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양시 보통강구역에서 출생하여 어린시절을 보냈다. 여섯 살 까지는 탁아소와 유치원에 다녔다. 말을 배우기 시작 하면서부터 배우는 것은 [김일성 숭배법]이었다. 말할 때마다 “우리의 아버지 김일성원수님” 해야 하고 어디가나 걸려 있는 김일성 의 초상화를 반드시 두 손으로 가리키며 “고맙습니다” 해야 했다. 일곱 살이 되자 보통강 인민학교에 입학했다.

인민학교 4학년 과정이 끝나가던 1972년이었다. 뜻밖에도 우리 가정이 평양시에서 추방되어 함경남도의 한 탄광마을로 내려가게 되었다. 이유인즉, 아버지가 평양시 안전부에서 안전원 일을 15년간 하고 있었던데 상부와 의견이 맞지 않아 상부 검열에 걸렸던 것이다. 결국은 정치학습에 자주 빠지고 술을 많이 마신다는 것 때문에 출당까지 당하고 빨간딱지를 문건에 붙인채 탄광 노동자로 쫓겨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아버지는 물론 나와 동생들에게까지 계급적 토대가 견걸하지 못하다는 문건이 항상 따라다녀 앞길을 가로 막는 비극이 시작되었다. 나는 중학교 때 공부를 괜찮게하여 앞으로 대학에 갈 꿈을 꾸었어나 외진 산골 탄광 마을로 쫓겨와 살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힘든 탄광 노동일을 보면서 또 간부들의 차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마음의 상처는 점점 깊어갔다.

어릴 때부터 못이 막히도록 들은 얘기는 북한에서 자기 앞길을 개척해가려면 노동당에 입당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적이 좋아 합격되더라도 나처럼 출신성분이 좋지 못한 가정의 학생은 대학을 졸업했다해도 입당을 못하면 어디가나 사람 취급을 못 받는 형편이었다. 결국 대학입학을 포기한 나는 군대에 가면 입당할 가능성이 있겠다 싶어 그 길을 택하고 신체검사를 받았다.

82년 조선로동당에 입당

나는 77년 군대에 가게 되었다. 군대에 가기 전, 어머니는 내게 죽만 먹이다가 보내는 것이 가슴 아파 나를 보고 “뭘 먹고 싶으냐?”고 자꾸 물었다. 나는 아무 것도 먹고 싶은 것이 없다고 대답하다가 돼지고기가 먹고 싶어 비게만이라도 사서 해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평양에서부터 가지고 온 단 한 벌의 나들이옷을 장에서 헐값으로 팔아 돼지고기를 장만해 왔다. 다음날 군대 버스가 나를 태우러 왔다.

내가 군복무를 하던 85년까지만 해도 북한군대의 규율과 질서는 비교적 괜찮았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북한군대는 주민들로부터 버림받는 ‘군사깡패 집단’ ‘불망나니 집단’ 등으로 불리고 있다. 북한에서 김일성 사망과 함께 약화된 식량난은 군대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금 주민들이 낮이나 밤이나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군인들이다. 이들은 외진 도로에 매복하고 있다가 자동차를 강제로 세우고 물품을 강탈하며, 심지어 차에 넣은 휘발유까지 몽땅 뽑아 가져간다. 집단적 무리를 이룬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는 군인들은 식량이나 고기류 품들을 실은 차를 보면 더욱 기를 쓰고 달려들어 때려눕히고 빼앗아 주민들은 항상 겁에 질려 있다.

거미줄 같은 독재 체제

제대 후 대학에 추천된 나는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그 당시 의무적으로 내보내는 “3대 혁명 소조”에 가게 되었다. ‘3대혁명소조’는 북한의 사상, 기술, 문화혁명을 수행하기위해 대학 졸업생들을 각지의 공장, 기업, 행정조직에 파견하여 도와주고 이끌어주게 한다는 뜻에서 조직한 것이다. 사실은 지방 및 자족주의를 막기 위해 각 지방 당 조직들의 통제와 함께 소조가 2증으로 통제하고 중앙에 보고하도록 만들어 놓은 암행어사식 기구이다.

군 복부 때나 대학시절에도 어렴풋이 알고 있던 북한의 통치체제가 소조에 나가 직접 요해하고 당해보니 거미줄 같은 독제체제였다. 한 탄광기업만 해도 당위원회에 20명 각급 행정기관에 50명 탄광안전부와 보위부에 15명 정도씩 들어앉아 있었다. 이들이 탄광 일을 설계하고 감시하며 총화하는 기본부서들인데, 그 밑에서 집행하는 소위 ‘새끼 간부’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북한은 간부들의 세상이다. 누구나 관직에 오르면 공짜와 뇌물부터 생각한다. 북한에서는 대학생들부터가 대학을 졸업하고 관직에 올라 간부가 되면 공짜를 많이 얻고 상품을 빼내어 가기 욕심을 차린다는 생각을 먼저 하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북한의 고위층 간부들은 천당 같은 생활을 누리고 있다.

극심한 생활난

93년까지만 해도 북한에 식량 타격이 크게 미치지 않은 때였지만 노동자들의 생활형편은 매우 곤란했었다. 먹는 것은 순 옥수수밥에 된장찌개나 무국이었으며 저녁이면 옥수수 죽을 쑤어먹는 것이 보통이었다. 94년 7월에 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이 정권을 맡으면서부터 북한은 식량 위기와 경제난에 더욱 깊숙이 빠져 들어갔다. 독재체제에 대한 신의 가혹한 처벌이었을까 갑자기 홍수 피해를 입게 되고 비료와 농약이 없어 흉년이 들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이렇게 굶고 있었지만,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김일성, 김정일부자 우상화에는 막대한 외화와 재물을 탕진하였다. 북한이 계속 떠들어오던 자립적 민족경제라는 것이 물먹은 모래성처럼 일순간에 허물어졌다.

먹을 양식을 내주는 북한 배급소 에서는 쌀이 없어 한달 식량을 절반도 내주지 못했다. 그것도 평양시와 평안도 황해도 지방 에서만 실시되었다. 함경북도와 자강도, 양강도, 지방은 거의 배급을 주지 않아 아우성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북한의 탄광들은 종전 석탄생산량의 절반도 캐내지 못했다. 이 석탄으로 생산된 전력은 군수품 공장들에만 공급되고, 중소기업들은 하루 2-3시간씩 받아 움직일 수 있었다. 주민용 전기는 아예 내보낼 생각을 하지 않아 몇 년 동안 북한의 모든 지방은 ‘까막나라’로 변해 버렸다.

북한의 어느 신문과 방송을 보아도 홍수 피해나 자연 재해라 식량난이 가증되었다고 하는데. 그 점도 있지만 다른 문제가 더 크다고 본다. 실제로 옥수수나 콩밭에 가봐도 곡식들은 모두 병든 것처럼 노랗고 시들시들했다. 문제는 사회주의식 농촌경영 방법 때문에 그저 되는 대로 일하는 농민들의 자세에 있는 것이다. 자기의 밭이 없고 수확을 해도 국가가 다 거두어가는 집체 농사일에 농민들은 자기의 본분을 지키려고도 하지 않고 지킬 수도 없는 것이 북한농촌의 실상이었다.

달라지는 정치의식

93년까지만 해도 북한의 정치의식은 높았다고 말할 수 있다. 30세 이전의 총각들은 누구나 조선노동당에 입당하기를 원했다. 주민들은 일터에서 일상생활에서도 항상 정치의식이 높았고 각종 정치 학술행사에 참가 하는 열의도 높았다.

그런데 94년에 들어서면서 청년들의 의식이 눈에 띄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경제난과 식량난이 닥치자 민감한 청년들은 북한 체제에서 당원이 되어 학습과 회의를 자주 벌이는 것을 생활의 부담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입당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으면 청년들은 한결같이 살기도 바쁜데 입당하래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북한 사회에서 입당을 포기하는 것은 곧 앞날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희망 없는 사회라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불 팔아 옥수수와 바꾸고...

북한에서 식량은 장마당이나 시장에서 사먹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서 골고루 분배해 준다는 [배급소]를 통해 공급된다. 노임은 간당, 된장 등 필수품만 살수 있도록 지불하고 식량은 국가에서 전체 적으로 조절하여 주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95년까지만 해도 행복한 때였다. 이해 2월16일 김정일의 생일을 맞으며 [크나큰 배려]로 쌀 1kg씩 내주고는 식량 공급이 거의 중단되었다. 그 모진 고난 속에서 우리 가정도 아껴오던 집물들을 팔기 시작했다. 그래도 우리는 그 때까지 생활 형편이 다른 가정들보다는 좀 나아 견딜만하다고 자부해 왔으나 더 이상은 지탱할 수가 없었다.

옥수수 1kg값이 한달 노임과 맞먹는 비싼 값이어서 재봉틀과 바꾼 식량 두 달분, 선풍기와 바꾼 식량으로 두 달 이렇게 넉 달이 지나자 또 식량이 떨어졌다. 할 수 없이 아내는 눈물을 흘리면서 시집을 올 때 가져온 이불 두 채 중 덮지 않는 이불 한 채와 쓸 만한 그릇들을 꺼내어 또 옥수수와 바꾸었다.

95년부터 식량 공급이 거의 중단되자 기업소에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래도 산과 들을 헤매며 풀과 소나무 껍질을 벗겨 풀죽으로 요기한 노동자들은 출근 하지만 아무것도 요기 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하나 둘 집안에 드러눕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밤새 누가 죽었다는 소식을 자주 듣곤 했다.

가을이 되면 북한에서는 굶주린 주민들이 옥수수 밭에 달려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군대들을 풀어놓아 무장 청년들이나 농촌 청년들로 경비를 세웠으나 경비를 서는 자들이 모두 도적이 되어 제집에 날라 들여가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군대를 세웠다. [옥수수에 손을 대면 총살 처형한다]는 안전부의 각종 [포고문]은 몇 년째 계속 붙어 있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은 앉아서 굶어 죽기보다는 잡히더라도 훔치고 보자는 생각으로 옥수수 밭에 가만가만 침투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잡히면 무조건 감옥으로 끌려가고 세 번 이상 옥수수를 따간 것이 발각되면 총살까지 당한다.

부녀자들 머리칼도 잘라 팔아.

북한에 가면 머리칼을 길게 기른 여자들이 없다. 머리칼을 잘라 팔기 때문이다 머리칼 1kg 값은 2백 원정도, 머리칼은 신의주를 통해 중국단동 쪽으로 넘겨진다.

북한에서는 하루하루를 넘기기 위해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한줌의 낟알을 얻기 위해 여자들이 몸을 파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쌀 1 kg 값(약 1백 원 정도) 안되는 돈에 여자들이 몸을 팔고 있다는 사실, 북한여자들의 운명을 생각하면 참으로 통탄스럽다.

이렇게 북한은 양보도 없고, 예절도 집어치우고, 양심도 밥 한 그릇과 바꾸어버렸다. 밥 두 그릇에 정조도 팔아먹고, 가족애도 점점 실종되고 있다.

15개 정치범 수용소에 30만명 갇혀

평안남도와 함경도 지방에는 감옥 같은 울타리를 쳐놓은 [정치범 수용소]가 있다. 여기서는 개별적으로 혹은 가족 모두들 끌어다 가두어놓고 영원히 노예노동을 강요시킨다. 사방이 산으로 들러 막힌 몇 개 마을을 포위하고 보초를 세 겹으로 세운 이런 수용소들에서는 남편과 아내 자식들을 따로 따로 갈라놓고 중세기적인 노동을 강요한다. 한 달에 한번씩 [모범]이라는 표창으로 1백 명 중 한 명을 뽑아 반토굴집 같은데서 부부간에 면회를 시키며 [특별표창]은 하룻밤을 자게 허락한다는 것이다.

수용소안에는 독재체제에 순응하지 않은 간부, 지식인, 군관, 일반주민, 등 각계각층의 주민들이 갇혀있다. 여기서 이들은 남은 일생을 사람이 아닌 짐승으로 취급받으면서 맞아죽고 굶어죽고 병들어 죽는다. 내가 소조 기간에 이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의 말이 이렇게 북한 내 약 15개 수용소에 갇혀 있는 정치범들은 30만 명가량 된다는 것이었다.

깨어지는 가정, 늘어나는 이산가족

94년부터 식량난이 시작되고 생활이 악화되자 법적 수속 없는 이혼가정 스스로 갈라지는 이산가족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가정을 뛰쳐나와 방황하는 부부 중에는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많다. 혼자 살아가는 데는 여자들이 우월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나와서 장사를 하지 않으면 굶어죽는다. 여자들은 장사가 아니면 자기 몸을 팔아 자기를 유지해 내기 때문에 한결 쉽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평양, 사리원, 해주, 함흥, 청진 같은 도 청소재지들에 가면 대개 몸을 파는 여자들 중 대부분은 이렇게 굴러다니는 여자들이다.

성분 때문에 간부 선발서 탈락

나는 열심히 일한 덕으로 세 차례의 간부제발담화 (간부추천 및 선발과정)를 하게 되었다. 첫 대상은 당간부 양성 대열이었다. 나의 문건 뒤꼬리에 검은 딱지로 달라붙은 성분관계 때문이다. 두 번째 담화는 96년2월에 있었고 그 대상은 기업소의 부기사장 선발이었다.

이 때 나는 혹시나 하는 미련이 있었다. 그러나 이때도 역시 두 달 후에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나는 크게 실망하였다. 한번 낙인찍힌 성분관계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장인 장모의 어이없는 죽음

같이 살던 장인이 97년 2월 덜컥 쓰러졌다. 누운지 이틀 만에 말 한마디 손 한번 허우적거리지도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설상가상으로 장인이 숨을 거두는 것을 본 장모도 정신을 잃었는데 하루 지나 숨을 거두었다. 의사를 불러오고 미음을 입에 넣어주고 했지만 받아먹을 힘도 없는 노인들은 극심한 영양부족으로 사망한 것이다.

말 한마디 못 남기고 숨을 거둔 장인 장모를 보며 나는 한동안 넋이 나가버렸다. 전통 관례대로 입관해야 하는데 나무 널빤지가 없어 관을 짤 수가 없었다. 하루가 멀다 않고 사망자가 속출하니 기업소의 나무를 다 써버린 것 이다. 그 때 당시 나무가 없어 모두 가마니에 시신을 싸서 그냥 땅에 묻곤 했다.

원한을 사게 만드는 땅

아내의 통곡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이 땅이 이사회가 백성들에게는 원한만을 사게 만든다. 우리는 살아보자고 꿈지럭거리는 벌레에 불과하다. 우리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살고 싶다. 인간이라는게 무엇인지 느껴보고 싶다’ 실신한 듯한 아내와 아들을 부축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긴긴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또 생각했다. ‘이 땅을 벗어나야 한다.’

어디로 갈 것인가? 남조선? 중국? 자유를 찾아가는 길이니 무조건 남조선으로 가야 한다. 그러자면 중국 땅을 거쳐 가야 한다. 가다가 잡히거나 죽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내 설 자리는 북한 땅 어디에도 없다!’ 밤새 생각하며 결론을 찾으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다음 날부터 나는 나름대로 탈북 준비를 하느라고 낮에는 직장에 나가 일을 하고 밤에는 빠져나갈 경로를 여러 가지로 연구해 보았다. 겸사해서 중국 지도도 들여다보며 지방 이름과 위치도 익혀두었다. 한 달 동안 나는 속으로 많은 의문을 던지며 내가 택한 길이 옳은가를 계속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길밖엔 없었다. 얼마 후 나는 아내에게 탈북할 것을 권유했다. 아내는 펄쩍뛰며 반대했다. 부모님들이 누워있는 이 땅을 떠날 수 없으며, 죽어도 이곳에서 죽겠다고 했다. 나라를 배반하는 행위라고까지 말했다.

나는 며칠 동안 곰곰 생각했다 위험이 뒤따르는 길에 가족을 데리고 떠난다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라고 생각되었다. “만약 붙잡히면 나 혼자니 죽음까지도 각오할 테다. 그러나 가족까지 같이 붙잡혀 처형당하면 그 아픔까지는 참지 못한다. 나 혼자 가자!” 이렇게 결심하는 과정이 매우 힘들었다.

다시 결심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안정되었다. ‘장인 장모를 굶어죽게 만들고 제대로 땅에 모시지도 못하는 이 남편이 가정에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될 인간이라고만 생각하오. 남편이 굶어죽거나 사고로 죽었다고 생각하든지... 다른 여자들처럼 당신도 굳세게 살아나가길 진심으로 바라오, 내가 쓰러지지 않는 한 우리의 만남은 꼭 있을 거요. 염치없지만 아들을 부탁하오!’ 나는 편지를 아내의 머리맡에 놓고 아내와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다.

두 만강을 건너다

나는 단속이 거의 없는 밤 시간에만 기차를 바꿔 타면서 이틀 동안 목적지인 함경북도 무산 쪽이 중국 국경변두리까지 도착하였다. 도착하니 새벽 5시경이었다. 낮에 두만강변을 돌아보며 국경선 경비 상태와 넘어갈 지점을 두어 번 관찰하고 점찍어 두었다. 저녁 6시경 어슬어슬해지자 나는 두만강변 풀숲에 은밀히 잠복 했다. 점찍어둔 강변은 얼음이 풀려 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떤 곳에는 얼음이 그대로 있었는데 도강하다가 빠질 것 같아 아예 물이 흐르는 곳을 선택하였다

기다렸다 몸을 일으킨 나는 강변에 성큼 들어섰다. 물은 몹시 차가웠지만 느낄 경황이 아니었다. 정신없이 강변절반을 지나자 “됐다”하는 한숨과 함께 더 빨리 건너가야 한다는 조바심에 마구 소리를 내며 뛰었다.

어찌나 발이 시린지 발목이 뚝 떨어져나가는 것 같았다, 드디어 두만강을 넘어섰다 “이제부터 나는 노예의 굴레를 벗어던진 자유인이다”고 외쳤다. 정말 속이 시원했다. 나는 두만강변의 물을 떨리는 손바닥에 퍼 담아 가지고 주르륵 발밑에 쏟아 부었다. 북한에서의 나의 생활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싶었다.

출처:두리하나 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