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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19일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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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전쟁보다 더 무서운 공산농(共産農) 체험
맨붕 맞은 상태에서 그해 8월 북한 철원에 출장 중 남조선 삐라에서 6·25 진실을 깨닫고 에이 썅! 하고 탈북결심.
이민복(대북 풍선단장) 

<전면전쟁보다 더 무서운 파괴의 공산농 체험과 시험>
  
  공산농 폐해는 전면전쟁으로 폭탄을 맞아도 저렇게 심하지 않았다고 감히 말합니다. 왜냐면 개인농 시절인 6·25 때에도 수백만 명 굶어죽지 않았으니까요. 
  
  공산농 폐해를 시험하고 조사한 곳은 김정숙군 풍양리 5반 일명 보파리라는 곳입니다. 중국 장백현 14도구에 가면 압록강변에서 보이는 곳이며 한 5년간 있었습니다. 같은 공산농 때는 중국보다 훨씬 나았던 북한인데 개혁개방한 중국 후 그 상황이 역전되었습니다.
  
  숫자로 말하는 과학자로서 조사를 해봤습니다. 평당 옥수수는 남부지대에서는 20~22대, 북부지대는 27~30대 심습니다. 70센티 이랑에 5미터 70센티 길이가 1평에 해당합니다.
  
  옥수수 영양단지로 하는 북한은 모 옮길 때까지는 세계적으로 가장 정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김매기하고 후치질(잡초 제거)하는 과정 손실된 숫자를 조사하니 심한 데는 30대 중 절반이 후치질에 묻혀있거나 호미질에 잘려나간 상태입니다. 병충해까지 겹쳐 가을할 때 최종 조사해보니 11대 남아 있었습니다. 수확하기 전에 벌써 3분의 2가 사라진 것입니다.
  
  다음해에 왜 3분의 2가 사라지나 자세히 보니 일하는 사람들의 솜씨였습니다. 어찌면 이들은 현명했습니다. 본능적으로 내 것이 아닌데 뭘! 저는 공산권 몰락은 반공투쟁보다 이런 본능 때문이라고 봅니다.
  
  수수한 상태로 공산농과 개인농 대비시험을 했습니다. 1정보에 1~2톤 나던 밭에서 경영하나 바꾸니 7톤 증산되었습니다. 이것은 5배나 증산되었다는 말인데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10여 년 밤낮 연구해서 새 품종 발명으로 등록하는 것이 기존 품종에 비해 2~3% 정도인데 5배 즉 500%라니, 연구할 필요성을 상실하였습니다. 공산농을 개인농으로 바꾸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혁명이니까요.
  
  기래서 중앙당 1호편지 즉 김일성 부자에게 편지를 올렸지요. 그게 1990년 5월31일입니다. 근데 3달 만에 회답이 뭔가 하니-개인농은 이색사상이다. 과학자는 과학만 연구해라!
  
  술담배를 금하고 오직 연구만 한 순수과학자로 인정되어 잡아가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라는 것입니다. 맨붕 맞은 상태에서 그해 8월 북한 철원에 출장 중 남조선 삐라에서 6·25 진실을 깨닫고 에이 썅! 하고 탈북결심. 아마 개인농을 받아들였다면 90년대의 수백만 명 아사는 없었으리라 확신합니다.

 

 

 

등록일 : 2019-05-19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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