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정치경제문화의 모든 중심에 조선노동당이라는 거물을 앉혀놓고 사회를 장악 통제하였다. 원래 노동당의 밑뿌리를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허무하기 짝이 없다.

김일성은 1945년10월10일, 평양에서 공산당을 창건하였다. 허나 북한공산당은 조선독립동맹을 중심으로 지식층과 소시민층을 망라하는 조선신민당에게 밀리고 있었다. 그래서 김일성은 소련군의 힘을 바탕으로 공산당수의 배를 능가하는 8만의 신민당원들을 묶어세우려고 1946년8월29일, 신민당과 합당하고 그 이름을 노동당으로 발족하는 정치 쇼를 벌렸다. 그리고는 노동당의 모체가 공산당이라고 억지를 쓰면서 김두봉과 허가이를 제거하였다.
그에 공조하여 김일성의 허장성세를 부르짖으려고 김정일은 오늘 날에 와서 공산당창건일을 노동당창건일로 둔갑시켰다.

노동당 마크의 지식인들 중에는 자산계급출신들이 많았다. 하지만, 일제 치하에서 대학을 다녔다고 친일파, 중국에서 공부한 사람은 친중 파라고 부르며 감시했고 러시아나 다른 동유럽 국가에서 지들이 유학생활을 시키고도 머리사상상태가 덜 됐다며 감시했다. 그리고도 성차지 않아 나중에는 수많은 사람들을 긴 목보다 짧고도 짧은 혀 땜에 체포해가는 인류역사에 있어 새로운 인권유린의 장을 만들려 했다.

김일성은 자기를 축으로 정권을 다져놓자 북한 전역에 걸쳐 독재의 쇠사슬을 더욱 조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주민들을 3가지 부류로 분리해 놓는 것이었다.

자기를 위하여 충성할 수 있는 간부들을 축으로는 핵심계층으로 분류했고 일반 주민들은 중간계층으로 또, 조금이라도 자기의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은 적대계층으로 만들어 버렸다.

일단 김일성은 자기를 지지하는 무식한 인간들을 최고 대학이라는 김일성종합대학에 보내어 과학보다도 노동자, 농민을 다스리는 방법만 배워주었다. 노동당 마크에 허수아비와 같이 비치된 지식인들은 그래서 늘 발톱까지 무장한 폭군들의 발바닥 밑에서 자기의 양심을 팔아야 했다.

나의 아버지는 지식인이었다. 그러니 결국 나도 지식인 출신의 중간계층에서 군대로 나갔던 것이다.

태어나서부터 천대와 멸시 속에서 허덕이며 인간다운 삶을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나로서는 어떻게 하나 간부라고 부르는 핵심계층으로 되려 했다. 간부가 되려면 일단 조선노동당원이 되는 것은 초미의 문제였다.

간부의 기준도 당원이 되고 국가에서 운영하는 중앙대학을 졸업하고 군사복무 3년 이상의 경력만 있으면 충분한 능력을 갖춘 첫 번째 대상으로 되었다. 헌데 선정기준에서 이상한 것은 공부를 잘하고 머리가 아무리 비상하고 뛰어나도 세 가지 중 한 가지라도 갖추지 못하면 절대로 간부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간부에는 당 일군과 법 및 경제일군, 그리고 군대에서는 상좌이상의 고급군관과 장령이 있었다. 간부선발은 철저히 성분을 첫 자리에 놓았다.

계급투쟁을 통하여 사회주의를 지킨다는 이론처럼 북한의 간부들은 철저하게 지난날 피착취계급이었던 머슴과 빈농들로 주축이 되었다. 그들을 가지고 국가건설과 성장을 모색하였기에 김일성은 착취계급을 자기의 적으로 간주하고 탄압과 멸시만 안겨주었고 그 후손들에게도 뼈아픈 상처들을 남겨주었다.

프로독재기관인 보위부(국정원)나 안전, 검찰, 재판 기관들은 당의 방침과 결정지시에 따라 간부들을 보호하고 능력이 없고 성분이 좋지 않은 대상들에 대해서는 폭력으로 누르고 위협해 나섰다.

아버지가 러시아출신으로 성분이 비교적 좋지 않았던 나는 이런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사춘기에 벌써 간부가 되어 부모님께 효자가 되려고만 생각하며 어리석게 행동하였다.

21세기를 치고 올라가며 사회가 점점 고도로 세부화되게 발전한다더니 경제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고 무식한 자들이 인민들의 머리위에 올라앉아 호통을 치고 있어 아첨과 뇌물의 발전은 가속화되었다. 또, 그 흐름은 응당하고 보편적인 현상으로 되어버렸다. 하여 나와 같은 무지렁이들이 간부가 되는 길은 자동으로 선발된 성분만 좋은 간부들에게 뇌물을 주어 아첨이라도 피워봐야만 했다.

사실 나는 어려서 공부를 비교적 잘하였다. 하지만 주어진 가족환경과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성분의 무게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그것으로는 전혀 간부가 되는 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일단 당원부터 되고 그 다음 대학으로 가는 목표를 세웠다.

나는 군사전문학교에 가려고 했다. 간부선발기지인 군사전문학교에 대한 깊이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한 나는 공부만 잘하고 학교 조직생활에서 모범이면 당연히 가는 줄로 알았었다. 하지만 뇌물을 적게 주는 덕분에 나보다 훨씬 공부와 학교생활도 건전치 못하였던 간부 집 다른 동료에게 밀려나는 수모를 당했다. 그래서 군대를 선택하고 말았다.

혜산이 고향이고 도에 있는 어느 한 고등물리전문학교로 가려던 나였다. 그때 그 고등물리전문학교는 외형상 명칭이고 실제 그곳은 군대의 간부들을 배출하기 위한 간부양성기지였다. 일명 군사학교라고 부르기도 한 그 곳은 졸업만 하면 군대생활 2~3년 안에 군관학교로 가서 공부한다. 그 군사학교는 보병군관 양성을 목표로 하였다.

군관이 되면 노동당원은 저절로 되는 것이다. 당원이 되려는 목적으로 사실 그 학교를 희망하였다. 하지만 하찮은 교육기관으로 보고 덤벼들었던 나의 짧은 생각은 너무나도 허무한 것이었다.

군사학교로 가는 것이 좌절되던 날, 나는 저절로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고 며칠 밤, 법없이 평생을 살아 온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원한만 되풀이했다. 왜서 남들처럼 김일성이와 같이 백두산에서 일본군과 싸우거나 국내에서 버선이라도 지어 백두산에 보내지 않았는 가고 열심히 되뇌었다. 또, 멀쩡한 허우대를 가지고 날마다 학급을 김일성의 요구대로 만들어 보려고 헌신분투하며 땀만 흘리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생각되어 울분을 금할 수 없었다.
그저 운명이려니 생각했다. 부모를 잘못만난 팔자 탓이라고만 생각했다.

결국 모든 것을 정리한 채, 나를 밀어내고 학교로 들어간 동료생과 같은 허접한 간부자식들을 어떻게 하나 보란 듯이 누르고 성공하려는 야심만 안고 군으로 입대해 버렸다. 하지만 고생의 보따리가 나의 뒷 꽁무니를 따라다니라고는 어떻게 알았으랴?

군대로 가는 첫 걸음은 그야말로 가는 곳마다 천대와 멸시뿐이었다.
1987년 9월 22일 군에 입대하여 북한군 제 4군단 28보병사단 133연대 3대대로 향했다. 헌데 혜산 도 초모 소에서 150여명이 황해도 해주시의 4군단으로 도착하여서는 군단에서 절반인원이 떨어지고 사단에서 다시 절반이 떨어지더니 결국 연대의 신병대대에는 30여명만 남았다.

가는 곳마다 떨어지는 인원들의 궁금 중을 물어보면 모두가 나보다 성분이 좋은 간부집 자식들이었다. 유독 나와 같은 처지의 자식들만 북한군 하부말단단위의 중대로 내려왔다. 거기에 유감스럽게도 전국에서 모여 온 나를 포함한 350여명의 신병들 모두가 서민의 자식들이었다.

조금이라도 성분이 좋은 자식들은 군단, 사단과 같이 생활만 좋은 부대들에 배치되었다. 그때까지도 좋게만 생각했다. 나는 그저 보아왔던 모든 상황이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다.
"군관(장교)들은 인민군 제일 하부 말단 단위인 보병이나 포병중대에서 생활하는 것이 좋고 하 전사(사병)들은 급수가 높은 사단이나 군단, 연대 지휘부에서 군사복무를 하는 것이 좋다. 머슴을 하여도 큰 집 머슴만 해야 한다는 속담도 있듯이 높은 곳에 있을수록 보는 것도 많고 기회도 많은 법이다."

이 말은 군에 입대하여 처음으로 내가 부소장이었던 이 광호에게서 들은 소리였다.

사단은 일단 우리들을 주민들과 격리시키고 골짜기에 걷어 넣고 1년 열 두달을 숨 돌릴 틈도 없이 달구어댔다. 그러면서도 나 같은 출신성분의 사병들을 교육 교양하는 정치선동의 도수는 조금도 낮추려 하지 않았다. 정말 듣기 싫을 정도로 매일이다 싶었다.

당원이 되고 영웅이 되어 부모님께 효성 하라는 북한 노동당의 요구는 신병교육기간에 배운 "어머니의 당부"라는 시를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너를 낳아 처음 젖 먹여 주던
그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아들아, 너 이제 멀리도 떠나갔구나.
어미 둥지에서 나래 편 수리 개가
폭풍을 맞받아 나아 갈듯이
몸성히 잘 있느냐 내 아들아
..........
문득 너에게서 편지가 날아 오면은
이 어머니의 가슴은 두근거린다.
부닥치는 곤란 앞에 주저앉지나 않았는지
나라에 제 구실을 다 하고 있는지
그래서인지 이 어머니의 머리는
한 오리 두오니 희여 져 가고 있는 것이리

당부하나니 명심하거라
내 아들아
나는 너를 낳아 키워 조국에 바쳤고
너는 이미 한 어머니 아들만이 아닌
조국의 아들
명령받은 당의 전사

험한 가시밭 헤쳐가다 조국이 명령할 때
아들아 너 그 길에서 주저한다면
이 어머니는 가시나무 찢어
너의 잔등에 매를 안기리.

차디찬 얼음 구멍에 뛰어들어야 할 그 순간에
아들아 네가 그 첫번째 용사가 되지 못하고
두 번째 세 번째 자리로 양보한다면
이 어머니는 못난 자식을 낳아
키운 것으로 하여 분해서 울 것이다.

한생의 수치가 무엇이고
삶의 참된 영예가 무엇인가를
불길을 맞받아 가는 전투의 우회 속에서
너 스스로 찾기 전에는 집에
돌아오지 말아다오
고향은 너를 반겨주지 않으리.

이수복영웅의 어머니처럼 너
우리 수령님(김일성) 기억하고 우리 당이 기억하는
그런 영웅의 어머니로 내가 된다면
너를 두고 늘 근심으로 희어졌던
이 머리가 한 순간에 감해지리.

아 당원의 영예안고
가슴에 훈장 번쩍이는 아들을
그려본다면
나는 이 세상에 대고 외치리라
내가 이아들의 어머니이라고.

얼마나 들먹이는지 나는 그렇게 힘든 훈련 속에서도 이 시를 외우고 말았다.

사실 제대군인인 첫째형님은 군대에 나가는 나에게 "보병부대보다 포부 대에 가면 쉽게 군사복무를 할 수 있다. 그러니 작은 포부대로 가지 말고 차로 끌고 다니는 큰 포부 대에 가도록 노력하여라."라는 말을 하였다. 형님의 말대로 보병부대는 힘들었다.

기상으로부터 시작해 하루 종일 땀으로 무거운 무기 기재를 지고 강행군과 사격훈련을 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 년 열두 달, 그리고 10여년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더욱 그랬다. 30킬로그램이 나가는 무기와 기재를 쥐고 4킬로미터를 25분 동안 뛰어가는 강행군은 보병부대의 보편적 훈련이었다.

심장박동수를 높여주고 순간의 힘을 키워준다는 캄파주사를 맞으며 해도 한번 뛰고 나면 실신하는 대원들이 날마다 속출하군 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당원은 고사하고 병신이 되던지 아님 반편이 될 것 같은 느낌이 왔다.
보병신병부대에서 1년간의 고된 훈련으로 하여 허약까지 걸리자 꿈에 대한 희망은 점점 더 희미해갔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나 구분 대 배치에서는 형님의 말대로 포 부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단은 김 부자의 방침에 따라 보병 신입병사교육 단을 꾸리고 1년간의 훈련으로 부족한 부대의 전투력을 높이려고 하였으나 모든 것이 역부족인 북한에서 힘없는 서민의 자식들인 나 같은 병사들만이 고생을 사서했다.

원래 특수부대를 제외한 일반 병종은 2~3달만 진행하던 신병훈련이었다. 그런데 규정과 교범의 요구대로 1년간 진행한다는 것은 돌멩이도 씹어 삼키면 소화시키는 십대의 열혈청춘들에게 있어 제대로 된 영양보충이 필수였다.
식량과 모든 군수 물자가 원만히 보장되지 않는 속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생활환경마저 이렇다 할 정도로 방치된 신병교육훈련의 하루하루는 정말 고향에서 멋모르고 꿈꾸던 희망의 나래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사라져 버릴 정도였다.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후회는 막심했다. 그렇다고 군복무를 때려치우면 반동으로 몰렸다.
며칠 전엔 견디지 못한 8중대의 김호국이가 17세의 나이에 방아쇠를 당기는 오른 손 두 번째 손가락을 잘라내어 군 복무기피 죄의 감투를 뒤집어쓰고 감옥으로 연행되는 사건이 터졌던 것이다. 공개심판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 소식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왠지 모르게 한쪽으론 무서움이 스스로 겹쳐왔다. 죽으면 죽었지 부모 형제들에게는 절대로 원을 끼치는 배은망덕 같은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참자, 참자 세 번으로 참고 견뎠다.


결국 악으로만 뻗치던 교육도 결심품은 인간의 힘 앞에 굴복하고 말았다. 하루가 3개월 맞잡이처럼 여겨지던 독사의 독니 같은 고통의 나날이 뚫린 내 가슴을 독하게 정말 지독하게도 물어뜯고 달아나는 백로를 앞둔 초 가을로 접어들자 그렇게 힘이 들던 신병교육은 끝나고 말았다.

서로가 부둥켜안고 모처럼 쏟아져 나오는 안도감으로 하여 우리는 그저 흐르는 세월의 흐름에 감사했다. 입만 벌릴 채, 어쩌다 마음편히 기쁨마음으로 바라보는 가을의 하늘은 한없이 높고 푸르렀다. 구름한 점 없는 저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볕의 청결함에 눈이 시릴 정도였다.

지구촌 모든 이들에게 골고루 비쳐줌이 당연한 자연의 이치였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은 흡사 주인의 채찍밑에서 눈치를 보며 모질게 고생하던 풀어 놓은 송아지들을 연상케 했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몰골의 군인들은 모두가 맥없이 훈련장 마당에 쓰러지다시피 누워있었다. 하지만 그렇게도 좋아하던 우리들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앞으로 어떤 운명에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바보들처럼 다음 날, 구분 대 배치를 받아야만 했던 것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