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30일, 북한이 10여년 간 시장에서 상거래로 부를 축적한 주민들의 자본주의적 성향을 억누르고 약화된 당국의 통제력을 찾을 목적으로 전격 단행한 화폐개혁이 후퇴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혹 떼려다 한 개 더 붙인 꼴’이다.

북한은 2000년대 들어 확산되는 시장의 범위를 제한하려고 많은 조치를 내놓았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이번에 100:1의 화폐개혁도 벌려보았지만 이미 실패로 돌아갔다.

북한당국은 1990년대 초 300만 명이 굶어죽는 위기를 겪고 2003년 3월 시장의 확대조치를 취했다. 소규모 농산품만 유통되던 농민시장을 공산품도 팔 수 있는 종합시장으로 늘였고 장사꾼들로부터 자릿세인 ‘시장 사용료’와 소득세인 ‘국가 납부금’을 걷었다. 배급제가 사라진 부분을 시장으로 가리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북한당국에 시장의 확산은 점차 정권불신의 화근으로 부상되어갔다. 돈을 번 세력들은 당국의 통제에서 벗어났고 ‘돈맛’을 본 관리들은 부패되었다. 암(暗)시장에서는 거래가 금지된 한국 드라마 CD와 성인 동영상, 각종 군수물자, 심지어 김일성 김정일 배지까지 나돌고 있다. 하루 수천~수만 명이 오가는 시장에서는 북한 심충뉴스가 ‘장마당 안테나’라는 채널로 전국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에 불안을 느낀 북한 당국은 2005년 10월 양곡 전매제를 발표해 식량의 시장 거래부터 막으려 했다. 그러나 현재 시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매매되는 품목은 식량이다. 50세 이상 여성만 장사, 각종 품목과 수량의 제한 등으로 주요 시장을 폐쇄하거나 규모축소를 하려 했으나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모두 흐지부지됐다. 작년 말 “시장을 없애라"는 김정일의 지시가 집행되지 않을 만큼 주민들의 시장화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북한당국이 시장화를 막으려면 주민들이 먹고 살 배급을 진행해야 한다. 2005년 양곡 전매제가 실패한 것도 주민들에게 배급할 식량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배급제를 부활할 능력도 없고, 이제는 두 번 다시 당국의 선전에 속을 주민들도 없다.

북한 당국은 이번 화폐개혁을 하면서 주민들의 시장화 수준을 절감했을 것이다. 최근 북한이 교환 한도를 50만원까지 늘린 것도 시장 세력의 돈을 빼앗으려다 핵심 계층의 동요로 체제가 불안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금 북한 주민들은 화폐개혁으로 혼란스러은 시장과 물품가격을 본래의 자리로 다시 구축하고 있다. 이로 인해 당국은 시장을 허용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어 시장과의 전쟁도 결론적으로 실패로 끝났다는것이 불 보듯 명백하다.

김은호 기자 kyz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