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북한을 떠나기 전 2년전 인가, 지방에서 살다가 일본 조총련 무슨 부의장하는 외삼촌 덕으로 평양 나가 사는 고향친구를 찾아 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는 “장군님부인이 죽고 만수대예술단 무용배우를 하던 여자를 새로 부인으로 맞았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당시 살기도 바빴거니와 그런 색깔 있는 문제와는 담 쌓고 살았던 자신으로서는 그냥 그렇게 흘려들었습니다. 그런 고영희에 대한 기록영화를 북한도 아닌 여기 남한에서 구경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85분가량의 그 기록영화를 주민들에게 방영하려다가 공개를 일단 뒤로 미루었다고 하는데, 이유가 어찌되었든 비밀스러운 그 영화필름을 누군가 빼내서 지난 7월1일 한국방송공사 KBS에 공개하였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남한에서 그동안 고영희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많은 남한시청자들이 그 기록 영화를 지켜봤습니다. 당연히 김정일과 세 번째 부인인 고영희가 함께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면 김정은의 우상화를 위해 제작된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김정은의 어머니인 고영희에 대한 이름이나 출신지인 일본 오사카에 관한 설명은 담고 있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는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고영희의 출신성분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소위 김 씨 부자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 정해진 성분제도는 3대 계층에 30개가 넘는 부류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고영희는 북한당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 재일 교포출신으로 성분이 감시대상부류에 속합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제목조차 어설 푼 ‘위대한 선군 조선의 어머니’라는 기록영화에서도 고영희의 이름과 출신지조차 언급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록영화에 대한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3대 세습으로 권력물림을 한 나라로서 김정은이 정권을 잡자마자 바로 또 그의 어머니를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 그들은 지금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고영희가 재포 출신이고 만수대예술단에서 조국의 진달래와 같은 장고춤이나 추던 여자였다는 사실, 더욱이 고영희는 2004년도 이미 세상을 떠나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 강반석이 어쩌고 김정숙이 어쩌고 하던 그런 야밤 같은 세월이라면 몰라도 세상일이 초와 분을 쪼개가며 공개되는, 그래서 오직 진실과 사실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글로벌시대에서 그런 퍼포먼스로는 절대로 건강한 권력을 구축할 수가 없습니다.

북한정권이 고영희를 김정일의 혁명적 동반자인양 최측근 역할을 했으며 김정일의 어머니 김정숙처럼 고영희도 고난의 행군기간과 그 후에도 계속 지도자를 곁에서 보좌한 인물이다고 떠들면 떠들수록 ”조작과 날조의 왕국“이란 이미지만 더욱 부각 될 뿐입니다.

그런 속에 생모라는 감투를 씌워 제작되고 북한간부 소수에게만 배포됐던 이 영상물이 어떻게 외부로 유출되었는지, 보안관련 책임자는 물론 영화를 제작∙보급한 당 선전선동부도 문책을 피하기는 힘들 거란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