 자발적 무상치료, 아프리카의 미개한 부족들에나 있을법한 주민들의 집단조산 사실이 바로 한 지맥을 잇고 사는 북한에서 현재 벌어진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에스더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