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삼형제의 맏이로 함북도 무산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무산광산에서 일했고 나는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나갔다l 10년간의 군사복무기간 나는 모범병사로써 부대의 보배로 불렸고 생활을 잘해 남보다 입당도 빨리하고 표창휴가도 받아 고향에 두 번씩이니 다녀갔다. 그때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너무 대견스러워 기뻐 어쩔줄 몰라 하셨고 동생들은 경사가난 것처럼 동네방네 자랑하며 내 뒤를 졸졸 따라 다녔다.

그 후로는 군사복무가 끝날 때까지 5년간 고향에 한번도 가보지 못했고, 부대가 평남도의 깊은 산골로 이동하는 바람에 가족과의 소식마저 끊겼다. 드디어 10년의 군사복무 전 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여자 친구와 함께 고향땅을 밟게 될 부푼꿈에 젖어 부대에서 보낸 마지막 밤은 길고도 길었다.

공상에 잠겨 새벽 닭이 울 때까지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던 나는 한밤 중 꿈에 여자친구와 아버지,어머니,동생들의 축복속에 결혼식을 올리는 달콤한 환상에 빠져 기쁨속에 보내기도 했다. 이제 집에 가면 그립고 보고 싶었던 가족들 학교선생님들 동창생들과의 상봉과 만남은 생각할수록 너무도 기쁘고 가슴 벅찬 일이였다. 18살에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입대하여 근10여년간의 군사복무는 어떻게 생각하면 지긋지긋한 고역이기도 하였지만 그나마 운이 좋아 무사히 넘긴 자신을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부풀었던 꿈은 하루아침에...

이튿날 부대 지휘관들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한국 같으면 몇시간 밖에 걸리지 않을 짧은 거리이건만 가난한 북한에서는 평남도에서 함북도까지 가자면 빨라야 삼사일 걸린다. 언듯언듯 스치는 벌거벗은 산에 굶주림에 뼈만 남은 아이들과 노인들의 모습은 눈을 아프게 했다.

새벽5시 기차는 헐떡거리며 여행에 지친 사람들을 싣고 무산역 종점에 도착 하였다. 나는 서둘러 일어나 선반에서 짐을 찾아들고 내린 다음 객찰구로 빠졌다. 역 밖에선 꽃제비로 불리우는 사람들이 어른아이 할 것없이 손을 내밀고 동냥하며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녔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몇년전에 휴가로 왔을 때보다 사정이 더 안 좋아진 고향 모습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갑자기 들뜬 기분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집 걱정이 앞섰다. 어머니는 늘 앓아 누워계셨고 아버지 혼자 벌어 가정을 이끌고 가셨기 때문에 내가 군대에 나가기 전에 우리 집은 동네에서 제일 가난한집으로 불렸었다. 어머니는 늘 쪽박을 차고 집집마다 쌀 꾸러 다녔고 어린 동생들은 매일 같이 먹을 것 가지고 싸웠다.

어느덧 마을어구에 들어섰다. 때는 육월이라 가뭄에 땅은 말라있었고 간간히 불어오는 두만강 바람이 내 군복자락을 들추어놓곤 했다. “엄마 ”나는 낯익은 문고리를 잡고 소리쳐 부르며 잡아당겼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닌 웬 아저씨가 나와 “누구냐?”고 물었다 ‘내가 잘못 왔나?싶어 ’당황해 하며 어쩔바를 모르고 서있는데 옆집 경호엄마가 나오시더니 ‘철호가 아니냐?’며 내손을 잡고 눈물부터 흘렸다. 그리고 비명에 돌아간 우리 식구들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빠 엄마 두 동생 모두 굶어 죽다

먼저 영양실조로 앓고 계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나마 겨우 유지되던 가정이 풍지박살이 났다고 했다. 조금 남아 있던 그릇과 옷가지들은 하나하나 시장에 내다 팔아 쌀과 바꾸어먹고 이불솜까지 팔다나니 집안에는 서말 막대기를 휘둘러도 거칠것이 없을 정도로 텅 비었다고 한다.

이제는 팔아먹을 것이 더는 없게 되자 배고픔을 참지 못한 동생들이 길거리에 나가 꽃제비 생활 하였고 혼자 남은 어머니는 집을 헐값에 팔고 창고 같은 빈집을 얻어 돌아 가실 때까지 지내셨다고 했다. 함북도 무산군은 추운 지방이다. 그때가 겨울이라고 하였다.

사망되기 전 얼마나 추었으면 가마를 들어내고 온기가 있는 부엌 아궁이 안에 들어가셨다가 돌아 가셨는데 검은 숱이 온몸에 달라붙어 사람인지 아니면 타다 남은 나무인지 가려보기 힘들더라고 했다. 거기에다 머리칼은 불에 반나마 타 없어지고 시신은 관이 없어 인민반에서 모아온 비닐 박막으로 둘둘 감아 그대로 산에 묻었다고 하였다.

동생들도 처참하게 죽었다

남동생 철식이는 길에서 류랑 걸식하며 다니다 얼어 죽었고, 막내 여동생 은숙이는 아빠의 조선노동당 당증까지 팔아먹으며 살려고 애를 쓰다 끝내 가족의 뒤를 이어 며칠 더 못살고 굶어죽었다고 했다. 그래도 여동생이 제일 나중에 죽었다고 말했다.

나는 기가 막혀 울음도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정신만 가물가물 멀어졌다. 내가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10년의 청춘을 바쳐 군사복무를 했는데? ...누구를 위해...??얼울한 나의 물음에 독재정권은 사랑하는 가족들의 처참한 죽음으로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나를 이 세상 혈혈단신의 고아로 만들어 차디찬 세상에 던졌다.

나는 결혼을 약속한 순애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두만강을 넘었다. 지금은 한국에 도착하여 건설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 김정일 독재정권이 망할 때까지 굶어죽은 우리의 가족의 몫까지 합쳐 열심히 살아 갈 것이다.

탈북자 정철수(2005년 입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