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북한의 평양에서 태어나 11년제 의무교육을 거쳐 ‘조선체육대학’을 졸업한 탈북자입니다. 저의 어릴 적 꿈은 교원이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14살 때 ‘조선체육대학’에 조기 입학하여 남들의 부러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저의 부모님들은 평범한 노동자였습니다.

부모님들은 제가 대학에 가겠다고 하니 꿈도 꾸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노동당간부들의 자녀들도 쉽게 가지 못하는 체육대학을 지망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의 결심을 막지 못하셨고, 대학으로의 조기 입학을 위한 모든 시험 종목에서 1등을 한 저는 결국 14살의 나이로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입학 통지서를 받던 날 너무 좋아 깡충깡충 뛰면서 동네방네 뛰어다니며 자랑하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처음 대학에 입학하여 학급 편성을 할 때 다른 애들의 부모들이 모두 이름 있는 간부들이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도 납니다. 비록 돈 없고 권세 없는 집안의 자식이지만 실력으로 학급의 최고가 되리라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대학 10년 동안, 남들이 다 자는 깊은 밤에도 운동장을 뛰는 등 오직 훈련에만 전념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지 4년 후에는 드디어 국가대표선수로 경기장에 나가게 되었으며 수많은 메달도 따게 되었습니다.

대학시절 이런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북한의 식량사정이 가장 어렵던 1997년 어느 날, 대학 당국에서 아침 일찍 기상을 시키더니 배낭을 지고 나오라고 했습니다. 영문을 몰라 주섬주섬 방을 나서는 학생들에게 선생님이 “송신(평양시 주변의 농촌 지역)벌판까지 운동 삼아 달려가서 강냉이 뿌리를 캐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배낭을 메고 주변에서 가까운 송신 쪽으로 달리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학교 식당에 가니 강냉이 뿌리를 변성시켜 만든 빵이라는 것을 내주었는데, 차마 목구멍으로 넘어가지가 않았습니다. 평양시에 있는 대학 기숙사 형편이 이 정도니 고향의 부모님들은 무엇을 먹고 살까 걱정스러웠습니다.

생각 끝에 저는 집에 가보기로 작정하고 다음날 새벽에 조기 운동을 핑계로, 달려서 집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순간 문을 여는 아버지의 얼굴은 너무도 수척했고, 수염을 깎지 않아 얼굴은 보기에도 민망했습니다.

방문을 열어보았더니 어머님이 쪼그리고 아랫목에 누워 계셨는데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병색이 짙어 보였습니다. 부엌으로 내려가 가마뚜껑을 열어보았습니다. 가마 속에는 무시래기에 통강냉이 몇 알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펄썩 주저앉아 주먹만한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습니다. 우리 학급 애들의 집을 가보았을 때 보니 일본 음식을 차려놓고 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와사비’ ‘마요네즈’라는 이름을 알았습니다. 잘사는 자와 못사는 자의 차이가 이 정도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힘들었지만 대학 10년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졸업식장에 섰습니다. 제 딴에는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되어 메달도 많이 땄고, 대학을 위해 공로도 세웠으니 당연히 중앙 체육단같이 좋은 곳으로 배치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 차례가 되자 “박명희 미배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노동당 간부들의 자녀들은 10년이란 세월 동안 경기 한 번 참가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고 있었는데 ‘국가체육위원회 서기’로 들어가는 등 좋다는 자리는 모두 골라 들어갔습니다. 북한사회가 정말 썩고 병든 사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돈과 권력이 없이는 인간의 존엄마저도 마구 짓밟히는 사회가 바로 우리 사회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타락한 생활을 했습니다. 정말이지 부모님의 얼굴조차 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제가 대학 다니는 동안 자신들은 굶으면서도 집안의 가산이란 가산은 다 팔아 보내주었는데 말입니다. 말이 집이지 집안에 막대기를 휘둘러도 걸칠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 앞길이 막막하였습니다.

고민하고 고민하던 끝에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살 바에는 시집이라도 가서 부모님을 도와야겠다고 말입니다. 저에게는 대학 때 사귄 남자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는 ‘학케이’(아이스하키)선수였는데 팀의 주장까지 했지만 결국 저처럼 힘이 없고 빽이 없는 관계로 평양에 떨어지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의 고향은 함경북도 온성이었습니다. 평양하고는 끝에서 끝이었습니다. 저의 부모님들은 죽어도 못 보낸다고 반대했고 친척들은 만약에 제가 그곳에 시집가면 족보에서 지워 버리겠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결심은 그 누구도 꺾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가족도, 친척도 없는 외진 곳으로 남자만을 믿고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저의 부모님들은 저의 결혼식도 올려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때 제 운명 앞에 어떤 어려운 시련이 놓여있고 악몽 같은 비극이 숨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시아버님은 돌아가셨지만, 어머님은 식료상점 책임자를 하였으므로 주변 사람들보다 괜찮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님이 연료보장을 받고 집으로 들어오게 되자 다른 사람들처럼 한 끼 식사가 걱정스럽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점점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저는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렵게 되자 어머님은 저에게 장마당에 나가 장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선뜻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집안형편이 어려우니 할수없이 장마당에 나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정말 음식장사로부터 못해본 장사가 없었습니다. 청진에서 ‘꽈배기’만드는 기술을 배워 새벽 3시부터 일어나 꽈배기를 만들었으며 새벽 5시에는 또 ‘얼음 보숭이’(아이스크림)를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곤 했습니다.

이때 북한에서는 전기가 없어 자동차 발전기를 가지고 전기를 일으켜 ‘얼음과자’를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얼음 보숭이’는 우리 마을에서 단 한집에서만 만들었기 때문에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가져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집 살림은 점점 더 어려워져 갔습니다.

저의 남편은 직업 없이 빈둥빈둥 놀기만 하였습니다. 집에 돈이 있고 잘살았을 때는 웃음꽃이 피던 집안이 돈이 없고 가난해지니 싸우는 날이 그치질 않았고 우리 가정도 점점 금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남편이란 사람은 얼마나 생각이 없었던지 집에서 놀면서 집안일이란 하나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입는 것 먹는 것을 사주지 않으면 투정질을 하고 심지어 저와 말도 잘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제가 장마당에 앉아 음식을 팔고 있는데 옆에 앉은 한 여자가 저의 귀에다 대고 어떤 여자를 가리키며 “저 여자가 강 타기 꾼(조-중 국경지역인 두만강을 넘나들며 밀수하는 사람)인데 돈이 많고 정말 잘 산다” 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도 미워하고 저주해야 될 사람에게 부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지 않는가? 그 여자는 장마당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훈시질을 했습니다. 저는 그때 생각했습니다. 남들이 아무리 그런 짓을 해도 나만은 절대로 그런 길을 걷지 않으리라고…….

하지만 환경은 저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옆집에 사는 여자도 강타기를 해서 잘 살았고, 뒷집 역시 그런 일을 하면서 모두 고기국만 먹고 살았습니다. 하루는 제 아들과 함께 뒷집에 놀러 갔습니다. 그 집에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애의 손에 기름에 튀긴 까마치(누룽지)가 들려 있었습니다.

제 아들이 그것을 너무 먹고 싶은지 그 애에게 다가갔는데 여자아이가 저의 애를 확 밀쳐버렸습니다. 저의 아들은 뒤로넘어가 서럽게 울었습니다.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저러겠나 싶어 눈물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2살짜리 아들 하나도 제대로 먹이지 못하고 통강냉이만을 먹일 수밖에 없었던 제가 너무 한심했습니다. 그날 저녁 저는 잠자리에 누워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남들은 그런 짓을 하면서도 저렇게 잘들만 사는데 나는 아무리 아득바득 애써도 돈 벌기는커녕 하루 끼니조차 때우기 어려운 형편이 아닌가? 혼자 아무리 사회주의를 지키고 지조를 지킨다고 해도 알아줄 사람 하나도 없고 도와줄 사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다음 날 저는 결심했습니다.

며칠 동안만 나도 가서 돈을 벌어가지고 와 행복하게 잘 살자고. 나는 시어머님께 평양에 있는 저희 집에 갔다 오겠다고 말하고 통행증을 만들었습니다. 드디어 저는 두만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두만강을 건너 발길이 닿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무 집에나 찾아가 문을 두드리니 무섭게 생긴 사람이 지팡이를 쥐고 나왔습니다.

저의 모습을 훑어보더니 어서 들어오라고 하며 반가워했습니다. 그는 내가 하는 얘기를 다 듣고 나서 혀를 끌끌 차며 동정해주었습니다. 이어 그들은 나에게 밥을 먹으라고 밥상을 차려 주었는데 소고기며 닭고기며 정말 진수성찬이었습니다. 오래간만에 쌀밥을 보니 얼마나 맛이 있던지 앉은 자리에서 두 사발을 먹어 버렸습니다.

다 먹은 후 그는 나에게 수박이며 바나나, 사과를 비롯한 많은 과일을 주었습니다. 먹으면서 제 아들 생각에 목에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북한에서는 결혼식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여기서는 이렇게 흔하다니…. 나는 그 사람에게 며칠만 돈을 벌다 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꼭 도와주겠다고 하며 전화를 꺼내더니 누구에게 하는지 중국말로 열심히 말했습니다. 그는 곧 내일 나를 데리러 사람이 올테니 그 사람을 따라 가면 도와줄 거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어떤 사람이 들어오더니 저에게 신발과 옷을 주면서 입고 떠나자고 하였습니다. 저는 옷을 입고 집주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그 사람과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나를 또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면서 따라가라고 했습니다. 밤새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가면서도 그 사람은 저에게 한마디도 안했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아직도 많이 가야 되는 거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조선말을 전혀 모르는 중국한족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아챈 나는 차에서 내리겠다고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며칠 후 도착한 곳은 중국의 ‘료녕성’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나를 어떤 집에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그 집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나를 이리 보고 저리 보더니 한족말로 뭐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아들이 먼 곳으로 돈을 벌려고 가서 일주일 후에 온다는 말이었습니다.너무 억이 막혀 앉아 눈물만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다음날부터 이들은 내가어딜 가든 따라다녔습니다. ‘이렇게만 있다가 당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이 소굴에서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한 저는 6일째 되는 날 할아버지 혼자 있는 틈을 타서 몰래 빠져나왔습니다. 도망쳐서 달리기를 몇 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계속 달리기만 하였고 모진 고생 끝에 열차에 오르는 데까지 성공하였습니다. 그런데 열차 안에는 다 앉은 사람들뿐이지 서있는 사람은 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저의 몰골도 말이 아니었습니다.

시골사람들이 입는 옷을 입었고 바지도 길이가 맞지 않아 발목으로부터 10cm 떠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나만 쳐다보는 것만 같아 차마 얼굴을 들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중국의 공안사람이 열차 바구니로 들어오면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저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습니다.

공안사람은 저를 이상하게 생각하며 다가오더니 저에게 신분증을 보자고 하였습니다. 제가 어떻게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공안 사람은 자기를 따라오라고하더니 조선족 공안경찰을 붙여주면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그는 나에게 어디에서 온 줄 다 아니까 거짓말하지 말고 솔직히 다 말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숨김없이 북한의 평양에서 온 사람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울면서 북한 사람들도 조선 사람이고 중국의 조선족도 조선사람이고 한국 사람들도 다 같은 한민족, 한 핏줄인데 왜 우리나라 북한 사람들만 개처럼 끌려 다니고 팔려 다녀야 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책상을 ‘쾅’하고 치면서 그게 다 너희 김정일 때문이라고 소리쳤습니다.

결국 중국 도문에 있는 도문 변방대에 잡혀가 4일 만에 북한으로 압송되어 남양교두를 거쳐 북한의 보위부 사람들에게 넘겨졌습니다. 온성보위부로 끌려갔는데, 저는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감방 안도 모자라 복도에 4줄로 줄을 세워 놓은 사람들이 모두 중국에 갔다가 잡혀온 사람들이라는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임산부도 있었고 갓 태어난 아이부터 70세 노인까지 다 있었습니다. 그곳에 20일 동안 있으면서 눈뜨고 보지 못할 광경들을 수없이 많이 목격하였습니다.

70세 된 할아버지가 취침구령을 못 맞춘다고 철창 속으로 발을 내밀라고 하더니 구두 발로 할아버지의 발을 마구 때렸습니다. 할아버지는 숨넘어가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습니다. 다음날 할아버지는 발가락 뼈마디가 다부러져 화장실에도 무릎으로 기어 다녔습니다.

또한 14살 남자애가 감방 안에서 말을 했다고 하며 그에게 혀를 내밀고 엎드려 감방 복도를 모조리 핥게 한 다음 자기 앞에서 그것을 삼키라고 했습니다.정말 인간으로서 눈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20일 후에 저는 노동단련대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소나 말처럼 부려먹었으며 조금만 잘못해도 몽둥이와 구두 발로 마구 때렸습니다.

식사는 엄지 손가락만한 감자 3알과 소금국물만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먹지못하여 뼈만 앙상하게 남았고 젖먹이 아이는 나오지 않는 빈 젖을 빨며 목놓아 울기만 하였습니다.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단련대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날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면목이 없었습니다. 돈을 조금도 벌지 못했고 오히려 ‘도주병’이라는 딱지를 붙여가지고 왔으니 시어머님과 남편 앞에 도저히 얼굴을 들고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 남편이 저를 앉혀놓고 이것저것 캐물었습니다.

중국에 가서 무엇 하였느냐, 누구와 잤느냐하고 물으며 억울한 누명을 씌웠습니다. 그저 저를 이해 못해 주는 남편이 원망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날부터 남편은 저와는 말도 안했습니다. 툭하면 매질을 하였고 심지어는 칼로 위협했습니다. 빨래 방망이로도 때렸습니다.

잘 때는 같이 잤지만 저를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한 달이 지나자 남편은 저에게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이혼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혼하고 싶었지만 아들을 위해 참아왔는데, 남편은 이혼을 하자는 소리가 그렇게 쉽게 나오는 것일까? 저는 남편에게 자식을 생각해서라도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라고 간절히 부탁하였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막무가내였습니다.

부모님 볼 면목도 없었습니다. 남편 하나만을 기둥처럼 믿고 친척도 동무도 하나도 없는 이곳까지 왔건만 그 남편마저 저를 버렸다고 생각하니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나는 장마당으로 가 수면제 30알을 사다가 한숨에 다삼켜버렸습니다. 제가 깨어났을 때는 시어머님과 시누이들이 제 입에 손가락을 넣고 토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어렴풋이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자 남편이라는 사람이 저의 머리카락을 잡아 움켜쥐고 발로 걷어차면서 저를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때리는 이유는 죽으려면 너희 집에 가서 죽을 것이지 왜 남의 집에서 죽어 우리 집안을 더럽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동정은 못해줄 망정 어쩌면 인간이 저렇게도 모질까? 저는 잠자리에 누워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내가 정말 이런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여기서 살아야 할까? 난 팔려갔어도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이 보고 싶어 사선을 헤치고 달려왔건만 결국에는 또다시절망의 길로 내던져진 것입니다. 나 혼자만 잘살겠다고 간 것도 아니고 우리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돈을 벌겠다고 갔던 것이었는데 이렇게 조금도 이해해주지 못하다니….

저는 스스로 내 길을 개척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또 다시 도강의 길을 선택하게되었습니다. 저는 시어머님에게 아들을 1년만 키워달라고, 1년 후에 꼭 찾으러 오겠다는 편지를 쓰고 2살짜리 아들과 생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들도알아챘는지 나의 바짓가랑이를 꼭 붙잡고 “엄마 가지마, 가지마”하며 애타게 울부짖었습니다.

아들이 목 놓아 우는 것을 보니 차마 발길을 뗄 수가 없었고 가슴이 너무나 쓰리고 아팠습니다. ‘위성아 기다려라. 이 엄마가 꼭 성공하여 돈을 많이 벌어가지고 축구공을 사가지고 꼭 너 데리러 갈게. 조금만 기다려, 데리고 갈 수 없는 이 엄마를 부디 용서해다오.’ 두 번째로 북한을 탈출하여 강을 넘을 때는 인신매매 조직의 안내를 받으며 강을 건넜습니다.

팔려가는 곳은 농촌이 아니라 제가 바라던 도시 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강을 건넌 지 4일째 되는 어느 날 저녁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까만 양복에까만 안경을 쓴 남자 4명이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나는 그들이 너무 무서워 구석으로 가서 몸을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집주인과 밖에서 얘기를 했는데 아마도 저를 놓고 흥정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를 인민폐 1만원에 팔았다고 합니다. 주인은 저에게 다 좋은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이 사람들과 같이 가면 잡힐 염려도 없다고 했습니다. 무서웠지만 하는 수 없이 그들이 이끄는대로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들과 기차를 타고, 배를 타고 이틀 동안 달려 산둥성 청도시라는 곳에 도착하였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저에게 도망을 쳤다가는 자기들의 손에 죽을각오를 하라며 엄포를 놓았습니다. 이들은 저와 같은 북한 사람 2명을 더 데리고 왔는데 한명은 16살이었고 한 명은 21살이었습니다. 우리를 데려온 사람들은 모두 인근에 소문난 깡패들이었는데 탈북 여성들을 사다가 노래방이나 술집 같은 데서 돈을 벌게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한국 사람들과 장사를 했는데 우리가 한국 사람들과 마음대로 만나지못하게 단속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저에게 동생들을 관리하라면서 한국 사람들과 대화도 시켰고 밥상도 차려주게 하였으며 장마당에 나가 곡물 사는 것을 도와주도록 시켰습니다. 동생들과 도망을 치려고 나섰다가 그들에게 붙잡혀 몰매를 맞은 적도 있습니다.

그들은 저의 손목에 칼을 들이대며 다음에 도망쳤다가는 이렇게 되는 줄 알라고 하며 저의 동맥을 잘랐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저에게 의자와 선풍기를 집어 던지고 저의 머리카락을 잡아 휘돌리며 담벼락에다 들이꽂으며 개승냥이들같이 덤벼들었습니다.

어느 날 이들은 동생 한 명을 숫처녀라고 인민폐 300원에 팔게 하였습니다. 며칠 후에는 동생 두 명을 사우나에서 일하게 하였습니다. 동생들이 번 돈은 거의 깡패들에게 바쳐야 했으며 조금만 말을 안 들어도 저를 두들겨 패곤 하였습니다. 심지어 자기 부인과 통화를 하면서 말싸움을 하고 그 분풀이로 저를 때리기도 했습니다.

동생들은 아예 사우나에 가둬놓고 나오지도 못하게 하였으며 하루에 거의 10~15명의 남자들을 상대하게 했습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동생들을 저대로 둬서는 안되겠다 생각하고 그들에게 한국사람 두 명을 소개시켜주어 데리고 가게끔 해주었습니다.

동생들은 우리가 가면 언니가 무사하지 못할테니 같이 가자고 하며 울먹거렸습니다. 나는 이들을 억지로 떠밀어 보냈으며 그들의 행복을 빌었습니다. 이날 저녁 저는 깡패들에게 몰매를 맞았습니다. 이런 세월 속에서 거의 2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가게로 한국의 천주교 신자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우연히 그 신자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한국에 대해 정말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만이 내가 살 길이며 나의 인생을다시 시작할 수 있는 행운의 기회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이 소굴에서 도망칠 수가 없었습니다.

기회를 봐서 도망치면 항상 다시 붙잡혀 왔습니다. 그때마다 저에게 안겨지는매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악몽이었습니다. 이런나날 속에 저는 다섯 번째의탈출을 시도했고 성공했습니다. 중국과 베트남, 캄보디아를 거쳐 장장 5천 킬로를 달렸으며 드디어 대한민국의 품에 안겼습니다.

탈북자 박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