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칼럼
2019년 3월 25일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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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너머로 바라본 '남조선', 길 위에서 천국을 보다.
내가 살던 고향엔 콘크리트도로는 커녕 아스팔트도로도 없었습니다.
탈북자 이예린 
안녕하세요. 탈북자 이예린입니다. 오늘부터 왜 저 같은 탈북민들이 대한민국을 천국이라고 이야기 하는지 하나 하나, 사례를 들어가며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은 그 첫 순서로 대한민국에 입국하던 날, 내가, 버스 창문의 커튼 사이로 살짝 엿보았던 남조선에 대해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마자 우리 일행은 준비된 버스에 몸을 실었고, 될수록이면 창밖을 내다보지 말라는 인솔자의 말을 들으며 궁금증만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남조선 거리는 어떻게 생겼을까. 헐벗고 굶주린다는 남조선 인민들은 어떤 모습으로 거리를 헤매고 있을까. 

물론 남조선 드라마며 영화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였지만 북한의 교과서들에 의한 학습효과 때문에 헐벗고 굶주리는 남조선인민들에 대한 표상을 쉽게 떨쳐 버릴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정말 궁금했습니다. 내가 온 이곳, 남조선이 어떤 땅일지 너무나 궁금해 커튼을 살짝 들어 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순간 저의 눈은 휘둥그래지다 못해 밖으로 툭~하고 튀어나올 정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공항을 막 벗어나고 있는 버스의 차창 밖으로 몇차선인지도 모를 넓은 도로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도 황홀하고 장쾌한 모습이어서 쩍~벌려진 입도 다물어지질 않았습니다. 

아! 하고 신음같은 환성을 질럿던 그 순간, 곳바로 고향의 거리를 떠올렸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살던 고향엔 콘크리트도로는 커녕 아스팔트도로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비가 오면 땅이 질척거리고, 가랭이에까지 흙탕물이 튀어 오르곤 했죠. 그 세상에서 사람들은 주로 자전거를 이용하곤 했는데, 이따금 지나치는 화물차들이 흙탕물을 튕기는 바람에 그 흙탕물을 통째로 뒤집어 쓰던 풍경이 주마등처럼 떠 올랐습니다.

눈내리는 겨울이면 흙과 자갈이 얼어붙어, 조금이라도 걸음걸이에 신경을 덜 쓰면 돌부리에 걸려 발가락이 퉁퉁 부어올랐던 기억도 있고 꽈당~하고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던 일도 떠올랐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제가 살던 북한은 보따리 장사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로는 한적하고 이따금 만나는 버스며 화물차를 향해 사람들은, 술병이며 담배를 들고 돌진하곤 했습니다. 이름하여 뇌물을 흔들며 차를 세워달라고 호소하던 풍경이었죠. 

최근엔 서비차라는게 생겨서 짐을 옮기는 일이 조금 헐해졌다고는 하나 그런 버스며 화물차들에 실린 산더미 같은 짐을 보면...대한민국 국민들이 얼마나 아연실색할지 짐작이 가질 않습니다. 

그런 차에 한번 오르기만 하면 도로변의 먼지며 마주오는 차들이 뿜어 대는 흙먼지를 뒤집어 써서 눈섶이 하애지고 코구멍까지 콱~ 메어오는게 서로를 마주보는것 조차 꺼려지는, 그런 열악한 환경을 살아온 저희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서른살을 살아온 제가 대한민국땅을 밟으며 처음 바라본 8차선 도로. 그 도로는 정말, 지금도 제 가슴에 깊이 새겨진 새 삶의 길라잡이고 희망의 등대였습니다. 

그때문일까요? 대한민국에 입국한지 8년이 지났지만, 저는 지금도, 인생의 새 출발을 다짐하던 그 순간에 다시 서기위해, 인천공항의 그 8차선 도로를 기쁘게 찾곤 한답니다. 감사합니다.

탈북자 이예린 씀안녕하세요. 탈북자 이예린입니다. 오늘부터 왜 저 같은 탈북민들이 대한민국을 천국이라고 이야기 하는지 하나 하나, 사례를 들어가며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은 그 첫 순서로 대한민국에 입국하던 날, 내가, 버스 창문의 커튼 사이로 살짝 엿보았던 남조선에 대해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마자 우리 일행은 준비된 버스에 몸을 실었고, 될수록이면 창밖을 내다보지 말라는 인솔자의 말을 들으며 궁금증만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남조선 거리는 어떻게 생겼을까. 헐벗고 굶주린다는 남조선 인민들은 어떤 모습으로 거리를 헤매고 있을까. 

물론 남조선 드라마며 영화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였지만 북한의 교과서들에 의한 학습효과 때문에 헐벗고 굶주리는 남조선인민들에 대한 표상을 쉽게 떨쳐 버릴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정말 궁금했습니다. 내가 온 이곳, 남조선이 어떤 땅일지 너무나 궁금해 커튼을 살짝 들어 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순간 저의 눈은 휘둥그래지다 못해 밖으로 툭~하고 튀어나올 정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공항을 막 벗어나고 있는 버스의 차창 밖으로 몇차선인지도 모를 넓은 도로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도 황홀하고 장쾌한 모습이어서 쩍~벌려진 입도 다물어지질 않았습니다. 

아! 하고 신음같은 환성을 질럿던 그 순간, 곳바로 고향의 거리를 떠올렸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살던 고향엔 콘크리트도로는 커녕 아스팔트도로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비가 오면 땅이 질척거리고, 가랭이에까지 흙탕물이 튀어 오르곤 했죠. 그 세상에서 사람들은 주로 자전거를 이용하곤 했는데, 이따금 지나치는 화물차들이 흙탕물을 튕기는 바람에 그 흙탕물을 통째로 뒤집어 쓰던 풍경이 주마등처럼 떠 올랐습니다.

눈내리는 겨울이면 흙과 자갈이 얼어붙어, 조금이라도 걸음걸이에 신경을 덜 쓰면 돌부리에 걸려 발가락이 퉁퉁 부어올랐던 기억도 있고 꽈당~하고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던 일도 떠올랐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제가 살던 북한은 보따리 장사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로는 한적하고 이따금 만나는 버스며 화물차를 향해 사람들은, 술병이며 담배를 들고 돌진하곤 했습니다. 이름하여 뇌물을 흔들며 차를 세워달라고 호소하던 풍경이었죠. 

최근엔 서비차라는게 생겨서 짐을 옮기는 일이 조금 헐해졌다고는 하나 그런 버스며 화물차들에 실린 산더미 같은 짐을 보면...대한민국 국민들이 얼마나 아연실색할지 짐작이 가질 않습니다. 

그런 차에 한번 오르기만 하면 도로변의 먼지며 마주오는 차들이 뿜어 대는 흙먼지를 뒤집어 써서 눈섶이 하애지고 코구멍까지 콱~ 메어오는게 서로를 마주보는것 조차 꺼려지는, 그런 열악한 환경을 살아온 저희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서른살을 살아온 제가 대한민국땅을 밟으며 처음 바라본 8차선 도로. 그 도로는 정말, 지금도 제 가슴에 깊이 새겨진 새 삶의 길라잡이고 희망의 등대였습니다. 

그때문일까요? 대한민국에 입국한지 8년이 지났지만, 저는 지금도, 인생의 새 출발을 다짐하던 그 순간에 다시 서기위해, 인천공항의 그 8차선 도로를 기쁘게 찾곤 한답니다. 감사합니다.

탈북자 이예린 씀



등록일 : 2019-03-02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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