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의 신분을 밝히지 못하고 애써 마음을 달래며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해 들었다. 그들은 북한현실에 대해 너무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박 선생은 계속해서 “전기나 석유 등 에너지 사정도 최악이어서 기차도 3일이나 5일에 한 번씩 다닐 정도니까 기차가 한 번 들어오면 식량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빵통(기차) 지붕 위에도 사람들이 올라타고 갑니다. 가다가 지금처럼 추울 때에는 얼어서도 죽고 혹은 기차에서 떨어져서 죽는 경우도 있답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최 선생은 의문을 풀지 못하며 다시 물었다. “아니 근데 북한에서는 기차 사정이 왜 그렇게 좋지 않습니까?”

그러자 박 선생은 “북조선에는 각 도마다 운행하는 기차가 열 대 정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열 대 정도로 식량 구하러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실어 나를 수는 없는 정도 이지요. 그나마 일주일에 한두 번밖에 다니지 않으니까 기차가 들어오는 날이면 역전에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특히 기차 발동기는 전부 일본제인데 마사져서(부서져서) 부속품도 없고 돈이 없어서 고칠 엄두도 못 냅니다.

역전에 나가보면 알림판에는 항상 ‘미정’이라고 붙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는 거죠. 평양까지 가는데 2, 3일이 걸렸는데 지금은 기차가 잘 다니질 않아서 보름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나는 박 선생이 북한의 철도 사정에 대하여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북한에는 전국적으로 약 700대 정도의 견인열차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 견인열차의 가동률이 80년대, 90대 초에 비하여 현저히 낮다. 발전기고장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한편 박 선생이 잘 모르는 것이 있다면 북한에서 견인열차 발동기의 대부분은 구소련에서 수입한 것이다.

구소련이 붕괴되기까지 북한은 발전기 고장에 따른 부품을 수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부터는 수입이 안 되다. 특히 절연지가 없어 수리가 되지 않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최 선생이 자기도 어데서 들었는지 되받아 물었다. “전기 사정도 좋지 않다면서요?” 그의 물음에 박 선생은 머리를 끄덕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파트를 지나다 보면 어쩌다 형광등 불빛을 볼 수 있고 대부분 전등을 켜고 사는데 불빛이 너무 희미해서 글씨를 잘 구별 못할 정도라고 합니다. 그나마 자주 정전이 되고... 잘사는 집에서는 TV를 보려고 해도 전압이 약해서 소형 변압기와 과전압 차단기가 없으면 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던 최 선생은 갑자기 ‘잘사는 집’이라는 말에 의문이 생겼는지 다시 묻는다. 아마 그는 북한이 공급과 분배를 등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나라라는데 의미를 두는 것 같았다.

“아니 잘사는 집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급하게 물어보는 최 선생의 말에 박 선생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당 고위간부들이나 북조선에서 살고 있는 중국화교들, 미국이나 일본에 사는 친척들이 보내준 미국 딸라(달러)로 장사하는 사람들, ‘외화벌이’를 하는 무역사람들이나 중국에 조금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친척들이 보내준 돈이나 식량, 옷감 등으로 장사를 해서 돈을 계속 굴리는 사람들이지요. 그런 집에는 모두 일제 TV나 냉동기(냉장고)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박 선생도 이것만은 모르는 것 같았다. 북한에서 권력은 돈이고 돈은 권력이라는 말이 성행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북한은 철저히 권력형사회이다. 누가 어떤 권력을 쥐고 인민위에 군립 하는가에 따라 잘살고, 못살고 가 규정된다. 물론 외국에 친척을 든 연고자들이 비교적 잘 살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 있다. 외국에서 돈을 부쳐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노동자의 경우, 인간 처세술이 능란하지 않으면 겨우 밥술이나 뜰 정도이다.

박 선생의 말에 최 선생은 의아한 눈길로 그에게 물었다. “아니 북한에도 중국화교들이 살고 있단 말입니까?”

그의 물음에 박 선생은 웃으며 “예, 그 사람들이 아주 잘산답니다. 중국에서 사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오히려 살기가 편하다고 합니다. 생활수평(수준)도 중국의 도시보다는 못하지만 농촌보다는 낫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몇 년 전까지는 화교들이 중국으로 들어와서 정착해서 사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중국에 와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고 대부분 중국을 왕래하면서 장사를 해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화교는 어디까지나 중국국적을 가진 외국인이다. 따라서 이들은 보위부의 감시대상은 되도 북한주민들처럼 생활총화를 비롯한 우상화 학습에서 제외된다. 한마디로 중국에 쉽게 왔다 갔다 하며 장사를 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보위부의 감시인데, 북한의 하부단위 보위부, 보안원들은 이미 부패되었기 때문에 뇌물만 챙겨주면, 그들은 북한주민들보다 자유롭게 장사도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북한주민들이 굶주림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원인을 짚어 볼 수 있다.

인간의 생존권과 자유로운 생활이 당국에 의하여 감시, 통제 받기 때문에 주민들의 생활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북한주민들에게 화교와 같은 자유로운 생존권만 보장해도 지금처럼 비참하지는 않을 것이다.

박 선생의 말에 그는 화교들이 홍콩은 물론 싱가포르나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 미국, 영국 등 세계 각국에서 정착하여 뿌리를 내리고 사는 저력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기아와 병마에 시들어가는 폐쇄된 북한 땅에서도 그렇게 잘산다니, 그들의 장사수완과 근면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얘기했다.

최 선생이 말을 돌려 다시 묻는다.
“남한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의약품을 북한에 지원한다고 하는데?”

그의 물음에 박 선생은 다시 말을 뗐다. “의약품이 없어서 애들이 많이 죽어 나가는 모양입니다. 영양실조에 걸린 상태에서 기초약품이 없다보니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애들도 죽는 경우가 있고 산원(산부인과 병원)에서는 산모가 미역국은커녕 죽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결국 산모가 제대로 먹지 못하니 젖이 안 나와 신생아들까지 못 먹이고 있으며 산원원장이나 비서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식량을 구해와 죽을 쑤어서 애들에게 먹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유를 먹이면 되지 않을 가요?”하고 최 선생이 되받아 친다.

지옥에서 살아본 사람이 천국을 안다는 말처럼, 아마 남한사람인 최 선생은 북한이 지옥과 같은 세상이라는 사실을 정말 모르는 듯 했다. 나는 최 선생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우유 살돈이면 왜 죽을 써먹겠는가? 라는 물음을 속으로 던지며 말이다. 나는 그때 “ 세계 12위의 경제력을 가진 한국 사람들이 원시적인 삶을 사는 북한주민들을 과연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생각했다.

그러나 박 선생이 다시 응답한다. “일 반집 애들은 우유를 구경조차 못합니다. 우유는 고사하고 사탕도 못 먹습니다. 식량이 없어서 굶어죽는 판에 사탕이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작년에 회령지역에서 전염병(장티푸스)이 돌아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북조선에서도 병원은 있지만 약이 없어서 치료를 못하는 실정이라며 중국에 사는 친척들에게 중국 페니실린을 보내달라는 연락이 왔답니다. 식량사정 다음으로 시급한 것이 의약품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박 선생도 너무 기가 막혀 담배를 피우며 한숨을 쉰다. 최 선생도 역시 더 다른 말을 못한다. 이들은 그래도 조선족이든, 한국인이든 한민족이 아닌가? 당연히 한 숨이 나오고, 말을 잇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북한문제해결이 한민족의 걱정거리가 아니라 동북아, 나아가서는 국제사회가 나서서해결해야 할 국제적인 문제임을 실감했다. 이제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알게 되었지만 그 때 생각했던 것처럼 북한문제해결은 단순히 우리민족, 남북한 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알게 되었다.

지금 전문가들이 말하는 북한 문제란 북한의 비핵화문제, 인권개선문제, 개혁개방문제로 집결된다. 이것이 이뤄져야 남한과 같은 민주사회를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서 김정일 독재정권은 “암”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암은 발견초기에 수술해 버려한다는 일반적인 상식을 되살려 본다.

(다음에 계속)

탈북자 백명옥 (2007년 입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