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 나는 평양에서 국어교원을 했다. 00중학교 2학년 4반 남자 학급의 문학시간이었다. 그날 수업은 조기천 시인의 '시냇가에서'(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시인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그가 우리나라(북한)의 문학발전에 기여한 공로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런 다음 교원인 내가 시를 낭독했다.

'시냇가에서'는 조기천 시인이 금강산 휴양 길에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계곡의 시냇물 소리가 들리는 듯한, 하얀 손수건을 물에 담그면 금새 파랗게 물들 것 같은 시인의 시를 감정을 담아 낭독했고, 학생들은 숨을 죽이고 듣고 있었다. 낭독이 끝나고 교실에는 순간 적막이 깃들었다.

나도 잠시 숨을 돌리고 섰는데 어디선가 "아멘!"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랐지만 곧 이어 교실에는 키득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기 시작했다. 일부 아이들의 입에서 "예수 집 애" "예수쟁이"라는 말들이 흘러나왔고 나는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다.

나는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는 학교다."는 말로 학생을 타일렀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교장선생의 방으로 불려갔다. "어느 학생이며 어떤 가정인가? 왜 보고하지 않고 묵인했는가?" 추궁에 이어 나는 국어 분과장직에서 해임됐고 교내 교원모임에서는 물론 구역교원총회 보고서에까지 이름이 오르내렸다.

결국에는 '사상교육의 기본인 문학교원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교직을 그만 두기에 이르렀다. "아멘"을 외쳤던 학생 역시 소년단 회의와 각종 모임을 통해 꾸준히 비판을 받았고, 부모들은 부모들대로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을 고백하라고 여기저기 불려 다니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가정비밀'을 밖에 흘리고 다녔다고 아이를 질책했다. 평소에 공부도 잘하고 우스갯소리도 잘하던 문제의 학생은 주눅이 들어 얼굴도 들지 못하고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그 후 학생은 세 번이나 우리 집을 찾아왔었다. 아버지가 사과하라고 보냈다고는 하는데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눈물만 뚝뚝 흘리다 가곤 했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1976년에 '판문점 도끼사건'이 터지고 그것을 빌미로 평양시의 수많은 '문제가정'들이 지방으로 소개(분산)되었는데 그때 그 학생의 가정도 '소개'명목으로 추방되었다는 사실을 들은 바 있다. 이제는 가정도 있고 자식도 있겠지….

살아있고 서로 소식을 전할 수 있다면 내일이라도 손목을 잡고 내가 다니고 있는 시골의 교회로 인도하고 싶다. 어린나이에 가정에서 익힌 기독교 용어를 잘못 발설했다가 너무나 큰 마음의 상처를 입은 나의 옛 제자.

이제 어른이 되었을 옛 제자에게 마음껏 찬송하고 마음껏 기도해도 추방당하지 않고, 욕먹을 일 없는 대한민국의 교회로 오라고 마음으로 초대장을 보낸다.
 
탈북자 서정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