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했던 칠성세관은 함경북도 무산군에 위치한 북-중 국경 세관이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자유주의 바람이 북한으로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는 일선의 관문이기도 하다. 무산군은 북한 최대의 철광석광산인 무산광산으로 유명하며, 출신성분이 불량한 사람들의 추방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평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광산촌인데다 토지가 척박하여 광산 이외에는 생업의 기반이라고는 없어 사람이 살 만한 지역은 못되는 곳이다. 북한당국이 이른바 ‘적대계급’ 출신자들을 이곳으로 추방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그런 무산이 80년대 말~90년대 초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살만한 지역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개혁·개방 여파가 국경지역에까지 미치면서 그 덕을 보게 된 것이다. 재중동포 장사꾼들이 무산 장마당에 몰려와 물건을 팔기 시작한 것은 90년 초부터로 기억된다.

이때부터 밀수꾼들, 탈북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평양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인 청진에서 사회생활을 하다가 얼마 뒤 칠성세관으로 직장을 옮겼다. 이런 저런 연고를 통해 알게 된 보위부 관계자의 ‘배경’ 을 동원한 덕분이었다.

세관은 생기는 것이 많은 자리로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먹을알 있는’ 노른자위 직종이다. 북한에서 세관은 국가안전보위부가 관리한다. 세관에 근무하는 사람은 일반 노무자라도 밖에 나가면 보위부의 권세를 등에 업고 행세를 하기도 한다. 내가 칠성세관에 배치된 1997년 말은 북한에서 최악의 식량난으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을 때였다.

이곳에서 나는 경리업무와 행정서무를 맡아 보았다. 당시 수많은 주민들이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탈출했기 때문에 세관의 고유 업무보다 탈북자 처리가 더 중요한 업무처럼 되고 있었다. 세관직원 13명 가운데 8~9명이 보위원이고 나머지는 일반 노무자였다.

나는 탈북자들의 몸 검사나 물건을 가지고 들어오는 중국인들의 소지품 검사 등 온갖 궂은일을 맡아 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고급 외제화장품을 쓰고, 압수되는 남한 TV드라마 테이프를 보는 등 일반 주민들이 상상할 수 없는 ‘호사스런 생활’을 했다. 하지만 탈북 했다가 잡혀오는 여성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은 참으로 싫은 일이었다. 1998년 봄으로 기억한다.

매주 10명 이상의 탈북자들이 칠성세관을 통해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다. 그 가운데 절반가량이 여성들이었다. 이들을 여성인 내가 주로 검사했는데 위에서 시키는 일이라 못되게 굴 수밖에 없을 때가 많았다. 아무리 죄를 지은 사람들이라고는 하지만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고 짐승처럼 다룰 때는 나 자신이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회의와 자괴에 빠질 때가 많았다.

어느 날 한 무리의 탈북자들이 국경 다리를 건너 세관에 잡혀 들어왔다. 그 주에만 두 차례나 탈북자들이 송환됐다. 하도 많은 탈북여성들을 경험하다 보니 대충 얼굴만 봐도 중국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도사가 됐다.

스쳐 지나가는 여성들 가운데 여자인 내가 보기에도 정말 예쁜 한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쌍꺼풀 진 눈이며 오뚝한 코, 키도 늘씬하고 정말 예뻤다. 손목에 빡빡하게 채워진 수갑 때문인지 살갗이 벗겨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그 여자가 당할 봉변들을 생각하자 너무 안쓰러웠다.

평소에 여자들만 보면 못되게 구는 ‘진호’라는 보위지도원이 그녀에게 다가가더니 “얼굴도 반반한 년이 꽤 많이 벌려 주었겠군!” 하며 막말을 쏟아냈다. 중국 변방대(국경수비대) 장교에게서 건네받는 명단을 들고 진호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의 이름은 김은정. 29세, 청진출생, 나와 동갑에 동향이었다.

도망치지 못하게 족쇄 하나에 두 명씩 걸어서 끌고 갔다. 나는 보위부 지프차에 올라 그들을 뒤따랐다. “김은혜, 네가 좀 수고 해야겠다.” 보위원이 나에게 말했다. 몸 검사를 위해 여자들 옷을 벗기는 것도 지겨웠다. 내 앞에서 옷을 벗어야 하는 여자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탈북자 대부분이 국경에서 인공기를 보는 순간 이미 넋이 반쯤은 나간다고 한다. 김은정이 옷을 몽땅 벗고 들어왔다. 규정대로 뒷짐을 지게하고 다리를 벌려선 자세에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게 했다. 탈북한 여자들은 중국에서 목숨을 걸고 마련한 달러를 뺏기지 않기 위해 돈을 삼키거나 항문 속에 숨기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그런 동작을 시키는 것이다.

더 치욕스럽고 추악한 조사방법도 있지만 차마 다 밝힐 수가 없다. 조사를 하는 나도, 조사받는 김은정도 더 이상 사람 같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는 모멸감에 피눈물이 흘렀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검사를 마치고 탈북자들에게서 나온 달러나 소지품을 보위원 진호에게 갖다 바쳤다.

모든 물품은 보위부장을 거쳐 국가에 반납된다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보위원들도 달러에 굶주려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오후 보위원의 감시 아래 여자들을 인솔해 군(郡)병원으로 향했다. 여자들을 상대로 임신 여부, 성병 감염 등을 검사하기 위해서다.

임신한 여자는 상상을 초월한 처벌을 받게 된다. 중국인의 씨를 가졌다하여 더욱 가혹하게 다룬다. 검사 전에 식사가 들어왔다. 탈북자들에게 준 식사는 벌레가 둥둥 떠다니는 소금국에 누룽지 몇 조각이었다. 김은정에게 처음으로 물어봤다. “중국 어디 있었니?” “연길에요.” 김은정은 비 오듯 흐르는 땀을 훔치며 간신히 대꾸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산부인과에 들어가 한 명씩 피검사를 받고 소변검사도 받았다. 도망칠 우려가 있어 한명씩 감시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김은정이 나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나는 “너 왜 이러니?” 하며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거의 애원하듯 “언니 정말 평생 은혜를 잊지 않을 테니 언니 소변을 대신 좀 내주면 안 될까요? 제발….” (나이는 동갑이지만 그녀는 나를 언니라고 불렀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배가 약간 불러 있었다. 같은 여자로서 가슴이 저려왔다. 그리고 그녀를 지켜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뱃속의 아이와 그 아이의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 같았다. 그 날은 그렇게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다른 검사를 거치면서 김은정의 임신사실이 밝혀졌다. 한 무리의 탈북자들이 잡혀와 보위부로 향하던 어느 날 나는 하마터면 기절할 뻔 했다. 정말 어이없는 광경 앞에 넋을 잃고 말았다.

보위부 앞마당에서 은정이가 양손에 15kg정도의 물통을 들고 뛰고 있었다. 강제유산을 시키려는 것이었다. 아기의 생명이 꽤나 질겼는지 30분을 뛰어 그녀가 지쳐 쓰러졌는데도 하혈은 없었다. 임신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지 탈북여성들을 강제로 끌어내 주변에 세워놓고 있었다.

물통을 들고 뛰어도 안되자 이번에는 양손에 귀를 잡고 오리처럼 앉아서 가게 했다. 김은정의 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보위원 진호가 소리쳤다.

“중국 놈의 새끼를 배든, 한국 놈의 새끼를 배든 우리 피가 아니면 모조리 이렇게 될 것이다. 니들이 여기서 나가 중국으로 또 뛰든(탈출하든) 상관없다. 이년들아 몸을 팔아도 제대로 팔아 앙? 더러운 피 받아오지 말고…” 드디어 김은정이 하혈을 하기 시작했다.

생리대도 없이 옷을 찢어 간신히 막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너무 안쓰러워 시장에 나가 중국산 생리대를 사서 건네줬다. 나이도 같고 고향도 같아서인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김은정의 경우엔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만삭이 돼 넘어오는 여자들은 일단 아이를 낳게 한 다음 엄마가 보는 앞에서 아기를 얇은 비닐로 싸 질식사 시킨 후에 버린다. 죽임을 당하는 아이를 보는 어머니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하랴. 짐승도 그렇게는 안 죽일 것이다. 그 누구든 중국에서 임신한 뒤 들어온 산모의 아기는 모두 죽어야 한다.

동서고금에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국가가 인민의 먹을 것을 해결해 주지 않아 먹고 살기 위해 탈북 했으면 가슴 아파 하고 보살펴줘야 하는데 짐승보다도 못한 악행으로 처벌을 주고 있으니 하늘도 무심할 따름이다. 나도 결국 이 치욕스러운 세관생활을 청산하고 탈북의 길에 올랐다.

국경에 있었기 때문에 중국에 거주하는 동포들과 친분관계가 있어 탈북 하기가 남보다 훨씬 수월했다. 잡히면 나도 김은정처럼 그런 치욕을 당할 거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소스라치듯 놀라곤 했다. 운 좋게도 나는 잡히지 않았고 그런 치욕은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적지 않은 탈북여성들이 중국에서 체포돼 북한으로 끌려갈 것이다. 너무나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이상 무고한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넘겨져 이러한 반인륜행위를 당하지 않도록 한국정부와 국제사회가 좀 더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다.

탈북자 최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