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나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한잠도 못자고 진술서를 썼다. 처가 행불된 다음 배고픔에 시달리는 애들을 보다 못해 두세번 정도 훔쳤을 뿐이니 관대히 용서해 달라고, 집에서 엄마 없이 이 못난 애비를 기다리고 있을 불쌍한 어린 자식들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한번만 봐 달라고...

아침 6시, 날이 푸름푸름 밝아올 무렵에야 보안원은 족쇄를 채워서 빈방에 가두면서 “이개 같은 새끼야! 진술서를 쓴걸 보니 고칠려면 아직 멀었어. 뭐 두세번 정도밖에 훔치지 않았다고? 내 직업이 뭔데? 나한테 귀가 없는 줄 알아? 깊이 반성하고 솔직히 자백하면 용서해 줄 테니 낮에 다시 쓸 준비를 해”라고 내 뱉었다.

그날 오전 11시경, 방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주재원은 가끔 운동을 할때 하군 하는 멋지기로 소문난 돌려차기로 나를 단매에 거꾸러 뜨리면서 “개 같은 새끼! 진짜 두세번이야?”하고 벼락같이 소리쳤다.

눈앞에 번개가 일면서 바닥에 쓰러진 내 얼굴에서는 코피가 콸콸 쏟아져 내렸다. 얼굴이 짓 이겨지고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보안원에게 질질 끌려서 분주소장의 방에 가니 분주소 보안원들이 전부 모여 앉아서 오늘 “큰 도적놈을 잡았다”느니,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똥을 싼다더니 이 개새끼가 어진 척 하면서 나쁜 짓을 도맡아 한다”느니 “당장 교화소에 보내야 한다.”느니 하면서 중구난방으로 떠들었다.

우려하던 문제가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사실 그해 초가을부터 시작해서 1년동안 살아갈 준비를 하느라고 집에 무져놓은 강냉이가 50kg은 잘 되었는데 가택수색에서 그것을 전부 들춰냈던 것이다. 항상 얼굴에 웃음을 짓고 다니면서도 한번 걸렸다싶으면 절대로 풀어주는 법이 없기로 소문난 “능구렁이”분주소장이“자백을 제대로 받아내라우”라로 위엄있게 한마디하고 밖으로 나가자 주재원이 바로 달려들어 나를 바닥에 엎드려 놓고 족쇄를 풀어서 왼손은 어깨너머로 올리고 오른손은 뒤로 돌려서 다시 채우고 구두 발로 족채 찬 손을 사정없이 걷어찼다.

분주소장 방에 있던 6명 보안원들에게 그렇게 10여분동안 몰매를 맞은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만 “다 말하겠습니다. 다 말하겠습니다.”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른 기억밖에 없다. 어떻게 끌려왔는지 다시 빈방에 갇힌 나는 해가질 무렵에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을 때에야 온몸이 쑤시고 족쇄 찬 손이 너무나도 꽉 조여서 감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 악물고 한두시간을 더 버티던 나는 드디어 인내력을 잃고 “보안원동지! 살려주십시오.다 말하겠습니다.”를 연발하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하지만 정문을 지키는 경비의 기침소리만 가끔씩 들릴 뿐 분주소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누구도 들여다 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또 두시간 정도 지난 다음에야 보안원이라는 작자가 나타나서 족쇄를 풀어주면서 마치도 자미로운 맏형처럼 “임마! 그러게 처음부터 솔직하게 진술했으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아?”라고 말하면서 등을 툭툭 쳐 주었다.

나는 그게 감지덕지 하기도 하고 앞일을 생각하니 기가 막혀서 엉엉 울었다. “김악당”도 무슨 영문에선지 젖은 목소리로 “남자새끼가 무슨 그 만한 일에 눈물이야? 자 이젠 뭘 좀 먹어야지?”하면서 삶은 강냉이 두 이삭을 외투주머니에서 꺼내 나에게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순간적으로 직업의식을 망각한 동물적 조건반사이거나 아니면 사람을 다루는데 이골이 난 보안원 본능의 교활성의 표현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구두발과 주먹에 얻어맞은 얼굴이 퉁퉁 부어올라 눈을 제대로 뜰수가 없었고 입안이 터지고 이발이 죄다 들떴으며 족쇄를 찼던 손목은 발로 걷어차서 어떻게나 조였던지 피가 엉켜붙은 틈새로 허연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순간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도데체 내가 무슨 죽을 죄를 졌는가? 학교를 졸업하자 군대에 나가 전방군단에서 8년동안 ‘총축탄 정신으로 당과 수령을 위해 성실히 근무했고 제대 후에는 남들이 다 싫다고 하는 농장에 아무 군소리 없이 배치 받아서 10년이상 당에서 시키는 대로 소처럼 부지런히 일만 하지 않았는가? 인민의 보안원? 네가 도데체 인민의 보안원이 맞기는 맞는가? 왜 우리는 이렇게 밖에 살수 없는가?

바보처럼 순종만하고 살아온 것이, 개돼지처럼 맞아서 터진 것이 분해서 나는 황소울음소리를 내면서 슬피슬피 울었다. 살아가는 과정에 가끔은 억울하게 당해본적도 있고 불만스러웠던적도 있지만 이렇게 까지 생각해보기는 처음이였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보안원이 악에 받친 소리로 “이 종간나새끼! 어자어자 하니까 어디와서 지랄이야!라고”라고 하면서 옆구리를 걷어차서 쓰러뜨렸다. 책상위에 놓여있던 두 개의 삶은 강냉이는 아궁이 속에 던져지고 “오늘밤 중으로 진술서를 다 쓰라! 똥집까지 털어놓지 않으면 죽을줄 알아!”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나의 불행한 운명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그 뒤로도 이틀 동안 수차례 더 얻어터지면서 3년동안 강냉이 2백킬로 그램을 훔쳐 먹었다는 진술서를 쓰고 ‘강제노동대’에 끌려가지 않은 대신 농장에서 40일간의 무보수 노동을 거친 후에야 정상적인 출근을 하게 됐다. 당시는 가을철이어서 농장에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에 군에 있는 ‘강제노동대’에는 끌려가지 않고 해당농장에서 무보수노동으로 대체했다.

그러나 무보수노동을 마치고 정상적인 출근을 한다고 하지만 법적처벌이 남아있는 상태여서 하루하루 가슴을 조이며 살아가야만 했다.

탈북자 이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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