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연예인이던 탕 웨이를 일약 중국 최고의 스타덤에 올려놓은 이완 감독의 영화“색계” 의 파워가 서울에 까지 전해지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교수가 영화“색계”와 김일성 빨치산의 여군들을 비교하여 북한체제의 우월성을 찬양하고 나선 것이다.

친북사이트에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내용을 해설해 연재하고 있는 서울대 김상일 교수는 주체사상 편(19편)에서 “항일 유격대의 <색, 계>와 북한 헌법 63조”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김 교수는 이 기사에서 이완 감독의 영화 <색, 계>를 본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동시에 김일성 회고록을 함께 읽은 사람들이라면 양자 사이에 비교와 대조를 아니 느낄 수 없을 것이라며 회고록에 나오는 조선의 항일유격대 안에서 활동한 여성 대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북한 예술 영화 <생의 흔적>을 <색, 계>와 대조하기도 했다.

영화 “색계”의 주된 내용은 일제 치하의 중국에서 대학생인 왕 치아즈(탕웨이)가 공산당의스파이가 되어 매국노이며 국민당의 정보기관 수장인 이(양조위)를 죽이기 위해 미인계를 써서 그에게 접근 한다는 것이다.

개봉 전부터 노출수위가 파격적이라는 영화광고로 관객의 흥미를 끌어 모았던 “색계”는 두 주인공의 열연과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양조위)를 처단하기 위해 미색을 이용해 접근했던 탕웨이는 끝까지 혁명이 맡겨준 임무를 수행하려고 노력하지만 상대의 성적 매력과 자신의 노래에 눈물 흘리는 인간성,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6캐럿의 다이야 몬드를 선물하는 양조위의 마음 앞에 흔들려 무너진다. 결국 탕웨이는 친구들과 함께 양조위의 손에 죽게 된다.

탕웨이는 저항군 간부와 자기 남자 친구에게 이(양조위)와 수단일지라도 성적교감을 가질 때면 상대가 자신도 모르게 심장 속을 파고든다며 색과 계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색계"를 비판한 김일성

김상일 교수는 김일성이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광수의 소설 <혁명가의 아내>를 읽고 써낸 독후감을 소개하면서 소설 속의 혁명가의 아내와 “색계”의 탕웨이를 비교했다.

김일성은 “혁명가의 아내”가 한 공산주의자가 병 치료를 하고 있을 때에 그의 아내가 남편의 병 치료를 해 주며 다니는 의학전문학교 학생과 치정관계를 맺는 추잡한 생활을 그린 작품으로서 공산주의를 모독하고 공산주의 운동을 헐뜯는 사상으로 일관되어 있었다”(1권-214쪽)고 비판하고 있다.

교수는 김일성의 이 말은 계로서 색을 억제하지 못한 혁명가의 아내에 대한 질책인 것으로 이해된다며, 김일성이 분명히 이완 감독의 영화“색계”를 지금 본다면 여전히 공산주의에 대한 모독 그리고 추잡한 생활을 그린 작품으로 볼 것인지도 궁금하다고 썼다. 그러면서 회고록 속에는 탕웨이 같이 여성으로서 조국 해방과 혁명 전선의 조직에 뛰어든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며 일본군의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혁명가의 절개를 지켰다는 여성빨치산들의 무훈담을 탕웨이와 비교해 설명하고 있다.

김 교수는 탕웨이가 변절 아닌 변절을 하는 장면과 죽음을 선택한 빨치산 여대원의 서로 대조 되는 모습에서 조선여성의 우수성을 보았다고 했다.

회고록은 우상화를 위해 창작해낸 소설작품

그러나 비교의 조건이 도무지 성립되지 않는 두 사건을 억지로 한데 엮어서 김일성의 빨치산과 북한체제의 우월성을 찬양하려는 친북교수의 주장은 설득력이 많이 떨어져 보인다.

우선 김일성의 회고록은 본인이 집필 한 것이 아니라 김일성 우상화를 위해 당 역사 연구소와 북한 최고의 작가들이 모여서 만든 소설작품에 불과 하다. 이에 대해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 선생은 김일성의 회고록은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서 당 역사 연구소와 4.15문학창작단의 작가들이 합심하여 창작해낸 소설작품이라고 증언했다.

북한이 김부자의 가계우상화를 위해 구호나무를 조작하고 김정일의 고향을 백두산이라고 날조하는 것만 보아도 김일성의 회고록에 그려진 화려한 역사가 부풀려지고 왜곡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김일성의 항일투쟁의 공로를 전면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한 인간을 흠결 없는 완벽한 신으로 그려놓은 부풀리고 왜곡된 역사를 액면그대로 믿고 소위 빨치산 여성의 도덕적 순결성과 인생관을 극찬하는 친북 교수의 순박한 논리가 그저 놀랍기만 하다.

물론 신념을 지켜 죽은 그녀들의 희생정신과 용기는 가상하나 김일성의 회고록에 나오는 여성 빨치산 대원들이 “색계”의 탕웨이와 같은 임무를 부여받았더라면 그들의 운명도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탕웨이는 스파이로서의 전문훈련을 받은 프로도 아니고 시대의 조류에 휩쓸려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 혁명의 길에 들어선 먹물 티가 가시지 않은 연약한 여대생에 불과하다.

두 눈이 뽑히고도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고 소리쳤다는 그래서 김상일 교수가 감동했다는 최희숙이라는 빨치산 여대원에게 탕웨이와 같은 임무가 주어졌다면, 그런데 그 여대원이 마타하리처럼 스파이 방면에서 철저하게 검증되고 훈련된 프로가 아니라면 그 역시 탕웨이와 같은 실수 아닌 실수를 하지 않는다고 누가 감히 장담하겠는가?

허구로 가득찬 주체사상은 결코 개인과 전체의 관계에 완벽한 답이 될 수 없다

이에 대해 김교수는 탕웨이의 변절을 탓 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 개인으로 있을 때 얼마나 겉잡을 수 없는 가를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개인으로서 인간의 본성이 이렇게 불안정한 이유는 인간이란 개인이면 동시에 전체이기 때문이며 북한 헌법 63조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는 이 문제에 완벽한 답변을 준다고 했다. 김교수는 개인이 철저하게 자기 개인을 사회나 당과 일체화 시키는 기제 장치가 안 되어 있는 한, 개인 인간 본성은 그것이 색과 계의 사이이든, 권력과 계의 사이이든, 재물과 계의 사이이든 확고할 수 없으며 그래서 주체사상은 개인과 전체의 관계 설정을 제일 목적에 두고 이를 헌법에 까지 반영하고 있다고 북한체제를 찬양했다.

주체사상의 본질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이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주체사상의 원리는 기존의 물질중심의 철학사관에서 인간중심의 철학사관으로 전환했다는데 그 의의가 있으나 혁명의 주체인 인민대중이 자신의 운명을 자주적으로 개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김일성, 김정일의 영도를 받아야 한다는 반동적인 수령숭배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자유라는 진실 앞에 무너지는 주체사상의 허구

김교수가 찬양하는 개인과 전체의 관계에 대한 완벽한 정답이라는 주체사상의 허구성을 얘기하자면 굳이 시대를 거슬러 멀리 둘러 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1988년 대한항공 KAL기폭파사건의 주범인 북한 여간첩 김현희씨의 사상전향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자살하려고 독약까지 먹었던 그녀가 전향한 한 것은 심리적 공포와 물리적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진실의 힘이라 할 수 있다.

18년간의 김일성 주체사상과 8년간의 특수교육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혁명투사 김현희가 남쪽의 자유를 누린지 불과 8일 만에 북한체제를 증오하는 쪽으로 일대 사상전환 했다는 것은 자유라는 진실 앞에서 주체사상이라는 허구의 바벨탑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색계”를 보면서 목적을 위해서라면 거리낌 없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까지도 희생양으로 던지는 공산주의자들의 잔혹함에 솔직히 섬뜩함을 느꼈다.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저들의 행위는 소위 인간의 자주성을 지향한다는 주체사상이 결국, 인간의 자주성을 유린하는 반동적인 노예굴종사상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일성이 눈물흘린 "생의흔적"은 유교이념과 독재체제에 충실한 꼭두각시 홍보물

다음으로 김교수가 탕웨이의 실수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찾아 낸 모델이 북한영화 “생의흔적”의 여주인공이다.

예술 영화 <생의 흔적>은 김일성이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영화 가운데 하나이다. 김일성은 “아직까지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려보기는 처음이라고, 이 영화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정확한 대답을 주었다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저런 영화는 나오지 못한다고, 조선에 저런 훌륭한 녀성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고, 인간의 한생을 아주 잘 그렸다고 말했다”고 한다.

영웅의 아내로서 한 남자를 끝까지 사랑하고 동시에 남편이 사랑한 조국을 위해서 한 생을 사는 것이 진정한 ‘생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는 것이 이 영화의 내용이다. 과부인 여 주인공은 죽은 남편의 무덤에 찾아 가지 않는 데 대해 주위 사람들로부터 변심했다는 오해를 감내하면서 집단 농장에서의 노동을 통해 남편의 영혼이 사랑한 것을 사랑하는 것, 그래서 개인과 집단이 같아지는 것이 생의 흔적이 된다는 것이다.

봉건조선의 성리학자인 정이천은 “굶어 죽는 일은 작고 절개를 잃는 일은 크다”라는 말로 과부의 수절을 장려했다. 이 말은 민주주의 관점에서 놓고 본다면 과부의 인권을 상당히 저해하는 발언으로 봉건유교사상이 얼마나 여성들에게 가혹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의 삶의 목표를 개인적 행복이 아니라 집단에 대한 의무였음을 강조한다면 이런 발언은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반제반봉건민주주의 혁명을 통해 봉건의 잔재를 말끔히 청산했다는 공산독재자 김일성이 조선시대의 윤리적 폐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다.

김일성이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여 주인공의 삶은 여성의 수절과 체제에 대한 충성만을 강요하는 봉건유교사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빼앗긴 비극적인 현대판 노예의 삶이라 할 수 있다.

여주인공이 진출한 집단농장은 폐쇄되고 낙후한 북한사회를 대표하는 구시대의 산물이다. 폐쇄된 집단농장 경영으로 북한의 농사는 해마다 흉년이 들어 일반주민은 물론 농사를 짓는 농민도 식량부족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인간의 노력은 올바른 결실을 보아야 빛을 발할 수 있다. 죽은 남편의 뒤를 이어 집단농장에서 땀과 노력을 바쳤다는 여주인공의 일생은 굶주리는 농민을 양산해내는 기형적이고 비정상적인 체제에 충성하는 전형적인 꼭두각시 홍보물에 불과할 뿐 영웅적인 삶도, 개(個)와 전(全)의 잘 어우러진 조화된 삶도 아니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개인의 모든 것을 집단(전체)을 대표하는 수령을 위해 희생할 것을 강요하는 전체주의는 결코 개인과 전체의 관계에 대한 정답이 될 수 없다. 개인의 행복과 삶의 질 향상이 최우선시 되고 있는 현시대에 일방적으로 개인의 회생을 강요하는 전체주의가 통할 수 없다는 말이다.

김대성 기자 lstarki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