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들은 새해(新年)를 맞으며 자기의 소망과 함께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건강과 소망도 함께 축원해 준다. 기독교에서는 원수도 사랑하고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고 설교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어제 유독 한 사람에게만은 행복을 축원하는 기도가 아니라 빨리 죽기를 바라는 소원을 빌었다.

어제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니 벌써 저녁 9시가 넘었다. 피곤이 몰려 잘려고 하는데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많이 피곤했으나 갑작스런 언니의 전화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급히 옷을 입고 언니의 집으로 뛰어갔다.

집에는 몇 명의 손님이 앉아 있었다. 언니는 반기는 얼굴로 오늘 우연히 기회가 되어 탈북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게 되었다며 내 팔을 잡아끌었다.

언니의 소개로 초면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 우리는 오랜 친구처럼 서로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이야기 도중 누군가가 설날이 되니 북한에 있는 부모님 생각이 난다고 말하는 바람에 갑자기 분위기가 무거워져 한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얼마 후 침묵을 깨고 누가 먼저 말문을 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탈북자들은 서로 앞 다투어 고향이야기를 꺼냈고 서로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들으며 감정이 북받쳐 장내는 어느새 울음판으로 변하고 말았다.

고향의 부모 형제를 그리며 눈물 흘리는 탈북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저 사람들이 도데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가슴에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북한을 인간생지옥으로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악의 화신 김정일에 대한 증오와 분노의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다른 탈북자들도 저저마다 한마디씩 김정일과 북한독재정권에 대한 비난에 가세했다. 인천에 사는 언니는 “세계과학이 그렇게 발전했다는데 왜 김정일이 죽는 날은 계산해 내지 못할가?”라며 김정일이에게 제발 빨리 죽어달라는 신년장을 쓰자고 제안했다.

탈북자들은 참 좋은 생각이라며 모두가 한 마디씩 김정일한테 하고 싶은 말을 신년장에 적었다. 나도 김정일이에게 보내는 신년장을 썼다.

“장군님! 벌써 새해가 밝아옵니다. 올해는 제발 자기 동족의 피로 맑은 하늘과 조국강토를 물들이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정치범 수용소에 있는 죄 없는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내 주세요.”라고 첫마디를 뗐다.

한 탈북자는 “야! 김정일. 너 삼백만의 북한사람들을 잡아먹고 장생불로 할 꿈은 꾸지도 마라. 아마 그들이 지금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라고 적었고 또 다른 탈북자는 “너 올해에도 백성들을 굶어죽이면서 핵인지 뭔지 하는 것을 만들면 그 핵폭탄을 너의 심장에 터뜨릴 것이다!”라고 분노의 마음을 표현했다.

이렇게 김정일에게 보내는 탈북자들의 말을 한마디씩 적은 신년장이 완성되었다.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신년장 한 장에 김정일과 독재정권을 증오하는 탈북자들의 마음이 다 담겨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통쾌했다. 이는 바로 자유와 인권을 박탈당하고 지금껏 김부자의 노예로 살아온 북한사람들의 피맺힌 원한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남한에 있는 만여 명의 탈북자들과 중국의 모든 탈북자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다면 어떤 말들이 나올지 상상이 안 간다. 그때는 아마도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고 북한해방이 이루어지는 날이 아닐 가 싶다.

탈북자 박미영(2006년 입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