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매장터>

어느 날 탄광에 가려고 재정부장을 따라 나섰다. 재정부장이 떠나기 전에 나에게 몇 가지 주의사항을 말했다. “네가 자주 탄광으로 다니는데 바깥에서 목격한 일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해야 한다. 탄광 쪽에는 탄을 다 캐낸 폐갱이 여러 개이다. 폐갱은 사고로 죽은 자들을 매몰하는 곳이다.”

<또 많은 죄수들이 생체실험 대상으로 죽었구나>

사실 나는 이미 그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내가 항상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이유 없이 불러내다 떼죽음을 시키는 현장을 여러 번 목격한 이후부터이다. 저 많은 사람을 죽여 어디로 실어 가는지 항상 머리 속에 의문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탄광으로 올라가면서 그 의문이 해결되었다. 교화소 안에서는 죄수들의 시체만 싣고 다니는 작은 트럭이 있다. 누런 풍막으로 둘러쳐 있는 트럭이 감옥 구내에 들어오면 오늘 또 사람이 죽어 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날도 그 트럭이 탄광으로 올라왔다. 폐갱입구에 차를 멈춰 세우더니 경비대 군인이 운전석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눈알까지 새빨갛게 충혈되어 마치 환각상태에 있는 듯 하였다. 꽥 꽥 고함을 질렀다. “야 이 개새끼들아! 빨리 와서 이것들을 끌어내려라! 꾸물거리면 너희들도 몽땅 매장해 버릴테다. 빨리 빨리 몸뚱이를 놀려라!”하고 미친 듯이 고함을 질러댔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전신에 식은땀이 좍 흘렀다. 어제 저녁에 끌려 나간 죄수들의 명단을 오늘 아침 내 책상 위에 그대로 두고 왔는데 그들이 저렇게 시체가 되어 실려 온 것이다. 아침에 감방에서 나와 내 작업장인 사무실로 나왔을 때 그들의 명단을 사망으로 처리하고 취장에 보내는 급식통계에서 삭제하라는 지시를 교화과장에게서 이미 받았었다. 또 많은 죄수들이 생체실험 대상으로 죽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치가 떨렸는데 바로 그들의 시체가 내 눈앞에서 짐짝 던지듯이 내동댕이쳐 있는 것이었다.

탄광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에 대해서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고 하라고 재정부장이 말했지만 정작 내 눈으로 현실을 보게 되니 사지가 후들거리고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살아있는 죄수나 죽은 시체의 표정이 다를 바 없어>

난장에서 일하는 작업조장이 달려왔다. 경비대원이 조장에게 트럭에 실린 시체를 폐갱으로 끌어다 매장해버리라고 지시했다. 조장의 뒤를 따라 몇 명의 죄수들이 달려와 트럭으로 기어 올라갔다. 살아있는 죄수들의 표정이나 죽은 시체나 별로 다를 바 없는 듯싶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무표정하고 아무런 감정도 없는 사람들처럼 시키는 대로 시체를 하나하나 질질 끌고 갱 입구로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아마 하루도 죽은 사람을 보지 않는 날이 없으니 시체인지 짐짝인지 분별이 안 갈 정도 인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죽은 시체를 부러워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견뎌내기 힘든 고역에 시달리고, 배고픔으로 뼈에 가죽만 붙어 있는 사람들이니 고통이 끝나는 길은 죽는 길이라는 것을 그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된다.

갱 입구에는 탄을 실어 나르는 광차들이 수십 개씩 연결되어 올라오고 있었다. 광차 옆에 사람이 붙어 설 수 없을 정도로 갱도가 좁다. 광차는 굵은 쇠밧줄로 끌어올린다. 굵은 쇠밧줄에 끌려나오는 광차는 한 번에 수십 차량이 연결되었기 때문에 간혹 철길이 삐어져 철길에서 광차가 탈선하는 사고가 빈번하게 얼어나고 있다. 한 번에 광차가 올라 올 때마다 철길을 감시하려고 몇몇 죄수들이 따라 올라온다. 좁은 갱도와 광차들 틈에 끼워 간신히 옮기면서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저러다 자칫 무거운 광차에 치우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만신창이가 된 시체의 살점이 튀어나가 광차에도 붙고>

그런대로 전기가 정전이 되지 않는 날이면 맡겨진 생산 계획을 할 수 있다. 전기가 아주 정전이 되면 교도관들이 다그치는 고함소리가 갱도 안을 쩌렁쩌렁 울린다. 무거운 석탄 광차를 죄수들이 여덟 명씩 한 조가 되어 밀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죽는 한이 있어도 그날 받은 생산량은 무조건 해야 하기 때문에 무게가 보통 1.5톤이나 되는 광차를 죄수들이 밀고 나가게 하는 것이다. 지하에서 갱 밖으로 나올 때는 각도 45도의 경사면을 밀고 나와야 한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정상인들의 생각에는 사람이 저 모양으로 되면 금방 쓰러져 숨이 끊어질 것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에서 그런 초인간적인 힘이 나오는지 모른다. 이빨을 사려 물고 광차에 매달려 필사적으로 밀고 올라온다. 윗도리는 입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와 같이 갈비뼈가 앙상하여 선 자리에서 세어볼 수 있을 정도의 죄수들에게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끈으로 질끈 묶은 바지춤은 허리가 한줌 정도로 보인다. 몸에서 흐르는 땀과 석탄가루가 뒤범벅되어 윗도리가 새까맣게 번들번들하였다.

줄을 서서 밀고 올라오다가 중간이나 위에서 미는 죄수들 중에 한 조라도 힘이 딸려 광차가 밀리기 시작하면 미처 걷잡을 수 없이 아래쪽에 있는 탄차까지 밀치면서 내리 군다고 한다. 일단 굴기 시작하면 밑에서 올라오던 탄차까지 치여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광차에 치운 시체는 만신창이가 되어 살점이 튀어나가 광차에도 들어붙고 철길과 갱도방목 여기저기에 피와 살점이 흩어져 있다.

탄광에서 일하는 죄수들이 제일 힘에 겨워하는 작업이 광차를 미는 작업이다. 한 끼에 아기 주먹만 한 옥수수 빵 한 덩어리에 소금국물 한 국자를 마시면 한 끼 식사이다. 그렇게 먹고 나면 한 끼를 먹었는지 위에 기별도 안 간다. 죄수들이 허기진 몸으로 무거운 광차를 평지도 아닌 경사면을 밀고 올라오는 모습은 한 발자국씩, 한 시간씩 위태로운 생명줄을 이어가는 현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 생산량 못 채우면 한 끼 100g 짜리 빵 덩이가 80g으로>

죄수들은 한 사람도 보기에 풍성한 사람이 없다. 모두가 하나같이 배가 등가죽에 착 달라붙은 것이 “미친개 배때기”라고 교도관들이 비웃는다. 탄광에서 일하는 죄수들은 교도관의 시야에서 떨어져 일하기 때문에 작업량에 대한 철저한 총화를 받는다. 총화는 다른 것이 아니고 처벌을 적용하는 것이다.

하루 생산량을 하지 못하면 한 끼에 100그램짜리 빵 덩어리가 80그램으로 줄어든다. 죄수생활에서 어느 누구나 다 마찬가지지만 특히 지하 막장에서 일하는 죄수들은 밥이 줄어든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엄청난 타격이다. 옥수수 한 알이라도 귀하고 배고픔을 덜어준다고 생각하는 그들인데 처벌 밥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교도관들이 위험한 갱 안으로 들어오지 않아도 죄수들 자체가 열심히 맡은 과제를 할 수 있게 통제하는 것이다.

8명씩 분조단위로 나누어 놓고 분조 자체가 계획을 같이 해야만 이 작업미달 밥을 먹지 않는다. 하루라도 작업 실적이 미달되면 다음 끼부터 미달 밥을 준다. 때문에 같은 분조 내에서도 죄수들끼리 서로 일을 잘 하도록 감시하고 통제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분조 내에서 죄수들끼리 “너 하나 때문에 우리까지 미달 밥을 먹을 수 없다”는 식으로 투쟁이 붙으니 교도관들이 감시를 하지 않아도 일이 저절로 될 수밖에 없다.

<치사하게 보일수도 있는 살기위한 투쟁이 줄기차게>

삶에 대한 인간의 집착이 그렇게 강하다는 것을 바깥세상에서 살 때에는 미처 몰랐다. 고통스러운 삶보다도 빨리 끝나는 편이 나으련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치사하게 보여 질지도 모르는 살기 위한 투쟁이 줄기차게 일어난다. 죄수들은 누구나 어떻게 하나 하루라도 더 살고 싶은 몸부림을 친다.

<쥐를 잡아먹는 사람들>

갱 안에는 어디에서 몰려왔는지 쥐들이 있다. 교화소 수감자들은 쥐만 잡으면 그날은 생일날이라고 한다. 탄광 죄수들은 더없이 감사하게 생각하는 날이다. 석탄 굴에서 쥐만 나오면 사정없이 달려들어 잡는다. 먼저 덮치는 사람의 입으로 그대로 들어간다. 오랫동안 한 가지 음식으로 편식을 하면 영양소가 없어지므로 비린 냄새인지 쓴맛인지를 분간 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고소하고 꿀맛 같아진다는 것이다. 입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도 맛있다고 먹는다. 그렇게라도 한 번 요행수로 쥐를 잡아먹고 나면 얼마동안은 영양보충이 된다고 하였다.

쥐를 잡아먹고 쥐 병이 옮겨져서 무리죽음을 당하는 경우가 있기에 쥐잡아먹은 것이 들통 나면 무조건 독방으로 끌려가고 분조 전체가 처벌을 받는다. 사람의 시체를 많이 매장하기 때문에 폐갱 쪽에 쥐가 더 많다고 하였다. 교도관들은 죄수들이 폐 갱 쪽으로 못 가도록 통제한다. 누가 폐갱 쪽으로 다녀왔다는 것이 들통 나면 그 자리에서 독방처벌을 받는다. 탄광의 독방은 갱 안에 만들어 놓았다.

나는 얼마 후에 교화과장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폐갱에는 생체실험으로 죽은 죄수들의 시체가 버려지기 때문에 시체를 뜯어먹은 쥐를 먹으면 쥐 병에 걸린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쥐 병이 어떤 병인지는 모른다. 다만 쥐 병에 걸리면 고열이 나고 피를 토하고 나면 죽는다는 것밖에는 모른다. 쥐 병은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것과 무서운 병이라는 것만 안다. 쥐 병에 감염되었다고 하면 분조 전체를 격리시키고 분조가 떼죽음을 당하게 된다.

죄수들은 쥐를 잡아먹는 것이 그렇게 위험부담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쥐만 눈에 보이면 배고파 허기증이 발작하듯이 그냥 지나치지를 못한다.

<입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도 맛있다고 生 쥐 고기를 먹는다>

탄광에서 일하는 죄수들 속에는 구라파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사상검토를 받고 자본주의 날라리 사상에 물들었다는 정치적인 감투를 쓰고 잡혀온 여러 명의 어린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루에 16시간 이상 지하막장에서 일을 해야 하고 배고픔에 시달려야 하니 견디기 매우 어려웠다.

어느 날 알바니아에서 유학 갔다 잡혀온 20대 초반인 명진 이라는 죄수가 탄차를 밀고 나가다가 “너무 힘들고 배가 고파 더는 못하겠으니 나를 제발 죽여주면 좋겠다.”고 하면서 철길에 드러누워 버렸다. 옆에서 같이 밀던 나이든 죄수들이 빨리 일어나라고 하였다. 교도관이 알면 큰일이 날텐데 일어나라고 재촉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배가 고파 더는 일을 못하겠다고, 광차를 밀 힘이 없다고 애걸하는 것이었다.
나도 죄수이기 때문에 그들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마음이 조급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교도관이 나타나면 그는 끝장이 나는 것인데 막무가내로 일어서지 않고 늘어져 있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싶었다. 아직 채 피기도 전인 어린 나이에 잡혀와 저렇게 고통을 겪고 있으니 부모들의 심정이 오죽하랴 싶었다. 저 학생의 부모들은 그래도 외국유학을 보냈으니 남들이 못하는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다고 아들을 자랑스럽고 대견하게 생각하였을 것이다. 어린 것이 얼마나 배고프고 힘에 겨웠으면 죽을 작정을 하겠는가 싶었다.

<유학 갔다 잡혀온 명진이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절규>

공교롭게도 교도관이 나타나 사정없이 구두 발로 걷어찼다. 작은 몸뚱이가 구두 발에 밟힐 때마다 펄쩍 펄쩍 뛰었다. “수령님의 하늘과 같은 은덕으로 유학을 갔으면 하라는 공부나 잘 할 노릇이지 민주주의 나발을 불어댔는데 배때기에 낀 비게 덩어리가 다 빠지려면 몇 년은 더 당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죽일 수 없다. 빨리 일어나 탄차를 밀어라”고 소리를 질러댄다.

그런데 발길에 밟히던 명진 이가 갑자기 피투성이가 된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마지막 안간힘을 다 모아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하고 부르고는 그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교도관이 미친 듯이 밟아댔지만 기척이 없었다.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옆에서 넋이 나간 듯이 보고 있는 죄수들에게 교도관은 “이 새끼를 빨리 끌어다 버려라”고 지시했다. 그날 이후로 오랫동안 그 어린 대학생이 눈에 밟혔고 내아들 생각을 하였다. 어린것이 얼마나 배가 고프고 힘에 겨웠으면 죽여 달라고 했을까.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밥 한 덩이와 바꾼 목숨>

어느 날 내가 탄광에 도착하였을 때 막장으로 점심밥이 들어왔다. 아직 밥을 먹으라는 지시가 내리기도 전에 채탄을 하고 있던 죄수가 밥함지에 달려들었다. 그는 밥 덩어리를 덮쳐 한입에 몰아넣었다.

누가 미처 손 쓸 사이도 없이 순간에 일어난 일이다. 옥수수 밥 덩어리를 너무 급하게 입에 넣고 삼키려고 하니 미처 넘어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목이 메어 눈을 부릅뜨고는 그래도 요행 입안에 밥을 넣고 잠시나마 허기를 달랠 수가 있다는 마음에 앞뒤를 분간할 경황이 없었던 것이다. 한 덩어리 옥수수밥과 자기 목숨을 바꿀 수 있다는 것도 모르는 듯싶었다.

밥을 날라 간 취사장 죄수들이 당황하였고 뒤따라 들어온 교도관에게 들켰다. 입안의 밥이 목으로 넘어가지 못했고 양손에 덮친 밥 덩어리가 그대로 들려있었다.

<그 죄수는 잠시 후 눈을 뒤집고 두 다리를 쭉 뻗었다>

교도관이 벼락같은 소리를 지르며 한 번에 걷어차 쓰러뜨렸다. 그리고는 “이 간나 새끼 굶어죽은 귀신이 붙었나. 죄를 짓고 잡혀온 주제에 무얼 배대기에 채우겠다고 악을 쓰는 것이냐. 실컷 채워라!” 하면서 그 죄수가 들고 있는 밥 덩어리를 빼앗아 그의 입에 마구 쑤셔 넣었다. 그리고는 소금국통을 매달아 들고 다니는 막대기를 빼앗아 입안에 물고 있는 밥을 쑤셔 넣었다. 숨을 쉴 수 없는 것이다. 그 죄수는 잠시 후에 눈을 뒤집고 두 다리를 쭉 뻗었다.

모든 죄수들이 고대하고 기다리는 점심시간이 오늘은 그렇게 수라장 판이 되어버렸다. 사람이 너무 배고파 밥 한 덩어리를 덮쳤는데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야 할 죄란 말인가. 모두들 혼이 빠진 듯 멍청하게 서 있었다.

나는 그날 사람이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양반이 따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밥을 입에 넣고 목이 메어 죽은 그 사람은 평양의 무역부에서 당 비서로 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가 잡혀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는 그래도 어느 모로 보나 당 간부의 체취가 남아 있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비록 다 같은 죄수복을 입고 교도관들의 발아래에 꿇어앉아야만 하는 죄수생활이지만 그래도 항상 조용히 시키는 일을 잘하려고 하였다. 그러던 그가 돌발적인 행동을 하고 밥 헌덩어리에 목숨을 걸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본 월북자, 북송교포들>

탄광에서 일하는 죄수들 가운데는 60~70년대에 수령님의 품으로 의거입북 하였다고 굉장히 선전하고 떠들던 월북자들이 있었다. 얼마동안 선전용으로 이용을 당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북한독재사회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김모 씨는 휴전선 근방에서 군 복무하던 중 월북한 사람이었다. 북한에 와서 평양에 있는 김책공업대학을 졸업한 후 희천공작기계공장에 배치되어 일하고 있었다. 그는 남쪽 괴뢰들이 파견한 간첩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 들통이 나서 잡혀 왔다는 것이다. 그가 공작기계생산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는 것이다.

<말 반동들은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감옥생활 한다>

교도관들은 그를 불러놓고 심심풀이로 “괴뢰도당의 개 노릇을 하면서 우리공화국을 해치려고 하였는데 어림도 없다. 네 놈들이 미국 놈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지만 우리 수령님은 너희들을 관대히 용서하기 때문에 죽이지 않고 살려준다.”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시키는 대로 기계처럼 움직이지 않으면 발길질과 채찍으로 사정없이 내리치는 것이다. 아픔을 간신히 참아내야 하며 혹시라도 때릴 때 얼굴표정이 일그러지면 아직도 반항한다고 생트집을 걸어 때린다.

북송교포들도 간첩임무를 받고 왔다는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다. 북한에서 탄광기계공장으로는 이름있고 김일성이 해마다 한차례씩 현지 시찰을 하는 라남 탄광 기계공장 기술부 지배인이 간첩혐의로 잡혀왔다.

<“굴이 내려앉았다. 사람이 깔렸다”  는 외침도 외면 한 채>

그는 일본에서 나서 자랐고 대학까지 마친 사람이니 사고방식이 자유로웠다. 그는 김일성이 현지시찰을 내려왔을 때 김일성 앞에서 북한에서는 필요한 생산성 투자보다 비생산 부문에 노력낭비와 재정낭비를 많이 한다고 건의했다. 당시는 라남 탄광기계공장을 김일성 현지지도 시범공장으로 만들기 위해 기본 생산직장의 생산을 중단하고 김일성 사적 관을 짓는데 노동자들이 대거 동원되었던 시기였다. 재정적 부담이 크다는 것을 건의하였다.

김일성, 김정일은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공장시찰을 마치고 올라가는 길에 김정일이 공장 당 비서에게 “기술부 지배인을 학습을 더 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이 말 한마디로 그는 졸지에 간첩, 사상이 다른 사람으로 몰려 감옥에 끌려왔다. 그렇게 잡혀온 말 반동(말을 잘못하여 잡혀온 사람들)들이 자기가 무엇을 잘못하여 감옥으로 왔는지 모르고 생지옥 생활을 하는 것이다.

교도관들이 말끝마다 악질반동들이라고 악을 쓰고 욕을 하지만 정작 죄수들 본인은 내가 왜 악질인지를 말하라고 해도 확실하게 대답을 못할 정도이다. 채탄 조에서 일하는 그들은 앞만 가리울 정도의 다 해진 바지에 윗도리는 아예 입지를 않았다.

석탄을 캐는 막장은 두더지 굴 마냥 작은 구멍들이었다. 광차가 다니는 밑바닥은 그래도 넓은 편이다. 높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서 석탄을 캐는 굴이 사방으로 뚫려져 있었다. 죄수들은 머리에 조명이 달린 모자를 썼다. 건전지로 충전되는 불은 벌겋고 희미하여 갱에 적응되지 않은 나에게는 불이 보인다는 것보다 더 어두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막장에서 석탄을 캐는 죄수들은 사다리를 타고 동 발목을 메고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면서 석탄을 캐는 것이었다. 순간에 굴이 내려앉으면 다 파묻힐 것 같았다. 그들은 허리도 펼 수 없는 굴에서 간신히 삽과 곡괭이로 석탄을 파고 있었다. 휘어진 등이 삽자루에 치어 더 휘어진 듯하고 땀은 비오 듯 흘러내린다. 그들이 작업을 하는 것을 볼 때마다 지옥이 따로 없구나. 이보다 더 고통을 주는 지옥이 어디에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였다.

<“누가 주둥이 놀리라고 했어   찍소리만 나도 갈겨 버릴 테다.”>

어느 날 작업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재정부장이나 교화과장이 가는 날에 따라가기 때문에 위험스러운 막장에는 가지 않는다. 아니 갈 일이 없는 것이다. 갱이 붕괴되는 사고가 잦기 때문에 교도관들은 밑에서 지키면서 굴 안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두더지 굴 같은 수많은 작은 석탄 굴에서 인력으로 탄을 캐내니 죄수들의 목숨은 이미 저승에 한 발을 디딘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저쪽에서 “굴이 내려앉았다! 사람이 깔렸다!”라는 다급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되면 다른 굴에서 일하는 죄수들이 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사고를 묵살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을 살려달라는 아우성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파내면 살아날 수도 있지만 생산에 지장을 준다고 남아있는 다른 죄수들을 철수하여 다른 굴로 이동을 시키고는 작업을 계속하라고 지시를 주었다.

교도관들은 “누가 주둥이를 놀리라고 하였어!” 이제부터 찍소리만 나도 갈겨 버릴 테다!”라고 매섭게 소리를 질렀다. 무너진 석탄에 몸 전체가 파묻혀 팔 하나가 나와 있는 것도 보였다. 무너진 석탄무더기 가운데 가느다란 팔 하나만 밖으로 나와 있다. 그 밑에 사람이 묻혀있다는 표시인 것이다. 그날도 수십 명이 매장되었지만 교도관들이나 교화소 간부들은 석탄굴이 무너졌는지, 또 몇 명이 매장되었는지를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마침 사고 현장에 나와있던 교화과장마저도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외면하는 것이었다.

<억울하여 죽을 수가 없다는 반항심을 죄수라면 누구나 품고 있어>

그날은 교화과장이 나를 데리고 갔다. 빨리 굴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갱이 무너져도 무너진 굴만 폐쇄되고는 다른 굴에서는 계속 작업을 한다. 사람이 파묻혀 죽어도 파내는 일이 없는 것이다.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하늘이 두려운 줄 알아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짐승이 아닌 사람이 파묻혔는데 파낼 생각조차 하지 않다니...

그렇게 많은 정치범들이 죽어 없어지기 때문에 생산을 계속하기 위하여서는 죄수의 머리수를 보장해야 한다. 그렇게 되어 말 한마디 잘못하면 말의 표현은 사상적 불만의 표현이라고 걸어 반동으로 몰아붙이고 교화소에 잡아가는 것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표현이 여기서 나온 듯싶다.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으려고, 또 옆의 죄수들이 한 많은 죽음을 당하는 것을 매일 같이 보기 때문에 억울하여 죽을 수가 없다는 반항심을 죄수라고 하면 누구나 품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배고픔과 지칠 대로 지친 육신을 감당하지 못하고 죽는 것을 많이 보았다. 탄광죄수들이 제일 빨리 영양실조에 걸린다고들 하였다.                           

 

 

출처 : 한국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