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北 여인, 뼈만 남은 세 살배기 딸을 끌어내다!

 

남편은 식량을 구해 떠난 뒤 행방이 묘연, 아내는 시부모와 딸을 두고 두만강을 건너 만주로 건너갔다. 거기서 만난 고마운 한국 남자가 약속대로 보내준 돈으로 사람을 사서 북한으로 들여보냈더니… 저는 脫北(탈북)하여 현재 중국땅에 머물고 있는 정옥경이에요. 나이는 29세, 고향은 함경북도 신포시구요.

 

세상에 자식 가진 엄마치고 母性愛(모성애)를 간직하지 않은 여자는 없을 거예요. 인간의 권리와 존엄을 다 잃어버린 우리 脫北 여자들도, 자식 가진 엄마의 모성애만은 어쩐지 버릴 수 없더군요.

 

이국땅에서 자기 한 몸도 건사할 데가 없고. 낙엽처럼 날려 다니는 신세인데도, 북한에 두고온 자식들 때문에 속에는 잿가루만 쌓여가고 있어요. 나의 異國(이국) 생활 체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 이 마음을, 토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이 글을 썼으니 보면서 이해해 주세요. 5~6년째 주민들의 속을 후비던 극심한 식량난은, 1999년도에 들어서서도 나아질 줄 몰랐어요.

 

함경남도 신포시에서 함경북도 무산군으로 시집을 온 나는, 내가 살던 곳이나 시집온 곳이나 온 나라의 식량 사정은 마찬가지라는 걸 느꼈어요. 거리에는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주민들과 어린 꽃제비 아이들이 수없이 많았어요. 모두 홀쭉한 배낭을 메고, 먹을 것을 담아올 데가 있나 하여 올려뛰고 내리뛰고 하였지요. 남편이 읍농장 창고장을 하고 있어 무산읍 내에서는 괜찮다고 여겼던 우리 시집의 가정살림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高齡(고령)에 아무 일도 못하고, 내가 집 살림을 도맡아 하는 형편이 되었어요. 시집올 땐 남편이 읍농장 창고장을 하고 있어, 옥수수를 몰래 자주 들여왔기 때문에 살림이 아주 괜찮았어요. 그러던 것이 남편이 그만 1998년도에 집에 옥수수 한 배낭을 밤에 가져오다가 들켜 그 자리를 쫓겨난 다음부터 집안이 궁지에 빠졌어요. 남편이 식량 구입을 하러 집을 나선 지 1년이 다 되어 오지만 아무 소식도 없었어요.

 

남편은 북한 내에서는 옥수수를 더 구할 수 없기에 중국땅으로 식량을 해결하러 갔거든요. 앉아서 그대로 굶어죽을 수 없기에, 나도 배급도 안 주는 옷 공장의 직장일을 그만두고, 먹고 살기 위한 생존의 길에 나서게 되었어요.

 

저는 함흥시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한다고 하였지만 입을 닫아맬 수는 없었거든요. 식량난으로 당장 굶어죽게 된 북한의 실정에서 무슨 직업을 가진들 다 필요 없었고, 쌀, 쌀만이 요구됐어요. 나뿐만 아니라 주민들은 모두 자기의 직업을 그만두고, 하루라도 생을 어떻게 유지하겠는가 하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래서 무산읍내 공장들이 30여개 가량 되는데, 원료도 없고 출근도 하지 않아 텅텅 빈 건물로 남아 있었어요. 처음에는 해보지 못한 장사를 하자니 남보기가 창피스럽고, 본전을 떼일까봐 두려웠어요. 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보니, 같은 나이 또래 여자들이 모두 장마당에 나와 하루살이를 위하여 뛰고 있으니, 나도 신이 났어요. 북한은 원래 주민들에게 교양하기를, 장사하는 것을 자본주의 요소라고 쩍하면 끌어가 욕질하고 망신주어서, 아주 창피한 것으로 여기는 곳이에요.

 

그런 곳에서 살다보니 식량 기근이 들기 전에는 장마당에 나가, 뭘 파는 것을 대단히 주저했는데 이젠 그렇지 않아요. 먹고 사는 데서 장사가 기본이라는 인식이 모두 들었거든요.늙은 시부모는 가마에 맹물을 끓이고 나에게는 매일 먹고 사는 문제가 정말 힘들었어요. 장마당에서 온종일 발이 꽁꽁 얼며 寒地(한지)에서, 자기의 물건이 팔리겠는가 눈이 새까매 기다렸지만 변변치 않은 물건이라 잘 팔리지도 않았어요.

 

저녁이면 장마당에서 비지 한 공기를 사가지고, 맥없이 집으로 돌아오면 늙은 시부모님들이 가마에 맹물을 끓이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내딸 이름은 윤미인데 세 살이나 먹었는데도 영양부족인지 크지도 못하고 체통이 작았어요.

 

생긴 것은 영 곱다고 옆에서들 그러는데, 어디 잘 먹일 수 있어야지요. 가져온 비지를 가마에다 넣고 풀과 함께, 대강 끓여서 부모님과 아이의 몫을 떠 주고 나면 나의 몫은 없었어요. 그러면 시부모님들이 서로 나누어 먹자고 옥신각신하다 보니, 하루 두 끼 밥상 앞은 슬프기도, 인간의 후더운 정도 느끼게 하는 장소였지요.

 

그래서 더울 때 먹어야 될 비지죽이, 다 식어 깔깔해져서 목에 넘기기도 매번 힘든 지경이었어요. 그런 것이나마 먹는 것이 다행이었지만, 세상에 태어난 어린 것 한테 쌀알 하나도 넣지 못한 비지죽을 먹이는 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파 내가 며칠밤을 뜬눈으로 새운지 몰라요. 이제 겨우 세 살밖에 안되는 어린 것은 식량난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고 먹을 것을 달라고 철없이 졸랐어요.

 

엄마인 나는 그럴 때면 어린 것한테 죄지은 것 같아 눈물만 나왔지요. 그래서 장마당에서 우리 여자들끼리 나누는 말은, 아예 세상에 낳지 말아야 할 아이들을 괜히 낳아가지고 생고생시킨다고 투덜댔지요.

 

식량난이 겹쳐 최근 2~3년 어간에 결혼한 부부들이, 차마 아이를 낳지 못하자, 나라에서는 또 우리 여자들을 못살게 굴었어요.

 

뭐 군대가 언제까지 있어야 되는지, 훗날의 군대 원천이 없다나요.

 

국수 죽 끓이면 명절인 듯싶어

 

먹을 것이 있으면 낳지 말래도 귀여운 아기를 안아보고 싶은 욕망이 우리 여자들의 본성일진대, 돼지나 토끼처럼 낳으라 해서 낳는 것이 아니지 않아요. 장사가 좀 괜찮은 날에는 제일 식량보탬이 되는 국수 한 타래씩 사가지고 들어왔는데 그런 날은 시래기를 삶아서 국수를 뜯어넣고 국수죽을 쒀 먹는 것이 큰 명절인 듯싶었어요.

 

어린 딸은 먹여주니 해죽해죽 웃고 시부모님들은 괜히 좋아 서성거렸지요. 하지만 이런 날이 한 달에 한두 번도 있을까 말까였지요. 집에서 괜찮다는 물건과 시아버지, 시어머니 그리고 나의 옷들을 차례차례 장마당에 내다 팔아도 겨우 몇 원밖에 손에 쥐지 못했지요. 다 팔아먹고 남은 것이 없는 집안은 썰렁하기 그지없었지요. 우린 때로 옷가지나 중국제 손톱칼, 연필 같은 것을 들고 농촌 마을에 가서 식량과 바꾸려고 이른 새벽 첫닭이 울기 전에 길을 떠나곤 하였어요. 농촌 사람들은 텃밭이나 농장의 옥수수를, 조금씩 집에 깔아둔 것이 있었어요.

 

대신 옷이나 신발, 아이들 연필 같은 것은 구할 데가 없어 우리 장사꾼들과 옥수수로 바꾸곤 하였지요. 30~40리의 길을 걸어 농민들이 밭일 나가기 전에 도착하면, 먹지 못한 배에서는 쪼르륵 소리만 나고 진땀만 바질바질 흘렀어요.

 

더욱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남이 아침도 먹기 전에 집 문고리를 잡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할 수 없었어요.

 

염치를 불구하고 문을 두드리면 집안에서 어떤 주인들은 시끄럽다고, 옥수수가 없다고 소리를 치며 욕을 해댔어요.

 

무산군의 20개 정도 되는 里(리) 농촌 마을의 어느 구석에나, 하루에도 몇 번씩 장사꾼들이 돌아다니니 그들도 짜증을 내는 것이 당연했어요.

 

온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돌아, 겨우 물건과 바꾼 식량이 반 배낭 정도 되면 그날은 얼마나 기쁜지 몰랐어요. 이 정도면 한 달은 살 수 있기 때문이에요.

 

아마 지금 우리가 이국땅에서 좋은 집 한 채를 공짜로 가진 것보다 더 기쁜 심정이었어요. 힘든 줄을 모르고 집 식구들이 손꼽아 기다릴 생각을 하면서 모두 쉬지도 않고 30리 길을 다시 걸어 나는 듯이 집으로 가곤 했지요.

 

모두 힘들이 어디서 나는지, 지금의 중국처럼 먹었으면 북한 여자들도 소와 씨름하래도 할 거예요. 하루는 몇몇 아줌마들과 신아산이라는 농촌 마을에 낟알 구입을 가는데 중간에서 순찰대들이 나타나는 것이었어요.

 

순찰대라는 거는 郡(군) 안전부에서 사회 건달꾼 같은 청년들을 모집해, 非(비) 사회주의 요소를 통제한다는 구실로 만든 폭력단체예요.

 

우리와 마주친 이들은 배낭 안에 무엇이 있는가 보자고 하였어요. 한 아줌마가 별것이 없다고, 집에서 이불 겉과 입던 옷가지 몇 개를 넣었다고 했더니, 무작정 내려 놓으라는 것이었어요. 그 아줌마의 이불 홑청은, 시집올 때 중국 이모님이 해준 것인데 중국 이불 등이었어요. 그것을 본 순찰대는 이런 것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니 중국쪽과 연계가 있는 밀수꾼이 아니냐고 다그쳐 물었어요.

 

잇달아 우리 일행의 배낭을 모두 풀어본 이들은 非사회주의 물건이라면서 안가겠다는 우리의 엉치와 허리를 마구 차며 郡 안전부로 몰고 갔어요.

 

郡 안전부에 가니 안전원 3명이 우리의 입던 옷가지나 이불 등, 중국연필, 학습장을 넣은 배낭을 모두 회수하며 사회주의를 더럽히는 장사를 한다고 고아댔어요. 억지다짐으로 우리 물건을 빼앗아 자기들이 가지려는 심보를 너무나 잘아는 우리는, 옷이 모두 非사회주의면 벗고 다니라는 게 사회주의인가고 들이댔어요. 지금 북한에서 안전원이나 순찰대라면 모두 멀리서부터 피하곤 해요. 마주치면 장군님의 사상을 집행하는 법관이라고, 마구 빼앗고 큰 소리 치거든요.

 

또 외국제라는 것이 눈에 띄기만 하면 아예 야단을 치지요. 입은 옷에 조그만한 외국제 광고나 상표가 붙은 것을 보면 큰 범죄라도 잡은 듯이 붙잡기도 하구요. 그래서 주민들이 입고 다니는 옷은 분명 모두 중국제인데 상표는 다 뜯어버려 어디에서 만든 것인지 몰라요.

 

또 무산땅에 많이 나오는 중국 사람들이 들어 있는 친척집들에서는 입고 있는 옷에 그림과 글줄이 씌어 있는 것 때문에 골탕을 먹어요.

 

안전원들이나 郡黨 일꾼들, 보위원들, 하여튼 입 가진 사람, 권력 있는 사람은 다 달라붙어 못살게 굴지요. 해괴망칙한 옷을 입고 다니면서 옆 사람들에게 자본주의 황색 바람을 불어넣는다는 것이었어요.

 

시체로 나뒹군 장마당의 오누이

 

그때마다 주인집들에서는 郡黨에 불려가 눈이 쑥 빠지게 욕을 먹으며 사상적으로 자신을 튼튼히 무장하지 못했다는 자기 비판, 또 주민들의 상호 비판을 받아야 하지요. 때로는 혁명사상 학습을 郡黨에 가서 3일 동안 하며 당정책 교양도 받고요. 옷도 아무 글자, 아무 그림도 없이 입고 다녀야 하고, 직장회의, 인민반 회의들을 통해 비판 속에서 서로 물고 뜯기를 하며 살아야 하는 게 우리 실정이었어요.

 

게다가 식량난에 조금이라도 움직일 줄 모르는 사람들은 뻥뻥 나가 넘어져 죽어야만 하는 세월이었어요. 그러니 사람들의 마음은 하루도 편할 새 없고, 모두 눈치만 슬슬 보는 답답한 형편이었어요.

 

1998년 8월경 무산읍 장마당에서 하루는 서너 살 되는 남자애와 여섯 살 되는 여자애가 잉잉 울고 있었어요. 이 애들의 아버지는 며칠 전에 굶어죽고, 식량 구입을 떠난 엄마는 석 달이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었어요.

 

애들의 처지는 정말로 보기 가련했어요. 하지만 누구나 쪼들리는 식량난에 자기 자식도 먹여 살리기 힘든 세월이어서, 말로는 동정을 표시하지만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 다음날부터 애들이 장마당에서 며칠동안 빌어먹으며 서성거리더니 보름 후에는 시체로 나뒹굴고 말았지요.

 

우리 마을에 금주라고 하는 아이(14세)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11세)이 있었지요. 그의 어머니는 불구자였어요.

 

아버지는 일년 전에 굶어죽고 셋이서 함께 살았어요. 팔다리가 제대로 있는 사람들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서, 불구자인 여자가 아이들을 둘씩 데리고 산다는 것이 보통이 아니었어요. 이 집 형편은 죽물도 없어 매일 굶다시피 하며 겨우겨우 목숨을 유지하는 눈뜨고 보지 못할 상황이었지요. 한때 큰아이는 학교에서 서클을 잘해 소문이 자자하고, 어린 여동생은 예쁘게 생겨 보는 사람마다 귀여워했어요.

 

그러나 식량난으로 두 아이는 학교도 가지 못하고 집에 땔 것이 없어 산에 나무하러 어른들을 따라 다니고, 산나물 뜯으러도 같이 다니곤 하였어요. 어머니가 불구자다 보니 어찌할 방법이 없었거든요.

 

어린 것들을 먹이지도 못하고 산에 보내놓고 엄마는 내내 집에서 소리내어 엉엉 울기만 하였어요. 그리고 가슴이 아파 자꾸만 까무러쳤어요.

 

아이들 중국 보내고 자살한 불구 여인

 

하루는 나에게 그의 엄마가 앉아서 가만히 귀에 대고 말하는 것이었어요. 이렇게 먹이지도 못하고 자식을 고생시키고 어떻게 살겠는가, 아이들을 중국에서 데려가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아이들이 고생하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아이들을 보내고 자기는 죽겠다고 하는 것이었어요. 자기 자식을 귀해 하지 않고 남에게 줄 부모가 어디에 있겠어요. 하지만 그 길이 자식을 굶어죽이지 않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보내는 현상이 있는 거지요.

 

그후 이 불구자 여인은 끝내 아이들을 중국 장사꾼들에게 넘기고 자기는 쥐약을 먹고 자살했어요. 참으로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현실이, 우리가 살던 무산군 내에서만도 매일 벌어지곤 하였어요.

 

우리 가정도 더는 팔아먹을 것도 없고 견디기 어려웠지요. 이대로 몇 달 못 견디다가 앉아서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지요. 우리집뿐 아니라 다른 집들도 말할 나위가 없었어요. 그러나 郡黨 가족과 안전부 가족들은 배급을 타고, 또한 가족분조 농사를 한다면서 농사를 실컷 지어서 자기들의 배를 채우고 있었어요.

 

아무리 펄럭거려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 생활 실정이니 자연히 주민들은 무산 건너편 중국땅에 환상을 품게 되었어요.

 

장마당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은, 어떤 가정들에서는 중국에 친척이 있어 지원을 받아 배고픔을 면하고 산다는 말, 脫北하여 중국에 들어가면 먹고 살 수는 있다는 말들뿐이었어요. 내가 사는 마을에도 혹시나 기대를 가지고, 중국에 떠나 보자고 서두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몇년 전부터 脫北하거나 중국 친척에게 갔다온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많이 나왔거든요.

 

나도 시부모님들한테서 먼 6촌뻘이 되는 친척이, 중국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네 아주머니들과 같이 떠나기로 하였어요. 막상 떠나자고 보니 돈이 한푼도 없어, 몰래 두만강을 넘기는 곤란했어요. 가정에서 토의하고 떠나는 날 시어머니가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겨우 돈 30원을 꾸어가지고 왔어요. 그 돈으로 시어머니가 빵을 6개 사서 배낭 속에 넣어주더군요. 그러면서 꼭 식량을

 

해결할 돈을 벌어오라고 당부했어요.

 

나는 매일과 같이 시래기죽을 먹으며 사는 딸의 모습이 언뜻 떠올라, 배낭 속에서 도중 먹을 식사빵 두 개를 꺼내어 어린딸에게 주었어요.

 

정작 집을 떠나자니 마음이 허전했어요. 갔다 오자면 한 달이 걸리겠는지 두 달이 걸리겠는지, 기약 없는 초행길에 나서니 눈물이 앞을 가렸지요. 내가 없는 사이에 시부모님과 어린 딸이 어떻게 지낼까 하는 생각에 어린 딸애를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시부모님들도 서러워 소리내어 울더군요.

『엄마 가지마』 하면서 나의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는 딸을, 나는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마음을 굳게 먹고 떠날 준비를 하였어요.

 

시아버지는 누가 오라는 길도 아닌 길을 떠나는데, 내가 너를 다시 보겠는가 하면서 통곡하였어요. 내가 떠나는 날이 마침 시아버지의 생일날이 될 줄 어찌 알았겠어요. 나는 배낭 속에서 빵을 두 개 꺼내 시어머니에게 넘겨주면서 내가 집 문을 나선 다음 아버님에게 대접하라고 일렀어요.

 

난생 처음 눈물을 줄줄 흘리던 그때 광경이 지금도 잊혀지질 않아요. 아이의 울음소리는 처량하게 멀리까지 들려오지만 나는 마음을 다잡고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脫北의 길에 올랐지요. 두만강을 넘자면 연사군 쪽으로 올라가 중국 화룡에 있는 친척들을 만나야 했지요. 거기까지 2백리 길을 산길을 타고 걷자니, 쇠약해진 몸에 제대로 먹은 것도 없었으니, 앞이 캄캄해 걸음걸이가 제대로 되지 않았어요.

 

동네 아줌마들이 말하는 것이 근 이틀만에야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것이었어요. 가던 도중 모두 모여 앉아 식사를 꺼내는 데 누구나 할 것 없이 옥수수빵 아니면 풀떡에 된장덩이뿐이었어요. 집에서 모두 이런 것도 먹지 못하고 눈이 까매서 기다릴 생각을 하니, 모두 목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하나같이 말하더군요.

 

나도 집에서 손꼽아 기다릴 어린 딸과 시부모님들 생각에 힘든 줄을 모르고 걷고 또 걸었어요. 도착하니 우린 마치 중국땅에 다 들어선 것만 같은 기분이었어요. 이때가 1999년 4월이었어요.

 

아줌마들의 渡江

 

함경북도 연사군 삼봉리에는 마침 저와 같이 동행한 언니의 친척이, 농사를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집이 있었어요. 우리는 그 집에 유숙하면서 중국에 연락하여 두만강 건널 돈을 보탬받아 경비병들에게 주고 두만강을 넘기로 작정했어요.

 

그래서 매일 두만강 교두에 나가 중국 친척들한테서 소식이 있는가를 기다렸어요. 연사군과 중국 화룡 간의 다리를 놓은 세관에는 중국 쪽에서 소식이 없겠는가 기다리는 사람들이 형편없이 많더군요. 같이 떠난 아줌마들 중 나와 한 아줌마가 중국 친척과 연줄이 있어 방도를 취해보기로 한 걸음이니 모두 우리 얼굴만 쳐다보았지요.

 

그런데 중국 쪽에 연락한 지 10일이 지났는데도 우리 소식을 전달했다는 소식뿐 답변은 없었어요. 그동안 남의 집에서 자면서 하루 한 끼씩 죽이라도 얻어먹는다는 것이 정말 굶기보다도 힘든 일이었어요. 그래서 그집 청소도 해주고 텃밭도 가꾸어주면서, 먹을 수 있는 풀은 다 뜯어, 일행이 아예 바깥에 가마를 따로 걸어놓고 우려먹곤 하였지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타깝게 마음을 졸이던 어느 날, 이런 말이 들렸어요.

 

중국 친척들을 기다리는 편보다, 목숨 걸고서라도 강을 건너가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었어요. 또 넘어갔다온 사람들이 하는 말이 실상 넘어가니, 중국 친척들도 생활이 넉넉지 못해 반가워하지 않는다고 이러저러한 소리를 많이 하였어요. 이 소리를 듣고 같이 왔던 아줌마들은 우리도 한번 붙잡혀 곤경을 치를 셈치고 강을 넘어가자고 하였어요. 처음에는 황당하고 뗑하였어요. 하지만 굶어죽기보다는 낫다고 모두 말하여, 빈손으로 돌아가겠는가 하는 그 기세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빈 손으로 돌아가면 집에서 손꼽아 기다리실 시부모님들과 딸 생각을 하니 순식간에 공포증도 없어졌어요. 하여 새벽 2시경에 아줌마들과 함께, 강을 건너기 위해 둑에 다가섰지요. 기어 다니는 훈련을 받지 못한 아줌마들이, 엉치를 하늘 공중에 쳐들고 모두 살살 기어 두만강 옆에 다가섰을 때였어요.

 

2m나 겨우 될 앞쪽 수풀 속에서 개털 외투를 뒤집어쓴 보초병이 벌떡 일어서더니 그 자리에서 오줌을 실실 싸는 것이었어요.

 

너무나도 놀란 우리는 숨이 다 넘어갈 지경이었어요. 한 아줌마는 이때 너무 놀라 아랫도리에 오줌까지 질질 흘렸대요. 오줌싼 보초병이 몸을 으시시 떨면서 추운지 멀리 있는 보초막으로 어슬렁어슬렁 가더군요.

 

때가 되었다 생각한 우리 일행은 부들부들 떨리는 가슴을 붙들고 강에 들어섰어요. 봄 날씨에 두만강물은 가슴까지 차더군요.

 

헤엄도 칠 줄 모르는 여자들이 서로 손목을 꼭 잡고,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고 위로하였지요. 다행히 강물은 키를 넘지 않아 무사히 건널 수 있었어요. 중국쪽 강둑을 넘은 우리 일행은, 중국쪽 경비병들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동서남북도 모르는 낯선 길을, 정신없이 내달렸어요. 한참 달리는데 문득 앞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얼핏 보였어요.

 

평양보다도 더 멋있던 연길

 

군복 입은 모습을 보니 틀림없이 중국쪽 경비병 같았어요. 우린 땅에 납작 엎드려 15분 정도 숨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머리를 땅에 틀어박은 채 이젠 끝장이구나 하고 죽은 듯이 엎드려만 있었어요. 하늘이 도왔는지 마침 그는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가 버렸어요. 우리는 다시 일어나 이렇게 모두 합쳐다니면, 중국 쪽에서 잡힐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제각기 행동하자고 약속하였어요.

 

그리고 며칠날에 강변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헤어졌지요. 나의 친척집은 거기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었어요. 나는 나의 동무를 한 명 데리고 그 집에 찾아 들어갔어요. 갑자기 들어서니 친척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나를 붙잡고 울기만 하였어요. 조선에서 다 굶어죽는다던데, 그래도 너희들은 살았구나 하면서 반가워하였어요. 나는 친척집 언니에게 같이 온 아줌마의 친척집 주소를 대주어 친척집에 전화로 알려 데려가게끔 하여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리고 언니에게 우리가 오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였지요.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언니는 친척들하고 토론하여, 지원물자를 보내주겠으니, 나는 남아서 중국에서 살라고 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면서 조선 여자들이 지금 대다수가 중국에 들어왔다가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나는 언니에게 아무리 험한 길이라도 시부모님과 아이를 생각하여 꼭 가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러자 언니는 그 잘난 데는 무슨 미련이 있어 다시 가겠는가 하며, 나를 보내지 못하겠다고 하더군요. 북한 형편이 나아질 때까지 기다리며 살라는 것이었지요. 이렇게 여러 날이 지나가고 점차 나의 마음속에는 거기에 나가 굶어죽기보다도 남아서 조금씩 벌어 시부모님들과 딸에게 보태어 주는 것이 옳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니는 나에게 눈을 띄워주어야 하겠다면서, 연길 시내에 데리고 나갔어요. 중국은 얼마나 황홀하고 희한한 모습인지, 입을 딱 벌릴 지경이었어요. 평양보다도 더 멋있더군요. 정말로 눈 아프게 자극하는 것이 많았어요. 북한에서는 보지도, 먹어보지도 못한 숱한 희귀한 물건들이 상점마다 차고 넘치고 거리에는 승용차가 꼬리를 물고 다녔어요. 상점마다 꽈배기, 빵, 이름도 알지 못할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차 있었고 집집마다 웃음소리가 가득 넘쳤어요.

 

정말로 이게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구나 하는 느낌이 순간순간마다 드는 곳이었어요. 한편 언니네 집에서 푸짐한 음식상을 차려놓을 때면, 조금 먹다가 나와서는 굶고 있을 어린 딸과 시부모님들 때문에 목이 메어 울었어요. 쌀밥을 먹어도 모래알을 씹는 것 같았고, 그 무엇이든지 먹기 전에 그 생각부터 나는 걸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럴 때면 언니와 친척들은 같이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위로하곤 하였어요.

 

漢族에게 억지 시집간 脫北 주부

 

북한의 실정을 다 알고, 집 형편도 다 아는 나로서는 단 한순간도 편안한 마음으로 있을 수 없었어요. 나는 연변 친척집에 보름 정도 있는 기간에도 많은 북한 사람들이 건너온 것을 보았어요. 우리 언니의 사돈 된다는 집에도, 30세 가량 되는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래서 언니와 함께 그 여자를 찾아갔었지요. 같은 동포 여자로서 서로 동정심이 통하여 마음이라도 터놓고 말을 나누자고 찾아가보니 정말로 불쌍하더군요. 함경북도 청진에서 왔다는데, 남편은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다리를 다쳐 앉은뱅이가 되었다는 것이었어요.

 

매일 남편이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팔곤 하여 풀죽이라도 먹고 살았는데, 남편이 불구가 되다보니 먹을 것은 떨어져 끝내 남편은 굶어죽었다더군요. 어린아이마저 굶어죽일 것 같아 두만강 옆에 살고 있는 언니네 집에 찾아갔는데, 언니네 부부는 농사일을 하여 겨우 생활을 유지하는 형편이었다고 해요.

 

언니네 집에서 하루 이틀도 아닌 여러 날을 있는다는 것도 말이 아니였고, 아저씨 보기가 미안하고 넉넉지 못한 언니네 살림을 더욱 쪼들리게 만드는 감을 주었다고 해요. 그래서 생각다 못해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이, 중국으로 먹을 것을 찾아 강을 넘어간다는 소리를 듣고, 언니와 상의하여 강을 넘었다는 것이었어요. 며칠 후 이 아줌마는 가기도 싫은 중국 漢族(한족) 사람한테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보기에도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게 불쌍했어요.

 

중국 공안의 숙박검열 피해 언니 집 떠나

 

나는 연변에서 북한 여자들을 많이 보았어요. 脫北 남자들보다는 넘어오면 환영을 받지만, 인차 인신매매나 시집을 가게 되지요. 그저 잘 팔리는 상품과 같지요. 남자들은 팔리지 않는 상품이구요. 내가 있는 기간에도 북한 사람들을 잡아 내간다고, 중국 공안대들이 수십 차례씩 숙박 검열을 하러 다니더군요. 그때마다 나는 언니가 김칫독 아니면, 석탄 창고에 숨겨주어 위험을 모면하곤 하였어요. 이런 정황에서 나는 언니네 집에 더 있을 수 없어, 어느 한 집의 식모로 소개받아 들어가게 되었어요.

 

농기구를 수리하는 자그마한 공장을 차려놓은 집이었어요. 이곳에 도착하여 남모를 사람들과 함께 지내자니 시부모님과 딸 생각으로 가슴이 미어져, 두만강 쪽을 바라보며 목놓아 울고 또 울었어요. 울어봐야 소용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굳게 먹으니 좀 마음이 안착되었어요. 이곳에서는 한창 새 농사를 짓느라고 바삐 돌고 있었어요. 나도 주인집의 일을 힘껏 하였어요.

 

몇 달을 살다보니, 나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 친숙해졌어요. 알고 보니 내가 있는 농촌 부락에만도, 이곳 농촌 총각들에게 시집을 온 북한 여자들이 15명이나 있더군요. 동포 여자들을 만나니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어요. 서로 마음을 터놓고 자기가 북한에서 고생스럽게 살던 생활과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생활을 죄다 이야기 나누곤 하였지요.

 

그들의 이야기는 기가 막히더군요. 그들이 남을 따라올 때는 내막을 모르고 왔었는데 와 보니 현실은 막막했어요. 알고보니 서른 살이 넘도록 돈이 없어, 장가를 가지 못한 노총각들이 남의 돈을 꾸어 여자를 사왔다는 것이었어요. 결국은 팔려온 것이지요. 자기 입이나 겨우 건사할 정도의 이런 형편에서, 두고온 남편과 아이를 구제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북한 여자들이 생각다 못해 몇 달씩 살아보고는 달아나는 일이 종종 벌어졌어요. 살아보았댔자 남의 돈을 꾸어 여자를 사온 살림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지요. 脫北한 여자들의 욕심은 돈을 좀 만들어, 고향에, 자식에게 지원하자는 것이었는데 그 일이 안되니 달아날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고달픈 하루를 지내고 있으면서 언제나 근심거리는, 공안국에서 언제 붙잡으러 들이닥치는가 항상 신경을 도사리는 거예요. 나 역시 그런 경우를 여러 번 목격하였어요. 우리 공장에 모터사이클을 수리하러온 경찰들을 보면, 저도 몰래 놀라서 온몸을 떨곤 하였지요. 그래서 뒤창문으로 냅다 뛰어 볏짚 낟가리 같은 곳에 숨은 적도 열댓 번은 될 거예요. 그러다보니 잘 먹으면 살이 오를 것 같은 이국땅에 와서도, 체중은 내려가 우리 여자들 모두가 바짝 여위어 있는 게 특징이에요. 고마운 것은 여기 중국 조선족 사람들이 공안국에서 무슨 검열을 내려오면 우리에게 먼저 알려주거나 피하게 해주는 것이었어요.

 

중국에 들어와 돈 버는 일은 헐하지 않아요. 내가 맡은 식모 일도 크고 작은 집안의 일을 죄다 맡아 하고, 밀린 공장 일을 도와주며 주인집 식사와 노동자들의 식사까지 다 보장하여야 하였어요.

 

그러다보니 하루 한 시간도 편히 자리에 앉을 시간이 없이 팽이처럼 돌아쳐야 했어요. 여기 중국은 북한보다 일이 세고 힘들어요. 원인은 여긴 개인도급제니까 많이 벌어 잘 살자는 거고, 북한은 집체니까 대충 일해 시간이나 채우는 데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데서 중국 여자들보다 일을 두세 배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국적도 없는 우리가 여기저기 쫓겨다닐 데도 없거든요.

 

정말 괴벽한 성미인 주인집 내외와 아들애들의 비위를 맞추며 살자니 저절로 눈물이 날 때도 많았어요. 거기에다가 처음 계약한 노임의 절반도 주지 않아 운 적은 얼마라구요. 중국에 들어온 지 다섯 달만에 드디어 나는 그동안 번 돈으로 북한쪽에 들어가는 중국 조선족 사람한테 부탁하여 얼마간의 돈을 보내게 되었어요. 그 사람한테서 딸과 시부모님들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자, 그날 밤 나는 너무 기쁘고 그리워 밤새껏 논밭에 나가 울어봤어요. 이게 보람이로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어요.

 

나뿐만 아니라 북한 여자들의 제일 애로점은 중국말을 몰라 애를 먹는 것이에요. 더욱이 漢族 남자들에게 시집을 간 여자들의 말을 들으면 듣기 거북스러운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대요.

 

둘 다 사는 게 마치 벙어리 집안 같대요. 좋은 말을 해도 나쁜 말을 하는가 해서 서로 눈치만 본대요. 성미가 마른 어떤 漢族 남자들은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때리기만 하면서 짐승 다루듯 한대요.

 

거리에 나서도 말을 몰라 머뭇거리고, 자기를 욕해도 모르지만, 굶어죽을 걱정 하나는 없는 중국땅은 북한보다 몇십 배나 나은 땅이었어요.

 

아이를 데려오려면 중국돈 2천원 정도 내야

 

나는 이곳 사람들의 동정 속에 열심히 일하였어요. 바삐 일하는 것으로 모든 아픔을 다 잊으려구요. 하지만 매일과 같이 눈앞에는 어린 딸의 모습이 안겨왔고, 밥상에 앉으면 죽물도 없어서, 먹지 못해 돌아칠 딸이 몹시 그리웠어요. 내가 눈물을 흘리면 마음씨 고운 동네 아줌마들이나, 주인집 마누라는 나를 위로해 주고, 앞으로 기회를 보아 딸을 데려오자고 이야기했어요.

 

거리에 나서면 어린아이들의 모습에, 딸의 모습이 대조되어 안겨왔고, 상점과 시장에 가서 고운 옷들을 볼 때면, 더욱 생각이 나 가슴이 아팠어요. 상점에 사탕과 과자 등 갖가지 희귀한 간식을 볼 때면 엄마 손을 잡고 그곳 장마당에서 사달라고 애원하던 모습이 떠오르곤 하였어요. 잠자리에 혼자 누우면 마음이 허전하여, 딸애를 한 번 실컷 안아보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미어지고, 엄마 소리를 한 번만이라도 들어보고 싶었어요.

 

그후 나는 사람들로부터 연변에서 돈을 대주면 북한에 들어가 사람을 데려다 준다는 희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두만강 국경지역에 사는 중국 조선족들의 일종의 돈벌이지만, 脫北者들에겐 정말 반가운 일이었어요. 그후부터 나는 아이를 데려와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생각을 줄곧 하게 되었어요. 이따금씩 몸이 아팠지만 참고 일어나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하였어요.

 

脫北者들의 경우 글과 말이 통하지 않아 일체 기업소들에서는 일할 수 없지요. 잘 해야 식모자리나 식당일이 있는데 이런 것도 차려지기가 쉽지 않아요. 또 노임도 중국 여자들과 똑같게 주지 않고 절반 정도 주지요. 그러니 아무리 악을 쓰고 벌어도 자기가 먹고 나면 한 달에 3백원도 손에 쥐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아이를 데려오려면 2천원 정도 내라 하니 일년 일해야 벌 돈이지요. 직업도 일자리도 고정자리가 아니니 조금만 주인들의 비위를 거슬렸다간 떨려나지요.

 

지금 脫北 여자들의 경우 거의가 다 어린 자식들을 남편에게나 부모님들에게 맡기고 들어왔어요. 생사를 기약할 길 없는 脫北길에 잡혀도 자기 혼자 잡히고, 이국땅을 헤매도 자기 혼자 헤매야 한다는 타산 때문에, 혼자 몸으로 이국땅에 와 있는 거예요. 그러니 무덤이 높은 이국땅의 쌀밥이래도, 두고온 자식과 남편 때문에 살로 갈 수가 없지요. 여기서 저 혼자 먹으며 죽지 않고 살 생각만 한다면 그게 무슨 부모겠어요. 그런 부모도 세상에 없구요.

 

이 심정을 무정한 중국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해요. 그저 저한테 시집와서 살고 있으니까, 좋아서 같이 자는가 생각하는데 이들을 어루만지고 위해줄 방법을 대지 않거든요. 지금 돈을 가진 가정도 유지하기가 헐하지 않는 데 원인이 있겠지만, 조금만 떼내어 북한에 지원해 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숱한 북한 여자들이 중국에 넘어왔지만 북한에 돈이나 식량이 넘어가는 실례는 극히 적어요. 그 때문에 돈으로 사온 북한 여자가 달아나고, 漢族 남자들이 다시 홀아비 신세가 되는 건 자기 책임이지요. 그러고도 지금 중국 조선족 사회에서는 북한 여자들이 시집왔다가는 달아난다고 하여 몸값이 7천원 정도 하던 것이 3천원까지 떨어졌어요.

 

우리가 상품은 아니지만 이런 인신매매는 생소한 이국땅에서 어쩔 수 없이 당하곤 해요.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왔다는 김씨라고 부르는 38세 된 아줌마는 16세 되는 처녀애를 데리고 들어왔어요. 공부를 시키자니 돈은 한푼도 없지, 먹고 살아갈 길은 막막하여 한숨만 쉬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 누군가 찾아와 딸을, 닭 기르는 곳에 보내 부업을 시키지 않겠는가고 물었어요. 닭 사양공으로 일을 시키고 먹여주겠다고 하는 것이었지요. 아줌마는 아직 일할 나이도 안된 어린 딸을 차마 일 시키겠다고 못하였어요. 옆에서들 공부도 못 시키고 잘 먹이지도 못할 바엔 그집에 보내 먹는 것도 낫게 먹고, 돈도 버는 편이 낫다고 말들을 하였어요. 아줌마는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보내게 되었어요. 그런데 데려간 처녀애를 어떻게 구슬렸는지, 그 애가 40세 된 그 집 주인 동생 홀아비와 같이 살겠다고 나섰어요.

 

엄마가 속상해 말렸지만 딸은 이미 임신했고 홀아비는 버젓한 신랑처럼 예물까지 들고 나타났어요. 돈은 좀 있는 사람이었어요. 결국은 승낙되었고 홀아비는 또 수단을 부려 엄마를 제 집에 끌어들였지요. 북한 여자들 덕분에 엄마와 딸을 데리고 살게 되었어요. 이따금씩 우리는 북한 여자들이 농촌마을의 볏짚 낟가리 옆에서나, 담장구석 쪽에서 홀로 우는 것을 자주 목격하곤 해요.

 

脫北 어린이들의 꿈

 

30세 되는 미숙이라는 한 여자는 1999년 11월 주변 사람들이 볼까봐 밭 한가운데서 정신없이 울고 있었어요. 마침 내가 강변에 빨래하러 나가던 길에 그 아줌마를 보고 무슨 영문인가고 물었어요. 혹시 남편하고 다툼질이나 하지 않았는가 했더니 그 사연은 아니었어요. 그녀의 남편은 중국에서 만난 45세의 홀아비였어요. 새로 만난 남편은 마음씨는 고운데 가난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며, 한숨만 쉰대요.

 

그녀는 오늘이 북한에 두고온 제 딸의 생일이라면서, 어디 가서 굶어죽지나 않았는지, 엄마가 쌀을 많이 구해 가지고 온다고 약속을 하고 헤어졌는데, 2년이 되어도 속수무책인 자기의 처지가 안타까워 운다고 했어요. 우리 모두 같은 처지인 이 현실 앞에 북한의 처사는 정말 非인간적임을 느끼게 돼요. 쌀 얻으러 떠난 주민들을 다시 들어가지도 못하게 만드는 북한은 언제 가면 처벌정책을 바꾸겠는지 안타깝기만 해요.

 

북한에서 부모를 따라 脫北하여 중국에 들어온 아이들 역시 불쌍한 처지에 있어요. 다른 아이들처럼 고운 옷들을 입고 학교에 다니고 싶은 그들의 바람이야 오죽 크겠나요. 하지만 학비가 많이 들고, 호적을 내야 하니 공부시키기가 여간 힘들지 않지요. 호적은 없어도 돈이 있으면 공부를 시켜주긴 하는데 밥이나 겨우 먹고사는 그들의 처지에 꿈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脫北 어린이들이 주변에서 한국의 고마운 기독교 목사님들의 후원을 받아 공부하고 있는 일이 많아요. 북한의 하나님이라는 지도자들은 이 어린이들을 공부 못 시키고 굶어죽일 처지로까지 이끌었지만, 기독교의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버려진 이들을 이국땅에서까지 공부하게 만들고 있어요.

 

이 아이들은 후에 커서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 하나님의 제자가 꼭 될 거예요. 연변에서 돈을 주면 아이들을 데려다 준다는 희망은 나뿐만 아니라 중국에 들어와 있는 모든 脫北 여자들의 꿈이고 희망이었어요. 그래서 모두 손에 돈을 쥐지 못해 안달하지요. 몇 달간의 식모살이는 내게 한 달에 2백50원씩 쥐여줬어요. 꼭 쓸 데에 조금씩 쓰고 나도 많이 축가더군요.

 

한국 선생님

 

식모살이도 일년 내내 하는 고정직업이 아니어서, 농사철 같은 바쁜 시기에만 차려졌지요. 할 수 없이 식당일, 삯빨래일, 벼가을추수 같은 일을 닥치는 대로 찾아 했어요. 손에 돈을 쥐는 일이 너무나 힘들어, 우리 脫北 여자들은 마주서면 걱정어린 말들만 주고 받았어요. 빨리 통일이나 되어야 아이들을 자기 품에 안아 보겠다고 그날을 기다리자니 모두 命(명)이 짧아지는 것 같다고 수심만 얼굴에 잔뜩 가졌어요.

 

이렇게 시름에 찬 나날을 보내고 있던 나는 우연히 인생의 큰 은인 한 분을 만나게 되었어요. 지금도 그때 일을 더듬으면 꿈인 듯싶었고 모든 일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예요.

 

글쎄 우리 마을에 한국에서 손님 한 분이 왔었는데 옆 사람들이 내가 고생하던 일, 아이 생각으로 매일과 같이 눈물을 흘리던 일들을 숨김없이 이야기해줬어요. 그 한국 선생님은 내가 겪고 있는 가슴 아픈 사연을 다 듣고 한국에 가서 꼭 도와주겠다고, 맥을 버리지 말고 굳세게 살라고 위로해 주었어요.

 

처음에 한국에서 온 사람이라 하면, 북한과는 대비할 바가 못되고, 중국보다도 더 잘 사는 나라에서 온 손님이니 서먹서먹했어요. 그런데 대해 보니 어찌나 겸손하고 인정이 있는지, 조금도 그런 티를 내지 않더군요. 우리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처럼 생각하면서, 틀을 차리거나 간격을 두지 않았어요. 정말 만나 보니 한민족, 한겨레가 옳았어요.

 

후에 도와주겠다고 한 약속을 남긴 채 선생님은 떠나셨지요. 과연 얼마 되지 않아 현금이 나에게 도착되었어요. 나는 꿈인 듯싶었어요. 나의 일생에 이런 희한한 일도 있는가 싶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지요. 너무너무 감사하여 나는 전화로 그 한국 선생님을 찾아 인사드렸지요. 『꼭 아이를 데려다가 같이 사세요!』하고 인간의 정이 듬뿍 넘치는 말씀을 주셨어요.

 

나는 곧 한국에서 보내준 돈을 가지고 두만강 국경지역 조선족들과 연계를 취했어요. 그랬더니 한 아저씨가 나서며 우리 딸을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했어요. 그 아저씨가 북한 국경통과 증명서를 넣으니 3일 만에 제꺽 나왔어요. 나는 그 아저씨에게 꼭 무사히 성공하여 돌아오라고 신신당부하였어요. 그리고 시부모님들께 올릴 선물도 마련하구요.

 

딸과의 상봉

 

그 아저씨는 근심놓고 기다리라고 하였어요. 나는 모든 일이 무사히 되어 꼭 귀여운 딸이 나의 품으로 돌아와 주기를 기원했어요. 이때 나는 아저씨를 북한에 보내놓고, 단 하룻밤도 잠들지 못했어요. 제발 하나님이 도와 모든 일이 무사히 되어, 나에게도 행운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지요. 손꼽아 기다리던 6일 만에 나는 아저씨에게서 무사히 아이를 데리고 도착하였다는 전화를 받았어요.

 

정말로 그때의 기쁨을 그 어디에 다 표현할 수 있었겠어요. 하늘 땅이 빙빙 돌아가며 나를 축하해 주는 것 같았고, 세상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어요. 나는 즉시 기차를 타고 그 아저씨네 집을 향해 떠났어요. 기차칸에서 얼마나 어린 딸의 생각을 하였는지, 목적지에 어떻게 도착했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나의 마음은 들떠 있었어요. 내가 집에 들어서니 뼈만 앙상하게 남은 어린 것이 손에 먹을 것을 쥐고 정신없이 먹어대고 있었어요. 나는 설움에 북받쳐 아이를 붙잡고 소리내어 엉엉 울었어요.

 

어린 것은 그때까지도 내가 낯이 익어보이는지 안고 있는 나의 품에서 떨어질 생각은 안하고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먹어대더군요. 나는 급히 상점에 뛰어가 먹을 것을 한 배낭 마구 사들였어요. 글쎄 딸애가 다 먹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동안 딸에게 못다준 것을 다하고 싶은 단순한 욕망 때문이었지요.

 

어린 딸애는 영양실조로 걸음걸이를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서로 떨어진 지 꼭 아홉 달이었는데 그동안 달라진 건 더 여위어진 모습에 비뚤어진 걸음걸이였어요. 한참 내가 안고 뒹굴며 낯을 익히니 그제야 어린 것은 엄마의 모습이 떠오르는지 빤히 쳐다보다가 『엄마』라고 부르며 나의 품에 안겼어요. 모성애가 뭔지, 아이를 낳아 길러본 여자들은 너무 잘 알겠지만 이 마음을 세상 남자들은 다 모를 거예요.

 

나는 그날 밤 아이 곁에서 한잠도 자지 못하며 가슴이 아파 지켜보고 또 지켜보곤 하였어요. 그리고 그 아저씨네 집식구들과 함께 아저씨로부터 우리 딸을 데려오던 이야기를 밤새껏 들었어요.

 

가죽 혁대 끓여 먹기도

 

<우리 집에서 무산으로 가자면 긴 노정을 돌아가야 했다. 11월10일 세관 교두를 건너 북한 삼봉역에 가보니 기차가 3일에 한 번씩 다니는데 삼봉리에서 3일간을 기다렸다. 역전에는 전깃불도 없어 항상 어두컴컴한 게, 임시 노가다판 같았다.

 

기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대합실 안에 꽉 들어차 땀내, 담배냄새가 코를 찔렀고, 난방장치도 없었다. 맨 콘크리트 바닥에 헌 배낭을 깔고 누워 있는 사람, 옥수수 배낭을 품에 꼭 안고 잃어버릴까봐 눈이 둥그레져 앉아 있는 아줌마들, 때없이 돌아치는 꽃제비 무리들에게 짐을 잃어 버렸다고 소리치는 사람, 땅바닥에 떨어진 음식찌꺼기를 주워먹는 어린이들, 정말로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로 기가 막힌 대합실 안의 광경이었다.

 

돈이 있는 덕에 나는 삼봉역 앞의 개인 여관에 들어갔다. 내가 중국 손님이라는 것을 안 주인 아줌마는 나의 돈을 빨아내느라, 옆집 앞집 처녀들까지 다 동원해 봉사해 주었다. 3일 만에 기차가 도착하였다. 기차가 도착하니 저마다 오르느라고 마구 밀고 닥쳤다. 모두 표범 같았다. 질서같은 건 생각할 여유도 없이 서로 잡아당기며 먼저 타겠노라 싸움질이었다. 그 통에 깔려 일어나지도 못하는 늙은이들의 비명소리, 어린아이들이 엄마를 찾는 소리, 여자들이 죽는다고 아우성치는 소리,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겨우 기차에 오르니 두 발을 땅에 디디고 설 자리조차 없었다. 변소에까지 사람이 가득 차 용변을 볼 형편도 못 되었다.

 

내가 탄 기차는 온성-평양행이었다. 이런 복잡한 열차를 타고 16시간 만에 겨우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중국 같으면 2시간이면 너끈히 기차가 달릴 길인데, 무슨 놈의 기차가 가다가는 서고, 역전도 아닌 산중턱 어디에나 마구 멈춰섰다.

 

전기가 부족해 정전이 되지 않으면, 전기 기관차의 힘이 모자라는 것이다. 집에 도착하여 보니 할아버지는 먹지 못하여 자리에 누워 있었는데 온몸이 부어 있었다. 어린아이는 먹지 못하여 온몸에 뼈만 앙상했고 제대로 걸음도 못 걸었다. 할머니는 내가 뜻밖에 도착한 것이 너무도 믿어지지 않아 그저 나를 붙잡고 반나절 넘게 울었다.

 

뜻밖의 며느리 소식이 꿈 같았던 것이다. 며느리가 중국으로 脫北한 뒤, 할머니 가정은 먹을 것이 없어 옛날 할아버지가 끼고 다니던 가죽 혁대까지 끓여먹으며 겨우겨우 목숨을 유지했다 한다. 그러던 것이 1999년 9월부터 감자배급을 좀 주어 하루에 한 사람이 한 알씩 풀과 섞어 삶아 먹으니, 아직까지 목숨이 붙어 있다고 하였다.

 

과연 도착하여 먹었다는 음식을 보니, 맨풀을 삶아놓고 옥수수 가루 한 두 숟가락 풀어놓은 풀죽이었다. 나에게는 보기만 하여도 끔찍한 구역질나는 음식이었다. 내가 가져간 중국빵과 사탕, 과자 같은 것을 내놓으니, 모두 선뜻 잡술 생각을 안했다. 왜 그러는가 물으니 풀에다 사탕 한 알씩 섞어 먹으면 목숨을 더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가 막혔다.

 

나는 늙은 내외를 진정시키고 내가 찾아온 사연을 자세히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면서 며느리가 보낸 중국돈 3백원도 꺼내주었다. 그러자 늙은이들은 중국에 들어간 아들도, 2년이 넘도록 아무 소식이 없는데 며느리가 1년도 안되는 기간에 벌써 이렇게 돈까지 받쳐 소식이 왔다며 감개무량해 하였다.

 

나는 이 돈들이 모두 한국의 어느 귀한 분에게서 도움받은 돈이라고 알려주었다. 늙은이들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다가 나의 설명을 듣고서야, 아무렴 한민족의 핏줄이야 어디 가겠는가고, 장담 어린 어조로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며느리에게서 부탁을 받고 아이를 데리러 왔다고 하자 늙은이들은 아이가 엄마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제 당장 눈을 감아도 원이 없다고 찬성하였다.

 

북한 안전원들의 눈에 띄면 재미없다는 것을 아는 나는 그 자리에서 어린아이를 안고 다시 기차에 올랐다. 무사히 삼봉역에 다시 도착한 나는, 내가 들어 있던 여관집 아줌마를 찾아 돈을 내놓으며 이 아이를 중국에 넘길 방도를 토론하였다. 돈을 받은 그 아줌마는 자신있다고 승낙한 후 이런 案(안)을 내놓았다.

 

삼봉리 주변에 배치되어 있는 경비대 군인들에게 현금을 주면 무엇이든지 문제가 없다. 현금은 중국돈으로 5백원을 그들에게 주면 된다. 군인들에게 담배공급도 하지 않고, 그저 통강냉이를 삶아주니, 굶주림에 허덕이는 군인들이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는다. 軍風(군풍)이 문란해서 중국술과 담배라면 오금을 못쓴다.

 

그러니 현재 이런 일이 있기를 경비 서는 군인들은 누구나 고대하고 있다. 겸사해서 중국 쪽에 넘어가겠다는 처녀들도 몇 명 있는데, 돈을 내놓고 데려가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한테는 중국돈 천원밖에 없어 그들까지 데려갈 수 없었다.

 

후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긴 나는, 아줌마의 알선으로 새벽녘에 강을 건너기로 계약을 맺었다. 두만강변 東(동)둑에서 밤새껏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이 가리키는 물골을 타고 중국 쪽에 무사히 다시 건너왔다.

 

그 아줌마에게서 말을 들으니, 현재 북한에서는 脫北현상을 대단히 엄하게 통제하고 있다. 1999년 7월 말에 있었던 일이다. 함경북도 온성군과 새별군, 종성군에서 중국 쪽으로 넘다가 붙잡힌 脫北者들과, 중국 연변에서 송환받은 脫北者들을 나진-원산행 열차에 싣고 청진으로 가고 있었다. 가던 도중 회령을 지나 고무산역에서, 죽기 살기로 도망치는 脫北者들에게 총질했는데 그 자리에서 40명 정도나 쏘아 죽였다고 한다.

 

이제는 脫北者들을 엄벌에 처하라는 金正日(김정일)의 직접적인 지시가 내려 잡으면 무조건 정치범 수용소에 넣으며, 가족들도 같이 보위부 관리소에 넣어 처형한다. 그러나 나는 중국 사람이기 때문에 붙잡히면 기껏해야 벌금이니 무서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딱 전쟁마당을 방불케 하는 북한의 현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먹을 것도 없고 차디찬 초겨울 날씨에 땔것이 없어 가는 집마다 얼음장같이 차디찬 집안에서 떨고 있는 이곳 주민들의 불쌍한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게다가 무서운 독재로 마음속마다 공포에 떨고 있고, 영양 실조로 얼굴은 누렇게 떠 있으니 그들이 살아 있는들 무슨 인간다운 맛이 있으랴…

 

아저씨에게서 북한의 가슴 아픈 현실을 전해듣는 나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쓰렸어요. 베갯잇으로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구요. 내가 고향을 떠나올 때처럼, 고향의 모습은 여전히 폐허와 고통의 지옥이었어요.

 

딸을 데리고 나는 열차를 탔어요. 세상에 먹을 것이 그렇게 많다는 것을 난생 처음 구경해보는 딸은 이것도 사달라 저것도 사달라 하면서, 먹을 것을 한 아름 안고 너무나 좋아 어쩔 줄 몰라했어요. 서른 살이 다 되도록 나도 이국땅에서 처음으로 먹을 것이 수백 가지가 넘는다는 것을 체험해 보았는데, 어린아이는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아이를 데리고 도착하니 벌써 온 마을에 소문이 났어요.

 

세상 福」나 혼자 차지한 듯

 

한국 사람이 돈을 줘서 데려온 아이라고, 희한한 설명까지 붙여졌거든요. 모두들 아이 간식을 사가지고, 너도나도 아이 구경을 왔어요. 그동안 살면서 舊面(구면)이 된 중국 조선족 사람들도 제 일처럼 기뻐하는데 脫北者들인 경우는 이 일이 하나의 특대 뉴스거리가 되었지요.

 

아이를 데리고 오지 못한 脫北 여자들은, 나의 손을 잡고 아이를 데려왔으니 얼마나 좋겠는가고, 이젠 시름을 놓고 살게 되었다고 두고온 자기 자식 생각에 모두 울면서 기뻐들 하였어요.

 

그들을 대하니 어쩐지 세상 복은 내가 다 차지한 것 같은 게 미안하더구만요. 그들의 심정도 나의 마음과 다를 바 없겠는데, 이런 땐 더욱 그들의 속에서 피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동네 사람들은 이제 나에게, 밥도 많이 먹고 아이를 위해 열심히 일하라고 고무해 주었어요. 고마웠어요. 이 딸이 나에게는 북한이고, 고향이며 혈육의 줄이니, 난 이 애를 위해 모든 걸 바치는게 의무로 되었지요.

 

그러니 비록 남의 집 식모로 눈치살이를 하면서 살지만, 어린 것을 나의 품에 데려왔으니 脫北한 내 처지에 무엇을 더 바라겠어요.

 

이제 이 애가 3년 후면 여기서 공부도 할 수 있게 온 힘을 다해 돈을 벌 생각이에요. 나의 인생에 이런 전환점이 있다는 건 어찌 보면 정말 잘된 일이었어요. 북한에 그냥 남아 있었댔자 이 애는 굶주림에 수시로 생명의 위협을 받거든요.

 

또 지금 북한 어린아이들이 배고픔에 쪼들리는 가난한 가정 생활에 눌려 공부를 못하니 어찌 3년 후라고 잘되겠나요. 우리 脫北者들은 그 사회에서 살아보았기에 북한의 앞날이 뻔히 보이는 것 같아요. 그 정치 그 제도에 자유를 눌리고, 배고픔에 부대끼다 보면 훗날 그 애들이 자라서 또 우리처럼 脫北의 길을 걸어야 할 거예요.

 

그러니 지금의 우리 부모들이 미리 脫北하여, 자식들의 생활을 마련해 준다면 미래는 그만큼 앞당겨질 것이 아니겠어요. 이 생각은 우리 모든 脫北者들의 마음 속에 누구나 없이 꽉 차 있어요. 그러니 脫北하여 돈을 좀 벌어가지고 도로 북한에 돌아가겠다고 나왔던 脫北者들이 누구도 다시 북한땅에 가려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자식을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거예요. 물론 다시 가면 잡혀 일생 감옥 귀신이 되는 점도 있지만, 보다 큰 건 자식들을 중국땅에서 공부시켜 다시는 재난을 받지 않고 잘 살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주변을 살펴보면 나뿐만 아니라 돈을 좀 벌어가지고 자식들과 가족을 빼내온 脫北者들이 많아요.

 

북한 실정을 잘 아는 脫北者들이니 대담하게 두만강 기슭에 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북한 경비를 서는 군인들을 만나지요.만나서는 돈을 주며, 어디어디에 가서 아이들이나 가족을 데려오겠다고 약속한 후 데려오는데, 위험이 동반되긴 해도 모두 나서요.

 

아내와 두 아이를 끌고 나오기도

 

우리 마을에 사는 한 중년 남자는 2년 동안 중국에 들어와 있었는데 돈이 차지 않자 모자라는 돈을 가지고 가족 데리러 떠났어요. 중국 쪽에서 이틀 동안 두만강을 세심히 정찰한 그는 밤을 이용해 두만강을 넘어 함경북도 무산읍에 있는 자기 집으로 들어섰어요. 그런데 집안에는 거의 해골이 된 마누라만 누워 있을 뿐 두 자식이 보이질 않았어요. 회포도 나누기 전에 자식들이 어디 갔는가 마누라에게 물으니 장마당이나 역전에서 꽃제비 생활을 한다는 것이었어요.

 

마누라에게 기다리라 해놓고는 온 무산읍을 다 돌아다녔지만 찾아내지 못한 그는 할 수 없이 새벽에 마누라를 부축하여 다시 두만강을 넘어섰어요. 하지만 두 자식 생각에 목이 멘 그는 마누라를 중국쪽 숲속에 숨겨놓고 또다시 두만강을 넘어섰어요. 대낮이면 무산군에서 분명 아이들이 돌아다닐 것 같아서요. 무산읍 장마당에서 오누이 자식을 찾아낸 그는 그 길로 먹지 못해 운신하기 힘들어 하는 어린 딸을 업고 아들애의 손목을 잡아끌며 초저녁에 두만강을 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만 북한 경비병에게 들켜 붙잡혔지요. 그는 자기를 둘러싼 두 명의 군인에게 중국돈 천원을 내놓으면서 놓아달라고 사정했어요. 중국돈을 받아쥔 군인들은 이게 웬떡이냐며, 빨리 넘어가라고 봐주어 온 가족을 脫北시키는 데 성공했지요.

 

우리 脫北者들은, 지금 모두 그 남자를, 남자답다고 칭찬하며 그처럼 해보리라 하지만 잘 되질 않아요. 그 본을 따 1999년 10월에 두 남자가 가족을 데리러 두만강을 넘다가 그만 잡혔는데 후에 소문을 들어보니 함경북도 보위부에서 끌어간 후 소식을 모른대요. 아마 정치범 수용소 아니면 일생 감옥밥이 된 것 같애요.

 

우리의 미래는 현재 중국땅에 있어요. 잡히면 할 수 없고, 살면 사는 순간까지 사람답게 먹고 살 거예요. 절대로 북한에 이 귀한 아들딸들을 다시는 도로 보내, 정신 물질적인 노예로 만들지 않을 거예요.

 

끝으로 우리 아이들의 생명을 소생시켜주고 새 삶을 열어준 고마운 그 한국 선생님과 많은 한국분들에게 脫北者들의 이름으로 감사를 드리고 또 드려요. 또 脫北者들의 가슴속에 진정한 나라로 새겨진 한국땅이, 그 자랑찬 모습을 새해 2000년도에도 더 밝게 빛내주기를 기원해 마지 않아요.

 

1999년 12월 중국땅에서●

 

출처:http://http://www.durihan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