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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전교조 (3편) - 민중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글번호  6 작성일  2009-01-14
글쓴이  김구현 조회  1945
 

사악한 전교조 (3편) - 민중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민중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건국대통령인 이승만 박사는 수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역사적인 실증을 고찰하면 그가 없었다면 김일성에 대하여 적화가 되었다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초대 대통령에 3선에는 부통령인 이기붕의 부정선거로 인하여 4.19가 일어난다. 북한은 4.19가 통일로 이어지지 못한 점을 몹시 후회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진단했다. 첫째, 남한에 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 정당이 없었고, 둘째, 명확한 투쟁강령이 없었고, 셋째, 노동자-농민의 참가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1964년 3월15일, ‘통일협명당창당준비위원회’가 1964년 3월15일, 서울의 지하에서 발족됐다. 이 준비위원회는 합법적 비합법적 조직을 거느렸다. 합법조직으로는 ‘학사주점’, ‘새문화연구회’, ‘청맥회’, ‘동학회’, ‘민족주의연구회’ 등 많은 써클을 두었고, 비합법적 도구로는 ‘민족해방전선’을 두었다. 기관지에도 합법지와 비합법지가 있었다. 합법적 당기관지는 ‘청맥’이라는 잡지였고, 비합법적 당기관지로는 ‘혁명전선’이란 지하 신문이었다. 이들은 반미-반정부 사상과 민족, 계급의식을 고취시켰다. 남쪽에서도 북한처럼 노동자가 주인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1968년 통일혁명당은 지도이념을 명확히 내걸었으며, "당면의 최고 목표는 민중민주주의혁명을 수행, 부패한 반봉건적 사회제도를 일소하고 민주주의제도 수립, 민족 재통일 성취"이다. 해설하면 최고의 목표는 인민민주주의혁명 (프롤레타리아 혁명)수행, 자본주의제도를 타파하고 공산주의를 수립하여 북한위주의 통일성취를 당 강령으로 삼고 있었다. 위 사건과 같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들은 인민대신 민중을 사용하여 혼란을 주었던 것이 많은 자료에서 볼 수 있다.


통일혁명당이 합법정당 행세를 하면서 1964년의 6.3한일회담반대 투쟁을 조종했다. 좌익은 통일혁명당 간첩사건을 박정희 시대의 조작된 시각으로 만들고 있지만 당시, 김대중의 초등학교 동창생과 목포상고 동창생들 3명이 평양으로 불러 간첩교육을 받고 엄청난 돈을 가지고 목포로 잠입, 김대중 선거 캠프에 침투를 하고 그 후 서울 무교동에 청맥 잡지사와 중고자동차를 소개소를 만들고 학사주점을 열어 활동을 하다가 일망타진 사형을 당한다. 이들이 사형되자 김일성은 평양모란봉에서 대대적인 추모회를 열고 영웅칭호를 주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동일, 임중빈, 박성준 박사(성공회 교수이며 15년 투옥, 부인 한명숙 초대 여성부 장관 ´크리스천 아카데미´사건 2년 투옥) 등이 국가보안법에 의하여 투옥된다. 이명박(대학 4년/6.3운동 투옥), 손학규(고3/대학 중에 탄광에서 공활을 함), 이재오(6.3운동 주도, 89년 전민련 조국통일위원장)가 바로 통일혁명당에 의하여 연루된 것으로 보고 있다. 


민중민주주의는 NL(National Liberation): 민족해방, 종북(從北)주의, 자주파, 우파)와 PD(People´s Democratic Revolution): 민중민주, 평등주의, 평등파, 좌파)가 있다. NL파는 종북주의 역할이며 PD파는 평등주의를 추구하는 역할의 분담이 있을 뿐이다.

운동권학생들의 인맥과 정서는 특수공동체라고 볼 수가 있으며 그들만의 조직과 인맥형성으로 오픈된 조직과 지하조직으로 나누며 언더조직이 전략·전술을 만들어 오픈된 조직과 일반학생을 선동·투쟁하게 만들었다. 민중세력은 각종 단체를 만들었으며 나이가 들면서 지금의 정치계, 문화계, 종교계 등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하였다.


북한의 4대 군사 노선[국가보안법 철폐-미군철수-평화체제-연방제 통일]을 추종하는 민중(인민)민주주의 세력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민주노동당(민노당),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남북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통일연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남측본부·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실천연대),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 등이며 한국예술인총연합(민예총),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민주평통), 여성민우회(민우회), 참교육학부모회, 학벌없는사회, 한겨레, 오마이뉴스, 전국교수노조, 정의구현 사재단, 김대중·노무현 정권하의 국가기관인 공무원노조, 통일부, 국가인권위와 여성부도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다. 각각의 위치에 각각의 부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나 최종목적은 연방제 통일(고려 연방제)을 향한 것이다. (한국민주노동조합총동맹: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제3세력.) 현재 대한민국에는 약 1630단체가 있음.


민주노총 (민노총)

민노총은 결론적으로 남조선노동당이나 다름없다. 좌익역사와 동일하게 공존하며 현재 민노총이란 이름으로 서있을 뿐이다. 전교조, 민노총, 민노당은 사회가 혼란한 틈타 창설된 것이며 좌익의 대표단체로서 좌익정권인 김대중, 노무현의 비호를 받으며 대한민국에 존재한다.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는 1946년 ‘조선정판사 사건’으로 공산당이 불법화 되자 폭력투쟁을 전개한다. ‘대구폭동사건, 2.7폭동, 5.10총선 방해 책동, 제주 4.3폭동, 여순반란사건, 지리산 무장공비 저항’들이 그것이다.


1989년 투쟁본부는 제100회 메이데이를 앞두고 이승만 대통령이 만든 근로자의 날(3월 10일)을 노동자 불명예의 날로 규정하고 노동절(5월 1일)전통을 회복할 것을 선언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전야제를 갖고 4월 30일 세계 노동절 기념대회를 개최한다. 1993년 6월에는 전노협, 업종회의, 현총련, 대노협이 주축이 되어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전노대)가 발족한다. 1995년 11월 전국민주노동조합연맹(민노총)이 창립되어 1996년 12월 전국적인 총파업을 실시한다. 2006년 12월말 민주노총에 가입한 산별연맹 전체조합원 수는 75만 2천 363명이다. 대부분 아무 것도 모르고 가입을 한 것이다. 민노총의 홈페이지는 다음과 같이 명시를 하였다. ‘1995년 11월에 창립한 민주노총은 일제 식민지 통치 마감으로 1945년 8월 15일 조국해방과 함께 창설된 50만 전국노동조합평의회(전평)의 실질적인 계승자이다.’ 이는 스스로 좌익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대구은행발행 ‘향토와 문화’를 보면 ‘10월, 그날이 다시오면’ 제목의 이일재라는 사람이 있다. 내용은 전평과 연관하여 대구지역에서 벌이는 노조와 교사들의 행동 그리고 많은 내용이 자필로 적은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중에 빨치산활동을 한 경력과 전평과 관련된 각종사건을 자신이 바라보는 눈에서 내용을 상세히 적었다. 민노총 자문 위원이었고 민노총의 전략·전술을 만들었으며 모택동주의를 근본으로 하였다. (62편, 63편 참조하기)


민노총에 대한 수많은 자료는 이들이 공산집단이라는 것을 명시한다. 공산당들이 세력을 확장하는데 있어서 가장 먼저 조직을 꾸미는 것이 노동단체이며 파고드는 것이 학교이다. 전교조와 동일하게 공산당의 조직과 운영체계 그리고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공산혁명집단이다.


민주노총홈페이지 발취 : 1995년 11월에 창립한 민주노총은 일제 식민지 통치 마감으로 1945년 8월 15일 조국해방과 함께 창설된 50만 전국노동조합평의회(전평)의 실질적인 계승자이다. 전평은 해방 이후 노동해방과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투쟁하다 미군정으로 대표되는 자본과 정권의 혹독한 탄압으로 사라지고, 어용노조 세력인 대한노총과 한국노총이 자본과 정권의 도움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민주노동당 (남조선 공산당)

민노당은 강령에 이적성을 그대로 보이며 전교조, 민노총과 대동소이하다. 민노당을 보면 한 지붕 세 가족이라는 연속극이 생각을 날 지경이다. 현재 합법화된 정당으로 존재를 하지만 이적단체로 판명된 한총련, 범민련 등과 같은 이념과 행동을 하는 단체가 합법화 되었다는 것이 오늘날 아이러니한 현실이라고 하겠다.


2007년 문성현 대표 등 13명의 민노당 방북단은 평양을 가서 “중국을 통해 먼 길을 돌아왔지만 평양에 도착하니 기쁨과 설렘으로 마음이 벅차오른다.”는 도착성명을 읽었다. 그는 동맹국인 미국과 우방인 일본을 ‘전쟁광(狂)’으로 모는 발언으로 김정일 정권의 ‘홍보대행’도 멋지게 해냈다.


2006년 김혜경 대표 등 북의 애국열사릉’을 참배하고 방명록에 “당신들의 애국의 마음을 길이길이 새기겠다.”고 적었다. 이곳은 제주4.3사건의 주모자가 묻힌 곳이며 6.25전쟁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된 곳이다. 권영길 대표는 스스로 빨갱이라고 외치며, 노회찬은 수많은 언행이 인민민주주의 개념을 보여주며 대선후보로 당내에서 활동을 할 때에 광주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자”고 하는 공산당 발언을 서슴지 않고 말한다.


민노총은 그동안 해온 언행을 보면 북쪽의 대남 공작 조직인 북한 노동당 산하기관과 같다. 민노총과 깊숙이 연관된 민노당이 과연 어떤 단체라는 말인가? 누가 이런 단체를 합법화 시키었으며 활동을 하게 만들었는가?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합법화 시키었다. 보통의 정상적인 가치관으로, 대한민국의 헌법상으로도 존재의 이유가 전혀 없는 단체가 민중민주주의(인민민주주의) 세력인 민노당·민노총·전교조인 것이다.


국민행동본부는 2004년 총선에서 민노당이 국회로 진출하자 정부에 대해서 민노당을 위헌정당으로 규정, 헌법재판소에 해산명령을 내려달라고 제소해줄 것을 청원(민노당 해산 청원서 全文)하고 해산요구 기자회견과 신문광고 투쟁을 벌인 바 있다. 물론 간첩비호 정권은 움직이지 않았고 이 청원은 기각되었으나 진실을 영원히 가두어 둘 순 없다고 했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이승만, 박정희 정권의 강력한 반공정책으로 좌익들은 노동단체와 학원가에 숨어든다. 1956년 진보당 외·여명회·신진회·신조회·사회법학회·협조회·농촌사회연구회·암장회 등의 좌익이념 써클이다. 후에 이러한 세력들이 한총련으로 집중화 된다.


한총련의 전신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이다. 1987년 95개 대학에서 결성된 후 93년 전북대학교에서 ´한총련´으로 공식 창립하였다. 공산당운영방식인 민주집중제를 사용하고 있으며 1996년 8월 ‘연세대 폭력 시위 사태’를 계기로 97년 대법원에서 이적단체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한총련을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찬양·고무하고 국가 변란을 선전·선동하는 것을 목적으로 결성된 조직’으로 인정했다.


지금까지 일관되게 20년 동안 친북(親北)·반한(反韓)·종북(從北)노선을 견지하면서 각종투쟁을 선도해왔고 그 동안 배출한 ‘혁명전사’들이 이제 정치권을 비롯한 우리사회 각계분야에 진출하여 ‘주사파’(일명 민족해방파)라는 친북(親北)·종북(從北)운동세력을 형성하여 국가 사회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004년 3월 제12기 한총련이 출범 선언대회를 했다. 이때 채택한 노선은, 북한이 신년공동사설에서 밝힌 ‘2004년 통일운동구호’를 그대로 수용하여 대중운동의 기본 목표로 설정하였으며, 이제까지의 친북편향 투쟁노선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안기부 자료에는 전대협(全大協), 김일성(金日成)주의 지하조직에 장악..『의장들 모두 主事派 조직원』라고 있으며 노무현 정권 요직에 대거 진출해 있는 전국대학생협의회(全大協) 출신들의 주체사상(主體思想) 추종은 법원 판결·정부 기록·전향자 증언 등을 통해 널리 입증된 사실이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조국통일범민족연합(약칭 ´범민련´)은 90년 남·북한과 해외재야단체 등 3자가 독일 베를린에서 회담을 갖고 범민족 대회 개최를 목적으로 결성한 단체이다. 범민련 산하에는 남·북·해외동포본부 등 3개 본부가 있으며, 범민련 해외본부 밑에는 일본, 미국, 유럽, 독립국가협동체, 중국, 캐나다, 호주 등에 지역본부가 있다.


지난 95년 결성된 범민련 남측본부는 서울 광주 전남 등 6개 지역본부와 한총련 등으로 구성돼 있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89년 범민련 남측본부 추진위원회 때부터 대법원에 의해 이적단체로 규정됐다. 우리 공안당국은 ‘범민련 북측본부’를 사실상 북한 조선노동당의 하부조직으로 보고 반국가단체로 규정했는데, 범민련 남측본부가 이들과 수시로 접촉한 사실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또 소설가 황석영씨 밀입북 사건을 계기로 94년에는 범민련 해외본부도 대법원에서 이적단체 판결을 받았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장이 상근부의장이다. 최근까지 한총련 의장이 범청학련 의장을 맡았고, 한총련이 범청학련의 핵심 세력이어서 범청학련은 전교조가 주장하고 통일교육의 선봉장이라고 할 수가 있다. 특징적으로 주로 친북·반미를 하고 인물들로는 한총련 계통으로 구성되었다.


전교조의 계기교육을 통하여 학생들이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어 일부가 한총련 및 범청학련에 가입을 하여 활동한다. 범청학련은 한총련의 결사대라고 할 수가 있으며 약 600명 정도가 활동하고 미군 사격장을 시위하고 계획을 철저히 하였다. 미군 사격장 시위하기 전에 이들은 ´결사결의서´를 쓰기도 하였다. 내용 중 “저 미국 놈들이…(중략)…한 몸 바쳐 한반도의 전쟁을 막고 우리 민족의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는 내용의 ´결의서´를 A4용지 한 장에 함께 작성했다.


통일 선봉대

범청학련의 소속에는 통일선봉대(통선대)가 있다. 1992년 발족한 통선대도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로 꾸려진다. 따라서 통선대는 사실상 한총련이 움직이는 조직으로 주요 임무는 반전투쟁과 전국 주한미군기지 항의방문 등이다. 통선대는 크게 중앙통선대와 지역통선대로 나뉜다. 중앙통선대는 전국 대학에서 자원한 학생들을 동군, 서군 등 두 그룹으로 묶어 전국 순례를 벌인다. 지역 총학생회연합(총련) 학생들로 꾸려진 지역 통선대보다는 ‘투쟁성’과 ‘의식성’이 더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공개모집으로 선발돼 ‘반미·자주’ 등을 내용으로 교양교육을 받으며 각종 시위에 동원된다.


중앙통선대는 조직을 하나 더 늘렸다. 수도권에 집중된 주한 미군 기지에 대한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수도권 통선대’를 만든 것. 경찰은 한총련 내 강경파인 경인총련 학생들이 소속된 수도권 통선대가 이번 사격장 시위를 주도했다고 밝혔다. 중앙통선대의 3개 조직 구성원은 각각 200명 안팎. 각 산하 조직은 통상 ‘중대’로 불리며 선전, 투쟁 등 임무에 따라 4개 소대로 나뉘는 등 군사조직의 틀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문득 랭보의 싯구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것들은 모두 한 배에서 나온 개새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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