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살 때 일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날이었습니다.
언제나처럼 그날도 배가 고프다는 생각만이
머리속에 꽉 차 있었습니다.
 
학교에 다녀왔지만,
어머니는 저녁밥을 지으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저녁은 안하냐고...
 
어머니가 들릴락 말락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솥에 넣을게 물밖에 없구나'라구 말입니다.
 
창문밖을 힘없이 내다보시는 아빠의 뒷모습보다,
부뚜막에 앉아 무슨 말 한마디라도 하면
당장 울음을 터뜨릴것만 같은 엄마보다,
더 마음이 아팠던 것은,
'나는 며칠을 안먹어도 하나도 배 안고파!'라고
말하는 동생의 하얗게 일어난 입술이었습니다.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듯한 동생은
자기가 어떤 모습인지 잘 모랐는가 봅니다.
그리고 용맹한 척 하면서 나는 괜찮다는 말만
연발합니다...
 
온 가족이 아픈 가슴을 누르고 눈물을 참으며
한참 그렇게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문뜩 아빠가 저에게 장마당 (시장)에 나갈
준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영문을 모르지만, 옷과 양말을 챙겨 외출 준비를
끝냈을 무렵에야 저는 아빠가 왜 시장에 나가시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쓰시던 자그마한 재봉(미싱) 한대를
메신 아버지는 '얼른 신 신어 가게'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에게 금방 다녀오리다 하고 나오신 아버지는
시장 도착 하는 내내 아무말씀도 없으셨습니다.
 
아빠와 함께 시장 구석 아무데나 쭈구리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 허름한 재봉(미싱)을 자신없이 내놓았습니다.
그렇게 한시간...두시간...
아무도 얼마냐고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와 저는 때식(식사)을 해결하지 못한 채
점점 좌절감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배고픔보다 훨씬 잔인한 감정이었습니다.
 
끝내 팔리지 않은 재봉을 메고 늦은 밤,
쌀 한공기, 먹을 거 하나 사지 못한 채
그렇게 종일 굶은 아빠와 나는 마치도
가면 안되는 곳에 가는듯한 기분으로
집을 향했습니다...
 
저는 폴짝 폴짝 뛰면서 우수개소리를 꺼냈습니다.
아까 전에 집에서 동생이 하던 뻔한 행동을
저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길 가에 늘어서 있는 음식파는 아줌마들과
눈이라도 마주칠까봐,
사주지 못하는 아빠가 그런 제 시선을 보게 될까봐
일부러 뒤로 폴짝 폴짝 걸으면서 재롱을 부려보았습니다.
 
한참 그렇게 가고 있는데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습니다...
그때 그 소리가 얼마나 얄미웠던지...
아빠 얼굴이 금새 어두워졌습니다..
그러더니 '배 마이 고프지?' 하고 짧은 한마디를 던지셨습니다.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듯한 질문같았습니다.
아버지는 머리를 떨구신 채 계속 걸으셨습니다.
 
저는 아빠의 축 늘어진 손을 살며시 잡았습니다...
한참동안 아무말도 없는 아빠가 하도 이상해서
걷다가 아빠 얼굴에 시선을 멈춘 채 똑바로 쳐다봤습니다...
그런 저는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고 생각했던 우리 아빠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빠가 참지 못해 터뜨린 그 눈물의 의미를
그때 이미 알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저도 아려오는 어린 가슴을 움켜쥐고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입술을 꽉 깨물고 걸었습니다.
 
배고픔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아버지가 느끼는 마음을 알것 같았던
그  잔혹한  깨달음과,
수 많은 아빠들의 울고 있는 심장소리가
들려오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린 제 마음속에
집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엄마와 남동생의
초라한 눈동자가 떠오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날 아버지의 눈물을 못본척 해야 하는 일은
13살 저에게
3일을 굶는 일 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무척이나 보고싶은 날입니다
어딘가에서 홀로 울고 있을까봐, 마음은
이미 아버지곁으로 가서 아버지 손을
살며시 잡고 있습니다.
이젠 눈물을 닦아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