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열흘 후 보위부에서 보안서로 이송 된 나는 12월의 맵짠 바람이 살을 에이 던 어느 날, 여러 명의 애들과 함께 보안서 건물 짓는데 끌려 나갔다.
 
마당에 들어서자 감찰과장이란 자가 나와 ‘여기 온 간나들, 다 죽여 버려야 할 년’들이라고 악담을 퍼붓더니 공사현장의 험한 일을 시키기 시작했다.
 
두 달 가까이 굶다시피 한 우리에겐 너무나 힘든 노동 이였다. 그런데 보안원들이 지키고 서서 잠시도 쉬지 못하고 아침부터 시작한 일은 어둠이 내릴 때까지 끝날 줄을 몰랐다.
 
그들은 우리에게 하루 종일 악담을 퍼부으며 조금만 비위에 거슬리면 구타를 일삼았다.
 
너무 힘들어 입술은 터져 피가 줄줄 흘렀고, 한겨울 추위로 온 몸은 꽁꽁 얼어 잘 움직여지질 않았다.
 
기력이 쇠진할 대로 쇠진해지고 게다가 추위로 온 몸이 얼어들어 배 아픔으로 허리를 펼 수가 없었다.
 
화장실에 갔으나 나오는 건 없고 배만 끊어지게 아팠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나는 그 자리에서 그냥 죽고 싶었다. 인생이 그리도 고달프고 지겹고 처절 할 수가 없었다.
 
지금껏 버텨오며 살아서 꼭 딸을 만나고 다시 이국으로 가서 기어이 성공해야 한다고 이를 악물고 참아오던 다짐이 한순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 오히려 편할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저도 모르게 자리 잡는 것이었다.
 
지겹고도 힘겨웠던 그 밤 수용소로 돌아오는 내 다리는 감각도 없이 후들거렸고 어떻게 그곳까지 왔고 어떻게 숨이 붙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다음날 겨우 정통편 한 알을 얻어 입에 넣었는데 얼마 지나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 순간 내가 오늘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정신을 차리니 가슴속에 온갖 설음이 몰려들었다. 나와 딸을 남겨두고 세상 떠난 남편과 중국 땅에서 홀로 엄마를 기다리며 울고 있을 어린 딸이 눈앞에 삼삼히 떠올라 쏟아져 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참담한 독재자와, 참담한 하수인들과 참담한 국민이 함께 공존하는 그 세상이 내 가슴을 무거운 매돌 같이 짓눌렀고 앞날에 대한 절망감이 온몸을 사로잡았다.
 
다음 날 보안원이 한사람씩 불러내는 것이었다. 뭐하려 그러나 했는데 에이즈 검사를 한다면서 뼈에 거죽만 남은 우리의 팔을 걷고 피를 뽑기 시작하였다.
 
내 차례가 되었는데 간호사가 혈관을 찾지 못해 팔꿈치이며 팔목, 손등을 열군데도 넘게 찔러대는 것이었다. 몸이 허약한 나는 견디지 못하고 눈앞이 캄캄해 지면서 쓰러졌다.
 
곁에서 보안원이 “간나새끼, 그래 누가 중국 가라더냐.” 하면서 상욕을 해대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시간이 흘러 정신이 든 나는 그곳에서 당하는 짐승보다 못한 삶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정신을 잃어도, 사람이 죽어도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는 냉혈인간들! 몸이 아파도 약 한번 주지 않았으니, 우리 모두는 그들의 눈에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는 오랜 시간 제대로 먹지 못해 생리가 다 없어졌고, 새벽 5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까딱 움직이지 못하고 다리를 꼬고 앉아 벌을 받아야 했으며, 온기 한점 없는 차가운 나무 바닥에서 한겨울 추위를 견뎌야 했다.
 
감시카메라와 보안원의 살벌한 눈길이 잠시도 곁에서 떠나지 않았던 그 지옥의 날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체벌이 가해졌고, 좁은 방에 수십 명이 있다 보니 공기 중에는 먼지가 자욱했다.
 
씻지 못해서 몸에서는 냄새가 나고 수도가 안 나오는 변기에서 풍기는 악취에 질식되어 그 후유증으로 나는 천식에 걸려 쉴 새 없이 목 터지는 아픔을 동반하는 기침을 하고 있었다.
 
죄 없는 죄인이 되어 받는 그 고통, 그것은 정말 인간으로 태어나 당하는 고통중에 가장 최악의 고통이었고 다시는 겪지 않아야 할 불행의 시간들이었다.
 
김정일은 자기 백성을 죄인 아닌 죄인으로 몰아붙여 권력을 위해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희생물로 만들어 버렸으니 우리는 우리가 당하는 고통의 원흉이 그 흉악한 독재자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김하은 인턴기자.