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온 천지가 눈이 무릎까지 덮인 데다 하늘에서는 눈까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새벽시간을 이용하여 압록강으로 향하였다.
체감온도는 영하 40도에 오르내리며 육체를 괴롭히고 나섰다. 바람 한 점 없는데다 다져진 눈으로 하여 뽀드득, 뽀드득 하는 소리가 움직이는 내 주위를 맴돌며 가득이나 예민한 신경에 부채질만 하였다. 떠날 때부터 말 못할 긴장감으로 하여 나의 가슴속 저 깊은 곳에서는 쿵쿵쿵 · · · 북소리가 새벽녘 들녘에 피어나는 물안개처럼 말없이 그리고 조용히 밀려왔다.

혹시 몰래 넘어가는 국경을 다른 사람이 보아서는 안 되고 특히 국경경비대 녀석들에게 눈 밟는 소리로 하여 발견되면 정말 큰일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은 요지부동으로 되어갔다. 보태지 않고 온 몸의 세포하나하나가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어 숨소리마저 조용히 해야만 했다. 그래도 멈출 수 없는 걸음이었다.

나는 다그치는 걸음을 앞세워 압록강이 자리 잡은 깊고 험한 계곡으로 도착해서는 더욱더 촉각세우기에 몰두하였다. 특히 눈을 밟는 소리부터 없애야 했다. 그래서 나는 눈 속에 발만 박은 채 그대로 밀고나가며 험준한 계곡을 향해 줄달음치다시피 내려갔다. 그런데 보이지도 않는데다 계곡은 얼마나 경사가 급한지 내려가는 스피드에 나의 몸이 중심을 잃어 그대로 미끄러지면서 엉덩방아만 수 십 번이나 찍었다. 그러면서도 천여미터의 급경사를 한 번도 쉬지 않고 넘어졌다가는 다시 기고 굴며 한 걸음, 한 걸음 접근해나갔다.　
아무리 혹한이 기승을 부려도 고도의 긴장으로 무장한 인간을 이기지는 못했다. 오히려 숨 가쁨과 땀은 추위를 무시하며 더위만 발생시켰다.
어느 덧 끝날 것 같지 않던 주목나무나 봇 나무와 같은 큰 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급경사가 자기의 모습을 절반나마 상실하며 조금씩 완화되더니 싸리나무와 가시덤불, 억새풀 구역으로 바뀌어버렸다.

나의 옷 전체는 이미 쏟아지는 눈발과 그 속에서 뒹굴어 달라붙은 눈으로 하여 눈사람이나 다름이 없었다. 커다란 눈덩이가 굴러가는 것처럼 도무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호흡기와 심장박동을 반복적으로 조절하며 국경경비대 순찰로 근처에 도착했을 때,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소리를 한 쪽으로 짓누르며 15미터 전부터 눈 위에 난 발자국을 지워버렸다. 그러다나니 온 몸은 자연히 가재걸음으로 되었다.

나는 뒤로 엎디어 발자국을 손으로 표가 나지 않게 다듬어 메웠다. 그런 다음, 싸리나무가지로 쓸어 놓았다. 그러니 마치 발자국 흔적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나뭇가지가 지나간 어설 푼 자리에 힘이라도 보태라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조용히 덮어주었다.

어쩐지 하늘에서 선사하는 눈이 나의 몸을 보호하는 방패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니 더없이 기뻤다. 보태지 않고 1시간정도만 경비대 녀석들에게 발견이 되지 않으면 나뭇가지가 쓸고 간 자리는 눈발에 의해 아마 귀신도 알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하며 순찰 로를 1.5미터 정도 남겨 놓고는 아예 훌쩍 건너 뛰어 발자국 흔적자체가 남지 않도록 했다. 또 1미터 되는 순찰 로를 번개같이 지나서는 다시 그만한 거리에 다리 근육의 힘을 주어 건너뛰었다. 그러고는 그 곳에서부터 100여 미터의 강기슭까지 손으로 다시 발자국을 메우며 나뭇가지로 쓸어 놓았다.

경비대 녀석들에게 흔적을 남겨 놓으면 만에 하나 다시 넘어 올 때에는 그 흔적으로 하여 그들의 잠복에 걸릴 위험이 있었다. 그러니 눈판에서는 고도의 신경전을 써야 했다. 아까부터 긴장된 육체의 등골로는 땀이 샘솟듯 하였다. 그래도 빨리 서둘러야 했다.
내가 물이 얼지 않은 구간을 택한 것은 누구보아도 차마 이런 곳으로 사람이 건너다닐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그만큼 경비대 녀석들의 판단도 다른 이들의 생각과 같으리라 믿고 싶었다.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끝내 내가 얼지 않은 강 구역으로 무사히 도착하였을 때에는 어설펐던 시야가 서서히 벗겨지고 있었다. 동이 터올 무렵으로 다가왔다. 헌데 요란한 물소리에 나의 귀는 이미 상실을 잃었는지 도저히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물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사품 치며 덤벼드는 강물에 내 노라하며 괴롭히던 눈발도 맥을 추지 못한 채 속속들이 녹아 들어갔다. 흐르는 물은 늘 자정의 세계를 지녔다. 하지만 쉴 사이 없이 순리의 과정을 통해 계류는 스스로 맑음만 유지했다. 모든 상처와 오락을 씻어주고 무수한 흐름을 통해 생명체의 갈증마저 달래면서 그들이 추구하는 세상의 본질을 보여주려고 물은 오늘도 노력하고 있었다. 특히 이곳은 강한 한파가 지나가는 추운 지대였지만 샘물줄기구역이 있음으로 하여 좀처럼 돌덩이와 같은 딴딴한 얼음판을 만들어주지 못하였다.　

북한과 중국 양 기슭으로만 6미터정도 얼어붙어 있었다. 매년 그랬다.　
나는 집에서 준비 한 비닐봉투로 발을 감고 그 위에 양말과 신발까지 무장하고는 나무막대기 하나만 가지고 물속으로 발부터 넣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비닐봉투를 제외한 발목위에서부터 전기가 감전된 것 같은 날카로운 뜨거움이 등골로 하여 뇌로 재빠르게 전달 댔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찬 기온에 심장마비가 올 것 같아 위험 방지를 위해 엉덩이는 딴딴한 얼음판에 붙이고 조금씩 시간을 갖고 천천히 다리만 물속으로 밀어 넣으며 높뛰는 심장이라도 달래려 했다.　

서서히 들어간 하체의 피부가 물과 접근할 때마다 선뜩선뜩 머리카락은 나도 모르게 곤두섰다. 가장 깊은 부위까지 들어갔을 때, 물은 이미 나의 배꼽부위를 가로질렀다. 헌데 포말을 일으키며 날아드는 압록강의 물결로 하여 머리와 팔, 등 잠겨있지 않는 마른 옷 부위들과 피부로 어설픈 물방울이 엉켜 붙어 순식간에 고드름을 만들었다. 　
빛이 어둠을 몰아내는 시간인데도 내리 붓는 폭설로 하여 아직 한 치 앞은 분간하기 힘들었다. 그러니 좋았다. 내가 괴로운 만큼 경비대 녀석들의 눈은 더 청맹과니가 될 수 있었다.

불과 10미터도 되지 않는 압록강의 물을 무사히 건너 중국　땅으로 올라서고 보니 자기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왔다．
나는 준비한 새 내의와 신발로 젖어버린 옷들과 양말, 그리고 신발까지 벗어 압록강의 물에 처넣어 버리고 갈아입은 다음 걸음을 재촉하여 중국 측의 압록강계곡으로 미친 듯이 톱아 올라갔다.　

강 돌파는 국경에서 발생될 수 있는 위험의 최대고비였다. 그 고비만 넘기면 중국 측에서는 별로 큰 위험이 따르지 않았었다. 그래서 나는 제법 긴장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4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를 힘차게 걸어갔다. 헌데 긴장이 풀려서인지 지금껏 감각이 없던 귀가 시려났다. 최대의 위험구간을 벗어났다는 생각에 나는 제법 시려오는 귀를 수건으로 동여매 동상이라도 막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준비가 덜 댄 얼굴로는 차디찬 냉기가 무자비하게 뚫고 들어와 근육전체를 마비시켰다. 얼굴을 때리는 눈발에 볼이 갈라터지고 꺼칠한 턱수염과 눈썹으로 입김이 엉켜 붙어 고드름까지 만들었다. 시야는 아침 7시를 치고 올라갔으나 아직도 100미터 이상의 거리는 확보하기 어려웠다.

나는 새로 백두산 관광을 위해 닦은 도로를 향해 힘차게 걸어갔다. 그러면서 머리를 오른쪽으로 숙이고 부닥치는 찬 냉기와 눈발의 저항에 반항했다. 하지만 추위는 여전히 기승을 부렸다. 어쩐지 시간이 지날수록 이젠 자연히 왼팔마저 얼굴 면상부위로 올라갔다.
도로를 탄 지도 15분정도, 대략 500미터 정도의 거리로 갔을라나, 갑자기 지프차 한 대가 산굽이 길에서 나의 코앞을 향해 덮쳐들었다. 평상시 나는 늘 이 길만 걸을 때면 험준한 산발로 하여 달리는 자동차의 때 아닌 출몰에 항상 귀를 강구고 다녔지만, 오늘 만은 춥고 또, 눈 오는 날씨어서 중국 변방대나 경찰들의 순찰차들은 다니지 않을 줄 알았다.

전에는 아무리 산세가 험해도 조용한 분위기로 하여 자동차 엔진소리는 늘 멀리에서부터 들려왔다. 그러면 이내 몸을 숨기고 자동차를 지나 보낸 다음 다시 걷곤 하였는데 오늘은 그만 너무도 방심한 덕분에 미처 자동차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었다.
내가 있는 위치로부터 불과 80여 미터 앞에 다가 온 지프차는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 섰다. 순식간에 벌어진 돌발 상황은 나를 아연질색하게 만들었다. 미처 손 쓸 여유마저 주지 않았으니 나는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그래도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그래서 일단 자동차 번호판부터 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흰색이다. 흰색은 변방대나 경찰차들만 가지는 번호판이었다.

흰색번호판을 보는 순간, 눈앞은 순식간에 캄캄해졌다. 보태지 않고 앞뒤 생각할 겨를이 없이 몹시 황당해졌다. 잡히면 모든 것이 끝장이며 죽음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만은 없었다. 어차피 죽을 바엔 최후발악이라도 하다가 죽고 싶었다.
‘걸음아! 날 살려라!’

나는 기적적으로 몸을 도로 밖에 던져버리고 허리까지 치는 눈 속으로 달렸다. 당장 심장은 멈춰서는 것 같았다. 허나 잡히지 말아야 했다. 이럴수록 살기 위해 정신을 더 바짝 차려야만 하였다.
“타당, 탕 · · 탕”
도로를 벗어나 20여 미터도 뛰지 못하였는데 3방의 총성이 울렸다. 그 것도 아침공기를 귀청이 찢어지도록 사정없이 뚫으며 가까운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에 갑자기 나의 머리 뒤통수는 인두로 사정없이 지지는 것처럼 뜨거워났다.

뭐라고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등 뒤에서 연거푸 들려 왔다. 세 명의 한족경찰들이었다. 나는 입에 거품을 물고 나무사이로 빠져나가며 산비탈을 향해 무턱대고 줄달음쳤다. 숨은 이미 턱에 닿아 목구멍마저 완전히 막아놓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빠져드는 눈 때문에 또, 앞 뒤 분간을 모르고 뛰다나니 나는 자기도 모르게 벼랑지대로 들어섰다. 그러니 300미터도 도망가지 못한 채 결국 독안에든 쥐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나는 끝내 그들에게 덜미를 잡혔다.

키가 1미터 80센티미터 이상의 경관과 조금 단단한 체구의 경관 두 명이 나의 이마에 총구를 겨누었다. 닭 똥냄새가 나의 코를 이상하게 자극했다. 화약 냄새였다. 순간 나의 몸은 돌덩이처럼 완전히 굳어졌다. 커다란 구경으로 내 머리보다 더 큰 총알이 당장 날아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식은땀은 줄줄이 흐르며 경직에 가까운 나의 몸을 물들였다. 나는 무작정 두 손을 높이 추켜들고 무릎부터 끊고 말았다. 감히 온 천지를 뒤덮은 무서운 3개의 총구에 기겁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별다른 재간이 없이 한쪽구석에 머리를 쑤셔 박고 죽은 척 있어야만 했다.

그들은 무작정 나의 몸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자그마한 배낭에 510그램이 나가는 녹용과 60통의 우황청심환을 넣고 있었다. 북한에서 떠날 때, 중국에서 팔아 한 푼이라도 벌려고 싸게 사서 준비한 물품들이였다. 그와 함께 배낭에는 보리밥으로 된 도중식사도 있었다.

100여리의 험준한 산발을 타자면 도중식사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내가 처한 위험의 무게와는 너무도 사뭇 다른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글쎄 조마조마한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전에 경찰들은 배낭안의 녹용과 우왕청심환을 보더니 눈만 커지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지들끼리 무어라 중얼거리며 나의 배낭을 거머쥔 녀석이 오른 손에 들고 있는 권총을 옆구리에 차는 것이었다. 그 녀석은 배낭에서 녹용과 우왕청심환을 빼고 도중식사만 나에게 도로 주었다. 그러면서 손을 저으며 나보고 빨리 사라지라고 하였다.

천만다행이었다. 어쩐지 눈물이 핑 돌며 한 숨이 나갔다. 목숨을 부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울음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던 것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 마음을 가라 앉히고 보니 어쩐지 자신감이 생겼다. 꽉 막혀있던 머리가 한 순간에 뻥 뚫린 것 같았다. 눈을 돌릴 수 있는 상황으로 전환되자 서서히 머리가 정돈 되었다. 그러니 이제는 그들의 행동에 왜서인지 반항이라도 하고 싶었다. 우왕청심환은 비싸지 않아도 녹용은 자그마치 북한 돈으로 5천원을 주고 구입한 것이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그들에게 사정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손으로 벙어리 흉내를 내며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녹용의 모양을 그리며 그 것만은 나에게 달라고 가슴을 두드렸다. 그러자 그 녀석들은 수갑을 꺼내며 잡아가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아연 질색했다. 그렇다고 권총을 한 손에 그냥 들고 있는 다른 두 녀석까지 세 명과 대항하여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아무리 녹용이 중요해도 그들에게 끌려가서는 안 되었다. 하여 나는 녹용과 우왕청심환을 속수무책으로 빼앗기고 말았다. 그들은 나의 수궁에 호랑이 잡은 포수마냥 어깨를 들썩이며 징그러운 낯짝을 씰룩거렸다. 그러고는 도로위에 세워 놓은 자동차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들이 사라지자 나는 털썩 눈판에 주저앉고 말았다. 온 몸의 피가 일시에 빠져 나간 듯, 산 채로 목이 댕강 잘린 짐승처럼 갑자기 무력감이 밀려들었다. 이대로 쓰러지면, 그래서 눈을 감으면 죽음보다 더 깊은 고민에 허덕일 것 같았다.
나는 끝내 무너지듯 눈판에 잔등을 젖혀 누워버리고 말았다.
‘개새끼들! 어떻게 구한 것들인데 마음대로 뺏는단 말인가? 아. 원통하구나!’

나는 한동안 울분을 참지 못하고 곁에 서있는 아름드리 주목나무를 손바닥이 피가 나도록 사정없이 때리며 훌쩍거렸다.
멀쩡한 사지를 가지고 그들에게 당한 것을 생각하니 미칠 것만 같았고 그 상실함은 가슴속으로 여지없이 파고들었다. 눈앞은 아찔했다. 왜 벼랑지대까지 복병으로 찾아와 나의 앞길을 막아 나서는지 눈덩이를 다듬어 지어 뿌리고 또 뿌렸다. 그리고는 성난 황소처럼 오래도록 울부짖었다. 나는 많은 시간을 일어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허망하기만 했다. 어쩌거나 죽음과 삶, 지옥과 천당을 오락가락한 기분이었다. 귀신에 홀린 것처럼 이미 나의 혼은 다 빠져 달아나고 말았다. 정신이고 뭐고 없었다. 어쩐지 방금 전까지 있은 일이 마치 꿈을 꾼 것만 같았다. 그래서 다시 홀쭉한 배낭을 만져보았다. 비닐 봉투에 싼 꽁꽁 언 보리밥 덩어리만 잡혔다. 또다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비통함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땅이라도 치며 통곡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의지할 곳 없는 위기를 누가 알아준단 말인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절망 속에서 나는 서러움에 치를 떨어야만 했다.
‘정말 사실이란 말인가?’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그래서 오른손으로 멀쩡한 오른 뺨을 후려 갈겼다. 입김이 성에가 되어 달라붙었던 볼에서 칼로 째는 듯한 얼얼한 아픔이 느껴졌다. 꿈이 아니라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다시 북한으로 나가야 하는가? 아님 계속 행군해야 하는가?’

많은 물음표들이 나의 머리를 맴돌았다. 마치 수많은 벌레들이 엉켜 돌아다니는 것처럼 머릿속은 어지럽기만 하였다. 오히려 두려움보다 걱정이 더 앞섰다. 그렇다고 빈손으로 목숨까지 걸고 온 국경으로 다시 후진해 가고 싶지 않았다.

바로 이때였다. 벼랑 짬 중턱에서 다람쥐 한 마리가 무엇을 입에 물었는지 볼록한 볼 주머니를 그대로 방치한 채 멍하니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졸리는지 아님 허기졌는지 눈알은 게슴츠레했다. 그러나 귀만은 꼿꼿이 세우고 소리를 탐색하는 것 같았다. 어쩐지 다람쥐는 나에게 유질이라도 넣는 것처럼 또,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불쑥 그 눈빛과 행동에 나는 나도 모르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사방을 살펴보다 내 팔뚝지보다 더 큰 마른 주목나무 삭정이를 집어 들었다.
‘에이. 고약한 놈. 중국 되놈들에게 당한 분풀이를 너에게라도 해야겠다. 어디 죽어봐라!’

나는 오른팔의 근육에 힘을 가하며 삭정이를 높이 추켜들었다. 그런데 이때 나의 행동을 멈추게 하는 순간이 포착됐다. 글쎄 게슴츠레하던 다람쥐의 눈에 눈물이 가랑가랑 맺혀 있었던 것이었다. 마치 나의 다음 동작을 의식이라도 하였는지 밤색다람쥐의 모습은 너무나도 처량하고 불쌍해 보였다.

온 몸을 경직에 가까운 모습으로 떨다 못해 아주 굳어버린 편견이 되어버린 다람쥐, 그 다람쥐가 왜서인지 손에 쥔 삭정이만 던지면 당장 맞아죽는 것이 곧 나의 운명과도 같은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나의 손은 저도 모르게 떨렸다.
‘이제 이것을 던지면 5배나 더 작은 다람쥔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할 것이다. 그런데 자기감정에 못 이겨 아무런 잘못도 없는 연약한 산짐승을 마구잡이로 죽인다면 나를 해코지했던 되놈들이나 나나 다 같은 나쁜 인간이 아닌가?’

그랬다. 내가 심심풀이로 또, 감정으로 하여 던진다면 필시 저 여린 것은 아마 혼비백산하여 죽을힘을 다해 내빼야만 했다. 그러다가 제대로 맞으면 황천으로 가고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다람쥔 지금 이 순간부터 아까 내가 중국경찰들과의 추격전에서 간땡이를 쓸어내리던 마음처럼 될 것이다. 나의 행위가 비록 장난일지 몰라도 다람쥔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어쩜 나나 저 밤색다람쥐는 강자에게 적수공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처럼 너무나도 작고 초라한 신세였다. 아니 바람 부는 들판에 세워놓은 촛불의 운명보다 더 참담하면 하였지 나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하여 복잡한 나의 머리는 도무지 헷갈려 더욱더 어지러워만 졌다.
‘미안하다. 다람쥐야! 내가 생각이 짧았구나!’

나는 들었던 삭정이를 내려놓고 말았다. 끝내 다람쥐를 죽이면 앞으로 나에게 더 큰 화가 올 것 같았다. 그래서 어리석었던 생각이 너무도 부끄럽고 창피스러워 소리가 날세라 천천히 내려놓고 말았다. 무겁게 떨어져 눈판으로 아무렇게나 박혀버린 삭정이를 바라보는 나의 눈에는 왜서인지 말 못할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러는 내 모습에 다람쥐는 머리를 조아리며 연속 고마움만 표시했다.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폭설이 쏟아 붓는 겨울 하늘에 대고 기를 넣으며 앞으로의 일만 걱정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결심을 단단히 굳힌 다음, 다시 험준한 산발로 어정어정 걸어갔다.

지나치는 곳마다 중국인들이 설치한 올무들이 가득했다. 또, 덩치 큰 곰이나 멧돼지를 잡기 위한 함정도 곳곳에 있었다. 왜서인지 짐승들이 살아가야 할 숲의 생활도 점점 야박해질 것만 같았다. 나는 짐승이나 다른 포수들의 눈을 피하며 다시는 당하지 않으려 한 눈도 팔 새 없이 신경만 곤두세우고 허리 치는 눈판으로 헤쳐 나갔다. 이름 모를 수많은 산과 들은 무정한 나의 발자국만 남기며 서서히 이별을 고했다. 허나 아직도 버스가 다니는 마을까지 수 십 여리를 가야 하였다.

전장에서 한방 얻어맞은 부상당한 다리처럼 나무막대기를 쥐고 질질 끌며 정신적, 육체적 힘까지 빠져 겨우내 걸어가던 시점으로 들어서서야 나의 눈앞에는 마을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