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맏형 격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몸살을 앓고 있다. 작년 대선을 거치면서 여야가 한목소리로 '경제 민주화'를 표방하면서부터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추진한 일련의 경제 민주화 입법에 전경련이 반대하면서 위기는 더욱 심화되었다. 재벌 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는 법률 및 가맹 사업의 공정거래를 보장하기 위한 법률 등이 최근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SK나 CJ 그룹 회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 또한 전경련 입장에서는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작년 계열사에 엄청난 손실을 떠넘긴 혐의로 법정 구속된 한화그룹 회장 사건이 아직도 진행 중이어서 더욱 그렇다. 재벌 기업 오너들의 도덕성을 국민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전경련의 노력 또한 절절하다. 지난 5월 허창수 회장 이하 전 직원은 전통시장 상인연합회의 협조를 얻어 현장 체험을 하고 '전통시장 경쟁력 강화 방안'이란 보고서를 작성 중이라고 한다. 또한 지난 2월 내부 승진한 이승철 상근부회장 또한 "전경련이 대기업 이익의 대변자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국민경제를 대변하는 대기업 모임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승철 부회장은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국민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정부의 정책 기조가 '경제 민주화'보다는 '경제 활성화'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균형 성장과 적정 분배를 위해 추진되고 있는 경제 민주화가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한 노력임을 인정하지만, 결과적으로 중소기업과 상생관계에 있는 대기업을 억눌러 결국에는 모두가 공멸하는 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만약 대기업에 대한 역차별이 국내 자본의 해외 탈출로 귀결된다면 경제 민주화가 오히려 국민경제의 성장 동력을 갉아먹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어렵사리 선진국 문턱까지 왔는데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이런 맥락에서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최병일 원장의 최근 돌직구는 큰 울림을 준다. "1% 성장에 만족하는 공직자는 옷 벗어라." 최 원장의 일갈은 한국 경제를 일으킨 선배들의 노력을 우리 세대가 계승해야 한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두 자리의 성장률을 한 세대 동안 지속시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성취를 우리가 이어가야 한다는 외침이다.

박정희로 대표되는 정부와 이병철·정주영으로 대표되는 기업이 '산업보국(産業報國)'이라는 철학을 공유한 결과가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 다음의 어록이 웅변한다. 이병철의 고백이다. "삼성이 중요하냐, 국가가 중요하냐. 국가가 중요하다. 국가가 부흥하면 삼성 같은 건 망해도 또 생길 수 있다. 국가가 망하면 삼성은 영원히 없어진다. 그러니 국가가 우선이다."(1984년 1월 월간조선) 정주영은 자신이 세운 기업 사훈에 아예 다음과 같이 못을 박았다.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될 수 있는 길이다."(현대중공업 사훈)

박정희 대통령의 슬로건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가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에 일조했음 또한 우리 모두 의심하지 않는다. 이들의 기여로 대한민국엔 셀 수도 없는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오늘날 국민이 누리는 일인당 소득 2만달러 시대는 이들이 없었다면 결코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최병일 원장은 이러한 철학을 계승해 "경제성장과 복지 그리고 일자리 확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현재의 경제 상황을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경제가 침체하면서 동반해 나타나고 있는 현상 중의 하나가 전경련의 위상 하락이다. 잘나가던 시절, 다시 말해 '한국 주식회사'가 세계를 놀라게 하던 시절 전경련은 우리나라 경제의 고도성장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전경련의 위상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그에 따라 우리 경제를 이끌던 '산업보국'이라는 철학도 점차 쇠락하고 있다.

심지어는 재벌 기업이 종북 좌파의 숙주가 되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반역'에 동참하는 현상마저 드러나고 있다. 이병철 회장의 장손이 투자한 문화 콘텐츠가 종북 좌파 코드를 확산하는 데 기여하고, 정주영 회장의 손자가 주인인 백화점이 대한민국 역사를 부정하는 '백년전쟁'이라는 동영상을 만든 이에게 문화 강좌를 맡기고 있는 현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기업보국은 못할망정 '기업 종북'이 웬 말인가. 나라를 위해 불철주야 기업 활동을 한 선조가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