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함경남도 고원군의 한 농촌마을 협동농장 게시판에 누군가 밤중에 ‘우리는 가축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써놓았다. 물론 ‘범인’을 잡느라 국가안전보위부가 한 달 동안 소란을 피웠다.

‘우리는 가축이 아니다’의 의미는 굶주림과 가난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의 원성이었지만 80년대까지는 그래도 ‘아니다’라는 관념을 전제로 내포하고 있었다. 그 ‘아니다’라는 관념이 비교적 사치였다는 것을 북한 주민들은 90년대에 이르러서야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다.

90년대 중반부터 북한의 주민들은 ‘가축이 아니다’가 아니라 ‘가축이다’는 관념을 가지고 살아야 했다. 전대미문의 굶주림이 휩쓴 90년대 사람들의 인식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축이 되어야 한다’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대규모로 굶어죽는 속에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쥐가 먹는 것이든, 돼지가 먹는 것이든 먹고 죽지 않는 것, 가축이 먹을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정해놓고 닥치는 대로 먹었다. 나무껍질과 풀은 물론이고 술 찌꺼기, 된장을 만들고 버리는 찌꺼기 등등. 두부를 만들고 버리는 두부찌꺼기는 고급 음식이었다.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을 먹고 죽은 사람들도 많다. 돼지나 염소가 먹는 풀도 사람이 너무 많이 먹으면 풀독이 온몸에 퍼져 나중에는 죽는다. 칡뿌리를 통째로 분쇄해 먹고 꼿꼿한 섬유질이 내장기관에 쌓여 죽은 사람들도 있었다. 예쁜 처녀들이 돼지가 먹던 ‘능쟁이’를 너무 먹어 다리와 얼굴이 팽팽하게 부어오른 모습을 남한 사람들은 상상해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지금도 남한의 일부 사람들은 김정일 독재정권을 비호하는데 아마 그들도 굶어죽은 어린이들이 길가에 널린 ‘북한의 진풍경’을 모습을 보았더라면 금세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를 가축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사례는 90년대 중반 김정일 독재정권이 중국에서 수입해 들여온 ‘식량’이라는 것이 모두 가축용 사료라는 것.

김정일 독재정권은 중국에서 가축사료들을 들여와 주민들에게 ‘식량’이라고 속이고 먹였다. 우마(牛馬)의 머리와 돼지머리를 상표로 그려 넣은 밀가루 포대와 강냉이 포대들. 그것도 배급으로 준 것이 아니라 약초나 산나물과 교환해 주었다. 주민들은 그 가축사료를 먹기 위해 날마다 약초를 캐고 산나물을 뜯어 바쳤다. 우마의 머리가 그려져 있는 포대의 밀가루는 이물질이 너무 많이 섞여 있어 반죽도 잘 되지 않지만 북한 주민들에게는 그것마저도 비교적 괜찮은 식량이었다.

2003년 필자가 중국에서 가축의 머리가 그려져 있는 강냉이와 밀가루 포대들이 어디에서 생산되는지 현지인들에게 물은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가축사료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이라고 대답했다. 궁금해서 물어보기는 했지만 가축사료를 먹어보았다는 말을 필자는 끝내 하지 못했다. 이유는 가축사료를 먹고 살았다는 사실이 너무 비참했고 창피했기 때문이었다.

탈북자들이 중국에 넘어간 후 격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민들이 가축이 되어 비참하게 죽어갈 때 김정일은 한 끼 식사를 위해 외국에 비행기까지 띄우며 호의호식을 즐겼다는 점이다. 북한에서는 주민들이 김정일도 인민들의 굶주림을 가슴아파하며 그래서 주먹밥 한 덩어리를 먹으며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김정일의 어용나팔수인 북한 선전매체들이 매일 그럴듯하게 외치는 거짓선전의 효과이다.

필자는 전국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진행되었던 2008년 6월 한국에 입국했는데 그 때 참으로 큰 감명을 받았다. 광우병이 생길지 안 생길지 잘 알 수도 없는 쇠고기 문제를 부각시키며 온 나라가 일어선다는 것은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북한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면 한국의 광우병 촛불시위는 ‘행복한 자들의 배부른 흥정’이었다. 북한 주민들은 가축이 되어 비참하게 죽어 가는데 남한 사람들은 깨끗한 가축을 골라먹으려고 촛불시위까지 하며 거짓선전에 속아 폭력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북한 주민들이 가축으로 전락된 지 20년이 되어 가지만 아직도 북한은 암흑천지이다. 24일 본 방송국의 함경북도 통신원은 전화통화에서 지금 위기일로를 치닫는 식량위기를 대비해 김정일 독재정권이 중국에서 대대적으로 ‘식량’을 수입하는데 그중에는 여전히 가축사료들이 많다고 전했다. 통신원은 북한 독재정권이 중국에서 식량이 아니라 가축사료를 들여오는 이유를 두 가지로 분석해 설명했다.

첫 번째 이유는 부정축재에 습관이 된 권력계층의 횡포이다. 그들은 싼 값에 식량(가축사료)을 수입하는 방법으로 자신들의 ‘몫’을 남긴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재정이 어려운 무역기관들에 식량수입을 강압적으로 지시하는 탓에 그들이 식량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가축사료를 들여와 주민들에게 유통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 중국에서 수입하는 ‘식량’을 먹고 부작용으로 앓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하면서 통신원은 김정일 독재정권의 시장탄압과 화폐개혁의 여파로 북한 주민들의 생활은 혹심하게 파괴 되어 올해에는 영락없이 모든 사람들이 가축처럼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선락 기자 dmsgur325@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