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를 처음 만난 해는 북한이 사상 최대의 아사자를 배출했던 1998년이다. 당시 고등학교를 다니던 나는 평양에서 부모님의 덕택으로 배는 안 곯으며 생활했다. 비교적 여유로운 삶을 즐길 수가 있었다. 그때 김정일의 명령으로 평양시에는 꽃제비(방랑자)들이 들어올 수 없었다.

가끔 지방으로 출장을 다녀오시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끔직한 상황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마다 안도의 숨을 내쉬곤 하던 어린소년이 바로 지금의 나이다. 그때는 사람이 굶어죽을 수도 있다는 것, 집 없이 방랑할 수도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커다란 공포였다.

겨울방학을 맞게 되었다. 집에 있어봤자 학교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하게 될 것이고 또 집은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아 추웠기 때문에 나는 시골에 계시는 고모 댁으로 가기로 했다.

따뜻한 온돌방에 엉덩이를 붙이고 tv를 보는 것이 엄청나게 큰 즐거움이었다. 준비를 마친 나는 열차를 타고 몇 해 만에 고모댁으로 갔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더니 집을 나선 순간부터 나에게는 고생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열차는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로 꽉 메어져 있었다. 사람들이 열차 지붕에까지 올라타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열차 화장실에도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다. 열차 안에서는 눈감으면 코 베어갈 아비규환의 혼잡이 펼쳐지고 있었다.

용변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해결해야 했으며 더러운 냄새와 악취가 열차에 진동하고 있었다. 그러한 ‘고난’을 극복하고 고모 댁에 도착한 나는 안일한 방학기간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고모는 시골에서 부업도 하고 있었고 또 고모부가 군 장교였기 때문에 생활은 꽤 괜찮았다. 고모는 오랜만에 보는 조카라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여기서 나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한 가족의 불행한 비극도 알게 되었다. 고모는 항상 일 나가기 전에 나에게 “누가 와도 문을 열어주지 말라” 라고 당부를 했다. 강도와 도적이 판을 치는 세상이니 어디 맘 놓고 다닐 수가 없다고 하셨다.

어느 날 나는 지겹게 문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었다. 너무도 더럽고 초췌한 한 소년을 마주하게 되었다. 자그마한 손에 들린 봉지에는 음식물 쓰레기가 조금 담겨져 있었다. 그 소년은 당장 쓰러질 듯 했다.

고모의 당부를 어기고 나는 그 소년에게 문을 열어주었고 밥솥에 있던 밥을 모두 가지고 나와 그의 손에 들려주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소년과 나는 매일 만나게 되었다. 그 소년은 나에게 자신의 과거사와 가정사를 말해 주었다.

그의 집은 멀리 자강도의 어느 산골이었다. 식량난이 들이닥치자 군수공장 노동자이셨던 그의 부모님은 고지식한 탓에 도적질 한 번 못해보고 당장 굶어죽을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집안의 물건들은 모두 팔아버려서 남은 것이 없었다. 살던 집마저 네 식구의 도시락 값에 팔게 되었다. 1년 후를 기약하며 뿔뿔이 흩어졌고 그 소년은 어린동생과 함께 고모가 사는 마을 까지 왔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어린 동생은 굶어죽었다. 소년은 이를 악물고 살아오다 약속된 1년 후 고향에 갔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생사를 알 길이 없었다.

나는 소년의 손을 잡고 함께 울었다. 방학이 끝나 나는 다시 집으로 가게 되었고 그 소년과도 이별을 고하게 되었다. 지금 남한에서 생활하면서 밝고 명랑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북한에 있을 때 만난 그 소년의 모습이 떠오른다.

살아만 있다면, 그 소년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어린 나이에 가족과 부모와 희망을 잃어버린 북한 땅의 수많은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
 
탈북자 김명철(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