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은 정권 장악이 목적인 이념 집단이다. 따라서 이념을 당명에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정당은 이름만으로도 빛을 발하는 유명 상표처럼 그 자체로 프리미엄이 붙어서, 고정 지지자를 대거 확보할 수 있다. 보수당, 공화당, 노동당, 공산당, 자유당, 민주당, 녹색당, 사회당 등은 일체의 수식어가 필요 없다. 민주가 성숙한 나라일수록 공존하는 정당의 이름이 이렇게 간명하다. 그러면 국민은 대를 이어 한 정당을 지지할 수도 있고, 정체성이나 이익에 따라 정당을 지지할 수도 있다. 이런 나라는 정치만이 아니라 경제에서도 상식이 통하고 법이 준수되어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높아진다. 역동성과 안정, 질서와 화합이 동시에 달성된다.

민주의 역사가 일천한 나라는 정당의 이름에 수식이 많이 붙는다. 이념이 분명치 않기 때문이고 민주가 제도화되지도 체질화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소수와 약자를 존중하는 다수결의 원칙을 민주라고 할 때, 민주가 아예 없었거나 없는 나라는 옛 공산권이나 현재의 공산권 또는 빈곤국의 독재국가에서처럼 정당이 사실상 하나밖에 없다. 사교(邪敎) 수준의 이념 정당인 공산당이나 노동당이 유일 정당인 땅에서는 그것이 당원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무소불위의 폭압적 조직에 지나지 않지만, 인류 역사상 최고의 민주 정당인 양 군림한다. 아첨과 찬양과 충성맹세가 있을 뿐, 일체의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다. 신성모독이 되므로 코미디 소재로도 사용할 수 없다.

한국은 민주의 역사가 일천한 나라답게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정당의 이름이 바뀐다. 대통령이 된 후에 당명을 바꾸지 않으면, 동네 슈퍼마켓을 인수하여 대대적으로 신장개업하면서 지역 상권을 틀어쥐려는 야무진 꿈을 꿈꾸며 있으나 마나하는 옛 고객을 생각하여 가게 이름을 바꾸지 않는 것처럼 쩨쩨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옛 주인의 흔적을 싹 지우지 않으면 짝퉁으로 오인 받을까 두려워하는 듯하다. 길어야 5년만 지나면 줄줄이 감옥에 갈 게 뻔함에도 저마다 천 년 만 년 가는 새 왕조를 개창하는 태조(太祖)를 자처한다. 정권을 잡지 못하면 당명이 더 자주 바뀐다. 심지어 한 사람이 정당을 여러 개 창당하는 것도 한국에선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니다. 도리어 그것이 탁월한 능력으로 치부된다. 결국 한국의 정당은 이념의 공당(公黨)이 아니라 권력을 꿈꾸는 개인의 사당(私黨)이다. 김영삼당, 김대중당, 노무현당, 이명박당, 김종필당, 이회창당, 박근혜당!

무엇이 켕기는지 이념 공세에 스스로 주춤주춤 밀려나더니, 사실상 보수와 애국과 자유에 호소하여 표를 얻는 정당이 ‘보수’와 ‘공화’와 ‘자유’에 기겁한다. 마치 그것이 독재를 상징하기라도 하는 듯이! 한나라당이나 새누리당은 그렇게 해서 태어났다. 이름으로 봐서는 그것이 정당인지 프로스포츠단인지도 아니면 포도당이나 과당처럼 영양소인지도 구별되지 않는다. 반대편에는 열린우리당이 있었다. 그것은 당시만 해도 시기상조라 보아, ‘진보(엽기적 진보)’를 얄팍하게 숨기는 용어였다.

한국에선 민주당이 제일 인기 있는 당이지만, 거의 언제나 앞이나 뒤로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한국민주당, 신민주당, 민주한국당, 평화민주당, 새천년 민주당, 꼬마민주당, 통합민주당, 민주통합당처럼 ‘한국, 신, 새천년, 통합’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입으로만 민주를 외치는 사람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한 흔적일 뿐이지만, 언제나 민주란 용어로 순진한 사람들을 현혹한다. 최근에는 ‘진보’란 용어가 ‘민주’의 상전으로 올라섰다. 용인지 이무기인지, 토룡인지 모르나 작은 진보가 큰 몸통 민주의 머리 역할을 담당한다. 위풍당당한(뻔뻔한) 이들도 이념을 숨기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노동당이 그나마 이념을 정직하게 드러냈었다.

이들은 통합진보당에 흡수통일되어 18대 총선에서 약진하면서 언론의 즐거운 조명을 받자, 은밀히 떠돌던 군자산의 약속이 낙수처럼 툭 불거지고 긴가민가하던 경기동부연합이 대숲의 참새처럼 드러나고, 요사이는 먹을 게 많아져서 그런지 내부고발로 기상천외 비민주적 행태가 속속 드러난다. 그러나 주사파 전사들은 끄떡도 않는다. 이미 이들의 은밀한 일찌감치 지령으로 과반수를 명시한 헌법에 반하는 ‘국회 몸싸움 금지법’이 통과되어 19대 국회에서 그들이 대활약할 교두보를 확보해 둔 상태다. 일부 교체가 된다 한들, 손해 날 것 하나도 없다. 해체가 아니라 교체되는 한, 더 큰 배후의 실세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종북(從北)보다 친미(親美)가 더 문제다.’

이렇게 자신들의 파렴치한 부정과 몰상식한 부패를 김일성의 적반하장 논리로 정당화하면서 정체성 내지 이념을 분명히 드러낸 자가 있다. 외환위기 이후 정당의 이념이 민주나 자유가 아니라 친북(親北)과 반미(反美)인 당이 두 번 여당이 되었다. 현재도 이들은 이념의 광장에선 사실상 야당 아닌 여당으로 군림하고 있다. 19대 총선에선 야권연대란 용어를 만들어 내어 ‘자유’를 당명으로 사용하는 소수 보수야당의 피를 토하는 고발을 가볍게 물리치고 당당히 ‘중립적인’ 중앙선거위의 공인을 받았다. 중앙선거위도 법원처럼 친북반미의 위력 투구(빈볼)에 자발적으로 중립의 스트라이크 존을 왼쪽으로 크게 넓히고 있다는 증거다.

아직은 국민의 70%가 자유와 민주를 정치 양심으로 삼기 때문에, 그들은 감히 친북반미당이라고 당당하게 당명을 정하지 못하고 민주와 진보 또는 평등과 평화로 위장한다. 절대다수 국민의 뜻을 받드는 것처럼 거기에 ‘통합’으로 거창하게 장식한다. 이들은 치열한 내부투쟁을 벌이며 전략상 흩어져 있으되, 평양을 결사옹위하고 워싱턴을 무차별 공격하는 크고 작은 전투에는 언제든지 한 몸처럼 쓰나미가 몰려가듯 치달린다. 우르릉 꽝, 악마의 천둥처럼 한 목소리를 낸다. 당명이 무엇으로 바뀌든, 그들은 오로지 친북과 반미에 순교자적 목숨을 건다. 그것이 그 바닥에선 성공의 첩경이다. 부와 명예와 권력의 비단길이다.

(2012.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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