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 북변을 휘감으며 눈물과 한을 품은 채 묵묵히 흐르는 두만강. 오늘도 너를 넘으려다 숨진 그 누구를 품고 있지나 않는지. 한 많은 영혼들의 사연을 전하는 너를 통해 그들의 사연 들어본다.
 
~전 호에 이음~
 
안경잡이 사내는 불을 피워볼 생각으로 창문에서 거적때기를 걷어 못에 걸었다. 그는 땔감을 잿더미 위에 쌓고 청년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머잖아 청년이 들어왔다. 아무 말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밖은 안전한가 보았다. 불 자리를 보고 청년은 쪼그려 앉았다. 불을 피우는 일은 청년의 몫이었다.
 
“오늘은 좀 이른데...”
말은 그렇게 했으나 청년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그는 낮에도 임의로 가옥을 빠져나가 돌아다니다가 왔다. 딴에는 바깥 동정을 살피러 나갔다가 오는 길이라고 했는데 먹을 것을 구하려 다니는 눈치였다. 돌아올 때는 땔감을 한 아름씩 안고 나타났다.
 
“주변 일 킬로미터 내에는 쥐새끼 한 마리 없어요.”
문으로 들어서며 그는 보고하듯이 말하곤 했다. 낮에 가옥을 들고 나는 일은 매우 위험해서 일행들이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으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마을에는 내려가지도 않소”
의심을 받을 때마다 청년은 그렇게 항변했다. 청년의 외출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준비해야 하는 땔감이었고, 무엇보다도 그가 들고 나는 행위만으로도 외진 곳에 갇힌 고립감을 더는 것 같았다.
 
안경잡이 사내는 그가 묻혀 오는 바깥바람이 그리워질 때가 있었다. 불이 오르자 실내 공기도 그렇지만 마음이 한결 느즈러졌다. 교포 사내가 다시 담배를 한 개비씩 돌렸다.
“선생” 청년이 교포 사내를 건너다보았다.
“그 쪽에서 오늘도 힘들겠다 하면 어떡할 셈이오?”
“어떡하다니?”
“오늘밤에는 무조건 감행합시다. 잡혀봐야 끌려가기밖에 더 하겠어요.”
교포 사내는 입을 다문 채 청년을 물끄러미 건너다보았다.
“죽기도 하오”
“솔직히 난 못 믿겠어요. 무슨 군사훈련이 이렇게 오래 간단 말이오?”
청년이 툴툴거렸다.
 
“미국놈들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린 게지. 날마다 훈련하는 소리를 못 들었소?”
“솔직히 난 잘 모르겠던데. 일상적인 훈련인지 모르겠더라구요.”
“애기 아빠는 어떻게 생각하오?”
교포 사내가 안경잡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사내는 담배를 깊게 들이마셨다.
 
사실 이런 이야기로 그들은 부딪칠만큼 부딪쳐왔다. 가옥에 머문지 나흘 재 되는 날도 그랬다. 밤이 깊었는데도 길잡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사전에 예고도 없었다. 그들은 밤에 강을 넘을 계획이었고, 가장 적당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도강 시기를 판단하는 일은 전적으로 길잡이 몫이었다. 길잡이는 매일 저녁 무렵에 올라와 그날 밤에 감행할지 말지 그 여부를 알려 주기로 되어 있었다.
 
일행은 그날 밤을 새다시피 하며 길잡이를 기다렸다. 이 가옥에 버려지는 게 아닌가 두려웠다. 그들은 제 운명에 대해 스스로 손쓸 일이 하나도 없는 무력한 상황에 절망했다. 청년이 맨 먼저 흔들렸다.
 
“우리를 버린 게 틀림없어.”
그는 방 안의 사람들을 휘둘러 보았다.
“틀림없이 돈만 챙기고 내뺀 거라고.”
온기 없는 잿더미를 뒤적이다가 물러나 있던 교포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싫다면 나 혼자라도 갈랍니다”
청년은 몸을 떨며 벌떡 일으켰다. 그는 점점 격양되어 안절부절못했다.
“오, 맙소사. 애어멈한테 목숨을 맡기다니!”
청년은 자신을 못 견디겠다는 듯 벽에 머리를 박았다.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게.” 교포 사내도 일어섰다.
“여자를 얕보지 말게나. 그럴 사람이 아니야. 무슨 사정이 있겠지.”
“이 상황에 그런 소리가 나오쇼?”
“나는 두 번을 다 그 여자 배로 건넜다네” 동포 사내는 그렇게 말해놓고 안경잡이 사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정말이오. 이보다 더 어려운 상황도 있었소”
그는 동의를 구하듯 사내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동요하는 걸 막으려고 둘러댄 말이었다. 내심 그도 여자가 나타나지 않은 사정이 궁금하고 불안했다.
 
사실 앞서 두 번의 잠행을 도와준 사람은 여자의 시아버지인 사공 영감이었다. 영감은 오랫동안 강변에서 거룻배 한 척을 몰았다. 이번에 들어와 보니 그가 죽고 없었다. 수소문을 해보니 혼자 남은 애어멈을 찾으라고 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여자를 의지할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중국 배를 잡으면 모를까 이 강변에서 거룻배라고는 그 한 척뿐이었다.
 
길잡이는 다음날 저녁에야 나타났다. 하룻밤 새에 눈에 띄게 얼굴이 추췌해져 있었지만 평소처럼 외투로 덮은 아이를 업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무표정하고 말수 적은 여자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오늘도 힘들어요.”
늘 그렇듯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전날 밤에 오지 못한 일에 대한 사과는커녕 해명도 없었다.
“우리도...”
이윽고 안경잡이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는 더듬더듬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도 더 기다리기는 힘듭니다”
그는 아내와 아이 쪽을 바라봤다. 여자는 흐릿한 구석자리에서 어둠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알았소. 이따 여자가 오면 상의해 보리다.”
땔감이 많지 않았으므로 불은 금세 사그라졌다. 한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버린 것 같았다. 남자들은 잿더미에서 온기를 쐬며 자리를 뜨지 않았다. 불 맛을 봐서 그런지 몸이 으슬으슬 더 추웠다. 청년이 몸을 부르르 떨며 일어났다.
 
“함께 가지 않으려오?”
청년이 안경잡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땔감을 구하러 가자는 소리었다. 안경잡이는 잠깐 아내의 눈치를 살핀 후 일어섰다. 그들은 문 밖으로 나섰다. 마당 한편에서 바람을 타고 선 미루나무에서 활시위 소리가 났다. 달빛을 받아 빗자루 같은 나무의 음영이 선명했다. 오후 내 지켜보던 산등성이가 어슴푸레한 윤곽으로 물러나 있었다.
 
“개울가에 가면 가다귀를 구하기가 쉽소. 애장터가 있던데 무섭더라도 그 쪽으로 갑시다”
청년이 앞장서 걸었다.
“돌이 많으니 조심하오.”
그들은 길을 건너 풀숲을 헤치며 빈 밭으로 내려갔다. 겨울을 넘긴 옥수숫대 그루터기가 날카롭게 솟아 있었다. 다시 얼어붙기 시작한 땅거죽을 밟을 때마다 밤새 뒷마루에 내놓은 걸레를 밟는 촉감이 들었다. 그들은 조심하느라 입을 열지 않았다. 청년은 걸음이 빨랐으나 초행인 사내는 자꾸 뒤로 처졌다. 풀숲과 밭이 반복되며 이어졌다. 경사면 아래로 내려갈수록 돌들이 많아졌다.

안경잡이는 돌무더기에 걸려 휘청, 허리를 굽혔다. 손 짚은 자리에서 돌들이 무너졌다. 청년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어제도 마을 사내들이 올라와 애 하나를 묻고 갑디다”
안경잡이는 놀라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청년은 이미 몸을 돌려서 저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자갈 밟는 소리가 제법 크게 울리는 게 거의 다 온 모양이었다.
 
이윽고 청년이 걸음을 멈추었다. 뒤따라 안경잡이도 숨을 몰아쉬며 발걸음을 세웠다. 미루나무 몇 그루가 장승처럼 서 있었다. 개울물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청년이 미루나무 그늘 아래로 허리를 굽혀 나뭇가지를 줍기 시작했다. 안경잡이 사내도 좀 떨어진 나무 밑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는 발끝으로 더듬으며 나뭇가지를 주웠다. 점점 지형이 눈에 익어왔고, 어느 순간 사내는 흠칫해서 손길을 멈추었다. 거뭇한 돌무더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시선을 옮기자 숨어 있었다는 듯 돌무덤들이 하나둘 어둠 속의 꽃처럼 피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 뒤쪽에서 ‘헉!’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땅바닥으로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청년 쪽이었다. 안경잡이는 품에 안은 나뭇가지를 쏟아버리고 소리 나는 쪽으로 뛰어갔다. 청년은 나뭇가지를 품은채 주저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오?”
사내가 물었다. 청년은 길게 숨을 뱉어냈다. 그는 털모자를 벗고 이마에서 땀을 훔쳐냈다. 바짝 깎은 머리카락이 자라서 기름지게 짓눌려 있었다.
 
“사람들이 못 먹을 걸 입에 대고 있소”
사내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졌다.
“무슨 말이오?”
“누군가 무덤을 헤쳤어요. 어제 여기다가 죽은 아이를 묻는 걸 봤단 말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무덤이 파헤쳐졌어요”
 
사내는 한 발을 내딛어 더듬거리며 사내가 말하는 곳을 살펴보았다. 작은 구덩이가 있었고, 천 조각인 듯 흰 물체가 달빛을 받으며 흙더미 위에 흩어져 있었다.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제 손을 등 뒤로 돌려 닦아 내듯이 문질렀다.
 
“그런 구덩이가 여기뿐이 아니오. 어제는 마을 근처에서도 그런 무덤을 봤어요”
청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제 확연해졌다. 사내는 손을 내밀었다. 청년이 손을 잡고 일어섰다.
 
“직접 보지 않은 건 믿지 마시오”
사내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조금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더욱 겁에 질린 목소리처럼 들렸다. 청년은 진저리를 쳤다.
 
“죽은 아이를 이웃끼리 바꿔먹는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 자식. 그만두지 못해!”
갑자기 안경잡이 사내가 청년의 뺨을 후려쳤다. 청년은 나뭇가지를 쏟으며 주춤 물러났다.
 
“보지 않은 건 믿지 말랬잖아. 그런 일은 없어. 산짐승들 짓이야.”
사내가 쏟아 붓듯 소리쳤다. 그래놓고 그는 멍하니 서 있었다.
“이제 그만 돌아가요.”
청년이 머쓱해져서 몸을 돌렸다. 사내는 땅바닥에서 나뭇가지를 주워 품에 안았다.그들이 머무는 가옥에서는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나왔다. 길잡이가 온 모양이었다.
 
마당에 들어서자 사내가 청년의 어깨를 잡아 세웠다.
“들어가서는 그런 말 따위는 하지 마오.”
사내는 청년의 어깨에서 힘없이 손을 거두었다.
“집사람이 젖먹이를 잃은지 얼마 안되오. 석 달 전에 둘째를 잃었소.... 아까는 내 미안했소.”
청년은 아무 대꾸도 없이 몸을 돌려 걸어갔다.
 
“오늘 떠나기로 했소.”
교포 사내가 빠르게 말했다. 손전등을 든 길잡이 여자가 고개를 까닥해 보였다. 그녀는 경계심 많은 여자처럼 일행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서 있었다. 원래 키가 작았는데, 아이를 둘쳐 업고 외투를 덮어서 허리가 꾸부정한 사람처럼 보였다. 아이를 어찌나 꽁꽁 싸맸는지 숨소리조차 새어나오지 않았다. 첫날 아이의 얼굴을 잠깐 봤는데 영양실조가 심한 사내아이었다. 사내는 나뭇가지를 선 자리에 버렸다. 교포 사내가 말했다.
 
“달이 좀 굵은 게 맘에 걸리는데 어차피 새벽 강을 건너야 하니까 크게 문제 될 건 아니고. 산등성이를 두 개나 넘는 길이라 아주머니가 걱정이오.”
교포 사내는 안경잡이를 바라봤다.
“내가 책일질 일이니 걱정 마십시오.”
여자가 일어서려다 말고 끙, 앓는 소리를 내고 도로 가방 위로 주저앉았으므로 일행은 창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여자는 담요 위로 허벅지를 쥐고 있었다. 안경잡이가 제 아내를 흘겨봤다.
 
“틈틈이 좀 움직여 두래도...”
여자는 콧등에 침을 발랐다. 사내는 아내의 품에서 아이를 떼어내어 안았다. 담요가 벗겨지며 여자아이의 얼굴이 잠깐 드러났다. 날씨가 찬 가운데도 아이는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고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칼은 젖어 있었다.
 
“몇 살이에요?”
길잡이 여자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다섯입니다.”
사내는 길잡이 여자의 얼굴에 알 수 없는 표정이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것을 불안하게 바라봤다. 윗입술이 살짝 들린 표정이었는데 놀라움인지 냉소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잠깐 나가서들 기다려 주세요.”
길잡이 여자가 말했다. 안경잡이가 눈치를 채고 교포 사내와 청년을 데리고 나갔다. 영문을 모르고 밀려난 두 사내가 안경잡이를 쳐다봤다.
 
“미안하오. 집사람이 어제부터 그걸 시작했는데 길잡이한테 기저귀를 부탁해 놓았소.”
“아주머니가 고생이겠지만 어쨌든 반가운 소식이구려.”
교포사내가 말했다. 잠시 후 방안에서 들어오라는 기척이 들렸다.
 
~다음호에 이음~ 
 
전성태 지음/ 정리 유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