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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은 함경북도 회령군이다. 이곳에서 나서 자라고 지금 남편도 이곳에서 만났다.
남편은 월북자였다. 1970년 MBC 방송국에서 근무하다가 북한은 빈부 차이가 없이 누구나 행복하게 잘산다는 대남방송을 듣고 비 내리는 그믐밤에 휴전선을 넘어 평양에 왔다. 그때 남편은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분계선을 넘자 북한 군인들이 붙잡아 놓고 조사를 하더니 평양으로 이송 하였다. 이틑날 기자회견이 있었는데 보위부의 한 간부가 나를 조용히 불러 종이한장을 꺼내주면서 ‘이 대본을 보고 외우시오. 기자들의 질문에 자기 마음대로 말하면 안 됩니다. 여기에 적힌대로 이야기 하시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야 나는 ‘잘못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고역이었고 늘 감시가 뒤 따랐으며 자유를 주지 않았다. 사랑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함께 일하던 공장 아가씨와 첫사랑을 하였지만 토대가 나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한번은 동료들과 술좌석에서 남조선 보다 북조선이 못하다는 말을 했는데 그것이 보위부에 그대로 들어가 아오지 탄광으로 쫒겨 내려갔다. 남편은 늘 고향을 그리워했으며 남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배를 타고 달아나자고도 했다.
집은 불타고 남편은 굶어죽고...
탄광 노임으로 다섯 식구가 근근히 살아가던 우리는 북한에서 소위 말하는 ‘고난의 행군’시기를 맞이했다. 능쟁이 풀에 낟알을 조금 넣고 며칠동안 멀건 죽으로 끼니를 에우다 나니 풀독으로 온 식구가 몸이 퉁퉁부어 자리에 누었다. 돈이 될 만한 물건은 시장에다 내다 팔고 덮을 이불마저 없어 비닐박막으로 몸을 감고 자곤 했다.
막내딸 효심이가 이러다간 온 집안이 하루아침에 굶어 죽겠다면서 자기가 나가 탄광에 나가 일해 낟알을 구해오겠다고 했다. 한창 피어날 나이에 탄광에서 석탄을 캐었으니 얼마나 힘들었으랴 마는 굶어 드러누은 식구들을 위해 자기 점심밥도 먹지 않고 집에 가져와 우리를 주곤 하였다.
하루는 자기 앞에 차려진 국수를 비닐주머니에 고이싸서 탈의실에 숨겨 두었는데 퇴근 시간에 가지고 가려고 보니 생쥐가 먹어버렸다 했다. 그래 그날 울면서 아빠 엄마 주려고 나도 안 먹었는데 생쥐한데 도적 마쳤다고 슬피 울자 온 직장 사람들이 함께 울었다 했다.
나는 이러다간 다 굶어죽을 것 같아 술장사를 시작하였다. 돈을 빌려다 시작한 장사여서 본전을 뽑아야 하였기에 라진으로 막내 효심을 데리고 떠났다. 그곳은 중국 장사가 개방이 되어 다른 곳의 두배 값으로 잘 팔린다고 하기에 다문 몇푼이라도 더 벌기위해 그곳으로 떠났던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군사 분계선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철조망이 둘러져 있었던 것이다. 2미터가 넘는 철조망위에 전기가 흐르고 총을 멘 군인들이 50m 간격으로 한명씩 서있었다.
‘내가 잘못왔나?’옆에 친구에게 물어보니 라진시는 외국 사람들이 무역으로 많이 나와 있기 때문에 민간인들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게 하기 위해 군대를 배치하고 철조망을 쳐놓았다고했다.
이때 마침 가까운 곳에서 살려달라고 하는 애처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살이 타는 역겨운 냄새에 놀란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황급히 달려가 보았다. “이런! 세상에~” 나는 기가 막혀 말을 더할 수 가 없었다. 새까맣게 타버린 남녀의 시체가 철조망 밑에 쓰러져 있었던것이다. 군인들을 피해 몰래 철조망 밑으로 빠지려다 전기에 합선된 것이었다.
나는 돌아서려 했지만 차비가 없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바엔 한번 시도해보리라 생각하고 남들이 하는대로 철조망 밑으로 10센치 가량 파헤치고 머리를 들이 밀었다. 기어들어가는 순간 전기가 흐르는 소리가 윙윙 들렸지만 목숨을 하늘에 맡기고 기고 또 기었다. 한참을 기어서 코에서 나오는 더운 공기가 손등을 간지럽히자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의 숨이 나갔다.
확실히 그곳은 어렵게 들어온 것만큼 술이 비싼 값으로 잘 팔렸다. 나는 그 돈으로 중국상품(옷)을 구입하여 짐을 꾸리고 다시 철조망을 넘어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속도를 낼쯤에 열차 앞뒤를 막고 철도 보안원들이 증명서 검열을 시작했다. 칼치처럼 생긴 보안원이 증명서를 보자고 하더니 없다고 하자 다짜고짜로 짐을 가지고 단속실에 오라고 하였다.
나는 달리는 차에 뛰어 내리고 싶었다. 들어만 가면 무조건 짐을 빼앗길 것이 뻔한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그들도 우리 같은 사람을 단속하여 물건을 회수해 살아가는 기생충들이니 인정사정 있을리 없다. 내가 눈치를 보며 단속실 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데 칼치가 다시나오더니 내 짐과 효심이를 무작정 끌고 들어갔다. 그 안에는 단속된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칼치 보안원은 짐을 풀어보고 새우젓이 나오자 코를 찡그리며 재수 없이 좀 장사꾼이 걸렸다고 투덜댔다. 그리고는 짐을 놓고 나가라고 하였다. 그러자 효심이가 울며 보안원의 옷을 붙잡고 사정했다. “보안원 아저씨 우리식구의 목숨이 달린 짐 입니다 돌려주세요 ...네? 돌려주세요” 그러자 그는 버럭 화를 내며 “이 거지같은 간나새끼 당장 나가지 못해? 교화소에 안 보내는 것도 다행으로 생각해라 ”며 구두발로 얼굴을 걷어찼다.
나는 코피가 터져 피 범벅이 된 얼굴로 칼치의 구두발에 채여서 우는 효심이를 일으켜 세우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딸애와 함께 팔자를 한탄하며 터벅터벅 집으로 향했다. “앞으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갈까?” 생각할수록 답답하고 눈물만 났다. 어느덧 멀리서 마을이 보였다. 그런데 알지 못할 불길한 예감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심장이 뛰기 시작 하였다. 옛날부터 불행은 쌍으로 온다고 했던가? 나무가 타는 매캐한 냄새와 함께 검은 연기가 집 쪽에서 났던 것이다. 나는 한달음에 뛰어갔다.
까맣게 그을은 주춧돌, 타다 남은 기둥, 깨진 물독... 그 옆에 쭈그리고 멍하게 앉아있는 남편, 그는 나를 보더니 배가 고프다는 말 한마디 남기고 쓰러졌다. 더는 앉아 있을 기운도 없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도 빈손에 들어온 터이라 풀죽도 끓여 대접할 형편이 못되었다. 그날 저녁 이불 한 채, 식기 하나, 옷 하나 건지지 못한 집터에서 비닐박막으로 온 식구가 몸을 감고 잤다. 이렇게 매일 취약한 생활을 반복 하다나니 피부병이 생겨 헌데가 나고 밤이면 가렵고 근질거려 잠들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쌀밥 한 그릇 실컷 먹어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 남기고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굶어 비명에 돌아간 남편의 죽음 앞에서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영양실조로 몸을 겨우 움직이는 맏딸 영심이가 아버지를 붙잡고 슬피 울었다. “아버지 우리만 남겨놓고 가시면 어떻게 해요 함께 가요~” 다큰 처녀가 성숙된 자기몸 하나 제대로 감추지 못한 너덜너덜 다 해진 옷을 입고 몸부림 치는걸 보니 부모로써의 자책감에 미칠 것 같아 죽고 싶었다. “그래 죽자 어차피 굶어 죽을 몸이니 며칠 더 산다고 좋은 날이 오랴” 나는 인민반에서 들어온 부조 돈으로 약간의 쌀과 쥐약을 사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 밥을 정성껏 지워 제사를 올리고 내 생각을 말했다. 그러자 막내딸 효심이가 나에게 매달리며 “엄마 나 죽고 싶지 않아 우리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라고 졸라댔다. 남은 애들도 같은 생각이라면서 살길을 토론해 보자고 권했다. 맏딸 영심이가 요즘 동네 처녀들이 중국 사람들 한데 많이 시집간다고 하면서 자기도 나가 알아보고 중국에 가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중국에가 자리 잡으면 연락 하겠으니 기다려 달라는 말 한마디 남기고 집 문을 나섰다. 이것이 맏딸과의 마지막 이별이었다. 그 후 일년, 아니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딸애의 소식을 알 수 없다.
북한에 있을 때 내 친구가 우리 집에 와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금옥아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이렇게 썩고 병든 나라는 없다. 나는 조선에서 태어난 것이 한스럽다.”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라 친구 입을 막으며 말했다. “애 어쩌려고 그런 말을 해! 너 정치범으로 몰려 죽고 싶어?” 하지만 내가 당해보니 알겠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죄 없는 백성을 파리 목숨보다도 못하게 여기고 이유 없이 굶겨죽이고 얼어죽이고 때려죽이는 나라는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북한. 김정일 군사독재정권 이라는 것을...
탈북자 이금옥(2004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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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09-06-2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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