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평양시 현대화에 이어 국제도시화 할 계획을 세우고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고 있다. 자금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던 유경호텔의 공사를 이집트의 자본을 끌어들여 재개했고, 백화점과 무역센터 등 국제적인 기준에 맞춘 도시건설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최근 중앙일보 기자들이 평양을 취재하면서 뜨거운 건설열기를 느꼈다고 한다. 건물신축공사는 물론 도로보수공사까지 평양시 전체가 공사장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평양시 도로보수공사에만 약 1~2억달러의 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번 평양건설에는 수백개의 외화벌이 회사들이 벌어들인 외화와 당 자금, 평양과 지방에서 거두어들인 지원금까지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상황을 놓고 볼 때 평양시 건설 같은 대규모 공사는 무리한 측면이 많아 보인다. 북한경제는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고, 주민들은 식량부족으로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최근 미국의 구호단체들이 북한 평안북도와 자강도의 식량실태를 조사한 결과 기근 초기 징후들이 발견됐다고 발표한 것은 그만큼 북한내부의 식량사정이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현재의 북한상황이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시기의 상황에는 못 미치지만 많이 어렵다는 게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견해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이렇게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본격적인 평양시현대화 건설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가? 그 답은 바로 2012년에 있다. 그동안 북한정권은 김정일의 70세 생일이 되는 2012년까지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고 주민들에게 선전해 왔다.

강성대국의 본질은 한마디로 선군정치를 유지하면서 경제건설을 발전시켜 눈부신 비약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사상강국, 군사강국, 경제강국의 3박자가 선군정치 강화와 경제발전이라는 두 단어 속에 함축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2012년까지 체제유지와 경제발전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불과 4년밖에 남지 않은 기간 동안 북한경제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해 강성대국을 건설한다는 것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현재 고유가와 곡물가격의 상승으로 세계 경제상황은 좋지 않다. 세계12위의 경제대국인 한국도 현재 고유가로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오죽하면 이명박 대통령이 ‘제3의 오일쇼크’라고 우리경제의 위기상황을 표현했겠는가? 한국정부는 물가안정에 주력하는 한편 올 하반기 경제성장목표를 3.8%로 하향조정했다. 고유가 파동이 계속되는 한 경제성장목표를 높이 잡을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이다.

한편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기록하는 북한경제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려면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3~4%를 넘어서야 한다.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생산력의 증대와 함께 시장의 확대가 필요하다. 시장이 확대되어야만 해마다의 생산을 결정하는 유효수요(有效需要)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력을 결정하는 것은 노동력 ·자본 ·기술이다. 북한은 양질의 노동력은 가졌지만 자본과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북한이 지금처럼 폐쇄정책을 고집한다면 경제성장의 동력인 생산력의 증대를 기대할 수 없다.

또 시장의 확산을 체제붕괴의 위협요인으로 간주하고 있는 북한정권이 시장통제를 강화하고 있는 한 시장의 확대 또한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체제개혁과 대외개방 없이 부분적인 내부개혁만으로 북한경제를 발전시키는데도 한계가 있음이 이미 앞선 경험을 통해 증명됐다.

북한은 7.1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신의주특구, 금강산관광특구, 개성공단 지정과 외국인투자은행법 제정(2002), 농민시장을 종합시장으로 확대(2003), 공장.기업소 지배인의 권한 강화(2004), 수입물자 교류 시장 운영(2005), 상업은행법 제정(2006) 등 여러 가지 후속조치를 취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내부 변화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대내외적인 요인으로 경제발전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2007년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에 따르면 북한의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년보다 2.3% 줄어 2006년(-1.1%)에 이어 2년 연속 하강곡선을 그렸다. 여기에 사회 양극화의 확산과 부패 만연, 인플레 심화, 무역적자 확대 등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는 경제.사회적 부작용은 커지고 있다.

이렇게 북한 경제가 4년 안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는 조건은 어디에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

만일 북한이 2012년까지 비약적인 경제발전으로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무능한 정권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임이 커지고 민심이 요동치게 되어 정권의 존망마저 위태롭게 된다.

그동안 북한주민들은 1992년 3차7개년 계획이 끝나면 이밥에 고깃국을 먹고 기와집을 쓰고 살게 될 것이라는 김일성과 노동당의 선전이 실패로 끝나고, 3년 동안의 과도기를 거쳐 이어진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김정일 정권의 무능함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그 후 ‘선군정치’로 불리는 전대미문의 군사독재정치의 시작과 함께 김대중-노무현의 ‘햇볕정책’으로 빈사상태에 이르렀던 김정일 정권은 기사회생 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주민들은 강화된 독재 권력의 횡포와 탄압에 초보적인 생존의 자유마저 박탈당한 채 죽지 못해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고 있다. 이미 민심은 김정일 정권에 등을 돌린지 오래다.

다양한 루트를 통해 전해지는 소식에 따르면, 북한사회는 이미 치안(治安)이나 질서가 상당한 정도로 무너져 극심한 내부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김정일 정권은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실패했으며, 北 주민들의 정권 이탈과 그에 따른 괴리감, 불안감, 좌절감 등은 날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다.

- 김정일 정권은 등 돌린 북한민심을 달래고 체제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평양시 현대화 건설이 곧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정치선전용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까지 경제발전에 실패하더라도 현대화되고 국제적인 도시로 건설된 평양의 모습을 주민들에게 보여주면서 강성대국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정치적 선전물로 이용하려는 것이다.

한마디로 평양현대화 건설은 이미 경제재건의 희망을 포기한 김정일 정권이 그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인민들의 이목을 딴 데로 끌기 위한 정치적인 이벤트에 불과하다.

- 다음으로 북한이 2012년을 중시하는 이유는 김정일의 나이 70세가 되는 해로서, 북한권력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북한권력의 3대세습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김정일은 자신의 독재권력을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준비를 실행 중에 있다. 평양시 현대화 건설도 후계자의 정치적인 위상을 제고하고, 후계자의 업적을 과시해 안정적인 권력승계가 이루어 질수 있도록 사전포석을 놓는 준비단계로 볼 수 있다.

평양시 건설이 김정일의 매제이며 노동당 행정부장인 장성택의 지도하에 진행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추측을 가능케 하는 하나의 이유이다. 또 장성택이 북한의 후계구도에 충분히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점이다.

- 그렇다면 평양시 현대화 건설 사업이 북한주민들에게 강성대국 건설의 기쁨을 안겨주는 승리의 상징물이 될 것인가? 아니면 고통의 상징물이 될 것인가?

수십만 노예들의 피와 땀으로 건설된 애급의 피라미드와 만리장성이 현대에는 불가사의한 기적으로 역사적인 상징물로 각광받고 있지만 그것을 건설한 당대 사람들의 고통을 헤아리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평양은 북한주민들의 피와 땀으로 건설된다. 건설에 참여하는 평양시민들의 고통도 물론 크지만 지방에서 지원금 부담에 시달려야 하는 주민들의 고통도 적지 않다. 얼마 전까지 평양에서 살다 한국에 온 탈북여성은 “평양시 현대화 사업에는 전체 평양시민이 동원되어 돈과 노력을 바쳤다”며, “돈은 한 푼도 안주고, 인민들에게 무조건 방침으로 내려 먹이는 김정일 때문에 북한주민들이 제명에 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주민들의 피땀으로 건설된 평양은 외국인들에게 북한의 발전상을 홍보하는 전시관으로 활용되어 참담한 북한의 진실을 가리고, 일부 몰지각한 친북좌파 세력들이 북한을 천국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인민이 굶어 죽는 가난한 나라의 화려한 수도 평양의 모습은 개혁개방을 거부하면서 강성대국을 부르짖는 김정일 독재정권의 허황한 망상을 보여주는 역사의 증거물이다.

김대성 기자 lstari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