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째 이어오던 폭염도 물러가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분다. 산지가 많은 북한은 이맘때면 쌀쌀한 기운이 감돌면서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린다.

북한의 가을은 겨울을 나기 위한 월동준비로 바쁜 시기이다. 가을날 하루를 게으르면 봄날의 열흘을 굶는다는 말이 있다. 단풍의 계절을 즐기는 남한과 달리 북한의 가을은 주민들의 사활이 걸려있는 중요한 계절이다.

누구나 기다리는 가을이지만 농촌들에서 가을을 손꼽아 기다리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가을이 되면 협동농장탈곡을 위해 정권에서 임시로 며칠간 전기를 보내준다.

북한은 높은 고산지대라 거둬들인 낟알이나 감자를 하루빨리 가공해야 한다. 갑자기 내린 된서리에 탈곡장에 쌓인 낟알이 그대로 얼어버릴 수 있다. 수확도 얼마 되지 않는 지금의 작황에서 얼기까지 하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도시주민들은 가을철에 정전됐다고 의견을 부리지 않는다. 어찌 되든 농촌에서 가을걷이해야 도시 사람들도 사 먹을 양곡이 생긴다. 농촌에 보내주는 전기는 국가 전기지만 권한은 작업반장이 쥐고 있다. 전기 스위치를 넣고 떼는 반장의 모습은 수만 명의 군사를 거느린 개선장군의 모습과 유사하다.

2015년 남한에 정착한 대홍단 출신 김지혁 씨는 "가을이 되면 우선 농장 밭 가을걷이부터 시작한다. 농민들은 농장 낟알을 탈곡하면서도 마음은 개인뙈기밭 감자밭에 있다. 하루가 다르게 추워지는 날씨 때문에 농민들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 간다. 봄 여름내 온 가족이 일군 밭에 감자는 아직도 땅속에 있는데, 농장탈곡이 끝나야 개인 밭에 손을 댄다. 깊은 산 속에 있는 감자를 제때에 내리지 못하고 된서리를 맞는 날이면 한 해 농사가 도로 아미타불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농장원들은 작업반 수확을 할 때면 몸이 불편하다고 일부로 꾀를 쓴다. 대신 농촌 지원 나온 사람들에게 떠맡기고 그늘 밑에서 쪽잠을 잔다. 반면 밤만 되면 날이 샐 때까지 뙈기밭 낟알을 탈곡하느라 날을 샌다. 온 밤 개인낟알 탈곡으로 밤을 새우면서도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농장탈곡장에서 볼 수 없던 진지함과 근면함이 개인탈곡장에 차고 넘친다."고 설명했다.

이어 "농장원들은 작업반장에게 뇌물을 고이고 농장관리위원회가 모르게 전기를 쓴다. 반장은 작업반원들에게 전기를 가만히 주는 대가로 자기 집 탈곡까지 맡긴다. 결국, 농민들이 가을을 기다리는 진짜 이유는 개인 집 탈곡을 위해 필요한 전기다."고 부연했다.

http://newfocus.co.kr/client/news/viw.asp?cate=C01&mcate=M1003&nNewsNumb=20160819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