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희와의 이별

추위는 더욱 드세졌고 죽어나가는 사람 수가 여름보다 점점 많아져서 일주일 동안에 한 달구지씩 되었는데 20명도 넘는 것 같았다. 사람이 죽으면 페니실린 병에 이름과 생년월일, 출생 날짜, 나이를 적은 종이를 넣고 목에다 걸었다. 그런 다음 비닐로 몸을 둘둘 말아서 달구지에 싣고 꽃동산이라는 곳에 가져다 묻었다.

그때까지 나는 한 번도 꽃동산이라는 곳에 가보지 못했었는데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모두 끔찍했다. 그날도 내 옆에 누워 있던 아줌마 한 명이 죽어 꽃동산으로 갔고 그처럼 좀 전까지 살아 있던 사람들이 그렇게 한 명 두 명 죽어나갔다.

영희도 계속 설사를 해서 점점 여위어만 가더니 이젠 아예 드러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예쁘고 예뻤던 영희는 나무 꼬챙이 마냥 바싹 말라 있었다. 밥을 먹으러 따라나서지도 못할 만큼 야윈 영희를 대신해 내가 밥을 받아다 먹였다. 지금처럼 쌀밥이면 얼마나 좋았으랴! 건강한 사람이라도 아마 그때의 그 밥을 먹었다면 탈이 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음식이 부실하다 보니 영희의 병은 좀처럼 낫지 않았다.

설이었다. 2000년 설날! 함박눈이 펑펑 오는 교양소 안은 너무도 쓸쓸했고 무서운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 설날에 생사를 알 수 없는 아버지와 여동생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거지가 된 남동생과 감옥에서 잠시 상봉했다가 헤어졌던 엄마는 또 어떻게 되었을까? 남동생은 밥이라도 제대로 먹고사는지….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아!~ 내 인생!

세상은 우리 집안을 너무도 잔인하게 부숴버렸다. 식구들 모두가 어디에 있던지 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했다. 내 마음이 이런데 부모 없는 고아인 영희는 오죽하랴! 영희에게는 내색 안 하고 늘 웃어주었지만 내 가슴에는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설날에도 일어나지 못하고 그렇게 누워 있는 영희가 너무도 불쌍했다. 영희는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언니, 나 죽고 싶지 않아. 나 꼭 살아서 엄마, 아빠가 못 간 제주도에 꼭 가야 해!”

나는 눈물만 흘렸다. 마음이 아팠고 정말 안타까웠다. 아무런 약 처방도 없이 누워만 있는 영희가 불쌍했고 그런 영희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나 자신이 정말 미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옥수수를 얻어 불에 태워서 가루를 내어 먹이는 것밖에 없었다. 너무 속상했다. 이것이 인생이란 말인가?

영희의 손을 꼭 쥐고 꼭 살아야 한다고만 그냥 힘주어 말할 뿐 다른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살고 싶어 하는 영희, 부모를 잃고 혼자가 된 영희를 살려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영희야, 설사하고 누워 있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어찌하겠니? 하지만 꼭 살아남아서 언니랑 같이 엄마 아빠의 고향인 제주도에 가야 돼. 알았지? 그런데 네가 이렇게 아파서 어디 제주도에 가겠니? 빨리 나아야 해. 알았지?”

말은 그렇게 당당하게 했지만, 밖에 나와서 울고 또 울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영희가 점점 살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한 생각이 자꾸 들기 때문이었다. 영희에게 약 대용으로 쓸 옥수수마저도 얻기가 조련치 않았다.

식당에 있는 친해 놓은 교양생에게 옥수수 몇 알을 얻어서 불에 태워 가루를 내어 먹였었는데 그렇게 한 2, 3일이 지났을까? 그날따라 영희는 나를 자기 곁에서 떠나지 못하게 했다. 너무 여위어서 예뻤던 영희의 본 모습은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말도 겨우겨우 했고 입도 간신히 열었다. 영희의 숨소리가 가쁘게 들렸다.

“언니, 나…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요….”

“무슨 소리 하니…? 너 뭐가 안 된다는 거야?”

“언니, 미안해. 나 먼저 제주도에 가 있을 게. 언니…, 꼭 와야 해. 응? 언니….”

영희는 가쁜 숨소리를 내며 가까스로 말했다. 나는 와락 부둥켜안았다.

‘영희야~ 안 돼! 누구 마음대로 누구 마음대로 그런 말을 하니…. 우리 약속했잖니. 꼭 제주도에 같이 가자고…. 안 돼! 널 못 보내!’

의사선생을 만나보았다. 선생은 이제 1시간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다. 이게 무슨 하늘 무너지는 소리인가?

“선생님, 영희를 살리는 방법은 없습니까? 저의 살을 떼어서라도, 저의 피를 뽑아서라도 영희를 살릴 수만 있다면 아무것이라도 할 수 있어요. 선생님….”

선생은 안 된다고, 이젠 늦었다고, 죽는 게 걔뿐이냐며…. 안 된단다. 아무렇게 해도 안 된단다. 이젠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같이 가겠다고 약속했건만 내가 사랑하는 동생 영희가 이렇게 먼저 간단 말인가?

‘하나님, 하나님 계십니까? 너무 불공평하신 거 아닙니까? 왜 하필이면 영희입니까? 네!? 다 죽고 딱 영희 하나만 남았습니다. 그것도 안 됩니까?’

하나님께 마음속으로 간절히 정말 간절히 간구했다. 영희를, 내 동생 영희를, 귀엽고 귀여운 영희를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영희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북한의 교양소와 그 안에서 선생으로 불리는 모든 악마들과 악당들을 나는 용서하지 못한다. 절대로 용서하지 못한다. 아니 나 뿐 아닌 교양생들 모두가 다 같은 생각일 것이다.

막 뛰어갔다. 영희가 있는 병실로…. 영희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눈을 크게 뜨고 나를 향해 손을 가리켰다.

“영희야!”

영희는 다가가는 나의 손을 잡으려고 애썼다. 영희의 손을 꼭 잡았다.

“언니야! 나… 먼저 제주도에 갈게요…. 헉…. 허….”

영희의 눈이 점점 커지며 나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영희야! 안 돼… 안 된다고! 영희야!”

그렇게 부르짖었건만 영희는 대답이 없었고 대신 몸만 점점 굳어져 갔다. 가냘픈 영희의 그 마지막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것만 같다.

하나님! 하나님! 계십니까? 계시면 우리 영희, 내 동생 영희를 좀 살려주세요!

영희의 심장은 멎고 몸은 굳어졌다. 얼마나 이 세상에 한이 맺혔으면 눈도 감지 못했을까? 영희를 붙들어 안고 통곡했다. 꼭 살아서 나가자고 약속했건만 이렇게 먼저 갈 줄 몰랐다. 그것도 살아서가 아닌 죽어서 말이다.

불쌍한 영희! 밥 한 끼 따뜻하게 해먹이지도 못하고 영희를 보낸 나 자신이 속상하고 미웠다. 영희의 눈을 감겨주고 종이에 ‘김영희’라고 써내려 가는 나의 손은 떨렸다. 꿈만 같았다. 지금의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마치 나를 놀라게 해 주려고 일부러 그렇게 누워있는 것만 같았다. 금방이라도 ‘언니 놀랬지?’하며 일어날 것 같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냥 이대로 나도 영희랑 나란히 누워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영희야, 이름도 예쁜 영희야! 김영희라는 그 이름을 부모님이 이쁜 너에게 지어주셨건만 이렇게 예쁜 이름을 남기고 어디로 가는 거니~’

이름을 적은 종이를 페니실린 병에 넣어 목에 걸어주는데 그 목이 너무도 가늘었다. 가족과의 이별도 가슴 아픈데 동생으로 인연을 맺었던 영희와도 이별해야 했다. 내게 이별은 너무도 쉽게 다가왔다. 아니 이별에 너무도 익숙해진 것 같았다. 죽을 때까지 ‘김영희’라는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처참하게 죽은 영희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 손으로 눈을 감겨준 영희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2반 반장이 반원 6명을 데리고 와서 굳어진 영희의 몸을 비닐로 둘둘 감았다. 목에 새끼를 한번 매서 양쪽으로 길게 1미터 넘게 내놓고 허리에도, 발목에도, 그렇게 해서 6명이 들고 나가 창고에 넣었다.

‘영희야~! 너 나쁜 애야. 언니 남겨두고 왜 먼저 가니?’

교양소가 점점 무서워졌다. 아니 이 나라가, 내 조국이라는 이 나라가 너무 무서워졌다. ‘나라’라고 하지만 ‘조국’이라고 하지만 어디에 몸 둘 곳 하나 없는 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