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공연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오는 10일부터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선전 집단체조 ‘아리랑공연’에 대한 한 고위급 출신 탈북자의 주장이다.
 
김일성의 90회 생일을 기념해 2002년 4월 29일 첫 공연을 시작으로 2005, 2007, 2008년 개최된 아리랑공연은 연인원 10만 명이 동원되어 음악과 무용, 매스게임, 카드섹션 등의 내용을 선보이고 있다.
 
어린 아동(兒童)과 청소년들까지 동원되는 가운데 경기장을 가득 메운 10만 명의 인원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광경은 미국과 유럽, 남한 등지에서 오는 일반 관광객들을 감탄시키고 있다.
 
아리랑공연의 이름은 본래 ‘태양의 노래’로 명명될 예정이었으나 김정일이 직접 ‘아리랑’으로 붙였다. 20세기와 21세기를 아우르는 민족의 100년사(史)를 담았다는 의미이나, 실상 내용은 온통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투쟁 역사이다.
 
북한정권은 이러한 대(大)집단체조를 통해 체제를 대내외에 선전하는 한편 막대한 양의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작년까지 6만여 명의 관광객을 유치해 벌어들은 돈은 약 1천만 달러(한화 약 120억)에 달한다. 남한 관광객들이 공연 관람을 위해 1박2일 동안 소비한 돈은 한화로 평균 100만원이다. ‘돈 맛’을 들인 정권은 지난 4월 관람료를 두 배 가까이 인상했다.
 
하지만 많은 탈북자들은 화려함의 이면에 독재자의 탐욕과 철저한 인권의 말살이 존재하고 있다고 증언한다. 때문에 아리랑공연은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 학대극(虐待劇)’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으며, 국제사회는 연일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를 비판하고 있다.
 
김책공대 출신으로 2002년 첫 아리랑공연 훈련 과정에 일부 참가했고 68~69년 아리랑공연의 모체(母體)가 된 집단체조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 탈북자 김OO(男. 가명)씨는 “아리랑 공연은 당장 중지되어야한다”고 단언했다.
 
6일 본(本)센터를 방문해 인터뷰를 가진 김 씨는 아리랑공연을 인권유린의 결정체이자 정권의 ‘외화벌이’ 및 체제유지 선전을 위한 수단으로 규정했다.
 
[구타와 욕설이 쏟아지는 혹독한 훈련 속에 사망자 속출]
 
김 씨는 공연을 위한 훈련 과정에서 잦은 폭력이 난무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사망자까지 속출한다고 증언했다.
 
김 씨에 의하면 북한정권은 ‘공연을 통해 일심단결 된 우리 인민의 의지와 강성대국의 위용을 만방에 떨치자’는 구호 아래 10만 명에 달하는 주민들을 1년간의 혹독한 훈련으로 내몰고 있다.
 
그는 “공연이 끝나면 10월부터 약 두 달을 제외하고는 거의 1년을 훈련 받는다”며 “추운 겨울에는 단위별로 하다가 4월쯤 되면 경기장과 그 주변 도로를 비롯한 능라도 전체가 훈련장으로 변한다”고 밝혔다.
 
평양시 중심구역에 있는 모든 중학교 학생들과 시(市)외 주변, 심지어 지방 학생들까지 기숙을 시키며 동원한다는 것이 김 씨의 설명이다. 이들은 집중 훈련기간 내내 아침 7시경에 인민군 소속 인민무력부 차량 등을 탑승해 훈련장으로 이동, 밤 10시까지 쉴 틈 없이 훈련을 받는다.
 
훈련 과정은 혹독함 그 자체이다.
 
김 씨는 “(공연에서의) 한 동작, 한 동작을 익히기 위한 훈련의 강도가 너무 심하고 한 사람이라도 동작을 익히지 못하면 그가 속한 단위(팀) 전체가 휴식 없이 훈련을 받아야하므로 온갖 욕설과 구타가 난무 한다”고 밝혔다.
 
또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처럼 움직이는 가운데 날아가거나 밑에서 (사람을) 받는 등의 위험한 동작들이 너무도 많아 사고사(事故死)가 빈번하다”며 “어떤 학생은 암에 걸렸는데도 충성심을 발휘한다고 참가했다가 결국 사망하기도 했다”고 사례까지 언급했다.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도 사라진다. 쉴 틈을 주지 않으니 남녀노소(男女老少)할 것 없이 용변은 그 자리에서 해결해야한다. 여성들은 간이 칸막이를 만들고, 남성들은 비닐 주머니를 사용한다.
 
훈련 참가에 소비되는 비용 또한 참가자들의 부담으로 떠넘겨진다.
 
식사와 훈련복은 참가자들의 친지가 직접 공수하며, 집중 훈련기간에야 그나마 빵 한 조각, 사탕 몇 알, 과자 몇 개가 지급될 뿐이다. 아동과 청소년 참가자 같은 경우에는 부모들이 한 달에 1~2번 순번제로 이른바 ‘국 당번’을 한다. 고된 훈련에 따른 임금 지급은 물론 없다.
 
[주민들의 가난 악용해 온갖 ‘선물’로 참가 회유]
 
평양 출신의 또 다른 탈북자 임OO(女. 가명)씨의 증언에서는 한 층 참담한 실상이 드러난다.
 
임 씨에 따르면 훈련장에서는 6세에 불과한 유아(幼兒)들까지 매질이 가해지며, 영양실조로 쓰러지고 억지로 다리를 벌리는(찢는) 연습을 하다가 여러 명이 무리하게 내리누른 탓에 다리가 탈골되는 현상, 화장실을 가지 못해 비뇨기 장애에 걸리고, 맹장이 터진 상황에서 수술을 받지 못해 숨지는 학생 등이 속출한다.
 
하지만 김 씨에 의하면 정권은 이 같은 아비규환(阿鼻叫喚) 속에서도 주민들의 어려운 경제사정을 악용해 공연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당연히 조직적으로 참가하므로 자의(自意)나 타의(他意)란 말이 존재할 수는 없지만, 임금 대신 과거 지급했던 담요, 고급 당과류(糖菓類)과 같은 공연 참가의 대가는 300만 명이 아사(餓死)한 ‘고난의 행군’으로 여론이 악화된 이후 아리랑공연 첫 회(2002년) 당시 컬러TV와 고급 재봉기 등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러나 컬러TV 등이 모두에게 항상 지급되었던 것은 아니다.
 
공연을 관람한 김정일의 평가 한 마디에 따라 대가의 종류는 천차만별로 나뉘며, 컬러TV 등의 고급 제품은 공연을 지도한 간부 또는 주요 배역을 맡은 청소년들에게만 지급되었으며, 일반 참가자들은 훈장 또는 표창장과 간단한 선물만 준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이마저도 귀중한 주민들은 선물은 받은 이후 ‘혹시나 또 받을 수 있을까’하는 심리에 이끌려 또 다시 공연에 지원하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되었듯 당 간부층은 주민들의 고통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김 씨는 “2001년 또 다른 대(大)집단체조 공연 당시 간부 자녀들은 단 한명도 참가하지 않았다”며 “때문에 총화가 벌어져 엄중한 문제로서 질책이 쏟아지자 2002년 당시에 많은 간부 자녀들을 참가시킨다고 했지만 역시 빠질 사람은 다 빠졌다”고 밝혔다. 이런 현상은 고위층으로 갈수록 더 만연해진다.
 
[“관람객들은 공연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주민들의 고통(苦痛)을 생각해야”]
 
김 씨는 아리랑공연이 북한의 통일전략과도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첫 회부터 작년까지 6만여 명의 해외 관람객들이 관람해 북한정권은 1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며 “관람객들 중 대다수가 남조선(남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통일전략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최근 불거지고 있는 북한의 3대 혈통세습과 관련한 내용이 올해 아리랑공연에 나올 가능성도 제시했다.
 
그는 “(김정운과 관련 내용이) 당연히 들어가지 않겠는가”라며 “김정운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구도를 찬양하는 150일 전투의 승리라는 내용이 들어갈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정권의 의도와는 다르게 공연은 점차 쇠퇴의 길을 걸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올해 규모는 수지타산을 고려해 10만 명보다 더 많지도 적지도 않을 것”이라면서도 “관광객들이 호기심에 이끌려 공연을 찾던 시기는 이제는 지났으므로 특히 유엔의 대북제재가 강화되는 현실에서 (올해 관람객들은) 북한정권의 요구 수준보다 훨씬 적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김 씨는 인권유린으로 점철된 아리랑공연이 조속히 중단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관람객들은 공연의 화려함에 경탄을 금치 못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 그는 “인민대중의 환영을 받지 못하고 국제적으로도 아동 인권유린 행위로 규탄 받고 있는 이런 공연은 중지되어야한다”고 단언했다.
 
김 씨는 또 아리랑공연 관람을 위해 평양을 찾는 해외 관광객들이 공연의 실체를 깨닫고 자제해 줄 것을 호소했다.
 
그는 “어린이들까지 수령독재 우상화와 외화벌이에 동원하는 아리랑공연을 관람하는 것만으로도 북한의 독재체제 연장에 도움을 주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당부했다.
 
이금희 기자 couk63@hanmail.net
오주한 기자 ohjuha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